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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Jan 25. 2024

새알심

찹쌀가루나 수수 가루로 동그랗게 만든 덩이


갑자기 새알심을 만들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가? 밥 한 끼 준비할 때마다 어떻게든 손을 조금이라도 덜 쓰려고 호시탐탐 궁리하는 사람 아닌가. 그런 내가 손 많이 가는 새알심을 만들었다. 시작은 이렇다. 시누이께서 새알심을 넣은 미역국을 몇 번 언급하셨다. 겨울에 먹으면 속이 따뜻해지고 든든해서 찬 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음식이란다. 나는 새알심을 넣은 미역국을  먹어본 적이 없다. 새알심은 팥죽과 영혼의 단짝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는데 미역국이라니, 별 감흥이 없었다.


감흥이 있다고 내가 뭘 어쩌겠나 싶어 오른쪽 귀로 왼쪽 귀로 흘려버렸는데 시누이께서  찹쌀가루와 쌀가루를 빻아 오셨다. 자그마치 2Kg이다. 봉투에 든 하얀 가루를 뭉치면 내 키만 한 눈사람 하나는 거뜬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조금 과장했지만 말이다. 아이와 남편은 할 일이 있다며 빠졌다. 새알심 같이 만들고 난 후 해도 될 것 같았는데 본인들이 바쁘다는데 어쩌겠나. 시누이와 나, 둘이 만들기 시작했다.


끓인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익반죽을 했다. 이리 치대고 저리 치대고 뒤집어서 치대고 팍팍 소리 나도록 치댔다. 반죽이 되자 조금씩 떼어 새알심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도란도란 시누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니 금방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동글동글 새알심이 쟁반에 쌓이니 왠지 뿌듯했다. 웬걸 1시간이 넘도록 손을 쉬지 않고 놀렸는데 이럴 수가, 남은 반죽이 시작할 때보다 더 많아 보였다. 슬금슬금 새알심의 크기가 지루함에 비례하여 조금씩 커졌다.


시누이에게 다 맡겨버리고 나 몰라라 할 뻔뻔함도 없는데 어쩌랴. 어찌어찌 다 만들었다. 500알쯤 되려나? 우리 몫으로 300알쯤 받았다. 식구 한 명이 더 있다는 이유로 더 많이 나눠주셨다. 이 많은 새알을 언제 다 먹나 싶었다. 한 끼 먹을 양만 남겨두고 냉동실에 넣었다. 꽉 찬 냉동실을 보니 답답했다.


저녁에 새알심 미역국을 끓여 먹었다. 마치 떡국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왜 새알심이라고 부를까?”

“하얗고 뽀얀 게 새알처럼 생겼잖아.”

“새알을 닮은 것은 알겠는데 ‘심’은 뭐야?”

“나는 어릴 때 새알이라고 불렀어.”

“새알이나 새알심이나 그게 그거 아닐까?”

“새알심의 뜻을 한 번 찾아볼까?”


인터넷 사전을 찾아보았다. 찹쌀가루나 수수 가루로 동그랗게 만든 덩이를 새알심’라고 부른다고 한다. 새알처럼 생긴 덩이라는 뜻이다. ‘심’은 곡식 가루를 잘게 뭉친 덩이를 의미한다. 사투리로 ‘새알, 옹심이, 새알심’이 있다. 감자옹심이로 유명한 ‘옹심이’가  말이  사투리일 줄이야.  


새알심 미역국은 경상도에서 주로 먹는 음식이란다. 나는 경상도 사람인데 이번에 처음 먹었다. 친정 부모님이 좋아하지 않으셨나 보다. 기대보다 맛있다. 식사 준비도 간단해서 좋다. 따끈따끈한 국물과 찹쌀가루로 만든 새알심을 먹으니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냉동실에 넣어 둔 새알심을 생각하니 곳간을 가득 채운 듯 든든해졌다. 새알심 덕분에 재미있다가 뿌듯했다가 지루했다가 답답했다가 든든하다. 미역국은 물론이고 팥죽, 호박죽에 넣어 먹을 생각에 신난다. 내가 이렇게나 간사한 사람이다.


내가 만든 새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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