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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Jun 02. 2023

나의 장례식

장일호 에세이 <슬픔의 방문>을 읽고


‘운이 좋다면’ 살아 있을 때 장례식을 열고 싶다. 내 장례의 상주가 되고 싶다. 당신들 덕분에 살아서 좋았다고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고 싶다. 장례식에 오는 사람들은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어야만 입장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조문객들이 가져오는 사진은 모두 영정사진으로 , 장례 기간 동안 벽에 전시해 두면 근사할 것 같다. 돌아가는 길에 가져갈 제철 꽃을 준비하는 것도 장례 계획의 일부다.


<슬픔의 방문>의 마지막 단락은 장례식 초대장이다. 장일호 작가가 자신의 장례식에 친구들과 지인들을 초대하는 글을 읽고 내 장례식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지금까지는 내 장례식은 없었으면 했다. 장례를 치르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기면 남은 이들이 내 부탁을 들어줄까 아닐까 이 정도만 생각했었다. 장례식장의 공기가 나는 힘들다. 호상이라며 시끌벅적한 분위기도 적응이 안 되고 슬픈 마음이 진하게 배어 나오는 분위기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아프다. 사망자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유족과 인연이 있다는 이유로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도 싫다. 유족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사망자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추모는 부담스럽다. 전문 장례식장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장례 절차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의미는 희미하고 돈 냄새만 가득하다. 그래서 내 장례식은 치르지 않았으면 했는데 장일호 작가의 글을 읽고 다른 생각이 든다.


나도 살아 있을 때 장례식을 열면 어떨까? 작가도 말했지만 일단 운이 엄청 좋아야 가능하다.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도 2~3년 더 살아 있으면 얼마나 민망하겠나. 죽을 날짜를 받을 수도 없는데 적당한 시기에 날을 잡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암튼 지건 살아서 장례식을 열게 되었다고 가정하고 어떻게 할까? 장일호 작가처럼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는 사람들만 장례식에 입장할 수 있게 해야겠다. 나는 사진을 잘 찍지도 않고 찍히지도 않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입장용 사진이 없으면 어떡하나. 지금이라도 사진을 많이 찍어야 하나. 남는 게 사진뿐이라는 말이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말이 될 줄이야. 나와 함께 찍은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면 재미있겠다.


내가 사용하던 물건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답례품으로 주고 싶다. 우리 문화는 고인의 물건을 물려받아 사용하는 것을 터부시 해서 그런지 장례가 끝나면 고인이 사용하던 물건은 대개 버리는 경우가 많다. 장례식의 답례품으로 살아 있을 때 물려주면 되겠다. 환경보호도 되고 물건의 역사도 계속되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장례 음식은 차와 다과로 하고 싶다. 시뻘건 육개장과 식어버린 수육 대신 맛있는 차와 함께 달콤한 과자와 과일을 함께 나누고 싶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과는 꼭 준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나도 참석자 모두와 눈을 맞추며 손을 꼭 잡고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덕분에 내 삶이 반짝반짝 눈이 부실수 있었다고 말이다. 내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은 사람들 모두가 내 장례식에 참석하면 좋겠다. 그들이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의 초대를 거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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