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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May 18. 2022

시를 읽어야겠다

박완서 선생님의 <시를 읽는다>를 읽고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 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 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 박완서 작가의 <시를 읽는다>


2018년 2월 작은 아이가 기숙학원에서 재수를 시작했다. 외박은 한 달에 한 번, 전화는 일주일에 한 번 가능한 곳이었다. 학부모들은 학원 누리집을 통해 편지를 보낼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매일 쓰고 싶었으나 공부에 방해될 것 같아 일주일에 한 번 아이에게 편지를 썼다. 남편은 월요일, 나는 목요일에 보내기로 했다. 남편은 시간에 따라 해야 하는 일과 마음가짐에 대한 이를테면 - 3월 첫 주에는 ***을 하고 , 12주 차에는 oo를 할 때이다 등등 - 자기개발서 같은 글을 , 나는 일상을 전하는 글을 보냈다. 외부와  단절한 채 자신의 루틴대로 공부하는 아이의 일상에 균열을 내지 않기 위해 정해진 날에만  보냈다. 처음에는  아이의 모든 것이 궁금하여 할 말이 많고 쓸 내용도 많아 제법 긴 글을 보냈다. 한 달이 지나고 첫 번째 휴가 때 만난 아이는 건강하게 학원 생활에 잘 적응한 것 같았다. 아이가 잘 지내는 것을 확인하자 남편과 달리 나는 편지에 쓸 말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서 편지에 시 한 편을 첨부하기로 했다. 시 한 편과 소식을 간단히 전하면 A4 한 장 분량은 거뜬히 채울 수 있겠다 싶었다. 내가 알고 있는 시가 두 손가락으로 충분히 꼽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시험을 위해 해석하고 분석하며 익힌 시는 감흥도 없고 기억도 나지 않았다. 시를 찾기 시작했다. 속세를 떠나 공부하고 있는 아이에게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시를 보낼 수 없잖은가. 기형도 시인의 <빈집> 같은 시도 곤란하다. 편지 쓰는 것보다 시간이 더 들었다.


시집을 빌려 보기도 하고 네이버 녹색창에 “수험생에게 추천하는 시” 어쩌고 하면서 검색도 했다. 멀리 있어도 한 이불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야 가족이라 할 수 있다는  최범영 작가의 <가족> , 세수를 하고 내 할 일을 시작한다는 천상병 작가의 <아침>,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는 이문재 작가의 <농담>은 이때 찾아낸 보석들이다. 시를 찾고 고르면서 나도 힘을 얻었다. 박완서 선생님 말씀처럼 시를 읽으며 때로는 위로받았고 때로는 정신이 번쩍 들었고 때로는 쓸쓸함을 이겨낼 수 있었다. 시가 점점 좋아졌다. 편지 분량도 오히려 늘었다. 시를 필사하고 시를 읽으며 느낀 마음을 나누고 소소한 소식을 전하느라 A4 1장을 훌쩍 넘기고 2장을 꽉꽉 채우기 일쑤였다.


시를 사랑하고 가까이하는 사람으로 환골탈태한 줄 알았는데 아이가 재수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금세 시를 잊었다. 이럴 수가. 나란 인간은… 참…

오늘 우연히 도서관 서가에서 박완서 선생님의 <시를 읽는다>를 보았다.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중 시를 읽는 즐거움을 표현한 선생님의 문장에 이성표 작가의 그림이 더해져 시 그림책이 되었다. 나는 편지 분량을 채워보려고 시를 읽었는데… 웃음이 나온다. 마음이 따스하게 데워진다. 봄을 타는지 요즘 나는 자꾸만 무기력해진다. 무기력 뒤에 의례 의기소침해지고 헛헛한 마음이 똬리를 튼다. 박완서 선생님 믿고 시를 읽어볼까. 시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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