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호의가 있다

문형배 전 재판관의 <호의에 대하여>를 읽고

by 송알송알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과 네 번째 만남이다. 오해는 없겠지만, 굳이 말하자면 비대면 만남이다. 첫 만남은 영화 〈어른 김장하〉였고, 두 번째는 탄핵 판결문을 통해서였다. 세 번째는 방송 프로그램 〈손석희의 질문들〉, 그리고 이번에 그의 책 〈호의에 대하여〉를 통한 만남이 네 번째다.


영화에서 그는 김장하 선생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보였다. 우리나라의 남자 어른은 잘 울지 않는다. 아니, 자신의 우는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려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그의 눈물은 의외였다. 딱딱하고 차가워야 할 것 같은—내 편견일지 모르지만—남자이면서 판사라는 직업의 사람이 흘리는 눈물은 낯설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그 눈물이 충분히 이해된다. 〈어른 김장하〉는 평생을 남에게 베풀며 살아온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이고, 문형배 전 재판관은 그의 도움으로 고등학교와 대학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가 읽는 탄핵 판결문을 들을 때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한편으로는 여느 판결문과 달리 귀에 쏙쏙 들어와서 의아했는데, 비상계엄이라는 상황 속에서 뜻하지 않게 법 공부를 조금이나마 하게 되었고, 내가 유난히 집중해서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의 문장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쓰인 것이었다.


세 번째 만남에서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면서도 재치 있고 유머러스하며 다정한 사람을 만났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20년 넘게 블로그에 글을 써왔다는 사실도 인상 깊었다. 나는 일기를 쓰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일기란 그날의 일과 자신의 생각을 적는 것이기에, 무엇을 훔쳤다거나 남을 속였고 다음에는 더 잘 속여야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일기로 기록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사람이라면 말이다.


〈호의에 대하여〉는 방송 〈손석희의 질문들〉의 확장판처럼 느껴진다. 방송에서 보았던 그의 모습이 책 속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그의 블로그에는 1,500편이 넘는 글이 있다. 법률을 몰라 제때 대처하지 못해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한 사람의 재판을 계기로 블로그를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의 짧은 법률 지식이라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착한 사람일수록 법을 알아야 한다”라고 자주 말한다. 판사로 일하며 ‘착한 사람은 법을 모르고, 법을 아는 사람은 착하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보았기 때문이란다.


책은 일상 이야기, 독서 일기, 사법부 게시판에 올렸던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독서 일기는 늘 ‘***의 을 ooo를 읽었다’로 시작하는데, 그 점이 소소한 재미를 준다.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은 감상문을 쓰지 않는 것으로 복수한다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났다. 나는 감동받은 책조차도 짧은 감상을 남기기 어려워 포기할 때가 많은데 말이다. 그가 독서를 꾸준히 한 이유 역시 재판을 잘하기 위해서였다. 판사는 많은 경험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독서를 통해 간접 경험을 쌓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책에는 판사로서 오판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하고, 배우고, 생각하고, 연구하며, 읽고, 쓰고, 소통해 온 한 사람의 삶이 담겨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판사는 불의를 저지르며 살기는 어렵지만 불의를 묵과하며 사는 것은 가능하다. 검사든 판사든 불의를 묵과하는 법관들이 더 많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의 삶은 특별한 사건 없이도 특별하게 느껴진다.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묵과하지 않기 위해 애써온 사람. 그 평범함이야말로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가장 큰 호의였다. 그리고 생활에서 우리가 주고받는 소소하고 별것 아닌 호의들이 떠올랐다. 그 호의는 힘든 세상에서도 우리가 살만하다고 믿게 한다.

지난 연말에 산타언니에게 선물로 받은 책이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keyword
송알송알 라이프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160
매거진의 이전글넷플릭스 안 보고 <혼모노>를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