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니오, 더 마에스트로>가 너무 보고 싶었다. 문경에 딱 하나 있는 극장에서는 상영할 것 같지 않다. 혹시나 싶어 상영시간표를 찾아보았다. <오펜하이머>, <콘크리트 유토피아>, <달짝지근해>가 상영 중이었다. 역시나 상영하지 않았다.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이 가까이 없다고 생각하니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안 보면 큰일 날 것 같다. 나는 청개구리 심보를 가졌나 보다. 그러잖아도 시골사람이 되어 촌스러워지고 있는데 이 영화를 보면 촌티가 조금이라도 빠질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상영 극장을 서울 전체로 설정하고 상영시간표를 검색했다. 서울에도, 스크린이 수백 개는 되는 도시에도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를 상영하는 곳이 별로 없다. 도시 사람이나 시골사람이나 비슷하구나 싶으면서 한편으로 나는 이 영화를 꼭 보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보러 서울 잠시 다녀올게.”
이렇게 말하고 휙 서울행 버스를 탈 수 있는 사람이면 간단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나라는 사람은 전국이 일일생활권이라고 해도 영화 한 편 보겠다고 문경에서 서울까지 갈 만큼 부지런하지 않다. 누구는 점심에 우동을 먹기 위해 일본 도쿄도 다녀온다지만 나는 그렇게 못한다. 그럼에도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엔니오의 음악을 스크린에서 만나고 싶었다. 극장 구경한 지가 너무 오래되어 그런가? 그냥 콧바람을 쐬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OTT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나는 넷플릭스만 구독하는데 다른 OTT에서 상영하면 어쩌나 하며 끙끙 앓았다. 다행이다. 서울 갈 일이 생겼다. 하루 만에 볼일을 마치고 영화를 보고 문경으로 돌아오기에는 빠듯하지만 동선과 시간을 계산하여 일정을 짰다. 그렇게 영화를 보았다. 스크린에서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을 만났다.
문경에서 동서울터미널, 터미널에서 성북동으로, 성북동에서 영화상영관 신촌의 라이카시네마로, 극장에서 다시 동서울터미널을 거쳐 문경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나지 않아 저녁을 먹지 못했다. 성북동 모임에서 간식으로 나온 떡 한 개를 주머니에 챙겨 두지 않았더라면 문경행 버스에서 쓰러질 뻔했다. 나는 쓰러지지 않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즐거웠다. 문득문득 추억에 잠겼고 감동했다. 러닝타임 3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엔니오의 영화음악이 다양하고 많다는 것을 영화를 보고 알았다. 영화를 많이 보지 않고 영화음악은 더 모르지만 내가 아는 몇 개의 영화음악이 거의 엔니오의 작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작품은 많다. <황야의 무법자>의 OST가 엔니오의 작품일 줄이야. <시네마천국>의 음악과 결이 달라도 너무나 다르지 않은가? 엔니오는 영화를 해석하고 음악으로 재창조해서 보여주는 데 탁월한 것 같다. 더불어 편견과 선입견도 없고 실험정신도 강하다. 민속음악, 고전음악, 생활소음, 짐승 울음소리, 휘파람 같은 다채로운 소리, 다양한 악기 등등을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는 영화감독의 요청을 이해하고 들어주면서도 결국에는 자신의 생각대로 표현한다. 결코 자신의 주장을 윽박지르지 않으면서 해낸다. 멋지다.
집으로 돌아왔다. 기분 좋은 고단함을 느끼며 가방에서 리플릿을 꺼냈다. 극장에서 영화가 끝난 후 허겁지겁 리플릿을 챙겨 왔다. 영화의 감동과 여운을 한 번 더 느껴볼 시간이다. 어머나. ‘마에스트로’는 맞는데 ‘엔니오’가 아니다. 2장이나 가져왔는데 엉뚱한 것을 가져왔다. 아이고, 웃겨라. 마지막은 코미디가 되었지만 영화는 참 좋았다. 서울까지 영화 보러 다녀오는 것은 어렵지는 않았지만 다음에도 갈 수 있을까? 벌써부터 피곤하다.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