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탱고가 흐르는 황혼~천경자의 고독, 관능
천경자의 그림 속 황혼은 늘 혼자다.
그런데 이 고독은 쓸쓸하지 않고, 오히려 농염하다.
〈탱고가 흐르는 황혼〉에서 해가 지는 시간은 끝이 아니다
가장 뜨겁게 살아왔던 기억이 몸을 흔드는 순간이다.
이 그림의 색은 침묵하지 않는다.
붉고 보랏빛이 감도는 황혼은 단순한 저녁 하늘이 아니라, 한 여자의 삶이 저물며 남긴 체온이다.
천경자는 노을을 풍경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녀는 노을을 감정의 색으로 그린다.
탱고는 여기서는 음악이 아니다.
탱고는 몸에 남은 리듬이다.
사랑이 끝난 뒤에도 지워지지 않는 걸음,
함께 춤추던 상대는 사라졌지만
몸은 아직 그 리듬을 기억하는 상태이다
그래서 이 황혼은 고요하지 않다.
정적 속에서 음악이 흐른다.
천경자의 여인들은 늘 정면을 보지 않는다.
이 그림에서도 시선은 어딘가 비껴 나 있다.
바라보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미 너무 많이 본 사람의 시선은
더 이상 기대하지 않지만
기억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여기엔 젊음에 대한 미련이 없다.
대신 살아온 시간에 대한 자존이 있다.
천경자의 황혼은 “이제 끝났다”가 아니라
“그래도 나는 이렇게 살았다”라고 말한다.
탱고처럼, 삶은 한 번도 단정한 적이 없었고
언제나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 그림이 관능적인 이유는
육체 때문이 아니라 시간을 견딘 감정 때문이다.
젊은 사랑보다
늦은 사랑이 더 깊은 것처럼,
황혼의 색은 지나간 날 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탱고가 흐르는 황혼〉은
천경자 화가의 초상이면서
삶의 자화상이다.
사랑했고, 상처받았고, 떠나보냈지만
그 모든 것을 지운 적은 없다는 고백이다
천경자 화가는 말한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빛이 사라지기 직전이다
천경자 화가의 황혼은
눈물과 후회가 아니었다 평창동
전시장에 황혼의 탱고 음악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