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여사~ 송여사님~~”
“네? 저요? 저 말이에요? 저 부르셨어요?”
이장님이 나를 ‘송여사’라고 부른다. 당황스럽고 어색하다. 나를 부르는 호칭으로 인지하지 못해 번번이 대답이 늦다. 남편은 내가 송여사라고 불릴 때마다 우스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남편의 배꼽이 남아 있지 않을 것 같다. 결혼하고 처음 아줌마라고 불렸을 때만큼이나 충격이다. 나이 많은 여자 어른은 ‘여사’라고 흔히 불린다. 내 나이로 보면 자연스러운 호칭일 수도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어색하고 기분이 좋지 않을까.
네이버 어학사전에서 ‘여사’를 찾아보았다. 첫 번째 뜻은 결혼한 여자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엥? 아줌마와 같은 말이라고? 아니, 아주 똑같지는 않구나. 아줌마는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부르는 아주머니를 낮춰 부르는 것이니까 말이다. 사전에 의하면 나는 이미 오래전에 ‘여사’가 되었는데 이제야 처음으로 불린 것이다. 제대로 잘 불러주신 이장님께 도리어 감사인사를 해야 하나. 두 번째 뜻은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여자를 높여 부르는 말로, 성명 아래 붙여 쓴다. 나는 사회적으로 이름이 없으니 해당하지 않는다.
사전적으로는 높여 부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그렇게 사용하지 않는다. 운전 못하는 여자를 흔히 ‘김여사’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비하의 의미가 담겨있다. 주방일, 청소, 간병 일을 하는 분들을 여사님이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힘든 일을 하는 분들에게 정당한 보상대신 호칭만 높여 부르는 것 같아 영 마뜩잖다. 자신의 능력으로 사회적으로 이름을 알려진 경우 ‘여사’보다는 ***대표. ***작가, *** 교수, ***회장 등등으로 부른다. 카이스트에 766억을 기부해 화제가 된 이수영 회장을 이수영 여사라고 부르지 않듯이 말이다. 그래서인지 ***여사는 왠지 자신의 능력보다 남편의 능력에 기댄 것 같아 찜찜하다.
“와~당신이 여사님이 되었구나. 우리가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배꼽이 빠지는 줄도 모르고 웃던 남편이 말했다. 여사 호칭에 내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이유를 사전적 의미는 어쩌고 저쩌고, 사회적 의미는 이러쿵저러쿵하면서 내 나름대로 품격 있게 정리하고 싶었는데 남편의 한마디에 깔끔하게 결론이 났다. 역시 나이 들어 보였다는 사실에 속상했던 것이다. 아니라고 말을 못 하겠다.
이장님이 나를 여사가 아니라 다른 호칭으로 부르고 싶어도 부를 말이 없다. 마땅한 2인칭 대명사가 있어야 부르든지 말든지 하지. 솔직히 한글에는 2인칭 대명사가 부족하다. 특히 연장자를 부를 때 더 그렇다.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학부모 모임에서도 통성명과 나이 확인이 끝나면 무조건 ‘언니’라고 부르는 것이 나는 싫었다. 순식간에 공적인 관계를 사적인 관계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았다. 간단하게 이름 부르면 될 것을. 우리는 나이 차이가 조금이라도 나면 왜 ‘○○○씨’라고 부르는 것을 어려워하는 걸까. 나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이름을 불러도 된다고 한들 이장님이 그렇게 부를 것 같지 않다. 아이 참. 어쩔 도리가 없다. 난 이렇게 ‘여사님’이 되는 건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당연한 건가.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상당히 억울하다. 도시에 살 때는 언제부터인가 모임에 가면 나이가 많은 쪽에 속했다. 시골에서는 젊은 축에 속한다. 막내 라인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여사로 불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시골에서는 나를 여사라고 부른다. 아이러니하다.
“송여사, 송여사님.”
“네? 네? 저요?”
“한 집에 하나씩이에요. 여기에 서명하고 가져가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여사님 소리를 듣고 집집마다 나눠 주는 휴지를 받았다. 휴지는 마을의 1년 살림을 결산하는 마을 총회 기념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