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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Mar 22. 2023

꺼진 재도 다시 보자

너도 나도 불조심, 자나 깨나 불조심


지난 3월 16일 우리 동네 문경과 가까운 상주에서 큰 산불이 났다. 17시간 만에 진화되었고 산불 피해 구역은 약 86ha(축구장 120여 개)로 추정되며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다. 주민 A 씨가 화목난로에서 태우고 나온 재를 버렸는데 재 속에 있던 불씨가 산불로 번졌다는 소식에 식은땀이 났다.


우리 집도 화목난로를 땐다. 따뜻하고 운치가 있어 좋은데 관리가 만만찮다. 생전 처음 사용하는 화목난로인지라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집을 지어 이사 오고 얼마 되지 않아 큰 불이 날 뻔했다.  그날은 방문 설치 공사를 해서 건축자재 포장 쓰레기가 많았다. (이사 날짜가 맞지 않아 우리는 방문도 화장실 문도 없는 집에서 며칠 살았다.) 날이 밝으면 갖다 버리려고 종이상자와 비닐을 마당 한쪽에 모았다. 그 옆에 난로 재를  모아두는 양동이도 있었다. 재를  양동이에 버리고 잠깐은 괜찮으려니 하고 양동이 뚜껑을 닫지 않고 집안으로 들어온 게 화근이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불씨가 튀었고 쓰레기에 불이 붙었고 순식간에 활활 불타올랐다. 남편과 나는 혼비백산했다. 신발 신을 생각도 못하고 맨발로 물을 퍼 나르고 물을 붓고 불길을 잡으려고 매트를 덮고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었다.  바람이 불었으면 어찌 되었을까. 바람이 안 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마터면 새집 등기부 등록도 하기 전에 태우고, 전입신고도 하기 전에 동네를 다 태울 뻔했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귀가 아프도록 들은 표어이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는 말의 의미를 다시금 뼈저리게 깨달았다. 꺼졌다고 생각해도, 꺼진 것처럼 보여도 불씨는 살아 있을 수 있다. 분명히 다 타고 남은 재였고, 불씨가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쉽게 불이 붙을 줄이야. 아이고야.


평소라면 무거워 들지도 못할 물을 들고 나르고 붓고 - 남편과 겨우겨우 불을 껐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사방팔방에 물을 뿌렸다. 수시로 마당을 살피느라 쉬이 잠들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보다 더 반가운 눈이 있으랴. 하얗게 쌓인 눈 덕분에 시커먼 화재 현장을 한동안 들키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꺼진 불도, 꺼진 재도 다시 본다. 재를 모으는 양동이 뚜껑을 닫지 않고는 자리를 절대로 비우지 않는다. 아주 잠깐도 비우지 않는다. 뚜껑을 닫고 벽돌 두장을 올려둔다. 뚜껑이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말이다. 그렇게 며칠 두었다가 꺼진 것을 또 확인하고 밭에 버려 밭흙과 섞는다.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예방주사를 확실하게 맞았다.


봄에 논둑이나 밭둑을 태우다 산불로 번졌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많다. 불에 한 번 호되게 당한 후로 연기만 나면 긴장되어 괜히 남의 논밭을 살피게 되었다. 우리 동네는 논둑이나 밭둑 태우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알고 보니 논둑, 밭둑 태우기는 금지라고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산불방지원들이 순찰을 돈다. 논둑이나 밭둑을 태우면 병충해뿐만 아니라 농사에 이로운 곤충도 다 죽이게 된다고 한다. 이래저래 논둑과 밭둑을 태우는 모습은 보기 힘들어졌다. 곤충도 살리고 산불 예방도 하고 잘된 일이다.


자나 깨나 불조심, 너도나도 불조심이다.


#브라보문경라이프 열다섯 번째 #문경일기 #20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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