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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May 03. 2022

10년 전 오늘, 그 때나 지금이나


페북이 10  오늘이라며 사진을 보여준다.  낯선 사람은 누구인고? 쥐가 파먹다가 그만둔 것처럼  삐죽삐죽한 앞머리를 하고 있지만 웃고 있다.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인간 방부제라나 뭐라나. 아기 같다나 뭐라나. 지금과 똑같다고 말하라고 옆구리를 마구마구 찔렀더니 변한  1 없다나 뭐라나. 급기야 대학 동기 녀석이 나와 처음 만났던 때를 소환했다.  “대학 신입생때 같은데!”. “죽을래?”


사진을 찍은 날이 기억난다. 상수동 어느 카페였다. 10센치의 노래로 유명해진 은하수 다방이 근처에 있다고 그랬나, 아닌가. 이건 정확하지 않다. 카페 주인이 메뉴판이라고 보여 준 태블릿은 신기했고 메뉴판만큼 놀라웠던 음료 가격에 뒷목 잡고 넘어질 뻔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무려 8000원.


묻혀있는 기억을 소환해 준다는 프루스트의 마들렌을 앞으로는  페이스북이 대체할지도 모르겠다. 사진 덕분에 10년 전 그날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때의 마음도 함께 온다. 친구들과 ‘대학을 가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아 살고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경험도 소속도 없는 전업주부 3명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 준 첫 번째 청년과 만나는 자리였다. 심장이 쿵쾅쿵쾅 거리고 벌렁벌렁거려서 만나기도 전에 쓰러질지도 모르겠다는. 아니 쓰러져 차라리 만남이 취소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다행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어른을 만나서 기뻤는지 청년도 만남 내내 즐거워했고, 나는 ‘요즘 애들’ 청년의 이야기를 듣는 게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빛나게 웃고 있다.


나 같은 경력단절 전업주부 중년 여성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때도 지금처럼 글쓰기라고 말하기는 민망한 일기만 끼적대던 시절이었다. 웬 바람이 불었고 친구들이 있어 용기를 내었다.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아닌가? 계획했던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으니 실패라고 해야 하나? 청년들과 대화를 하며 새롭고 많은 것을 배웠으니 나름 성공 아닌가? 작업하는 시간은 힘들었지만 즐거웠고 친구들과 더 끈끈해졌으니 한 편으로는 성공인 거지? 후유증인지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실패인가? 모르겠다.


나는 10년 전과 똑같다. 맞는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해보기도 전에 주저앉는다. 지금은 10년 전같은 바람이 불어도 웬만해서는 흔들릴 것 같지도 않다. 사실은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헷갈린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아리송하다.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아도 지금처럼 책 읽고 글 쓰고 걷고 맛있는 거 먹으며 잘 살기만 해도 충분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마음은 왜 이렇게 헛헛할까. 그때나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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