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쌓여 빗물받이 홈통이 막혔단다
“비에도 지지 않고”
친구가 집들이 선물로 준 그림책 제목이다. 미야지와 겐지의 글도 좋지만 곽수진 작가의 그림을 내가 좋아할 것 같다고 했다. 친구 말대로 그림도 글도 참 예쁘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선물 받자마자 장마가 시작되었다. 집들이 선물이 아니라 비를 대비하라는 권고 같았다. 장맛비에 지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지?
지금껏 창문을 잘 닫는 것 외에 장마라고 해서 비설거지를 신경 써서 할 필요는 없었다. 공동주택이 아닌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으로서 처음 맞는 장마는 가늠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새집이다. 작년 여름을 지나고 짓기 시작하여 12월에 완공된 우리 집은 여름을 모른다. 부실한 점이 있다면 이번 참에 드러날 것이다. 지붕이나 벽에서 비가 새는 일은 없기를 바라면서 비설거지를 했다.
막힌 배수구는 없는지, 큰비에 막히지 않도록 정리되었는지 확인했다. 아직 창고가 없어 마당에 둔 물건들이 비에 젖지 않도록 정리했다. 장독대 항아리의 뚜껑은 제대로 닫혔는지 보았다.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창 넓은 찻집에서 차를 마시는 것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비가 내리는 날이면 거실 창밖을 보며 차를 마시는 운치가 제법 있었다. 장마가 시작되자 운치 대신 걱정이 자리했다. 국지성 호우가 늘어나서 그런가. 흙이 빗방울에 두들겨 맞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비가 매섭다. 결국 마당의 꽃밭에 구멍이 생겼다. 한 개도 아니고 여러 개나. 흙 속에 숨어있던 수선화 알뿌리가 몸을 드러냈다. 장마 시작하기 전에 갈무리해서 잘 보관하라는 말을 안 들었더니 이런 일이 생겼다. 텃밭은 물이 잘 빠지지 않는지 물이 흥건하다. 거짓말을 많이 보태보면 쑥갓꽃이 노란 연꽃처럼 보일 지경이다. 같은 마당인데 이럴 수가 있나?
우리 집 앞에 개천이 있다. 평소에는 말라서 물은 거의 보이지 않고 풀이 무성해서 풀밭인지 개천인지 구분도 못하고 지냈는데 개천은 개천이다. 물이 콸콸 흐른다. 내 키만큼 자랐던 풀이 물에 다 잠겼다. 저 물이 넘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걱정이 부풀어 올라 우산을 쓰고 집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뒷벽의 빗물받이 홈통에서 분수쑈가 한창이었다. 물이 홈통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틈새로 새고 있었다. 틈이 생겼나? 저 상태가 계속되면 지붕에 물이 고이나? 지붕에 물웅덩이가 생기면 지붕이 뚫리는 건가? 심란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비가 그치자마자 부랴부랴 살펴보니 홈통이 낙엽으로 꽉 차있었다.
“해마다 장마 시작되기 전에 빗물받이 홈통과 처마 물받이 청소를 해야지요. 안 그러면…”
도와주러 오신 아저씨가 신신당부하셨다. 몇 년 전 강남역 물난리 때 수많은 담배꽁초가 배수구를 막아서 피해를 더 키웠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마당과 집 근처 배수구에는 낙엽이 들어가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촘촘한 그물망을 설치했고 그럼에도 배수구 주변에 쌓이는 낙엽들은 비 오기 전에 치웠다. 마당뿐만 아니라 지붕 위에도 비설거지를 해야 할 줄이야. 마당도 처음이지만 지붕도 처음이라 몰랐다.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청소할 생각을 하니 (남편이 하겠지만) 아찔하다. 한 번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해마다 해야 한다. 그래도 어쩌겠나. 나는 밑에서 사다리를 잘 잡고 있어야겠다. 이제 우리는 비설거지를 스스로 해야 한다. 마당은 물론이고 지붕에도 해야 한다.
더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를 들었다. 모두 비에 지지 않고 별일 없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