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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Apr 12. 2022

후회는 가끔은 그냥 … 완전 개구라야

매트 헤이그 작가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고


이 책은 좋은 책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멋진 책을 몰라볼 리 없다. 우리 동네 도서관은 대출 예약을 하고 한참을 기다려야  읽을 수 있다.  나도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두 달을 기다려 읽었다. 위안의 책, 삶을 변화시키는 책, 묵직한 울림을 주는 책,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는 책 등등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책 표지와 날개에 찬사가 가득하다. 자정의 도서관은 과연 어떤 곳일까?


삶과 죽음 사이에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도서관이 있다. 자살을 시도한 노라는 그 도서관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는 주인공 노라의 후회를 모아놓은 ‘후회의 책’과  그가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살아볼 기회가 담겨 있는 책들이 있다. 노라는 유망한 수영선수였고 똑똑하고 성적이 좋았고 음악적 재능이 특출하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를 좋아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아이였다. 지금의 노라는 악기 판매점에서 막 해고되었고 가족과 관계도 좋지 않다. 그는 책을 하나씩 펼쳐 자신의  어떤 선택으로 인해 살지 못했던 온갖 삶을 살아본다. 수영선수, 뮤지션, 철학자, 여행자, 빙하학자, 행복하고 사랑받는 사람, 펍 주인 등등. 후회했던 일을 되돌려 다른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가져오는 삶을 살아보고 조금씩 깨닫는다. 진짜 문제는 살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삶이 아니라 후회 그 자체이고 후회가 우리를 쪼글쪼글 시들게 한다는 것을 말이다.  다른 삶을 살고 깨닫게 될 때마다 ‘후회의 책’ 내용이 줄어든다. 마지막에는 활활 타서 재가 되고 만다.


우리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다른 선택을 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삶에 만족하지 못해서인가. 다른 선택이 더 나은 삶을 무조건 보장한다고 믿고 있나. 선택하고 결정하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기대만큼 성취하지 못해서인가. 과거의 선택을 곱씹어보는 것은 오로지 후회 때문일까. 다른 이유는 없나.


다시 태어나면 결혼하지 않고 살겠다고  했더니 사람들의 반응이 비슷하다. 남편이 힘들게 하냐, 결혼 생활이 어렵냐, 결혼을 후회하냐고 묻는다. 아니다, 절대 아니다. 남편은 하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다. 아이들 걱정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지만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으로 충분히 감사하다. 나는 혼자 살아보고 싶다. 골드미스일까 아니면 추레한 중년일까. 틈만 나면 다른 상대와 연애를 하고 있을까. 아니면 수도자처럼 살고 있을까. 궁금하다. 이것을 비혼을  꿈꾸었으나 남편을 만나 홀라당 결혼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말해야 하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이 아닐까. 어쩌면 호기심일지도 모르겠다.


후회면 어떻고 동경이고 호기심이면 어떠리. 나는  자신이고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 현재의 삶에 감사하고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체도 없는 후회로  마음과 머리를 어지럽히지 말자고 다짐한다. 어머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읽기 전에 이미 알고 었잖아. 실천을  못할 뿐이다. 그래서 그런가  작품에 끝없이 쏟아졌다는 찬사가 나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결론이 뻔히 보이는데  노라가 이것저것 살아보는 삶이 많아지면서 지루했다. 봄봄 친구들이 느꼈다는 위안도 나는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이 좋다. 도서관 사서 엘름 부인이 노라에게 건네는 친절 덕분이다.  조언이나 위로 같지만 친절이라고 우겨본다.

“살아봐야만 배울 수 있어”

“넌 선택을 할 수 있지만 결과까지 선택할 수는 없다”

“삶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냥 살면 돼.”

“체스를 두는 데 올바른 방법은 없어. 그저 많은 방법이 있을 뿐이야. 인생과 마찬가지로 체스에서는 가능성이 모든 것의 기본이야. 모든 희망과 꿈, 후회, 살아있는 모든 순간의 기본이지.”

“후회는 전혀 사실에 기반하지 않는단다. 가끔은 그냥…. 완전 개구라야.”


후회는 구라다? 푸하하하하. 후회…… 개구라. 그깟 구라에 내 시간을 쓰는 것 아깝다. 후회의 감정에 발묶이지 말자고 다짐을 해보지만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내  후회의 책은 무거워서 들어 올릴수는 있을랑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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