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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May 24. 2023

유붕이 자원방래하면 문경새재를 보여주리다

문경새재는 문경의 랜드마크이다. 문경이 대한민국 어디쯤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문경새재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으리라. 한국관광공사에서 조사한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00선’에서 1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삿짐 정리가 얼추 끝난 어느 날, 문경시민이 되었으니 문경의 랜드마크 정도는 제대로 알아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끓어올랐다. 번개를 맞은 것처럼 문경새재로 달려갔다. 그때가 1월이었다. 운전하는 남편 옆에 앉아 슬쩍 공부도 했다.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만들어진 고갯길로 영남지방에서 서울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이다. 과거 보러 가는 선비도, 보부상도 모두 이 고갯길을 넘어야 했다. ‘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억새가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화령 사이(새)의 고개’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문경새재의 제2관문(조곡관)과 제3관문(조령관) 이름에 새 조자가 들어가는 걸로 보아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의미가 가장 와닿는다.


그렇게 갑자기 문경새재로 호기롭게 달려갔으나 추워도 너무 추웠다. 주차장에서 1 관문(주흘관)까지는 1km 남짓 길에 바람이 많다. 바람을 하나도 막아주지 않을 것 같은 포토존이 여러 개 설치된 광장길이다. 아무래도 문경새재를 사이에 둔 주흘산과 조령산의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인 것 같다. 한 겨울 매서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았고 빰이 얼얼했다. 가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자의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시인도 노래했다. 1 관문에서 아름답게 되돌아왔다. 며칠 뒤에 다시 도전했으나 추워서 또 실패했다. 1 관문을 지나 숲 속으로 들어서면 덜 춥다는 정보를 한참 후에 들었다.


1 관문에서 2 관문까지 편도 3km 거리. 편안한 길이라 쉽게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드라마 세트장에서, 마당바위에서, 교귀정에서 되돌아오기를  몇 번 반복했다. 문경새재 산책길은 산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편평하고 고르고 넓고 경사가 완만하여 걷기 좋다. 걷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한 산책길인데도 힘들었다. 저질 체력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나의 뒷모습이 아름답지 않았다. 한참 후 따뜻한 봄이 되어서야 2 관문을 만났다.


문경새재 산책길은 걷기 좋은 길로 소문이 자자하다. 날이 따뜻해지자 맨발로 걷는 사람이 심심찮게 보인다. 길을 걷다 지칠만하면 성황당, 조령원터, 왕건교, 교귀정, 산불됴심비, 문경새재아리랑비 같은 기념물이 보인다. 역사적 숨결이라는 것을 느끼겠다는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기념물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면 된다. 울창한 나무들은 겨울바람과 여름햇빛을 막아준다. 편안한 주 산책길이 심심하다면 등산로 혹은 옛길로 잠시 새도 된다. 참 좋다.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면 문경새재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유붕이 자원방래하면 문경새재를 보여주리다.’


그런데 내가 아직 3 관문을 가보지 못했다. 어찌해야 하나. 문경새재에서 3 관문까지 가지 않으면 앙꼬 없는 찐빵이 될 것 같다. 아니다. 욕심부리지 말고 그때그때 날씨와 몸 상태에 맞게 적당하게 하면 된다. 그래도 왠지 나는 3 관문을 보아야 할 것 같다.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가보지도 않고 ‘문경새재는 1,2,3 관문이 있는데 어쩌고 저쩌고’할 수 없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괴산 조령산으로 올라가면 돼.”

3 관문을 노래 노래 불렀더니 괴산에서 3 관문으로 먼저 올라가서 2 관문을 거쳐 1 관문으로 내려오면 된단다. 이를테면 서울에서 과거를 본 선비가 경상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3 관문은 괴산과 문경이 맞닻아있다. 우리 동네 문경이 아닌 괴산에서 시작하는 것이 모양새가 별로인가? 에이 그럴 리가. 아무려면 어떤가. 5월 어느 날 괴산 조령산 자연휴양림에서 산책을 시작했다. 3 관문까지는 경사가 제법 가파르다. 30분 남짓 걸었더니 문경새재 3 관문이다. 야호! 새재의 정상에 섰다. 드디어 나도 문경새재길을 걸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 번 다녀왔으니 완벽하지는 않지만 친구들에게 문경새재를 소개할 자격을 갖췄다고 할 수 있겠다. 드디어 친구들이 놀러 왔다. 이사 후 처음이다. 그런데 친구들이 머무는 이틀 내내 비가 왔다. 넘어지기 쉬운 나이, 다치면 회복이 쉽지 않은 나이인지라 문경새재 근처도 가지 않았다. 이럴 수가. 1년 중에 날씨가 가장 좋다는 계절의 여왕 5월에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문경새재 자랑할 생각에 잔뜩 부풀어 있었는데 말이다. 겨우 한 번 다녀온 주제에 너무 아는 척하지 말라는 하늘의 경고인가. 암튼 나는 친구들이 놀러 오면 문경새재를 보여줄 테다. 아직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문경새재가 좋은 곳이라는 것은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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