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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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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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 시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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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서시」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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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의 역사적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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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의 「서시」는 단순히 한 시인의 자전적 고백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정신사적 전환점에 놓인다. 1941년 연희전문 졸업을 앞두고 쓴 이 작품은, 개인의 시적 선언이자 동시에 식민지 청년 지성의 유언과도 같은 무게를 지닌다. 이 시는 해방 이전에 발표되지 못했으나, 해방 후 처음 세상에 알려졌을 때, 한국인의 가슴을 울린 것은 단순한 서정성 때문이 아니라 ‘민족적 영혼의 순결’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서시」는 한국문학의 출발점이자, 동시에 한국 현대사의 양심 기록으로 읽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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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의 초월적 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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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라는 첫 구절은 그 자체로 충격적인 선언이다.
보통 시의 첫머리는 자연 묘사나 감정의 서술로 시작되는데, 윤동주는 곧바로 ‘죽음’을 불러온다. 그러나 여기서의 죽음은 패배나 좌절이 아니라, 끝까지 지켜야 할 자기 존재의 맹세로 자리한다. 죽음까지 포함하는 결단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시작이다. 윤동주의 시혼은 삶과 죽음이 단절이 아니라 연속임을 보여주며, ‘죽는 날까지’라는 말속에 이미 초월적 생애의 완결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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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우러러 신성에 대한 시적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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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우러러”는 자연을 바라보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다. 하늘은 동아시아 사유에서 천(天), 곧 우주의 도덕적 질서를 뜻하며, 기독교 신앙에서는 하나님의 심판과 은총의 공간이다. 윤동주에게 하늘은 ‘심판과 위로’가 동시에 오는 장소였다. 그는 땅에 엎드려 숨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 당당히 서고자 했다.
그 시선은 단순히 시대의 억압을 넘어, 궁극적 존재 앞에서의 인간적 투명성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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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과 윤리적 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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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구절은 윤동주의 시학 전체를 압축한다. 윤동주의 문학은 ‘부끄러움의 문학’이라 불려도 좋다. 그는 인간 존재가 역사 앞에서, 신 앞에서, 그리고 자기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울 수 있는가를 철저히 응시했다. 그러나 이 부끄러움은 단순한 죄책감이 아니라, 자기 성찰을 가능케 하는 윤리적 에너지였다. 그에게 시란 ‘부끄럼을 직면하는 용기’였고, 문학은 곧 자기 정화의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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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고통, 시대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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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여기서 바람은 단순한 자연의 흔들림이 아니라, 시대의 폭압적 억압을 상징한다. 식민지 현실은 언제나 긴장과 공포의 바람처럼 청년들을 흔들었다.
그러나 윤동주는 그것을 단순히 외적 억압으로만 느낀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부끄러움과 연결시켰다.
작은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심성은 과민하거나 유약함이 아니라, ‘시인의 양심적 긴장’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는 민족과 시대 앞에서 조금도 무뎌지지 않는 감각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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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상징, 초월적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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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에서 ‘별’은 반복되는 핵심 상징이다. 별은 단순히 밤하늘의 빛나는 물체가 아니라, 영원과 순결, 희망의 은유이다. 윤동주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사랑하고자 했다. 별은 시대적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멸의 빛이며, 동시에 신에게 닿는 인간의 노래였다. 「서시」의 별은 낭만적 장식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선 초월적 지향의 결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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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사랑의 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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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이 구절은 윤동주 문학의 윤리적 정점이다.
그는 죽음을 단순히 피하거나 저항하지 않고, 그것을 사랑으로 끌어안는다.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아가페적 사랑’과 불교의 ‘연민(悲)’이 교차한다. 윤동주는 죽음조차 부정하지 않고, 그 안에서 사랑의 가능성을 본다. 이는 시인이자 신앙인으로서 그가 도달한 실존적 해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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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은유 실존의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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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이 길은 선택된 길이 아니라, ‘주어진 길’이다. 윤동주는 역사의 구조와 시대의 상황 속에서 자기 길을 발견했다. 그것은 운명의 수용인 동시에 실존의 결단이다. 그는 자기 앞에 놓인 길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그 길을 사랑과 양심으로 걸어갔다. 이 길의 이미지는 훗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맞이한 죽음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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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행의 별빛 그 영원한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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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친다.”
마지막 구절은 시 전체의 서정적 결론이다.
죽음과 사랑, 길과 부끄러움의 결단 뒤에 남는 것은 여전히 별빛이다. 바람에 스치는 별은 꺼지는 듯 보이나, 사실은 영원히 남는다. 윤동주는 죽음을 예감하며 이 시를 썼으나, 그 별빛은 사라지지 않고 후대의 하늘에 남았다. 그는 이미 자기 존재를 ‘별빛’으로 변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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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의 역사와 「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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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1941년, 일제의 전쟁 동원이 본격화되던 시기에 쓰였다. 총칼과 군국주의가 인간의 영혼까지 억압하던 시절, 윤동주는 시로써 저항했다.
그는 직접적인 구호를 외치지 않았으나, ‘부끄럼 없는 삶’과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통해, 문학이 곧 가장 강력한 저항임을 보여주었다. 「서시」는 민족사의 고난 속에서 탄생한 ‘비폭력적 선언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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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과 윤동주의 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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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모태 신앙인으로, 그의 작품에는 기독교적 정서가 깊게 배어 있다. 「서시」의 하늘, 별, 길은 모두 신앙적 상징으로 읽힌다. 그러나 윤동주는 교리적 언어를 시어로 쓰지 않고, 그것을 시적 감수성으로 승화했다.
따라서 「서시」는 특정 종교의 시가 아니라, 신 앞에 선 모든 인간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영성의 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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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적 사유와 윤동주의 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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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정신은 기독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부끄럼”은 유교적 수치심과 맞닿아 있으며, “길”은 불교적 업과 윤회의 이미지를 담았다. 그는 서양 종교와 동양 철학의 경계를 넘어, 인간적 진실을 찾았다. 「서시」는 동서양 사유가 융합된 보편 인류의 시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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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윤동주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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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는 스물일곱 청년 윤동주의 자화상이다.
그는 유학과 유학 사이, 조국과 일본 사이에서 방황하면서도, 끝내 자기 양심을 배반하지 않았다. 이 시는 청춘이 남긴 고독한 고백이지만, 동시에 가장 숭고한 생애의 선언이다.
청년 윤동주의 얼굴은 곧 인류 전체 청춘의 초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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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혼의 세계화 윤동주와 인류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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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시는 한국의 좁은 경계를 넘어 인류의 유산이 되었다. 「서시」는 번역되어 세계 각국에서 읽히며, 억압과 고통 속에서 부끄럼 없이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보편적 목소리로 울려 퍼진다.
윤동주는 세계문학사 속에서 ‘저항과 순결의 시인’으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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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와 현대 청년의 문제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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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청년들은 여전히 불안 속에 살아간다.
취업, 불평등, 전쟁, 환경 위기 속에서도, 윤동주의 「서시」는 여전히 살아 있다.
‘부끄럼 없는 삶’, ‘주어진 길의 결단’은 여전히 시대를 밝히는 등불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윤리적 요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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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시」와 한국문학사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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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한국문학사에서 ‘순결한 양심의 문학’을 제시했다.
이전의 문학이 민족운동이나 낭만적 서정에 머물렀다면, 윤동주는 ‘인간적 윤리’를 중심에 놓았다.
그는 한국문학에 ‘시인의 양심’을 제도화했다. 「서시」 이후, 한국문학은 더 이상 단순한 미학적 표현이 아니라, 존재와 양심의 기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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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죽음과 「서시」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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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세에 옥사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서시」의 미완성을 완성으로 바꾸었다.
만약 그가 살아 돌아왔다면, 「서시」는 한 청년의 기도 시로만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이 시를 ‘영원한 유언’으로 바꾸었고, 한국문학사의 불멸의 서시로 남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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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별빛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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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에도 별은 바람에 스친다.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디지털 시대에 부활하여 시인의 마음에
청년들의 마음에서 부활하여 별빛의 유산을
지구촌을 향한 서시의 미완성을 불멸의 서시로의 오늘을 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