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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Mar 14. 2023

추리소설인지 철학강의인지 헷갈리지만 재미있다

장강명 작가의 <재수사>를 읽고

재미있다. 그런데 어렵다. 이 작품을 함께 읽은 친구의 말처럼 좌뇌와 우뇌가 동시에 자극되고 활성화되는 기분이다. 22년 전에 일어난 살인 사건( 미제사건이다)을 재수사하는 형사들의 이야기와 살인자의 일기가 교차로 나온다. 형사들의 이야기는 추리물이 주는 긴장과 재미를 주고 살인자의 일기는 철학적 사유를 요구한다.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책장을 빨리빨리 넘기고 싶지만 살인자의 입을 빌려 툭툭 던지는 작가의 질문에 멈추게 된다. 그리고 사유에 빠진다. 어렵기도 하고 어차피 정답은 없다 싶은 마음에 형사들의 이야기만 읽고 싶다는 유혹이 불쑥불쑥 생긴다. 책의 구성도 깔끔하게 양분되어 있어 유혹이 더 커진다. 하지만 두 이야기가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양 쪽을 다 읽을 수밖에 없다. 형사들과 함께 범인을 쫓으며 빨리 살인자가 잡혔으면 하는 마음이 들다가 범인의 변명에 마음이 흔들린다.


우선 형사님들에게 경의를 보낸다. 현실적인 경찰 소설을 쓰겠다는 작가의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보면 존경의 마음이 더 우러난다.  우리나라 형사들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아내고 서울에서 김서방을 찾아내는 참으로 훌륭한 분들이다. 작품 속 정철희 반장은 시스템이 일하는 것이다, 개인이 무능하여도 서로 보완하며 일할 수 있으니 재능에 연연하지 말고 나쁜 형사만 되지 않으면 된다고 했다. 겸손의 말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형사들이 내 눈에는 대단하게 보인다.


22년 전 사람을 죽이고 잡히지 않은 범인의 온갖 말에 머리와 마음이 요동친다.

“이유불문하고 살인은 용서하면 안 되는데…… 그래도  오죽하면 사람을 죽였을까.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제대로 읽지 않아 이 책이 어려운가? 백치부터 읽어야 하나.

피터 싱어는 동물해방론자라면서 낙태에 찬성한다고? 태아는 자기 인식 능력이 없어서라고?

19세기까지도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결투은 흔하고 묵인되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래서 현대사회에는 모욕과 혐오문화가 득세하고 있나. 그런가.

죽음보다 모욕이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일까? 범인은 피해자에게 모욕을 당했구나.

트롤리의 딜레마에 도덕적 원근법을 접목한 범인의 주장은 설득력 있다. 우리는 심리적으로 가까운 사람에게 더 공감한다. 하지만 항상 그렇다고 단언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나?

인간은 사실-상상 복합체라는 주장은 상당히 흥미롭다.

……………………………………………………………….. “


그런데 말이다. 소설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뭔가 아쉽다. 살인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빠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살인자가 자신의 범죄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변명을 참으로 정성스럽게 한다 싶다. 도대체 이 말은 왜 하는 건가 싶을 때도 있다. 사건과 상관없이 그저 철학 강의를 하고 있는 건가? 자신이 아는 것이 많다는 것을 자랑하는 건가? 범인이 잡히고 범행동기가 밝혀지는 과정도 아쉽다. 결말은 작위적이고 싱겁다. 이게 뭐야?


“ 원고의 대부분은 장황한 변명이었다. 계몽주의니 도스토옙스키니 거창한 단어들이 들어있기는 했다. 하지만 머리 나쁜 미결수들이 구치소에서 매일 한 장씩 써대는 뻔한 반성문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나도 잘못한 건 있지만 , 상대도 잘못했다. 그놈, 혹은 그년이 그렇게 내 화를 돋우지 않았다면. 나를 유혹하지 않았다면, 내 요청에 순순히 응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다. 나도 피해자다. ” (394쪽)


범인이 잡히고 그의 일기장을 읽은 형사가 한 말이다. 어머나. 책을 읽으며 살인자의 말을 들으며 생겼던 나의 감정변화도 작가의 계획이었구나 싶다. 결말은 아주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좋았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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