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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정 Dec 28. 2022

1화. 무수한 발자국 소리

제2부. 떠나가는 배 꿈꾸는 다락

  이상한 일이다. 어둠이 내려와 온 세상을 짙게 누르는 밤, 어디선가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미 삼경이 지나 세상은 고요한 어둠 속에 잠들어 있다. 집안을 밝히고 있던 불빛도 모두 꺼지고, 소희의 방에도 정적이 내려앉는 시각인데, 어쩐지 깊은 잠에 들지 못하는 그네의 귀에 자꾸만 숨죽여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꿈일까? 분명 아직 잠에 들지 못한 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느라 이불 홑청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귀에 설게 들려오는데, 알 수 없는 일이다. 동짓달 그믐이 가까운 때이다. 

  밤은 길다. 잘못 들은 게지,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잠에 들어보려 돌아눕는다. 무서운 생각이 인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몸에 경련이 일며 차가운 땀이 등줄기에서 솟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이불귀를 부여잡은 손에 힘이 주어진다. 가까스로 이불을 머리끝까지 잡아당긴다. 차가운 경련이 정수리를 타고 내린다. 서리가 하얗게 덮인 이른 아침 방문을 열었을 때 훅 끼쳐오는 차가운 바람 같은 기운이 열여덟 어린 청상의 이불속으로 파고든다. 후두두 떨리는 손끝으로 베개를 잡아당긴다. 돌아누운 쪽의 귀가 베개에 깊숙이 들어간다. 귓바퀴가 지나치게 바싹 닿은 것일까? 이이 ~ 잉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가느다랗던 소리가 빨라지며 점점 크게 울려온다. 눈물이 솟는다. 찔끔거리며 올라오는 눈물이 뜨겁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후우, 거칠게 숨을 쉬며 이불자락을 홱 걷어 젖힌다. 그리고는 일어나 앉는다. 멀리서 컹컹 짖어대던 개들의 소리가 멎으며 세상은 다시 고요 속으로 빠져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네의 손이 허리춤으로 다가간다. 아무도 없는, 홀로 앉은 방 안에서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 귀를 끄른다. 손끝이 더듬거린다. 묵직한 것이 손에 잡힌다. 손에 잡힌 그것을 밖으로 꺼낸다. 위안이 된다. 두려움이 사라지며 가슴이 빠르게 진정이 된다. 그믐이 가까운 밤, 오른손에 잡힌 장도가 왼손에서 뽑아진다. 날카로운 칼끝이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어둠에 익숙해진 그네의 눈이 가늘고 뾰족한 칼의 끝을 노려본다. ‘나를 지키라’ 명을 내린다. 장도를 손에 부여잡은 채 자리에 눕는다. 어깨까지 이불을 덮고는 눈을 감는다. 

  옆으로 누운 몸이 새우처럼 굽었다. 머리털 한 오라기도 삐져나오지 않도록 참빗으로 말끔하게 빗어 땋아 묶은 머리채가 부스스해졌다. 어디선가 조금씩 다가오는 수런거리는 소리에 얼마나 뒤척거렸던가. 뒷방에서 자고 있는 교전비 서운이를 깨워볼까도 생각했지만 그것은 안 될 일이라 생각했다. 이른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주인을 대신하여 마음을 졸이며 온갖 허드렛일을 다하는 어린 몸뚱이를 부르다니,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염치없는 일이다. 참으로 긴 밤, 아침은 어찌 이리 더디 오는지. 친정에서 어머니와 아버지 그늘 아래 살 때에는 넉넉하게 길었던 밤, 오순도순 정겹던 밤, 화로에서 익어가던 따스한 밤들이 오늘에 이르러 이토록 구렁이 칭칭 감은 음습하게 질긴 밤일 줄은 정녕코 생각지 못했었더라. 누운 자리를 돌아서 다시 누워보아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귀 밑으로 흘러서 베개를 적시고 코허리를 타고 넘어 흐르는 눈물이 베개를 적시는 밤, 눈이 부어오르는지 퉁퉁한 것이 끈끈해지고, 코는 찍찍하던 것이 꽉 막혀 숨조차 쉬기 어려워졌다. 그러다 저러다 어느 틈에 잠이 들었던가. 부스스 삐져나온 머리카락들이 저희들끼리 말라붙어 꼬들꼬들해져 있었다. 


  “누구냐?”

  검은 그림자들이 놀라 순간적으로 멈칫한다.

  “웬 놈들이냐?”

  노기 띤 음성으로 호령을 하건만 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검은 그림자들이 달려든다. 

  손에 들린 이불이 포획의 그물처럼 펼쳐지는 순간 소희는 필사적으로 몸을 뒤로 밀친다. 병풍이 ‘펑’ 소리를 낸다. 

  “서두르시오.”

  마루에 있던 검은 그림자가 재빠르게 사방을 훑으며 급박하게 말한다.

  둔중한 소리가 소요를 일으키는 사이 소희가 장도를 뽑아든다.

  짧은 순간 쇳소리가 번뜩인다. 어두운 방 안에 칼날이 쏟아내는 분노의 인(燐)이 번개처럼 스친다. 

  “이놈들, 네놈들이 누구관대 이리 무엄하게 구느냐?”

  “어서 서두르라니까.”

  작은 그림자가 이빨을 사리문 소리로 뇌까린다. 

  “이놈들, 한 발자국만 다가서 보거라. 이 칼이 용서치 않으리라. 이 한 몸 죽어도 아까울 것 없는 구차한 목숨이니라.”

  소희의 떨리는 목소리가 방 안을 울린다. 

  “사주단자만 받았지, 손 한번 잡아본 적 없고, 말 한 번 제대로 섞어보지 않았느니라. 내 오늘 이 일을 당하여 손끝 하나라도 더럽힌다면 천추의 한이 될 것이니, 살아 있은들 무엇하겠느냐? 내 차라리 깨끗하게 죽으리라.”

  검은 그림자들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선다. 작은 그림자가 고개를 밖으로 돌리며 나가라고 신호를 한다. 

  “도둑이야! 도둑이야!”

  외치는 소리가 밤의 허공을 뚫는다. 

  투두둑 후드득 이리저리 뛰는 발자국 소리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가는데, 사방에 불이 켜지고, 노복들이 달려온다. 밖을 향해 나가던 작은 그림자가 뒤를 살짝 돌아본다. 장도 끝을 가슴에 겨누고 있던 소희를 짧게 돌아보고는 황급히 밖을 향해 달아난다. 훌쩍 담장을 뛰어넘는 그림자가 사라지고, 별당의 마당은 노복들의 손에 들린 횃불로 대낮처럼 밝아져 있다. 

  “……쯧쯧, ……무고한 게냐?”

  묻는 시어머니 최 씨 부인의 얼굴빛이 시리게 푸르다. 사방을 순식간에 둘러보며 상황을 짐작해가는 부인의 눈빛에 경멸의 빛이 떠오른다. 아들을 잃은 어미의 입 언저리가 오종종하다. 부끄러움이 온몸을 바짝 타들어가게 조여 온다. 눈을 들지 못한 채 바닥만을 응시하고 있는 소희의 어깨가 세우고 앉은 다리에 기댄다. 고개가 금방이라도 땅에 닿을 듯 수그려진다. 수치스러움을 아는 눈물이 북받쳐 오르는 것을 누른다. 명치끝에 힘을 주고 입술을 꽉 물고는 누른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은장도를 응시하던 최 씨 부인은 장도를 수습하여 소희 앞에 밀어 놓는다. 그리고는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더니 쉬라는 말을 남기고 부스스 일어나 안채 쪽으로 걸어간다. 중문 앞에 앙상하게 서 있는 백일홍 나무 아래 한동안 말없이 서 있더니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안채로 들어간다. 

  시어머니가 일어서 나가는 동안에도 꼼짝 않고 앉아 있는 소희 곁으로 다가온 서운이가 은장도를 경대 서랍에 쑤셔 넣는다. 그리고는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아씨마님, 이리 좀 누우시요.”

  이불을 매만져 펴놓고는 소희에게 좀 누우라 권한다.

  “네가 깨어 있었더냐?”

  “잠결에 돌아눕다가 얼핏 아씨마님의 다급한 소리를 들은 듯해서 깼구만요.”

  “그랬구나. 너를 부를 수 없었구나. 하루 종일 종종거리고 뛰어다니느라 고달픈 너의 숨소리를 매일 밤 들으면서…… 때때로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돌아눕는 너의 기척을 들으면서 데려오지 말걸 무단 시리 데려와서는…… 하는 생각들을 했었더니라.”

  “아니구만요. 그래도 제가 아씨마님 곁에 있음서 아씨마님을 지켜드릴 수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고 다행이다 싶구만요.”

  “그래. 고맙구나. 친정에 있을 때는 너의 재잘대는 소리가 꽃무릇 붉게 피어나는 자리에 내려앉아 땅을 후비는 참새떼의 소리 같고, 무씨라도 뿌려 놓으면 어찌 알고 우르르 몰려와 하루 내내 땅을 후벼 파 구멍을 내던 새떼들의 분주한 방아질 같던 너의 방정이, 이제는 묵직하게 철이 들었구나. ……손톱 밑이 까칫거리는 것이 아프구나.”

  “아씨마님…….”

  고개를 수그리며 눈물을 찍어내는 서운이의 모양이 동터오는 새벽녘에 서럽게 젖는다. 


  망설임의 손끝이 머뭇거린다. 정신을 수습해야 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범연한 낯빛으로 걸어가야 한다. 큰방으로 들어가 아침 문안을 사뢰어야 한다. 간밤의 불미스러웠던 일을 침묵으로써 아뢰고, 한껏 고개를 숙이어 걱정을 끼친 데 대하여 그 무엇으로도 말할 수 없는 심정을 사뢰어야 한다. 눈물을 보여서도 안 되고, 몸가짐에 한 치의 흔들림도 보여서는 안 된다. 내쉬는 숨소리마저도 죄스러운 까닭에 눌러야 한다. 소금물에 메주를 띄우고 물 위로 떠오르지 않도록 대나무 살을 장독의 전두리 아래로 끼워 두는 것처럼 지긋하게 눌러야 한다. 붉은 고추 서너 개가 숯 덩어리 사이에서 동동거리며 떠다니는 것을 눈에 담지 않는 적막한 숨소리, 숙성의 숨을 내쉬어야 하는 것이다. 혼례를 보름도 채 남겨두지 않은 여인의 몸으로 천만 뜻밖에도 신랑의 신위(神位)를 받든 몸이 되었으니, 그 죄를 어찌 다 씻을 수 있단 말인가. 살아 숨 쉬는 것이 죄일 수밖에 없는 나날이다. 

  이미 날은 밝았다. 간밤의 혼란이 무덤덤할 수 없는 바깥의 공기가 여과 없이 들려온다. 주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노복들의 움직임이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럽지만, 살얼음 밑에서 쿨렁이며 흐르는 물을 보는 사람의 술렁이는 기운을 잠재우는 것까지는 안 되는 것이다. 소희의 가슴은 우둔거리고 어깨는 결려온다. 아찔한 숨소리가 터지려는 것을 애써 눌러 참는다. 

  앉은걸음으로 경대를 잡아 끌어온다. 손에서 자꾸 밀려나가는 것을 힘을 주어 잡아끈다. 붉은 주칠을 먹은 경대가 화사하다. 두 개의 판을 하나로 이은 뚜껑의 가운데는 두 마리의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편 채로 붙박여 있다. 양 끝은 백동이 꽃으로 피어 앉아 있다. 앞뒤 네 곳의 귀퉁이를 백동이 야무지게 감싸고 있어 두 마리의 나비는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붙박인 나비가 날개를 접으면 천판의 안쪽에 달린 거울이 세워진다. 비스듬히 세워진 거울에 비친 소희의 낯빛은 창백하다. 산머루빛 눈동자는 밤사이 움푹 들어가 발갛게 물들어 있고, 수심이 가득한 얼굴에는 살아 있는 사람의 기운이 없어 보인다. 무엇에 부딪쳤을까. 박쥐 문양의 코끝에 걸린 둥근 고리가 달랑거린다. 

  소희의 손이 여닫이문을 연다. 위 칸의 서랍 손잡이를 당긴다. 턱, 무엇인가 걸리며 삐그덕거린다. 까만 빛이 두 개로 나누어진 곳에는 빗살 촘촘한 참빗과 반달 모양을 한 얼레빗이 놓여 있을 것이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가르마를 반듯하게 가를 빗치개가 지난밤 뽑아 놓은 백동 비녀와 함께 놓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녀를 가로질러 꽂아두는 곳에는 매화잠과 원앙잠이 기다랗게 꽂혀 있을 것이다. 무엇에 가로막혔을까. 그 아래 칸에는 갖가지 향기를 품은 화장용 그릇들이 들어차 있을 것이다. 오일장, 칠일장을 돌 듯 때를 어기지 않고 찾아드는 방물장수 초란이나 물목 좋기로 소문난 등짐장수들로부터 하나씩 둘씩 사 모은 어머니 전주 이 씨의 소소한 즐거움이 깃든 것들이다. 화사하게 들뜬 날들 그 웃음소리들은 이미 빛을 잃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푸르고 싱싱한 물 돋는 여인의 향취를 담은 모양으로 들앉아 있을 것이다.

  굴참나무나 너도밤나무를 태워 만든 숯을 가루로 빻아 기름에 갠 미묵(眉墨)은 반달처럼 진하고 둥근 눈썹을 만들어주고, 초승달처럼 새침하게 가는 눈썹도 만들어 줄 것이다. 둥글고 갸름한 얼굴 속에서 동그랗게 빛나는 산머루빛 눈동자의 웃음을 넘치지 않게 담아내줄 것이다. 그리고 붉은팥과 유록빛 녹두를 빻아 가루로 낸 것을 고운 채에 걸러 만든 비누, 조두(澡豆)는 여자로 태어나는 소희의 살결을 말갛게 씻어내줄 것이다. 매달 초여드레쯤이면 살이 올라 통통해지다가 보름쯤이면 빈틈을 찾아볼 수 없이 꽉 차오른 둥근달이 스무날쯤이면 조금씩 살을 발라내어 그믐쯤에 닿으면 모두 게워내는 것처럼 몸 안에 가득 차오른 정령의 기운을 붉은 피로 쏟아내느라 눈 밑이 가뭇가뭇해지고, 칙칙해진 살결을 다시 보송보송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소희의 주칠(朱漆) 먹은 백동 장식의 경대 두 번째 서랍에는 미안수(美顔水)를 담은 그릇도 놓여 있을 것이다. 단지에 달걀 세 개를 넣고 달걀의 표면이 잠기도록 술을 부어 한지로 밀봉해 발효시켜 만든 것이라고 초란이는 말했었다. 서운이가 놋대야에 담아 온 미지근한 물로 정성껏 씻은 낯이어도 민틋하게 솟은 광대뼈와 콧잔등 사이에서 서로 밀고 당기는 살결에 톡톡 스며들어 이슬 머금은 풀잎처럼 싱그러운 향이 일게 해 줄 것이다. 노른자를 덜어내고 난 후에도 어미닭의 모성(母性)이 껍데기 안쪽에 남아 걸쭉하게 괴어 있는 것을 긁어내어 농축시킨 것이라 했다. 지난날 오라빗댁들과 둘러앉아 향을 맡아보고 발라보며 까르르 웃기도 했던 일들이 생생하게 돋아오도록 들앉아 있을 것이다.

  쌀이나 보리 같은 곡식들을 빻아 채에 걸러 만든 백분에 백합의 수술가루를 섞어 만든 색분이며, 홍화 꽃잎을 말려서 태웠다가 물에 재워 베수건으로 짠 후 즙을 걸러내 굳힌 연지가 들앉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가로막고 있는 것일까. 턱, 턱, 거리는 것에 서랍이 걸려 나오지 않는다. 알 수 없는, 낯선, 그 무엇에 두려움이 인다. 소희는 손가락을 서랍에 넣는다. 그리고는 한쪽 끝이 위로 쳐들려 가로막고 있는 것을 끄집어낸다.        

 

  ‘아,……네가 어찌 이곳에…….’


*대문사진출처: Daum 이미지(Daum cafe: 어머니의 담배-청상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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