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삼거리에 있는 평상을 보며 상상한 것을 글로 엮은 허구입니다. 사실과 전혀 상관없습니다.
나는 매일 우리 마을 삼거리 평상으로 출근한다. 추운 겨울과 비바람이 심한 날을 제외하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간다고 할 수 있다. 삼거리 옆에 마을 회관이 있지만 야외에 있는 평상이 답답하지 않고 편하다. 게다가 한때 경로당으로 불렸던 마을 회관은 어르신들의 공간이다. 나처럼 60을 갓 넘은 애송이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기 편하지 않다.
삼거리는 마을 입구에서 한참을 걸어와야 한다. 우리 마을과 다른 지역을 이어주는 큰 도로에서 벗어나 마을로 입구로 들어서면 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아름다운 우리 고향 어쩌고 저쩌고 ‘라고 되어있나? 제대로 집중해서 본 적이 없어 가물가물하다. 표지석부터 삼거리까지 논과 밭이 펼쳐져 있다. 삼거리에서 우리 마을은 두 구역으로 나뉜다.
삼거리 평상은 지정학적으로 보아 만남의 장소가 될 수밖에 없다. 버스정류장도 바로 옆에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또한 쉼터이기도 하다. 논과 밭일 뒤에 따라오는 고단함을 막걸리 한 잔으로 씻어내기 딱 맞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물물교환과 나눔이 수시로 이뤄진다. 지난번에는 이장이 도시 친척집에서 가져온 냉장고를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가져가라고 내놓았다. 아직 멀쩡한 새것이더라. 그뿐이 아니다. 우리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들, 자동차, 트럭은 삼거리를 무조건 지나야 한다. 그러니 마을 소식을 듣고 싶으면 평상으로 가야 한다.
심심해서, 쉬고 싶어서, 사람이 그리워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평상에 마을 사람들이 모인다. 사람이 모이면 이야기를 나눈다. 허구한 날 만나는데 할 이야기가 많겠는가. 이야깃거리는 금세 떨어지고 놀 거리를 찾아야 하는데 놀 거리도 별로 없다. 새소리를 듣고 꽃과 대화하고 나무에 감탄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수십 년 살다 보니 그게 그거다. 도시 사람들이나 자연을 보고 입을 떡 벌리면서 호들갑스럽게 굴지만 우리에게는 심상하다. 그래서 우리는 고스톱을 친다. 점에 10원짜리 고스톱은 부담은 최소로 하면서 긴장과 재미를 높여준다. 돈을 따면 막걸리 한두 병 사서 나눠 마신다. 이만한 것이 없다. 얼마 전에는 도박 신고가 들어가서 경찰이 왔다 갔다. 도대체 누가 왜 그랬을까? 알다가도 모르겠다.
얼마 전부터 새로운 인물들이 평상 앞을 자주 지나간다. 새 집을 짓고 이사 온 부부다. 하도 요란스레 집을 지어서 처음에는 관공서 건물이 들어오는 줄 알았다. 우리 막둥이의 친구 철수가 공사현장에 24시간 붙어있어 철수네 집을 새로 짓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서울 사는 철수의 처남부부가 내려와 살 집이라고 했다. 안면도 들 겸해서 막걸리 한 잔 하자고 평상으로 불렀더니 거절한다. 인사만 하고 지나가버렸다. 사람 무안하게 말이다. 막걸리를 싫어하나? 요즘은 도시 사람들도 막걸리를 즐겨 마신다던데 아닌가.
마을에 젊은 사람이 (내 눈에는 젊어 보이더라.) 이사 오니 좋고, 깔끔한 새집이 들어서니 마을이 훤해진 것 같아 좋다. 부부가 나란히 마을 길을 걷는 모습도 보기 좋다. 다 좋은데 평상으로 초대는 거절한다. 평상이 가까워지면 그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인사를 하기는 하는데 휙 지나간다. 이 사람들아, 총총거리는 것 다 보인다고. 곰곰 생각하면 그들이 평상에 와서 앉는다고 한들 무얼 하겠나. 같이 고스톱을 칠 것 같지는 않고 그들은 농사를 짓지 않으니 농사 정보를 주고받을 일도 없고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으니 나눌 이야기도 없다. 그저 인사를 하는 것이 전부이겠다.
시골도 예전 같지 않다. 품앗이를 하지 않으면 농사를 짓기 어려웠던 옛날에는 마을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잘 지내는 것이 중요했다. 요즘은 기계가 농사를 짓는다. 기계하고 친해지거나 기계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을 알고 있으면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시골에서도 도시의 아파트처럼 이웃을 일절 몰라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도시 생활이 싫어서 시골로 온 거 아닌가? 마을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어울리면 좋을 텐데. 우리 마을에서는 관계를 맺고 싶으면 일단 평상에 앉아야 하는데 말이다. 저 부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허, 참. 나도 모르겠다.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대로 살아야지, 내가 뭘 어쩌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