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죽는 이야기 싫다고 해놓고는... 우리 연속으로 죽음을 읽고 있다고”
봄봄 친구들과 함께 읽을 책을 3권 정도 미리미리 선정해둔다. 친구 한 명이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다른 친구는 여름인데 밝고 상큼하고 시원한 이야기를 읽고 , 죽음에 관련된 책은 가을에 읽자고 했다. 가을에 죽음을 이야기하면 더 쓸쓸해질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우리는 죽음을 미루기로 했다. 예전에 읽기로 했지만 읽지 못한 <인형의 집>과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다들 좋아하는 책방 이야기를 기대하며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를 읽었다. 그리고 계획에 없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었다.
“뻐꾸기 둥지의 맥머피의 죽음, 책방 할아버지 피키에의 죽음 그리고……”
“그뿐이 아냐. <우리들의 블루스>의 옥동 할머니도 죽었어.”
“<나의 해방 일지>의 엄마도 ……”
“나는 지난주에 부고를 2장이나 받았어.”
외면하고 싶다고 죽음을 비켜갈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건가. 죽음을 기억하라는 그 뭐드라, 우리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메멘토 모리’ 그건가. 가만가만 생각해보면 지금껏 우리는 죽음은 우리와 상관없거나 상관있어도 아직은 멀리 있다고 여겼다. 만약 몇 년 전에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나의 해방 일지>,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았다면 그들의 죽음에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껴도 지금처럼 가슴이 미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다른 이야기에 더 집중하지 않았을까?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당시 러시아 상류층 사회의 삶의 기준을 따라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던 이반 일리치는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어간다.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렇게 고통스럽게 죽어야 하는가. ‘ 이반은 처음에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점차 그는 죽음을 부정하다가 죽음을 바라보며 두려워하다가, 누군가의 위로를 원하다가 서서히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되묻고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는다.
점점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소설이나 드라마 속 죽음이라 해도 그렇다. 수시로 부고장을 받는다. 죽음은 내 생각보다 더 가까이에 있는 것 같다. 죽음이 무엇일까? 봄봄 친구들과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얘기를 나눴다.
“나는 죽는 사람이 부러워. 그렇다고 스스로 죽겠다는 것은 아니야.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용기도 없어. 이 세상의 고통을 저 사람은 드디어 끝내는구나. 참 부럽다. 신의 소명을 다했구나 이런 마음이 들어”
“나는 어느 정도 살만큼 살았다 싶을 때 내가 내 삶을 끝내고 싶어. 그렇게 하려면 정신이 온전해야 할 텐데 그게 걱정이야. “
“입만 열면 죽고 싶다던 할머니가 병원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시는 걸 봤어. 도대체 뭘까?”
“죽음을 생각하면 정리정돈을 하고 청소를 하거든. 내 흔적이 깔끔했으면 해서 말이야. 어느 날 청소가 죽은 후가 아니라 지금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
“그런 마음이 메멘토 모리인 거지?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의미잖아. 그런데 왜 나는 인간은 모두 언젠가는 죽을 건데 아등바등 살 필요가 있나 싶고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 먼저 들까? 그렇다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막 살 수도 없고 말이야.”
“죽음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로 귀결대는 것 같아.”
“잘 살자. 우리…..”
“내가 죽으면 슬퍼하지만 말고 기뻐했으면 좋겠어. 잘 살다 갔다고 말이야.”
죽음을 이야기하다가 자신의 삶을 잘 꾸려나가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여전히 죽음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지만 막상 코앞에 직면하면 담담할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그때 두렵지 않았으면 좋겠다. 죽을 때 행복했던 기억이 많이 났으면 좋겠다. 기쁘고 충만했던 순간이 많이 떠올라 죽음 앞에서 미소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죽음이 덜 무섭지 않을까. 내 죽음을 안타까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잘 살다 간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이기적이고 사랑도 배려도 없는 삶을 살면 이런 말 안 해주겠지? 일단 내가 잘 살아야겠다. 메멘토 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