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오면 다 죽었다

식물들은 우리 집에 오면 대개 다 죽었다.  꽃도 허브도 다육이도 오래 살지 못했다. 물이 적어서 죽고, 물을 너무 많이 주어 죽고, 추워서 죽고 햇빛이 강해서 죽었다. 이런 똥손을 가진 사람이 나 말고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3년 넘게 우리 집에서 살아남은 불굴의 식물 몇 개가 있다. 오늘 날씨가 좋아 마루에서 마당으로 내왔다. 스투키,  트리안, 라울, 미니콩고와 알로카시아가 데크에서 햇볕과 바람을 쐰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살랑살랑거리는 것이 기분이 좋아 보인다. 아마 서로서로 이런 말을 주고받지 않을까?  “ 오래 살고 볼일이야. 아파트 베란다에서 평생 살아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러게 말이야. 지난겨울에 잎이 다 떨어진 미니콩고가 기운 차리는데 큰 도움이 되겠다. 그지?”

지난 삼일절에 꽃씨를 심었다. 마당이 생겨서 그랬는지 , 삼일절이라 그랬는지 차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일을 해버렸다. 비덴스가 노랗게 활짝 핀 마당은 얼마나 예쁠까- 생각만 해도 좋았다. 포트를 구해서 손으로 집기도 어려운 작은 꽃씨를 하나하나 심었다. 아~ 이를 어쩌누. 싹은 다 틔었는데 매일매일 조금씩 죽었다. 한동안 그랬다. 우리 집에서 햇빛이 가장 잘 드는 곳에 두고 겉흙이 마르지 않도록 보살피고 있는데도 그렇다. 나는 정녕 식물들의 저승사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가.

노심초사하고 있는 중에 마당 구석에 수선화가 피었다. 노오란 꽃이 참 예쁘다. 수선화가 건네는 봄인사는 예상하지 못했던 거라 더 반가웠다. 작년 겨울 집짓기 공사가 끝나고 마당 정리를 할때 시매부께서 수선화 알뿌리를 마당 구석구석에 심었다고 한다. 마당 어디에서 싹을 틔우고 꽃이 필지 모른다. 오늘도 새로운 수선화 싹이 고개를 내밀었다. 마치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 든다. 내일은 어디에서 새싹이 올라오고 꽃이 필까?

우리 집에 오면 대개 다 죽었는데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꽃을 피운 수선화를 보니 우리 집도 이제는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햇빛과 바람은 자연이 맡아줄 테니 말이다. 며칠 전부터 비덴스도  더 이상 죽지 않는다. 잎도 하나 둘씩 더 나기 시작했다. 비덴스들아 , 제발 튼튼하게 크자. 내가 노력할게. 나는 너희들이 예쁘게 피는 모습을 아주 많이 보고 싶단 말이야.

우리집 마당에 핀 수선화

#브라보문경라이프?? 열네 번째 #문경일기 #2023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