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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Mar 25. 2023

진달래가 예뻐서 막걸리를 담그다

열여섯 번째 문경일기


진달래꽃이 예뻤다.

일상다반사의 시간. 남편과 나, 시누이와 시매부 이렇게 4명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오늘 티타임의 주제는 봄기운이었다. 고갯길 산수유가 활짝 피었더라. 노오란 꽃송이가 귀엽더라. 동네 당상나무 근처 살구꽃도 피었더라. 본홍색이 참 예쁘더라. 낮에는 덥더라. 텃밭농사를 잘할 수 있을지 없을지 - 이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저기 저쪽에 붉은 거 보이지? 진달래야.”

“예? 어디요? 과수원집 뒤쪽요? 아~~“

시매부께서 가리키는 곳을 보니 붉은 기운이 돈다. 진달래꽃이 만들어내는 붉은색일 줄이야. 마당에서 바라보는 산의 색깔이 매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흑백이었던 겨울풍경에 누군가 아주 작은 붓으로 천천히 색을 칠하고 있는 것 같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만큼 느리다. 어느새 산에 진달래꽃이 피었다.


“제 고향에서는 참꽃이라고 했어요.”

“맞다. 맞아. 우리도 참꽃이라 불렀어.”

“화전도 만들어 먹고 그랬지.”

“진달래 막걸리도 담갔었는데…”

“진달래 막걸리요? 색이 참 고울 것 같아요.”

“말 나온 김에 막걸리 담아볼까? ”

”예에? 막걸리를 담근다고요? 그건 양조장에서 할 일이……“

“어렵지는 않은데”

“모르는 건 유튜브에 물어보면 되잖아.”

“우리 한 번 해볼까?”


4명 중에 막걸리를 담아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시매부께서 어머니가 생전에 술 담그는 것을 자주 본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어렵지 않단다. 문경에는 100년 전통의 만복이 막걸리가 있는데 굳이 우리까지 술을 담글 필요가 있나 싶었다. 남편과 나는 술과 친하기도 않을뿐더러 냄새만 맡아도 취하는 사람인데 말이다. 뭔가에 홀린 게 분명하다. 하기 싫은 마음이 컸는데 어느새 항아리에 술이 익어간다.


산에 올라가 진달래꽃을 따왔다.  ( 보기만 해도 예쁜 꽃을 먹는다고? 왜? )

하나하나 꽃술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씻어 말렸다. (꽃술 떼기가 번거롭네. 안 넣어도 되지 않나?)

방앗간에서 누룩을 사 왔다. (  누룩이 중요한데 아무 누룩으로 해도 되나? )

큰 시누이가 농사지은 찹쌀을 가져왔다. (  찹쌀값이 막걸리 사 먹는 것보다 더 많이 들겠구먼.)

말간 물이 나올 때까지 찹쌀을 씻어 고두밥을 지었다. ( 언제까지 씻어야 하냐고? 팔 아프다고.)

장독대에서 놀고 있던 항아리를 씻고 에탄올로 소독했다. ( 소금단지로 써야 하는데……)

누룩 포장지에 인쇄된 양조법을 따라 누룩, 진달래꽃잎, 고두밥과 물을 섞었다.  ( 맞겠지? )

끝으로 항아리에 부었다. 이제 술이 익기를 기다리면 된다. 누가 그러더라. 술은 기다림의 음식이라고.


담근 지 3일이 지났다. 담그면서 내내 궁시렁궁시렁거려 맛있게 익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투덜거려 놓고는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란.  술항아리에 귀를 대본다. 퐁퐁인가? 뽀글뽀글인가? 뿌국뿌국인가? 소리가 들린다. 술이 익어가는 소리겠지?


진달래꽃이 예뻐 막걸리를 담갔다. 우리는 꽃그늘 아래에서 웃으며 막걸리를 마실 수 있을까?

#브라보문경라이프 열여섯 번째 #문경일기 #202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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