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
박성진 문화평론가
■
유응교 시인
꿈 – 파블로 피카소
유응교
창조의 행위들은 파괴에서 시작되니
기존의 화풍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본 대로 그리지 않고 생각대로 그렸네
고독한 싸움에서 새로움을 찾아내는
위대한 예술가는 모방을 잘하나니
옛것을 재창조하여 입체주의 완성했네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을 간직하고
자신이 할 수 없는 한계에 도전하여
주위에 빨간색 없으면 파란색을 사용했네
철학적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평면을 입체적인 개념과 구상으로
장식과 기교 버리고 지평 넓힌 피카소
고요와 풍만 속에 꿈꾸며 잠든 여인
꿈속과 현실 세계의 양면성 보여주니
피카소 위대한 그림 세계 최고 걸작
■
문학, 미술평론
■
시는 그림을 설명하지 않고, 그림이 시를 열어 보인다
■
이 작품에서 시는 그림의 해설로 머물지 않는다. 시인은 피카소의 작품을 언어로 번역하지 않고, 피카소의 사유 방식을 시의 구조 안으로 끌어들인다. 문학은 여기서 미술을 따라가지 않고, 미술과 나란히 걷는다. 그림을 본 뒤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생각하는 방식으로 시를 짓는 것이다. 이 교차 지점에서 시는 회화의 해설이 아니라, 또 하나의 창작 행위가 된다.
■
‘본 대로’의 회화와 ‘생각’의 시가 만남
■
회화가 사물을 본 대로 재현하던 시대, 시 역시 감정을 본 대로 서술하던 시기가 있었다. 시인은 피카소의 회화적 전환을 빌려 시의 태도 또한 전환시킨다. ‘생각대로 그렸다’는 말은 곧 ‘생각대로 썼다’는 선언으로 확장된다. 이 시는 이미지보다 구조를, 감상보다 사유를 중시하는 문학의 방향을 은근히 제시한다.
■
고독의 공통 언어
■
미술과 문학이 만나는 지점에는 언제나 고독이 있다. 새로운 형식은 늘 이해받지 못했고, 새로운 언어는 늘 낯설었다. 시인은 피카소의 ‘고독한 싸움’을 통해 창작자의 보편적 운명을 말한다. 캔버스 앞의 고독과 백지 앞의 고독은 다르지 않다. 이 시에서 고독은 예술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창작이 요구하는 태도다.
■
모방에서 재창조, 문학과 미술의 공감
■
시인은 모방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깊은 모방만이 재창조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미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문학 역시 이전의 언어를 철저히 소화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문장을 얻을 수 없다. 이 시는 미술사의 교훈을 문학의 윤리로 확장시키며, 두 예술이 공유하는 창작의 경로를 드러낸다.
■
입체주의와 다층적 언어
■
입체주의는 사물을 여러 시점에서 동시에 바라보는 방식이다. 시인은 이 개념을 시의 구조로 옮겨온다. 이 작품은 하나의 감정이나 하나의 해석에 머물지 않는다. 창조, 고독, 색채, 꿈이 서로 다른 층위에서 동시에 작동한다. 이는 회화적 다중 시점을 언어의 다층성으로 전환한 결과다.
■
색채와 시어
■
빨간색이 없으면 파란색을 선택하는 태도는, 시어 선택의 윤리와 닮아 있다. 시인은 가장 화려한 말을 고르지 않는다. 가능한 말, 지금 필요한 말로 시를 구성한다. 이 지점에서 미술의 색채 감각은 문학의 언어 감각으로 교차된다. 선택은 취향이 아니라 태도다.
■
철학은 설명이 아니다
■
시인은 피카소의 철학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철학적 관점을 가진 시선 자체를 시의 형식으로 구현한다. 이는 문학과 미술이 만나는 가장 깊은 지점이다. 개념을 말하는 대신 구조로 보여주는 방식. 시는 이 점에서 회화와 닮아간다.
■
문학과 미술의 공동 선언
■
장식과 기교를 버린다는 말은 두 예술 모두에게 유효하다. 화려한 효과보다 사유의 밀도를 선택하는 태도. 시인은 이 선언을 통해 문학과 미술이 같은 윤리를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름다움은 덧붙임이 아니라 절제에서 온다는 믿음이 여기서 만난다.
■
잠든 여인, 꿈이라는 공간
■
회화에서의 꿈은 시각적 무의식의 장이며, 시에서의 꿈은 언어 이전의 감각이다. 잠든 여인은 이 두 세계가 만나는 상징적 존재다. 시인은 이 이미지를 통해 미술과 문학이 함께 도달하려는 지점, 즉 현실을 넘어서는 사유의 공간을 제시한다.
■
교차의 끝에서 질문 하나
■
이 교차 글이 도달하는 곳은 결론이 아니라 질문이다.
우리는 아직 본 대로만 살고 있지 않은가? 아니면 생각대로 살아갈 용기를 갖고 있는 것인지, 시와 그림은 여기서 하나의 목소리가 되었다. 예술은 설명이 아니라 선택이며, 교차는 혼합이 아니다.
확장이라는 사실을 이 작품은 조용히 증명하였다.
파블로 피카소의 꿈은 오늘도 누군가에게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