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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Jun 14. 2022

알아도 꽃이고 몰라도 꽃이다

봄맞이꽃 , 제비꽃, 민들레, 개나리 , 진달래, 벚꽃, 목련, 철쭉, 애기똥풀, 산수유꽃, 목단, 개망초 , 아카시아꽃, 라일락, 창포, 장미, 페투니아, 라벤더, 으아리꽃, 수국 - 봄부터 여름이 시작되는 지금까지 동네 산책길에서 많은 꽃을 만났다. 이름을 모르는 꽃을 더하면 이보다 훨씬 많다. 우리 동네에 이렇게 다양한 꽃들이 피고 지는 줄 이제껏 몰랐다. 우리 집 아파트 동과 조금 떨어진 403동 뒷마당을 하얗게 수놓은 봄맞이꽃은 올봄에 처음 보았다. 평소 자주 지나가는 길은 아니라고 해도 그동안 나는 왜 보지 못했을까?


몇 년 전 어느 날이었다. 아파트 1층 현관 입구에 ‘꽃이 예쁘게 피었으니 바쁘겠지만 잠시 멈추고 꽃과 눈을 맞춰보라’는 경비 아저씨의 메모가 붙어 있었다. 아마 나는 시장바구니를 들고  끙끙거리며 앞만 보고 걷고 있었을 거다.  메모를 읽고 화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작은 화단이다. 정말이지 손바닥만 한 화단에 빨간색 같기도 하고 자주색 같기도 한 꽃이 도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화려하고 예뻤다. 장미는 아닌 것 같은데 이름이 무얼까? 평소와 달리 이름이 궁금했다. 경비 아저씨에게 여쭤보았다. “예쁘죠? 목단꽃이에요. 화투장에 나와요. 요즘 젊은 엄마들은 목단꽃을 잘 모르더라고요.” 얼떨결에 젊은 엄마가 되었다.  어려 보여서 좋기도 하고 꽃을 모르는 것이 민망하기도 했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다. “


안도현 시인의  <무식한 >이다.  시인이 단순히 글자 그대로 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탓하려고 것은 아니다. 어쨌든 나는 나와 당장 절교해야  판이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한다. 그뿐인가. 오랫동안 쑥부쟁이는 무쳐먹는 나물인  알았다.  효험 있는 약초인  알았던 구절초가 들국화의 하나일 줄이야. 나는  그렇게 꽃과 자연에 무관심했을까.


그랬던 내가 몇 년 전부터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돌아갈 자연에 관심이 생긴단다. 그래서 꽃도 나무도 좋아하게 된다나.  친구들과 놀러 가면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꽃 사진을 더 많이 찍는다. SNS 프로필에 꽃 사진을 올려놓은 사람은 대개  중장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나이 탓인지 나도 꽃과 나무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관심이 생기니 이름이 궁금해진다. 걸음을 멈추고 묻는다. “네 이름이 뭐니? 너는 어쩌면 이렇게 이쁠 수가 있니? 너처럼 이슬만 먹으면 이뻐지는 거니?” 사진을 찍고 지식인에게 물어본다. 이름을 알면 “얘가 걔야? “ 한다.  반갑게 인사하지만 돌아서면 금세 잊어버린다.  달걀후라이처럼 생긴 꽃들은 왜 이렇게 많은 건가. 여전히 구절초와 쑥부쟁이는 헷갈린다. 우리 집 아파트 앞에 핀 목단만 목단인 줄 알아본다. 지식백과를 찾아 차이점을 시험공부하듯이 배우고 익혀보지만 실전에서는 여전히 어렵다.


나는 나와 끝내 절교해야 하는 건가. 좋아하면서 이름을 모르는 게 말이 되는가. 김춘수 시인도 이름을 불러주어 그제야 꽃이 되었다고 했다. 이름을 모르면  꽃을 좋아하고 칭송하면 안 되는 건가 , 괜히 뻗대고 싶다. 이름을 꼭 알아야 되나? 꽃의 아름다움을 알고 즐기고 감사하면 되잖아. 그렇지만 꽃의 이름을 알고 싶다.  다정하게 불러보고 싶다.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꽃 이름을 검색하다가 안도현 시인의 <식물도감>이라는 시를 알게 되었다. 8년 만에 나온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에 수록된 시다. 젊어서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무식한 놈과 절교하겠다고 했던 시인이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시인도 나이를 먹었다.


“이름에 매달릴 것 없다.

알아도 꽃이고 몰라도 꽃이다

알면 아는 대로 , 모르면 모르는 대로”


시인이 내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왔나 싶다. 왠지 반갑고 후련하다. 시인의 말처럼 알아도 꽃이고 몰라도 꽃이다. 그냥 내 곁에서 피고 지는 꽃들을 무심히 지나치지 말고 예쁘다고 , 감사하다고 말해 주련다. 이름을 알면 좋겠지만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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