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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Jun 11. 2023

빨래에서 나는 햇빛 냄새가 좋다


마당에서 잘 말린 빨래에는 햇빛 냄새가 난다. 뽀송뽀송하고 까슬까슬하고 따뜻한 빨래에서 나는 햇빛 냄새가 나는 참 좋다. 시골로 이사 오기 전, 아파트에서 30여 년을 살았다. 빨래에서 나는 햇빛 냄새를 맡은 기억이 아스라하다.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하며 햇빛에 말라가는 빨래 생각에 기분이 좋았었다.


웬걸.


마당에서 빨래 말리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마당만 있으면 무조건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사를 한 겨울은 추워서 그런가 보다 했지만 따뜻한 봄이 되어도 말릴 수 없었다. 어떤 날은 황사, 어떤 날은 미세먼지, 어떤 날은 꽃가루가 심했다. 황사와 미세먼지는 서울과 수도권 주민들만 겪는 고통이려니, 설령 있다고 해도 심하지 않으려니 했는데 아니었다. 시골도 도시 만만찮게 심하다. 꽃가루는 또 어떻고. 한동안 아침마다 마당 데크를 노랗게 물들인 송홧가루를 쓸었다. 잘 쓸리지도 않아 빗자루 잡은 손에 힘을 주어야 했다. 쓱쓱 싹싹. 햇빛은 빨래를 내놓기만 하면 금세 말려 줄 기세인데 내놓을 수 없는 날이 계속되었다.


사실은 이사를 하며 빨래 건조기를 새로 장만했다. 아파트 시절에 장마철 빨래와 이불 빨래를 빨래방에서 했다. 시골에서 그때마다 빨래방에 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장만했지만 아직은 쓰임새가 크지 않다. 마당이 아니라 마루에서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의 도움으로 빨래를 말린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햇빛도 나쁘지 않지만 뭔가 아쉽다. 우리 집 빨래를 마당에서 햇빛에 말리는 날이 오기는 할까.


나의 소망을 하늘이 들었는지 바야흐로 때가 되었는지 5월 말이 되자 적당한 날이 왔다. 이틀 동안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말갛게 개였다. 황사도 없고 미세먼지 지수도 낮고 꽃가루도 날리지 않았다. 드디어 햇빛 냄새나는 빨래를 볼 수 있겠구나. 얼른 마당에 빨랫줄을 설치했다. 정리해야 하는 겨울옷을 세탁기에 돌리고 탁탁 털어 빨랫줄에 착착 널었다. 널기만 했는데도 빨래가 벌써 다 마른 기분이었다. 아이, 좋아라.


이런 날이 일 년 중에 며칠이나 될까. 겨울은 기온이 낮아서, 봄은 황사, 미세먼지와 꽃가루 때문에 여름에는 벌레가 많아 힘들 것 같다. 가을은 다를까. 빨래에 대한 나의 로망이 로망으로 끝날 모양이다. 내가 몰라도 너무 몰랐다. 햇빛 냄새나는 빨래를 아예 모르는 사람도 많은 세상에서 내가 유난을 떠는 것 같다. 그래도 빨래 말리기에 딱 좋은 날이면 마당에서 빨래를 말리리라. 어쩌다 가끔일지라도.

햇빛에 빨래를 말릴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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