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청민 박철언 ~봄이 오는 소리》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봄이 오는 소리


청민 박철언


시들어 가라앉은 무채색 뚫고

연둣빛 싹이 터지는 아우성으로


얼음의 뒤축을 털어낸 강물

다시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로


빈 나뭇가지만 쌩쌩 오가다가

잎눈과 꽃눈 어루만지며

한결 부드러워진 바람 소리로


긴 동면에서 벗어나

신비로운 두려움으로 깨어난

곤충의 접힌 날개 펴는 소리로


소리 없는 음표로 고여 있다가

숨은 새싹들 움 틔우듯

맑은 악기 튜닝하는 새소리로


봄은 소리로도 오고 있었구나


소리로 먼저 오는 계절


이 시를 읽는 동안, 나는 문득 귀를 세우게 된다.

봄은 늘 눈으로 먼저 온다고 생각해 왔다.

꽃이 피고, 색이 번지고, 빛이 부드러워질 때

그제야 우리는 “아, 봄이구나” 말한다.

그런데 이 시는 조금 다르게 들린다.

봄은 이미 와 있었던 것 같다고.

우리가 보지 못했을 뿐이다.


첫 연의 “무채색 땅”은 겨울의 잔해라기보다

숨을 참고 있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그 침묵을 뚫는 것이 색이 아니라 “아우성”이라는 점에서

이 시의 생명은 조용한 풍경이 아니라

아주 작은 밀어 올림에 가까워 보인다.

싹은 터질 때 소리를 낼 것만 같다.

아주 작지만, 세상을 밀어 올리는 소리다.


“얼음의 뒤축을 털어낸 강물”이라는 표현에서는

계절이 몸을 가진 존재처럼 다가온다.

강물은 녹아 흐르는 것이 아니라

겨울을 털고 일어서는 듯하다.

그 물소리는 단순한 자연의 소리라기보다

다시 흐르겠다는 다짐처럼 들린다.

특히 바람의 변화가 오래 남는다.

겨울바람은 “쌩쌩 오가”지만

봄바람은 “어루만진다.”

같은 바람인데 결이 달라진다.

시인은 온도보다 태도를 보여준다.

거침이 돌봄으로 바뀌는 순간,

계절은 기온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으로 느껴진다.


곤충의 날개를 “신비로운 두려움”이라 부른 대목에서는

이 시가 단순한 계절 찬가로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깨어남은 언제나 조금 두렵다.

긴 동면 끝에 세상으로 나오는 존재는

환희보다 먼저 떨림을 겪을지도 모른다.

봄은 밝음이면서도

어딘가 긴장을 품고 있다.

그리고 “소리 없는 음표”에서 한참 머문다.

아직 울리지 않았지만 이미 존재하는 소리.

보이지 않지만 이미 시작된 계절.

봄은 완성된 합창이라기보다

조용히 조율되는 시간에 가까워 보인다.


마지막의 “있었구나.”

이 낮은 탄성은 깨달음의 호흡처럼 읽힌다.

봄은 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듣지 못했을 뿐이다.

이 시는 계절을 노래하면서도

사실은 감각의 태도를 묻는 듯하다.

우리는 얼마나 들으며 살고 있는가.

꽃이 피어야만 알 것인가.

아니면 아주 작은 소리부터 알아챌 것인가.


청민 박철언 시인의 「봄이 오는 소리」는

색보다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시다.

생명의 첫 떨림이

아주 낮은음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들려준다.

읽고 나면

문득 창밖이 아니라

자기 안의 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어쩌면 우리 안에도

작은 연둣빛 하나가

조용히 튜닝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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