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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학박사 김민정-꽃, 그 순간》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문학박사 김민정


〈꽃, 그 순간〉


시조 김민정


하늘의 벅찬 숨결

그대로 땅이 받아


홀로 된 꽃대궁도

꽃씨를 받아 둔다


순간은 모두 꽃이다

네 남루도 그렇다



시조의 출발점은 말을

아낌으로 시작되는 세계


이 시조는 말을 아낀다. 독자를 설득하려 들지 않고, 감정을 앞세우지도 않는다. 첫 연부터 그렇다. “하늘의 벅찬 숨결 그대로 / 땅이 받아.” 이 두 줄에는 설명이 없다. 왜 하늘이 벅찬지를...

왜 땅이 받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이 짧은 문장 속에 이미 시인은 하나의 세계를 놓아두었다.

그 벅찬 마음을 굳이 써 내려가지 않았다



시인의 시조는 이렇게 시작한다. 말이 아니라 태도이고 이 작품에서 태도는 분명하다. 세계는 먼저 오고, 인간은 그다음에 응답한다. 이 질서는 공격적이지 않고, 비극적이지도 않다. 다만 오래된 질서처럼 조용하다. 김민정 시인의 시조가 현대적이면서도 낡지 않음은 바로 이 침묵의 정확성 때문이다.



하늘과 땅-한국 시조가 붙잡아온 사유의 뼈대



하늘과 땅의 관계는 한국 시조의 가장 오래된 주제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를 관념으로 끌어올리지 않았다. “하늘의 벅찬 숨결”이라는 표현에는 신성함보다 생의 압력이 느껴진다. 벅차다는 말은 충만함이자 버거움이다. 생은 늘 아름답기만 하지 않다. 때로는 감당하기 힘들다. 하늘은 그런 생의 총량으로 다가온다.


그 하늘을 땅은 “받아”들인다. 이 동사는 이 시조 전체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땅은 선택한다. 무너질 수도 있었고, 거부할 수도 있었지만 받는다. 김민정 시인의 시조는 이 지점에서 인간의 존엄을 정의한다. 존엄은 지배에서 오지 않는다. 받아들이는 능력에서 온다. 이것이 그의 시조가 가진 가장 깊은 윤리적 바탕이다.


‘받아’에서 ‘받아둔다’로-시간의 윤리가 개입하는 순간


둘째 연으로 넘어오면서 시는 한 단계 더 깊어진다.


“홀로 된/꽃대궁도/ 꽃씨를/받아둔다”



여기서 시조는 자연의 풍경을 빌려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온다. ‘홀로 된’이라는 말은 자연보다 인간에게 더 익숙하다. 이 꽃대궁은 혼자 남은 존재다. 버려졌을 수도 있고, 스스로 남았을 수도 있다. 시는 그 이유를 묻지 않는다. 다만 그 상태를 인정한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꽃대궁은 씨앗을 받아둔다. ‘받는다’가 아니라 ‘받아둔다’. 이 차이는 매우 크다. 받아둔다는 말에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피어나지 않더라도, 언젠가를 위해 품고 가겠다는 뜻이다. 시인의 시조는 늘 미래를 말한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보관이라는 행위로써 말한다.


고독의 홀로 됨은 결핍이 아니라 자리이다


이 시조에서 홀로 됨은 비극이 아니다. 외로움으로 과장되지도 않는다. 다만 하나의 상태로 놓인다. 시인은 고독을 극복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고독 속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씨앗을 받아두는 일이다.


이 대목에서 김민정 시인의 시조는 매우 성숙한 윤리를 보여준다.

삶은 언제나 함께할 수 없고, 늘 충분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 부족함 속에서도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가능하다는 것. 시인의 시조는 이 사실을 소리 높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순간이라는 말의 무게와-찰나를 넘어서


종장으로 넘어가면 시는 단정해진다.


“순간은 모두/꽃이다 ”


이 선언은 가볍지 않다. 순간을 모두 꽃이라 부르는 일은 쉬운 위로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조가 여기까지 쌓아온 맥락을 생각하면, 이 문장은 감상이 아니다. 순간은 ‘받아들여진 시간’ 일 때 비로소 꽃이 된다. 아무 순간이나 꽃이 되는 것이 아니다. 받아들여지고, 견뎌지고, 품어진 순간만이 꽃이 된다.



“남루도 그렇다” -미학에서 윤리로 넘어가는 문장


이 시조가 단순한 자연시가 아닌 이유는 마지막 두 줄에 있다.


“남루도 / 그렇다”


여기서 꽃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꽃은 더 이상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꽃은 삶을 살아낸 흔적만을 말하며 남루함은 해짐이고, 닳음이고, 부족함이다. 시인은 불필요하게 치장하지 않는다.

대신 배제하지 않았다. 이 태도가 중요하다.


시인의 시조는 늘 낮은 곳까지 시선을 데려간다. 그러나 연민에 머물지 않는다. 남루한 삶도 꽃이라고 말하는 순간, 시는 위로를 넘어 존엄의 선언이 된다. 이것이 시인의 시조의 가장 깊은 지점이다.


언어의 절제의 미학 설명하지 않아서

좋은 시조


시인의 시조 언어는 매우 절제되어 있다. 수사가 많지 않고, 비유도 과하지 않다. 그러나 그 절제 덕분에 시는 오래 남는다. 독자는 해석을 강요받지 않는다.

대신 자기 삶의 순간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이 여백이야말로 시조의 미덕이며, 시인이 그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증거이다.


시조사적 맥락의 시조


이 작품은 전통을 흉내 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형식을 해체하지도 않는다.

김민정 시인의 시조가 가진 기본 구조를 존중하면서, 그 안에 지금의 삶을 그대로 밀어 넣었다. 그래서 이 시조는 교과서적이지 않고, 동시에 가볍지도 않다. 시조가 여전히 현재형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꽃은 피는 대상이 아닌, 삶의 태도이다


〈꽃, 그 순간〉은 꽃을 노래한 시가 아니다.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시다.

하늘이 오면 땅처럼 받고,

홀로 서도 씨앗을 품고,

남루해져도 스스로를 버리지 않는 것.

시인은 이 모든 태도를 한 단어로 묶어 놓았다.

<꽃, 그 순간>의

이 단정한 언어가 이 시조를 더 오래 살게 한다.

이 작품은 시조사이자 김민정 시인의 시선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이다.

높지도 않고, 그리고 멀지도 않다.

그러나 사유는 깊다. 그래서 이 시조는 조용히 읽히고, 독자에게 오래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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