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리 작가의 <메피스토>를 읽고
난 오늘 <메피스토>를 읽었어. <파우스트> 아니냐고? 아니야, 루리 작가의 그림책이야. <파우스트>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래. ‘인간을 두고 신과 내기를 한 악마 메피스토, 이겼다고 생각한 순간 신이 나타나 모두를 구원한다. 악마 메피스토를 빼고, 메피스토는 떠돌이 개의 모습으로 남는다 ‘ 이렇게 시작해. 너도 이 구절을 보고 파우스트와 메피스토가 떠오르지?
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별 볼일 없는 악마 개와 소원 한 번 이뤄진 적 없는 운이 없는 소녀가 만나. 둘이 온갖 못된 짓을 하고 돌아다녀. 에어로빅하는 사람들 앞에서 라면 먹기, 다 말라가는 빨래에 물 붓기, 바둑 두고 있는 할아버지들 신발 감추기, 자동차에 낙서하기, 염소에게 도서관 책 먹이기 등등 악의가 있는 듯 없는 듯 귀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그렇더라.
루리 작가의 그림이 참 좋아. 글도 좋지만 그림 보는 재미가 쏠쏠하지. 지난번 읽었던 동화 <긴긴밤>의 그림도 참 좋았어. 그런데 중간까지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잘 모르겠더라고. 모르겠는데 좋았어. 막연하게 구원과 용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했지. <파우스트>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니까 말이야.
중간쯤 기분이 묘해지기 시작했어. 개와 소녀의 이야기가 교차로 나오는데 말이야. 같은 사건에 대한 개와 소녀의 기억이 달라. 기억의 오류, 시선의 차이, 이런 건가? 그런데 말이야. 소녀가 개를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에서 치매가 떠올랐어. 엄마 생각이 났고 눈물이 나기 시작했어. 엄마와 자식의 이야기인가? 우리 엄마는 치매는 아니지만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 또래 어르신들이 많이 보여.
엄마에게 나는 악마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엄마의 모든 것을 주고 싶었고 당신의 모든 것을 주었던 아이, 당신의 희망대로 자라지 않은 나. 큰 사고는 치지 않았지만 말 잘 안 듣고 늘 툴툴거렸던 나, 애써 키웠더니 나 혼자 큰 줄 아는 나라는 자식은 엄마에게는 그저 이쁘고 사랑스러운 존재였겠지만 어쩌면 나는 엄마에게 악마였을지도 몰라. 결혼하고 나도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조금은 인간이 되었구나 싶을 때가 종종 있어. 그럴 때마다 엄마에게 너무 죄송해. 아직도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려면 멀었어.
엄마와 자식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니 더 눈물이 나더라. 소녀가 신과 내기를 하잖아. 자신이 개(악마)를 구원하겠다고 말이야.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이런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어. 순백의 상태로 태어난 아이를 악마로 보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렇다면 나는 신과의 내기에서 이겼을까? 우리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으로 잘 키워야 할 텐데, 아직 끝나지 않은 내기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위로가 잘 안 되네. 신은 어쩌자고 나 같은 이하고 내기를 하고 그랬을까. 엄마에게 죄송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해. 에휴.
그런데 엄마와 자식의 이야기로 해석하기에는 개(악마)의 내레이션이 딱딱 들어맞지 않아.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은 자식을 우선으로 하는 부모와 달리 자신 위주니까 그런 건가 싶기도 해. 아무튼 울면서 책을 읽었어. 실컷 울고 나서 생각하니 이 작품은 서로서로 사랑하고 구원하는 이야기이구나 싶어. 나는 엄마가 생각났어. 사람마다 다르겠지?
‘지옥은 어떤 곳이냐고 네가 물었어
지옥에 가면
가장 미워했던 존재의 모습으로
평생을 지내게 돼
그래
지옥에 가면
너는 네 모습 그대로
나는 내 모습 그대로
지내게 되겠지
그럼 천국은 어쩐 곳이냐고
네가 다시 물었어
나도 몰라
가본 적이 없어서
가장 좋아했던 존재의 모습으로
살게 되려나
그래,
그럼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네가 될 거야 ’
<메피스토>에서 가슴을 울린 장면 중 하나야. 내가 가장 미워하는 존재가 ’나‘라니 슬프다. 자기애가 하늘을 뻗칠만틈 강한 몇몇을 제외하면 인간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는 힘든 일이기는 하지. 그래서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구원해 줄 네가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