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붉게 상기된 얼굴
제1부. 열여덟, 가을날의 상심
붉게 상기된 얼굴에 하얀 이를 고르게 드러내고 웃던 희수의 얼굴빛도 물들어가는 하늘빛 아래서 복숭아물빛으로 젖어들어 가고 있다. 아무래도 팔딱거리는 가슴이 누그러들기에는 아쉬운 모양이다. 서른도 중반을 넘어선 지 이태가 지났건만 철들지 모르는 시절의 아이처럼 헤벌쭉 웃으며 툼벙거린다.
흰 저고리에 흰 바지를 입고 앵두빛 더그레에 ‘가세침복’ 차림으로 빨간색 띠와 초록색 띠를 양쪽 어깨에서 허리로 질러 묶고 노란색 띠를 허리에 대어 뒤로 묶은 상쇠영감의 전립(戰笠) 위의 부포는 꽃으로 피었다 꽃으로 지고, 해로 떠올랐다 해로 기울었다. 검은 머리 사이로 희끗희끗 섞여들던 하얀 머리털이 앞뒤꼭지로 번져 이제는 아예 하얀 갈대꽃 흐드러진 언덕이 되어버린 영감의 얼굴은 여기저기 검버섯이 돋고 이마와 눈가에서 굵은 줄기로 흘러내리던 주름들은 양쪽 볼에서 작은 웅덩이를 만나 입술 언저리로 밀려들었다. 주기적으로 밀려들었다 빠져나가는 바다의 가슴패기처럼 세월의 강을 거스르지 못한 상쇠 영감의 팥돔부콩빛 얼굴도 오늘은 꽃으로 피었다 해로 지고, 해로 떠올라 꽃으로 지더니, 이제는 숫제 달빛으로 피어나려 한다. 목포 선착장 나루터 주막집에서 꿀꺽꿀꺽 소리가 나게 막걸리를 들이켜고선 쇤 가지 무침을 가무스름한 입안에 몰아넣고 우물거린다. 그리고는 텁텁한 낯빛으로 쉰소리 나게 웃는다. 미투리 안에서 뛰는 주인 따라 천방지축 땅을 울리며 깨금깨금 지긍지긍 툼벙텀벙 뛰어오르던 버선이 튀어 오른 흙 사이로 끼어들어 말라버린 검불을 뒤집어 쓴 채 거친 손아귀에 잡혀 쓸린다. 발가락 끝으로 가는 손아귀에서 발뒤꿈치로 가는 손아귀를 따라 머물다가 발바닥 가운데에서 톡톡 두드리는 매를 맞는다. 위로 치솟았다 아래로 내리닫는가 싶더니 다시 위로 솟아올라 아래로 향하는 그네처럼 상쇠 영감의 손 안에서 얼룩덜룩 때에 전 버선의 하루도 눅눅하게 젖어 기울어간다.
희수의 눈은 황홀했다. 귀는 흥겨웠다. 가슴은 울렁거렸다. 몸으로 가슴으로 몰려드는 흥겨움의 물결은 핏줄을 타고 오줌통으로 몰려들어 질금거렸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굿 치는 소리, 내뱉는 탄성, 깃발을 세우고 꽹과리와 북, 장구, 소고 사이에서 출렁거리는 고깔 위 꽃들의 흥분에 취해 변소에 가는 것조차 수월치 않았다.
전국 팔도에서 모여들었다는 농악대들의 규모는 거창했다. 희수네 소금꽃 피는 마을 소포리의 걸군농악대만하더라도 그 수가 마흔이 넘고, 따라나선 마을 사람들만 하여도 여럿이라 근 육십을 넘어서는가 마는가 했다. 그런데 팔도에서 지역마다 작게는 마을 농악대까지 몰려들어놓으니, 그 큰 운동장이 사람들로 북적거려 발 디딜 틈이 없고, 구경 나온 관중석의 사람들까지 섞여드는 통에 쇠굿을 치러 온 것이 아니라 사람구경을 나온 꼴로 흥청거렸다.
흰 저고리와 흰 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붉은 띠에 푸른 띠, 노랑 띠를 두르고 울긋불긋 꽃을 달아놓은 고깔을 쓰고 있으니, 가을의 높은 하늘은 한껏 치솟아 우물처럼 깊고, 두 번 물들고도 섭섭해 세 번째 물을 들이는 쪽빛 하늘은 사람들 고깔 위에서 람실(藍實) 남실거리는데,
굿마당으로 한 패의 사람들이 밀려들어오고 있다. 이웃 마을에 걸궁굿 치러 갈 때, 마을 어귀에 들어선 걸궁패의 나팔수가 세 차례에 걸쳐 나팔을 부는 ‘나발삼초’ ‘훌—’ 소리가 뱃고동 소리처럼 울려 퍼지자 운동장 한켠에서는 ‘개갱 갱 갱 갱 갱 … … … ’ 굿 내는 가락이 힘차게 울려나온다. 굿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상쇠가 굿가락을 맞춰보는 것인데, 그 가락의 울림이 심상찮게 느껴진다. 질굿을 시작하기 전에 상쇠가 쇠를 두드리며 치배들을 각자의 위치에 서게 하고 긴장을 풀며 서서히 제 가락을 풀어내게끔 준비하는 것이다. 시작이면서도 아직 시작이 아닌 어름에 상쇠의 쇠울림을 감싸며 우렁차게 폭을 가르는 장구와 북, 그리고 ‘덩 덩 덩 덩 덩 … … …’ 소고가 징소리에 안기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필봉마을 사람들은 한자리에 둘러서서 상쇠의 지휘에 따라 어름의 뒤를 이어 휘몰이로 빠르게 몰아치고 된삼채로 들어선다. 본가락 ‘갠 지갠 지갠 개읏개’에 ‘개갱 갠 지갠 개읏개’를 치고, 변주가락 ‘갠 지갠 지갠 뜨리갱’ 1에서 3을 번갈아치고 ‘갠 지갠 지갠 개읏개 개갱 뜨리갱 갠 개읏개’ 변주가락 4를 반복적으로 치는 동안 물이 오른 흥은 휘몰이로 밀려든다.
웅성웅성하던 사람들의 눈길이 한 곳으로 모이고 사람들의 얼굴은 설렘과 호기심으로 들떠 수런거린다. 자기 팀의 순서를 기다리는 희수도 우물 밖 세상에서 보는 생경한 것들에 대한 신비로운 동경에 취한 듯 얼이 빠져 보이기까지 한다.
무대의 들머리에 도포를 잘 차려입은 사내가 우뚝 선 모습이 보인다. 그 사내에게서 쇄납의 가늘고 높은 소리가 울려나온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애간장을 쥐어짜며 인간의 오장육부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앙금이 하늘로 솟는 연기처럼 눈물과 한숨의 비탄 속에서 애가 잦게 우려진다. 사람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거대한 용이 깃발 속에서 포효한다. 삼십여 척이나 되는 대나무에 올라탄 사내가 온 힘을 다하여 판을 쓸어낸다. 깃대 끝에 매달린 꿩의 꼬리가 비질을 하려는 듯 판 위로 내려서는가 싶더니 곤두서며 공중으로 솟구친다. 푸른 용틀임이 좌중을 압도하며 푸른 물빛을 쏟아놓는다.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흠칫 놀란 표정으로 두 눈을 질끈 감기도 하고, ‘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탄성을 쏟아놓기도 한다. 검은 이빨을 바람에 날리는 지네발들이 푸른 용을 옹위하며 판을 넘보던 사악한 악귀들의 음산한 기운을 죄다 쓸어 문밖으로 던져버린다. 벽사진경(辟邪進慶)의 의식이 끝난 침묵의 판 위로 청 · 홍의 영기(令旗)가 들어서고, ‘농자천하지대본’이라 쓴 큰 기(旗)가 나온다. 상모에 부포를 달아 머리를 흔들며 나오는 상쇠와 그 뒤를 따르는 부쇠와 중쇠, 끝쇠가 오방에 오간을 갊아 넣은 깐치동 소매로 쇄납의 눈물과 한숨, 비탄을 꽹과리의 쇠달금 속으로 들이붓는다. 상생을 일깨우는 것이다. 태양이 솟는 곳 동방에서 숲을 이룬 나무들은 청색의 기운으로 생동하는 봄을 양껏 뿜어내고, 쇠를 금(金)이라 함에도 백색으로 두어 서방에서 가을로 흐르게 한다.
봄은 움쑥움쑥 돋아나는 볕으로 쓱싹쓱싹 베어내어 곳간을 채우고 허기진 뱃속을 불러오게 하는 추수의 계절을 향해 기우는 것을 천명(天命)으로 안다. 음과 양이 만나 씨앗을 뿌리고 곡식을 거두는 약속의 시간 속에서 사람은 여름을 견뎌야 한다. 남방에서 작열하는 태양은 중천에서 하루를 오가며 사람의 정수리를 타고 흘러 등을 달구고 발목을 뜨겁게 휘감는다. 그러나 붉은 빛의 화(火)가 어우러짐의 시(詩) 화(和)를 일궈내기 위한 시간, 여름은 잉태의 계절이라 벼들이 뜨겁게 수런거리는 논배미의 물속에서 쉬익쉬익 숨을 몰아쉬며 성장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사람도 모내기를 하고 김을 매는 동안 황색의 공간, 땅 위에서 황금들녘을 꿈꾸는 만두레(세벌 김매기)의 굿을 친다.
그러나 봄과 여름, 가을은 겨울을 두고 갈 수 없다. 북방이 없고는 북두칠성의 기원이 없고, 겨울의 몸을 핥는 골짜기의 물이 흐르지 않고는 봄의 생동이 사람의 몸속에 움트지 않는다. 겨울을 검은 빛이라 하는 것은 쉼의 시간, 멈춤의 시간이라 하여 상징으로 놓은 것이겠지만, 사람들은 그 검은빛 시간에도 소를 먹이고 돼지를 키우며,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짠다. 꽁꽁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속으로 파고들어 땅 속 깊은 어느 마을에서 찬란하게 눈부신 봄의 꽃을 피우리라. 그 꽃이 질 무렵 대지를 차고 올라와 찬란하게 눈부신 봄의 꽃을 피우기 위한 북방의 매서운 계절, 겨울의 하얀빛에 가려진 검은빛이 없다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희수는 필봉마을 상쇠와 쇠잽이들의 깐치동에 나란히 줄박은 오방색들의 상극, 그것들의 상생을 생각하며 깨금깨금 을자형 질굿을 나서는 앞치배와 뒷치배들의 장구와 북의 두드림을 듣는다. 그리고 오방색 사이에 줄박은 오간을 본다. 꽹과리의 쇠달금이 무엇이던가. 대장장이의 거친 숨소리가 툭툭 볼가져 나온 팔뚝의 굵은 핏줄과 가는 핏줄 사이에서 뛰는 맥박의 혼(魂), 그 울림이 아니던가. 대장장이의 성냥간에서 뜨겁게 달구어지고 두들겨지고 차가운 물속에 처박히고, 다시 분출하는 용암의 구덩이에서 막 건져내온 것처럼 이글거리는 불 속에 들어가 지져지면서 풀무가 불어대는 바람에 미친년 널뛰듯 나불대는 광기어린 불 속에 처박혀 기겁했다가 들려나와 내려치는 망치에 두들겨 맞다가, 다시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 널브러지기를 반복했던 화탕지옥의 고통이 아니었던가. 도대체 얼마나 죄를 지으면 이와 같은 형벌을 받을 수 있더란 말인가. 꽹과리가 되고 징이 되는 원초의 물질들에게 어느 한 순간이나마 작은 티끌만큼의 죄가 있었더란 말인가. 오방색은 모두가 서로에게 상극이었다. 그런데 그 상극들은 하나의 공간에서 지나치게 서로 다름으로 만나 둘 같은 하나가 되어 셋이 되고, 넷이 되어 무한의 가치를 만들어냈다. 화(火) 가 화(和)하여, 화(華)의 세계에 이른 것이리라. 결국 빛깔은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를 닮아간 까닭에 녹(綠), 벽(碧), 유황(硫黃), 자(紫), 홍(紅)을 낳게 된 것이다. 거느림보다는 나란히 서는 빛깔로 오방 사이에서 오간은 가을 하늘의 청명한 햇살 아래 물이 오르고 있었다.
*대문사진은 진도 소포걸군농악의 故 김홍국 상쇠 명장의 부포놀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