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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Aug 03. 2022

Happy birthday to me


나는  생일이 싫다. 나라는 인간이 태어난 것을 기뻐하며 축하할 일인가 싶다.  그래도 미어터지기 일보 직전인 지구의 80 인구에  더하기 1  것이  그리 대수라고. 어릴 때는 엄마가 해주시는 특별한 음식을 먹는 날이라 생일이 좋았다. 중학교 때부터는 친구들과 파티라는 것을 하며    있어 좋았다. 선물을 받고 축하와 감사인사를 주고받고 함께 노는 것이 즐거웠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1년마다 꼬박꼬박 돌아오는 생일이 반갑지 않고 축하 인사는 쑥스럽다. ?


나는 제대로 잘 살고 있나?

사는 게 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부터 발을 동동 구르며 다녔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눈 막고 귀 막고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어른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는데 웬걸, 대학생이 되니 스스로 먹고 살 준비를 해야 했다.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 해야 할 일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풀어도 풀어도 줄어들지 않는 퀘스트를 풀고 있는 기분이다. 가히 첩첩산중이라 할 수 있겠다. 헉헉대며 살고 있는데 태어난 것을 축하한다고? 진심이야?


나는 왜 태어났을까?

밥을 축내고 숨을 쉴 때마다 쓰레기를  만들어내라고 삼신할미가 나를 점지한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나의 소명은 무엇일까? 이순신 장군처럼 나라를 구하는 것? 아니면 봉준호 감독처럼 K-culture를 널리 알리는 것? 김영하 작가처럼 독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글을 쓰는 것? 내 소명은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만약 신이 나에게 거창한 소명을 주었다면 힘세고 오래가는  에너자이저의 기운을 주셨으리라. 늘 퍼져 있고 가끔 깨어있는 나의 기운은 나무늘보와 비슷하다. 축하 인사를 건네는 이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혹시 내가 태어난 이유를 알고 계신가요?


나는 세상에 무해한 사람인가. 나는 다정한 사람인가. 나는 따뜻한 사람인가. 당연하다고 대답하려 했다. 지난주 아파트 재건축 이주비 신청하는 날 복도에서 부딪친 할머니와 싸울 뻔했던 기억이 떠올라 입을 서둘러 닫았다. 횡단보도가 멀다는 이유로  무단 횡단한 나, <김용균, 김용균들> 책 1권 사는 것으로 산재노동자들의 아픔에 충분히 공감했다고 생각하는 나, 언니에게 엄마 돌봄을 맡겨 놓고  립서비스만 하는 나, 아이의 좌절에 공감하기보다 다그치는 것이 먼저인 나, 불공정과 몰상식을 공정과 상식이라고 착각한 이들을 비아냥거리는 나, 명색이 직업이 전업주부인데 틈만 나면 직무 유기하는 나는 생일 미역국을 먹어도 되는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태어난 이유를 모르는데 왜 살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알고 있을 리가 만무하다. 나는 오늘도 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어른들의 안부를 묻고 친구를 만나고 책을 읽었을까. 지금 나는 잘되지도 않는 글을 쓰겠다고 머리카락을 뽑아가며 콧바람을 씩씩거리며 텅 빈 메모장을 뚫어지도록 보고 있나. 도대체 왜? 태어났으니 그냥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나의 일상을 살고 있다. 끊임없이 돌을 굴려야 하는 시지프스처럼 말이다. 어쩌면 생일 축하는 지난 1년의 수고에 대한 인사이고 다음 1년을 위한 격려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도 축하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아닌가?


2022년 여름, 또 생일이다. 이번에도 답을 찾지도 못하는 질문을 남발하다 케이크의 촛불을  끈다.

Happy birthday to me!!

맛있게 먹고 1년 또 잘 살아보자꾸나.

내년 생일에도 나는 똑같은 질문을 하겠지만 어쨌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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