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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Feb 16. 2023

일에 대한 별별 단상

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고


일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왜 일을 해야 하나? 잘하는 일을 해야 하나.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나. 일을 하면 행복하나? 일을 하지 않으면 게으른 사람인가. 인간이 하는 많은 일들이 AI로 대체된 미래에는 인간이 일을 안 해도 살 수 있을까?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을 읽고 나니 일에 대한 별별 생각이 꼬리를 문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저는 특정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어요. 의사든 변호사든 딱히 별로요. 성공하거나. 유명해지거나 그런 걸 바란 적도 없고요. 뭐 그냥 안정적으로 살면 좋겠다 정도. 인정받으면 좋겠다 정도. 그러면서 막연히 꿈꾸던 게 독립적인 개인이 되고 싶다는 거였어요.” (130쪽 )

일하고 싶다. 전업주부인 내가 일을 전혀 안 하는 것은 아니니 더 적확하게 말하면 돈 벌고 싶다이다. 나는 왜 돈을 벌고 싶어 하는 걸까. 내 가사노동이 돈으로 교환되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더는 안 할까? 나도 민준이처럼 독립적인 개인이 되고 싶어 했고 여전히 그렇다. 남편이 밖에서 벌어오는 돈은 왠지 내 땀의 대가는 아닌 것 같다. 남편은 자신의 소득에 대한 나의 역할이 매우 크고 충분하다고 말한다. 나는 한편으로는 동의하고 한편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이게 다 어려서 마르고 닳도록 주입된 교육 때문이다. 암튼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은 일을 해야 만질 수 있다.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을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하다. 그러니 너네도 너네가 뭘 할 때 즐거운지, 설레는지 꼭 찾아내야 해. 사회가 인정해 주는 일보다 너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 그 일을 찾으면 사람들 말에 덜 흔들리며 살 수 있을 거야. ” ( 270쪽 )


고등학생 민철의 국어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해준 말이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중에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아이들에게 밥벌이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좋아하는 일이 밥벌이가 되는 것을 덕업일치라고 한다나. 덕업일치는 마냥 행복할까. 우리는 좋아하는 일도 밥벌이가 되면 고단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방세가 밀리고 밥을 굶고 있는 나를 상상하니 두렵다. 배고픔은 참기 힘들다. 그렇다고 잘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할까. 승우의 말처럼 일하는 환경이 행복을 좌우한다. 환경은 사회 시스템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승우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일을 포기해 버리면 평생 후회하며 살아야 할 것 같아 불안했다. (271쪽)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해진다…… 그럴 수는 있겠지. 그런 사람도 분명 있을 거야.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잘하는 일을 하면 행복할 텐데.” (272쪽 )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다 행복하진 않아. 좋아하는 일을 좋은 환경에서 하면 모를까. 어쩌면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네.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다면 좋아하는 일도 포기하고 싶은 일이 되어버리거든. 그러니 우선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그럼 무조건 행복해질 것이다,라는 말은 누구에겐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어. 어쩌면 너무 순진한 말이기도 하고. “ (273쪽)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원했던 직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회사 복지는 훌륭했고 근무 환경은 쾌적했고  동료들도 다정하고 친절했다. 팀장도 자신의 손님을 위해서 직접 커피를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 직장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는데 내 능력이 부족했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을 소진하며 매일매일 버티는 기분이었다. 일을 통해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각은 불안을 가져왔다.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싶어도 못하는 순간이 오면 어떡하지.


“일하는 즐거움, 일을 통한 성장도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하나의 조건이라고 봐요. 전.” (175쪽)
성장한다는 느낌. 일에서 중요한 건 바로 이 느낌이 아닐까 하고 민준은 생각했다. (182쪽)


일을 하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줄어드는 속도보다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의 커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렇게 나는 회사일을 그만두었지만 앞으로는 타의로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질 것 같다. 최근 chatGPT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구글의 시대를 끝낼지도 모른다는 대화형 인공지능서비스이다. 검색결과를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검색결과를 토대로 새로운 작업물을 뚝딱 만들어낸다고 한다. 고등학생과 맞먹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잘하는 일을 하든, 좋아하는 일을 하든, 밥벌이로 충분한 일을 하든, 성장과 성취를 느끼며 일을 하든 상관없이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 같다. 의사, 변호사, IT 개발자, 콘텐츠 창작자는 물론이고 심리상담사도  AI로봇이 대체할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지금 끙끙거리며 몇 시간째 쓰고 있는 이 글도 적절한 키워드 몇 개만 던져주면 AI는 몇 초 만에 더 좋은 글을 완성할 것 같다. AI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일을 안 하면 먹고살 수 없는데 우리 인간들은 이제 어떡하나.


“우리는 일을 하지 못할 걸 걱정할 게 아니라 먹고살지 못할 걸 걱정하면 되는 거 아냐?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국민들이 먹고살 방법을 모색하는 거잖아?”(172쪽)


AI에게 대체되지 않는 일이 있을까. AI가 훨씬 잘하지만 인간이 하면 비용이 덜 드는 일, 사람과 AI가 협업 가능한 일과 사람이 AI보다 잘하는 일이 그것이다. 첫 번째의 경우 가늠이 쉽게 안되지만 고달픈 육체노동이 아닐까 싶다. AI가 고도화되면 협업도 감소할 테다. 종내는 인간이 AI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텐데, 그중에서도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놀이가 아닐까. 인간을 괜히 호모 루덴스라고 부르겠나. 가족들과 지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마음을 나누고 재미있게 놀고 운동하고 차 마시고 영화 보고 그림 그리고 글 쓰고…… 그러다가 놀이가 예술이 되고 일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려면 먹고살만해야 한다. 작가의 말처럼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먹고 살 방법을 나라가 모색하면 좋겠다. 그런데 모두가 놀겠다고 하면 그때는 어떡하지?


일에 대한 별별 생각을 했다.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다시 제자리다. 인간은 왜 일을 하는가.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한가. 일을 안 해도 살 수 있을까. 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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