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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Feb 09. 2022

오늘을 반짝반짝 빛나게 만드는 마법… 그림일기




친구들과 매일매일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1일 1그림. 이 세상에 못 그린 그림은 없다는 동네 친구이자 싸부님의 말씀에 단단히 홀렸다. 내 그림을 판매할 것도 아니고, 화가도 아닌데 못 그리면 어떠랴, 나만 즐거우면 된다는 마음으로 붓을 들었다. 붓을 들긴 들었는데 말이다. 흠…… 무엇을 그려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일단 선이라도 그어볼까. 그림의 시작은 뭐니 뭐니 해도 ‘선’이니까 말이다. 삐뚤빼뚤한 선이 마뜩잖다. 선도 하나 제대로 긋지 못하면서 그림을 그리겠다고? 선긋기보다 쉬워 보이는 점을 찍어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이게 그림이 된다고? 그냥 점이잖아. 점만 찍어도 그림이 된다고 싸부님이 그랬는데, 고수들이 찍은 점은 그렇다는 건가. 난감하다. 게다가 1일1그림, 매일 그려야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그려야 할까?


일단 눈앞에 보이는 것부터 그렸다. 우리 집 베란다에 있는 화분이 눈에 띄었다. 초록빛깔 싱그러움은 그림 모델로 맞춤이었다. 화분이 많았으면 한동안 그림 소재 걱정을 덜 했을 텐데. 우리 집에만 오면 대개 죽어버리는 바람에 화분그리기는 금세 끝났다. 화분에서 찻잔, 선풍기, 남편이 벗어 놓은 안경으로 옮겨가며 눈앞에 보이는 것을 그렸다.


다음은 ‘보고 따라 그리기’를 했다. 인터넷에서 멋진 그림을 발견하면 따라 그렸다. 한마디로 베껴 그렸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잖은가. 책표지, 삽화, 영화포스터, 웹툰, 엽서 그림, 명화 등등 심지어 크리넥스 휴지상자의 그림도 따라 그렸다. 빛바랜 사진을 새롭게 그림으로 소환해보기도 했다. 재미있지만 내 솜씨로는 비슷하게 따라 그리기는 쉽지 않아 자주 절망에 빠졌다.

 

민들레, 할미꽃, 개나리. 장미 - 꽃의 아름다움을 도화지에 옮겨보았다. 꽃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푸른 하늘,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무, 풀밭위의 개미, 골목길의 감나무, 낙엽, 은행잎이 눈에 담긴다. 무심코 지나가던 길을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잠깐 멈추고 관찰하게 되었다. 관찰하니 더 잘 보이고 애정이 생긴다. 늦은 밤 귀가길에 길을 밝혀주는 가로등마저 사랑스럽다. 우리 동네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나.

 

다음에는 좋아하는 것을 그리고 싶어졌다. 노석미 작가도 좋아하는 것을 그려보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 가수 박효신,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야구, 패왕별희 장국영, 빨간 머리 앤 등등 노석미 작가의 말처럼 애정이 있는 것을 그리는 것은 즐거웠다. 아무도 내가 그린 박효신을 박효신이라 불러주지 않아도 좋았다.


매일 매일 그림을 그려야 하니 자연스럽게 나의 일상을 그리게 되었다. 저녁 반찬으로 해먹은 멸치볶음이나 남편이 먹고 싶다고 한 파스타와 같은 요리를 그렸다. 차를 마시며 함께 이야기를 나눈 친구들 모습을 그려서 닮았느니 하나도 안 닳았네 어쩌니 하면서 깔깔거리고 웃었다. 장보기, 산책, 여행, 바느질, 독서, 낮잠. 청소, 운동, 명절, 가족행사. 결혼식, 김장하기 등등 나의 일상이 고스란히 스케치북에 담겼다.  그림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기쁜 일이 있든 힘들게 버텨낸 하루이든 즐거운 날이든 고통에 찌든 날이든 어제와 별다르지 않은 나의 오늘이 그림일기를 쓰면서 반짝반짝 빛나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한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드라마 <눈이 부시게> 대사처럼 내 하루가 반짝반짝 빛났다.  그래서인지  친구들도 내 그림을 좋아한다. 대단하다고 칭찬까지 한다. 그들에게 그림그리기를 권했더니 내가 어떻게 그림을 그리겠냐며 손사래를 친다.

 

“얼마전까지 나도 그랬어. 미술쌤에게 맨날 혼나던 학생이 나였잖아. 내 그림 보고 나니 용기가 생겼을 텐데? 근데 말이야. 한번 해봐. 너의 하루, 우리의 하루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할 거야. 그림을 그리고 일기를 쓰는 시간은 말이야. 오늘을 빛나게 만드는 마법의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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