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희수는 문득
제1부. 열여덟, 가을날의 상심
희수는 문득 어머니 소희를 생각한다. 무슨 죄를 크게 지었을까마는 꽹과리의 쇠달금처럼 달구어지며 얻어맞고 널브러지던 여자, 소희는 어쩌면 상쇠의 손바닥에 실려 꼭두서니 물들인 붉은 빛깔의 너설을 달고 쇠를 내리치는 매를 맞으며 온 세상 사람들의 업(業)을 씻어주는 비손이의 업(業)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병이 났네 병이 났네
빈지레기가 병이 났네
화랑기한테로 점하러 간께
꼬막삼춘이 들었다고
운조리 나와서 피리를 불고
쑥대기는 장구치고
짱뚱이는 펄떡 뛰고
징을 지리징징 울리느니
뻘떡게는 춤을 추고
갈포래는 넋을 놓아
울 밑에 소라삼촌은
막걸리 한 잔에 홱 틀어졌네
“엄니, 나는 왜 아부지가 없어?”
“…….”
“엄니, 말혀봐. 나는 왜 아부지가 없냐고 물었잖여.”
“허튼소리.”
소희의 멈칫하던 손이 다시 움직인다.
“옆집 달손이도 아부지가 있고, 뒷집 대석이도 아부지가 있는디, 나는 왜 없냐 말이여?”
“또 어떤 놈이 놀리드냐?”
“왜 엄니는 죄가 많어서 내 아부지를 죽게 했드냐 말이여? 왜 물에 빠쳐 죽게 했냐 말이여?”
찰싹, 뺨에서 불이 일었다. 순간,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단 한 번도 매를 맞아본 적 없이 자랐던 희수의 뺨에 비릿한 갯내음이 묻어났다. 물이 빠지고 난 후 말랑해진 갯가에 나가 낙지를 캐고, 바지락을 캐 와서는 물에 씻으며 손질을 하고 있던 소희의 뻘흙 묻은 거친 손이 희수의 뺨에 가 붙었다. 가지런하게 검던 눈망울이 순간 흔들리며 불이 일었다 스러진다. 좀처럼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던 그네였다. 특히 희수에게만은 얼마간의 잘못이 있어도, 동네 아이들과 쌈박질을 하고, 맞은 아이의 어미가 달려와 구살을 떨어도 성가셔하거나 화를 내어 말을 하지 않던 그네였다. 섬이 아니던가. 제주와 거제 다음으로 큰 섬 옥주에서 바다를 삶의 터전 삼아 살아가는 억센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섬냄새, 갯내음이 나는 속에서도 어딘지 뭍냄새 풍기는 모습으로 살아오던 그네였다. 그런 그네의 눈빛에 순간이었지만 푸른빛이 돋고, 말아 쥐었다 펴진 손이 흙을 개어 할퀴고 간 것이다.
차가운 물의 기운과 얽혀 있던 흙이 어린 뺨에 와 닿으며 손톱이 스치고 갔다. 어머니의 다정함과 맹목에 가까운 온화 어디에서 그처럼 모질고 사나운 기운이 뻗쳐 나왔던가에 대한 것은 생각해보지 못한 채 몇 해를 보냈다. 그런데 그 기억이 지금 이 마당에서 난단 말인가. 희수의 가슴이 우둔거린다.
“나 좀 보드라고. 가희 오매, 집에 없당가?”
“아줌니, 어찌 그라요?”
기명물 함박을 들고 나오던 가희가 우뚝 멈춰서며 묻는다.
“아이 내가 너 불렀냐? 니 엄니 좀 보잔단 말이여.”
“울 엄니는…… 몸이 좀 아퍼서 누웠구만이라.”
“아따, 당골네도 몸이 아프다냐?”
“아줌니, 뭔 말씀을 그리 험하게 허신다요?”
기명물을 수챗구멍에 흩뿌리며 말을 한다.
“너그 동생 희수란 놈이 우리 동철이 얼굴을 이리 찌그려 놨는디…… 내 말이 험하다고야? 니도 눈깔 있으먼 한번 쳐 봐라. 어뜨케 애기 얼굴을 이렇게 깨뜨리 놓는다냐, 어엉?”
“미안허게 됐는디라, 동철이가 매번 우리 희수를 놀링께 그란거 아닌가라.”
“뭐,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헝거 말이냐? 그것이 말짱 헛말은 아니잖냐. 너그 아부지 죽고 없능 거는 사실 아니냐? 넘의 집 삼대독자 얼굴을 이렇게 맨들어 놨는디……니 같으먼 불이 안나겄냐?”
한 손으로는 아들을 붙잡고 한 손으로는 삿대질을 해가며 욱대긴다.
“아줌니, 아무리 우리 아부지가 안 계신다고 해도 그렇제, 근다고 어떻게……그렇게까지 세게 말할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아이구야, 당골네 새끼들은 그라고 말을 잘한다냐?…… 매양 굿이나 허면서 살아강께 허는 짓거리로 사람 치는 것도 잘 허고 말도 잘 헌다이.”
그 때 작은방 문이 벌컥 열렸다. 쏟아지는 불빛을 거느린 거무스름한 그림자가 뚜벅뚜벅 걸어 나오더니 찰싹 뺨을 부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거푸 울리는 소리에 사위는 고요해졌다.
“그래, 우리 엄니 당골네다. 그리서 우리 엄니가 당신 집에 해코지 한 거 있드나? 당신도 하루 세끼 먹고, 우리도 하루 세끼 먹고 사는데, 우리가 당신네 집구석 곳간을 털었드냐, 집구석 몽당 빗자루 하나를 헛으로 썼드냐? 니가 뭔데 우리 엄니를 깜보고 지랄이냐? 너그 놈의 집안 선영 앞에 앉아 빌어주는 정도 모르고 씨불거리는 혓바닥 갖고 자식 키운다고, 그리서 느그 새끼는 아부지 있는 자식이라 그렇게 막되게 키웠더냐?”
우렁우렁 치받는 말을 내뱉는 큰아들 기수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이빨을 찌그럭거렸다.
다된 저녁에 밥술이나 뜨려던 이웃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수군거리는 사이, 얼이 빠져 있던 동철네가 절로 분이 나는지 뭐라고 뭐라고 욕지거리에 고함을 쳐대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큰방의 문이 열렸다. 저녁도 먹지 않은 채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아 윗목의 벽을 쏘아보고 있던 소희가 멀뚱히 밖을 내다보았다. 아무 말이 없다. 다만 바라다볼 뿐 이렇다 저렇다 내색이 없다. 어두운 방에 마루의 불빛이 밀려들어 먼 산 바라보듯 앉아 있는 그네를 훤히 비추어 주었지만, 표정 없이 앉아 있는 그네의 모습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오싹하게 끼쳐오는 서늘함에 엉거주춤 걸어 나가던 동철네에게
“내동아짐, 신경을 좀 쓰셔야 할 겝니다. 물 위에서 도둑귀신을 만나 귀한 목숨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지만, 잔잔하던 물이 바람을 만나 집을 나가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안에서 냉기가 돌면 온기를 찾아 볕드는 마당으로 나서기도 하는 것마냥 싸리문 열고 꽃 찾아 나서는 바깥이 있을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싸리울을 나서는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어둠을 몰아넣은 소희의 방에서 겁에 질려 멀어져갔다. 요란스럽게 짖어대던 동네 개들의 소리도 지는 땅거미 속으로 잦아들어가고 있었다.
“긴길사 돈닷돈 긴기리사 돈닷돈” 입장단으로 질굿을 지켜왔던 필봉 사람들이 만든 판 가운데에서 춤추는 저 여인은 오늘 빛깔이 고와 한 무더기 꽃 속의 나비가 되어 날고 있다. 꾀꼬리빛 저고리에 앵두빛 붉은 치마를 입고서 춤을 춘다. 치배들의 바깥쪽에서 양반나리와 나란히 흥을 돋우며 뱅글거리다가 창부(倡夫)들과 대포수, 조리중 사이에 끼어 은근슬쩍 판 안으로 들어오더니 이제는 아예 판을 주무르며 춤을 춘다. 한쪽 팔을 접었다 펼치고 한쪽 팔은 둥글게 위로 말아 올렸다 구부려 내리며 나비춤을 춘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들은 고깔 위에 두고서 앵두빛 치맛자락 살짝 들추어 꽃잎처럼 스친다. 꾀꼬리빛 노랗게 우러나는 속엣치마를 부풀리며 꽃을 피운다. 장삼에 송낙을 쓰고 바랑을 멘 조리중의 맨드름한 웃음에 콧방귀를 날린다. 여기저기 참견을 하며 대장노릇을 하는 대포수의 춤사위를 곁눈질 해가며 춤을 추는 여인에게서 희수는 풍물의 오간을 본다. 오방의 소용돌이를 온 몸으로 견뎌낸 끝에 비로소 일어나는 빛깔 오간, 그것은 정제된 균형이고 치열한 조화다. 채상모를 돌려가며 물빛 원을 그리고 애기단풍잎 하나 떨어진 자리에 동그랗게 이는 파문을 그려내는 소고잽이들의 몸짓과 ‘덩 기덩 기덩 따 쿵’ 깨금 뛰어 뱅그르 돌고 깨금 뛰어 뱅그르르 돌며 판을 감싸는 장구잽이들의 몸짓에 두둥실 실리는 넋꽃인지도 모른다.
“호호” 평음을 받아 “허허” 쳐올리는 치배들의 소리를 “허허”, “호호” 이마저도 엇갈리게 하여 웃음을 자아내는 꽃과 나비 그리고 사람들, 잡색이 만들어가는 물결은 어느새 태극을 이룬다. 상쇠를 따르는 쇠잽이들과 징잽이들의 뒤를 따라 너울춤을 추는 그들은 장구와 북, 소고잽이들의 둥글게 퍼지는 소리와는 반대로 돈다. 먼 곳에서 흘러온 물들이 강에서 만나 한 곳에서 굽이친다. 중삼채 가락을 서서히 조여 겐지갱 가락과 휘몰이 가락으로 몰아가는 상쇠의 신명(神明)을 울리는 소리가 짝드름굿 싸잽이로 모아진다. 필봉 마을 사람들을 휘몰아가는 가락은 강물을 세차게 몰아 방울 모양의 진(陣)을 쌓게 한다. 높고 험준한 산을 깎아 만든 귀틀집에서 하루치의 꿈을 구워내던 사람들이다. 농사지을 땅마저도 변변치 않아 걸궁굿을 치던 사람들, 숯을 구워 내다팔며 낮은 담장 꿈을 넘보지 못하던 사람들의 마을에서 울려 퍼졌을 당산굿이나 철륭굿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어우러짐을 그만하게 지켜주려는 천지신명의 울림 굿이 쌍방진보다 큰 삼방진으로 이루어지는 모양새다. 두레두레 모여앉아 성명자를 주고받으며 텁텁한 막걸리 한 잔을 돌리던 인연으로 서로를 조밀하게 알아보게 되는 것이 희수에게도 끈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대문 사진은 임실필봉농악대(필봉문화촌)의 판굿 장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