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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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은
하나님도 모른다네
아침이면
성경보다 먼저
시세표를 펼쳐 들고
기도보다
차트를 오래 본다
하늘은
해와 달을 제자리에 두는데
사람은
금 한 돈 가격 오름세에
마음을 뺏긴다
욕심은 늘 말한다
이번만, 이번만
많이 오르면 좋겠다고
그런데 오를수록
마음이 먼저 들뜬다
금은
그저 땅속에 있었을 뿐
사람이 캐내고
값을 붙이고
불안을 얹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금값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신다
사람이
얼마나 반짝이를 원하는지
쉽게
빛을 잃는 것은
생각도 없이
그래서 오늘도
금은 말이 없고
사람만
시세를 붙잡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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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웃음은 크지 않다. 소리 내어 웃기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해지는 웃음이다. “금값은 하나님도 모른다네”라는 첫 문장은 농담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오늘의 인간을 정면에서 비추는 거울이다. 신의 영역까지 끌어들여야 할 만큼, 우리는 금값에 집착하고 있다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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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시선은 아주 일상적인 아침에서 시작한다. 성경보다 먼저 펼쳐 드는 시세표, 기도보다 오래 들여다보는 차트. 이 장면은 과장이 아니다. 현대인의 신앙과 믿음이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정확히 짚어낸다. 신은 여전히 하늘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숫자와 그래프 속에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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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달을 제자리에 두는 하늘과, 금 한 돈 가격에 흔들리는 인간의 대비는 이 시의 핵심적인 해학이다. 우주는 질서를 잃지 않는데, 인간만 사소한 오름세 하나에 마음을 내준다. 여기서 시는 인간을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지 않은가” 하고 조용히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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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만”이라는 말은 욕심의 언어이자 인간의 자기 합리화다. 이 말속에는 끝이 없다. 시는 욕심을 마귀처럼 묘사하지 않고, 아주 익숙한 말투로 등장시킨다. 그래서 더 아프다. 우리는 모두 이 말을 공감한다. 그리고 거의 매번 속아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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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에 대한 인식 전환도 이 시의 미덕이다. 금은 원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땅속에 있었을 뿐이다. 값도, 의미도, 불안도 인간이 얹었다. 이 대목에서 시는 경제를 비판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 심리를 들여다보고 있다. 문제는 금이 아니라, 금을 바라보는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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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행이다”라는 문장은 시의 온도를 바꾼다. 여기서 시는 조롱을 멈추고 연민으로 이동한다. 금값은 몰라도, 하나님은 안다는 말은 위로이자 경고이다. 인간이 무엇을 그토록 반짝이게 여기며 살아가는지, 그리고 그 반짝임이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지를 알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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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해학은 결코 가볍지 않다. 웃음 뒤에 남는 것은 허탈함이다. 시세를 붙잡고 사는 인간의 모습은 우스우면서도 처연하다.
금은 말이 없는데, 사람만 분주하다.
이 침묵의 대비가 독자의 마음을 오래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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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시는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사는가. 금값인가, 숫자인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가치인가. 해학은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시세표를 잠시 내려놓고, 마음의 가격표를 한 번쯤 들여다보라고 권한다. 그 조용한 권유가 이 시를 오래 남게 한다. 해학의 시와 평론으로 잠시 웃음과 교훈이 전하는 메시지의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