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알송알 Sep 22. 2023

온갖 새소리를 들었다

결막염 덕분이다



눈이 아팠다. 지난 일주일 동안 결막염을 앓았다. 난생처음이다. 태어날 때부터 건강한 눈은 아니었다. 고도근시와 난시이고  안구건조증을 달고 살지만 결막염을 앓은 적은 없었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는 정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많이 아팠다. 눈동자가 새에 쪼이는 것처럼 아팠고 덩달아 두통이 심해서 머리통이 깨지는 줄 알았다. 슬프지도 않고 슬픈 생각도 안 하는데 눈물이 줄줄 흐르고 눈곱 끼고 눈꺼풀 위에는 1톤짜리 포크레인이 올라앉은 것처럼 무거웠다. 눈을 뜨기도 힘들었고 애써 눈을 뜨면 머리가 몇 배는 아팠다. 첫날은 결막염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며 생으로 하루를 앓았다. 이틀째 되는 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찾은 병원에서 바이러스성 결막염이라는 말을 들었다. 최소 2주일은 아프고 감염되기 쉬우니 조심하라는 주의를 받았다.


눈이 아프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책을 읽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쳐도 TV 프로그램도 보기 힘들 줄은 몰랐다. 무언가를 보는 행동이 두통을 유발하는 것 같았다. TV를 틀어놓고 라디오처럼 듣다가, 핸드폰으로 가수 박효신과 이승윤의 노래를 듣다 말다 했다. 종내는 지쳐서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자고 싶은데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누워서 온갖 소리를 다 들었다. 아니 들렸다. 지난여름 내내 아침에 들었던 소란한 소리와 조금 달랐다. 아침 일찍부터, 아니 새벽부터 논과 밭으로 향하는 발자국소리, 경운기 소리, 풀 베는 소리, 약 치는 소리 등등을 들으며 잠에서 깨곤 했다. 아침에 잠을 못 잘 정도로 시끄럽다고 투덜거렸더니 경운기 몰고 다니는 할아버지들이 많이 돌아가셔 예전보다 덜 시끄럽다는 이웃의 말을 들었다. 슬픈데 웃겼다. 그건 그렇고 대낮에 누워 있으려니 저절로 밖에서 나는 소리에 집중하게 되었다. 무슨 소리일까?


웬갖 잡새가 날아든다는 민요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새소리가 들렸다. 새는 자기 이름을 부르면 운다고 했으니 우는 건가. 즐겁게 들리는데 노래를 부르는 건가. 아니다. 새들의 수다 같다. 마치 놀이터에 놀러 나온 아이들처럼 모여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새소리가 끝없이 계속되었다. 또로로롱 또로로롱, 자라라라라 자라라라라, 비비비 비비비, 째르르째르르, 두두두두두, 뿍 뿍. 얼마 전에 우리 집 난로 연통으로 들어왔던 새도 저 틈에 끼어 있겠지? 여름에도 분명 새들이 울었을 텐데 그때는 왜 잘 듣지 못했을까. 매미와 두꺼비 소리가 커서 못 들었나? 동네 개 한 마리가 짖었다. 곧이어 늘 그렇듯이 개들의 합창이 시작되었다. 누구네 집에 손님이 왔나. 마을길에 낯선 사람이 지나갔나.


“왝~~~ 왝~~~”

개들의 합창 소리가 잦아지자 낮지만 큰 소리가 들렸다. ‘왝’이면 왜가리인가? 우리 집 근처에서 왜가리는 본 적이 없는데 언제 왔을까. “우리 동네에 왜 왔니? 왜 왔니? ”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며칠을 앓고 일어났다. 이제 책도 읽고 TV도 보고 일기도 쓴다. 그때 들었던 새소리를 기억하며 이름을 알아보고 싶은데 쉽지 않다. 아직 귀가 밝아지려면 멀었다. 그래도 ’왝‘이 왜가리 소리가 아니라 오리 소리라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우리 집 앞을 흐르는 개천에 오리가 놀러 왔었나 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