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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Sep 11. 2023

문경에도 프로야구 경기장이 있습니다

상무야구장 직관 후기

8월 두번째 직관. 컴컴한 전광판이 아쉽다.

나는 그깟 공놀이- 야구에 일희일비하는 팬이다. 프로 야구 시즌 중에는 경기 없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야구를 본다. 야구 경기를 보는 방법에는 집관과 직관이 있다. 집에서 TV 중계를 통해 경기를 관람하는 집관과 야구장에  직접 가서 경기를 보는 직관이 있다. 야구 경기에 집중하려면 집관이 낫다. 반면에 직관을 하면 야구장의 신나는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나는 울트라 초강력 집순이인지라 주로 집관을 한다. 개막전, 최애선수 생일, 티켓팅에 성공한 가을 야구, 시즌 마지막 홈경기 등 중요한 경기와 울적하고 소리 지르고 싶은 날에 야구장으로 간다. 야구장은 정말이지 신난다. 나는 극내향성 인간이지만 야구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생전 처음 보는 옆자리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도 하고 먹을 것도 나눠먹고 경기 내용이 이해되지 않으면 망설이지 않고 물어본다. 우리 팀이 공격할 때는 벌떡 일어나서 응원가를 부르며 응원동작을 힘차게 한다. 열심히 응원하는 모습이 TV중계 화면에 잡힌 적도 많다. 직관은 재미있지만 가끔이면 충분하다.


그나마 가끔 가던 야구장도 최근 몇 년은 가기 힘들었다. 코로나로 무관중 경기가 계속되었고, 내가 가장 응원하는 선수가 트레이드로 소속팀이 바뀐 충격 때문에 야구가 꼴 보기 싫었다. 게다가 시골로 이사를 하게 되어 몸과 마음이 분주해서 직관은커녕 집관도 안 했다. 이번 기회에 야구를 끊을까?


야구팬이 야구를 그만 보는 게 쉬울 리가? 다시 야구를 보기 시작했다. 내가 응원하는 키움히어로즈는 꼴찌이고 최애 선수는 2군에 있었다. 당장이라도 야구장에서 응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시골로 이사 왔더니 직관이 쉽지 않다. 야구장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처지라 생각하니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한다. “야구장 가고 싶어요!”


얼마나 다행인가? 문경시에도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는 야구장이 있다. 국군체육부대의 상무야구장이다. KBO 퓨처스리그 상무팀의 홈구장이다. 퓨처스리그에는 10개의 프로구단이 운영하는 2군 팀과 상무팀이 경기를 한다. 야구장이 있는 동네에 살고 있다니 괜히 뿌듯하다.


6월 9일, 드디어 올 시즌 첫 직관이다. 최애 선수의 팀과 상무의 경기를 보러 갔다.

설레고 좋았다.

뜨거운 햇볕아래 오후 1시부터 경기를 시작하는 것도,

국군체육부대 입구에서 보안 서약서를 쓰고 신분증과 출입증을 교환하는 것도,

야구장까지 차를 끌고 갈 수 없어 부대입구에 차를 두고 논과 밭을 지나 야구장까지 걸어가는 것도,

더그아웃 위에 관중석이 있고 선수들과 동선이 겹치는 것도,

1루와 3루 각각 100석쯤 되어 보이는 관중석 의자 대부분에 새똥이 묻어있거나 흙투성이인 것도,

관중이 20명이나 있는 것도,

야구장의 크기도 생각보다 크고 외야 너머 숲에는 홈런으로 날아간 공이 수북할 것 같은 것도,

모든 것이 재미있었다.


경기가 시작되었는데 전광판이 캄캄했다. 이닝별 점수와 볼카운트와 아웃카운트만 표시되는 스코어보드만 작동했다. 투수가 누군지 타순은 어떻게 되는지 타석에 들어간 타자는 몇 번째 타자인지 알려면 집중해야 한다.


아, 뭐야. 재미없다. 관중들이 너무 적어서 응원하기도 쑥스럽다. 타자가 안타 치면 박수 몇 번 치는 게 전부다. 응원대신 경기 자체에 집중하면 되지만  한낮의 열기에 쉽지 않았다. 더워서 선수들이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하는 건지, 경기 내용도 프로가 아니라 고교 야구 같았다. 내가 가장 응원하는 선수는 문경 원정에 오지 않았다. 최애 선수가 없으니 더 집중이 힘들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야구에 집중하고 싶으면 집관이 낫다. 직관은 웅성웅성, 왁자지껄, 시끌벅적해야 재미있는데 말이다. 상무야구장이 군부대에 있어 관중이 적은 걸까. 다른 2군 경기도 마찬가지일까.


4회 말까지 보았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여자화장실은 야구장 외부에 있다는 안내문을 보고 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최애 선수는 없고 날은 덥고 햇빛은 뜨겁고 경기 흐름은 잃어버리기 일쑤고 불편하고 재미없었다. 야구를 보려면 서울로 가야 하는 건가. 1군과 2군의 인프라 차이가 도시와 시골의 차이처럼 보여서 괜히 서럽다. 시골 사람이 야구는 왜 좋아해서 말이야, 서럽고 서럽도다.


#문경일기 #202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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