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언덕에서 어머니, 누나, 아버지의 장례식도 치러졌다. 여동생이 입원한 정신병원도 언덕에서 가깝다. 뭉크의 씻을 수 없는 공포의 대상들이 이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의 언덕에서 치열하게 붓질하다가 "뭉크의 절규"가 탄생한 것이다. 강박적으로 그림을 그리던 에케베르크 언덕은 뭉크에게는 "기회의 에케베르크 언덕"이 되었다. 오슬로에 뭉크작품이 많은 것은 히틀러 때문이었다.
1933년 나치정권이 들어서면서 뭉크는 히틀러의 타깃이 된다 히틀러는 전통적인 아카데미화풍을 추앙했는데 뭉크의 현대미술 표현주의는 퇴폐미술로 낙인찍어 비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치정부는 일부 뭉크그림을 압수하였다. 뭉크는 노르웨이 오슬로시에 남은 작품을 모두 기증하였다.
오슬로시는 뭉크의 상당수 작품을 소장하였고 뭉크의 그림은 경매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유가 되었다. 세계여행 중 상당한 시간들을 음악과, 미술전시회를 다녔다. 뭉크의 그림 속 선들을 보면 공포를 느낄 수 있는 구조적 특색이 있다. 공포를 연상시키는 구조화시키는 힘이 들어있는 것이다.
뭉크의 그림세계에서 그림이 없었다면 벌써 죽지 않았을까? 조울증과 알코올중독이 된 뭉크에게 그림은 진정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뭉크에게 신이 내린 특별한 선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불안과 질병"이었다.
불안과, 질병 고통의 시간들을 작품화한 뭉크의 정신은 가히 기이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항상 죽음의 공포와 여인과 깊은 사랑을 못해본 불행해 보이던 뭉크가 아닌가?
놀라운 점은 그 어떤 화가보다 장수하였으며 81년간 25000점 이상의 그림을 그렸다. 정리하자면 ""뭉크는 천재이다."" 공포스러운 삶을 지배당하지 않고, 화가로서 장수하며 성공적인 화가 뭉크를 나는 "천재화가 뭉크"로 부르는 이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