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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Apr 12. 2023

봄은 아프다

열일곱 번째 문경일기

벚꽃, 개나리, 진달래, 냉이, 달래, 새싹, 새순, 봄비, 텃밭, 노란색, 연두, 희망, 시작, 무럭무럭, 쑥쑥 , 성장 - 봄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은 대개 따스하고 예쁘고 설렌다. 추운 겨울 동안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펴는 시간이라 그런가. 그런데 나는 봄이 아프다. 냉이의 봄인사가 반갑고 연분홍 벚꽃이 예쁘고 새싹과 새순의 연두색에 가슴이 설레면서도 다른 한 편에서는 눈물이 난다.


따스한 봄빛에 사람들이 외투를 벗고 꽃이 피고 새싹이 돋는다. 그들의 싱그러운 기운에 감탄사가 연신 터진다. 봄이니까 그래. 봄은 기운이 막막 솟아나는 그런 계절이잖아. 나도 그럴까. 몰래 거울을 본다. 그럴 리가. 후줄근한 표정으로 억지로 짜내는 미소가 안쓰럽다.


나는 봄이 어렵다. 언제부터인가 봄이 오면 텅 빈 운동장에서 홀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것 같았다. 모두들 힘차게 출발했는데 출발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 모양 이 꼴인데 도대체 왜 하늘은 푸르고 꽃들은 예쁘고 나무는 물이 한껏 오르고 그런 거야. 얇은 봄옷을 멋지게 차려입은 저들의 발걸음은 왜 그리 가벼운 거야. 저들은 겨울 동안 무엇을 했길래 활기가 넘치는가. 저들은 이제  곧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텐데…… 나는 씨도 뿌리지 않았구나. 아니야, 씨는 뿌렸나? 뿌릴 때만 잠시 관심을 갖고 돌보다가 금세 잊었을지도 모른다.


올봄은 예년의 봄마다 더 힘들다. 시골로 이사 오고 첫 봄이다. 도시의 봄보다 몇 배는 활기차 보인다. 지난겨울에는 동네 사람들이 열 명이 채 안 되는 건가 싶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꽉 찬 느낌이다. 논과 밭, 산과 들이 분주하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진달래가 예뻐 담근 막걸리는 망했다. 시큼한 냄새가 났다. 맛을 보고 싶었지만 차마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하는 무엇인가 있었다. 상추와 방울토마토를 심어 보겠다고 밭고랑 1줄을 만들고는 앓아누웠다. 팔이, 어깨가, 다리가 이렇게도 아플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아팠다. 욱신욱신한 팔에 , 시큰시큰한 어깨에 , 뻐근 뻐근한 어깨에 파스를 붙였더니 파스 냄새에 두통이 온다. 아이고 머리야. 그래 뭐,  막걸리, 상추와 토마토는 원래 사 먹는 거라고, 공간과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고 함부로 도전할 일이 아닌 거라고 애써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몸과 마음의 기운이 바스러진다. 잘 살 수 있을까. 이전까지는 출발선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허둥대는 악몽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어느 종목에서 뛰어야 하는지도 몰라서 막막한 악몽을 꾼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억지로 움직여 보려 해도 힘이 나지 않는다. 올봄은 다를 줄 알았는데 나의 봄은 여전히 아프다.


페이스북이 연일 몇 년 전 오늘을 보여주어 한동안 징징대는 과거의 나를 만났다. 며칠 전부터 보통의 일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가족들과 맛있는 것을 먹었다는 등, 친구와 꽃구경을 했다는 등, 응원하는 선수가 대기록을 세웠다는 등등. 페이스북에게 나의 생체리듬을 들켰나 보다. 현재의 나도 기운을 회복했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실컷 울고 났더니 덜 아프다. 눈물 없이는 보지 못할 투병일기가 될 뻔한 이야기가 페이스북 덕분에 코미디가 되었다. 봄만 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시리즈이다.


내가 봄에 아픈 이유는 욕심 때문이다.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욕심, 잘  나가야 한다는 욕심, 더 잘해야 한다는 욕심, 글을 더 잘 쓰고 싶은 욕심, 꾸준하고 싶은 욕심, 더 예쁘고 싶은 욕심 말이다. 봄은 유난히 내 욕심을 휘젓는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답은 정해져 있다. 욕심내지 말고 하루하루에 충실하자는 답, 이미 알고 있었던 답을 벚꽃이 지고 나니 다시 보인다. 벚꽃은 졌고 봄날은 지나간다. 난 뚜벅뚜벅 나의 일상을 살아가리라. 다음 봄은 지금보다는 조금 덜 아프길 바라며 말이다.


#브라보문경라이프 열일곱 번째 #문경일기 #202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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