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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해원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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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7. 2024

14화. 순령수 창부를 추포하라

제3부. 기다리는 여심, 환생

  “순령수~~”

  “예히~~~”

  “포수 불러……”

  “다시, 다시……다시. 집사가 말이여어, 순령수우~ 하고 소리를 내지를 때는 말이여, 밑바닥에서 끌어올리는 것 맹키로 히야혀. 그렇게 바람 빠지는 풍선맹이로 허믄 못써. 술려엉~수우~ 허면서 위로 솟구치게 히야혀. 그리야 따르는 군중(軍衆)들이 대답을 힘차게 헐꺼 아니여? 자아, 다시 한 번, 끌어올리서이, 시이작.”

  “술러엉수우우~~”

  흰 바지에 두루마기를 걸쳐 입은 집사(執事)가 소리를 내지른다. 있는 힘을 다 쏟느라 이마에서 내려오는 관자놀이쯤에 푸르게 돋은 핏줄이 파르르 떤다. 그런데도 먹물 잔뜩 묻히고 섬마을로 돌아온 병식이는 나오다마는 소리로 술렁수(순령수)를 외친다. 터져 나오는 앞소리보다 뒤따르는 소리가 자꾸만 아래로 내려가다 보니, 자연 둘러선 군중(軍衆)들의 답하는 소리도 낮아지다가 옆으로 퍼지는 소리가 되고 만다. 중간에 끼어들어 지르는 소리 하나하나에 방법을 가르쳐가는 상쇠영감의 희어빠진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며 푸석거린다. 그런데도 영감의 몸 어느 구석에 몰려 있던 소리일까. 우렁차게 하늘로 치솟는 소리가 군중을 압도한다. 

  “술렁수우~~” 

  “포수 불러 총성 1포 발사하라.”

  “예히~.”

  “빵!”

  영기에 붙잡혀 있는 창부를 위협하고 있던 포수가 일어나 총을 공중 위로 들어 올리며 소리를 낸다. 모루구름(소나기구름‘적란운’의 윗부분에 나타나는 모루 또는 나팔꽃 모양의 구름)이 공중으로 퍼진다. 

  “술렁수우~” 

  상쇠영감의 쿨렁이는 소리가 병식이의 여린 소리를 감싸고 퍼진다.

  “징수 불러 징 삼마치 하라.”

  “예히~”

  “술렁수우~”

  “예히~”

  “고수동……”

  군중들이 술렁거린다. 

  “징을 쳐야지이.”

  여기저기서 땅을 보며 웃는 소리가 징을 쳐야 한다는 말들에 섞여 마당으로 퍼진다. 

  “어이, 징을 쳐얄 거 아녀어.”

  무안함을 느낀 병식이의 얼굴이 붉어진다. 

  “술러엉수우~~ 쟁수 불러 쟁 삼마치 하라.”

  “예히~~.”

  징이 울린다. 지축을 울리며 듣는 사람의 심장을 울리는 징의 울음이 소개나루 마당을 지나 소금꽃 하얗게 피어나는 바닷가 들판으로 퍼진다. 

  “술렁수우~~”

  “예히~~”

  “고수동 불러 오마치 하고 일시 행군하라.”


  북이 울린다. 온 힘을 다해 치는 북의 소리가 소포만 자락에 다닥다닥 붙어사는 마을을 휘감으며 퍼져나간다. 정월이라 대보름을 기다리며 징징거리던 염전막 걸군농악패의 사물이 이제야 때를 만난 듯 활개를 치며 너울너울 퍼져나간다. 

  마당 넓게 퍼지는 햇살 아래 정월대보름 아침 바람이 만만찮게 불어온다. 드넓은 바다를 끌어안고 솟아오른 산들이 야트막한 능선을 이루고 서로를 쓰다듬으며 큰 망뫼산 되고 작은 망뫼산 되어 사람들을 굽어본다. 어느 하루라도 그침이 있었던가. 지력산 남동쪽에서 흘러온 물을 삼당리 관마리 골짜기로 끌어오고 석교천에서 기다리던 물들과 함께 결을 이루어 소포만으로 흘러가게 한다. 그 물이 다시 크게 퍼져 포구를 이루는 협곡에서 화물돛단배가 지력산에서 베어낸 화목이나 인근에서 일궈낸 곡물을 싣는 것을 본다. 협곡 위에서 줄에 매달려 내려오는 짐들이 기우뚱거리는 광경에 가슴을 조이며 바라보던 순간들도 사리 때가 되면 썰물에 실려 소포만으로 들어섰다가 다시 밀물을 타고 목포로 향하던 시간들을 헤아려본다. 손가락을 톺아가며 헤아리던 순간들도 차곡차곡 쌓여 태산을 이루겠지만 오늘도 망뫼산은 징징거리던 사물을 두드리며 두둥실 솟아오를 보름달 기다리는 사람들의 소망을 바라보며 서 있다. 

  시치미를 떼며 들어오는 사람들의 눈이 아직은 순하다. 상쇠영감의 지휘를 받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모양으로 들어온다. 하얀 두루마기를 차려입은 박명관이의 태평소 날라리 소리가 가늘고 길게 이어지며 간드러지는 소리로 둥근 원을 만든다. 발목 시리게 푸른 보리밭에 들어가 무심코 쑥 뽑아낸 보리의 밑줄기를 동강 잘라내어 살짝살짝 앗아가며 만든 피리가 내는 소리처럼 청명한 울림 속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오늘은 정말로 아무 일도 없는 것이다. 키가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진 오대성이가 들고 오는 하얀 바탕의 천에 까만 글씨로 또박또박 새겨진 진도소포걸군농악의 깃발이 지네 발톱의 옹위를 받으며 우뚝 솟아 들어오고, 그 뒤를 작달막한 키의 여인네들이 따라 들어온다. 흰 저고리와 바지에 까만 조끼를 입고 빨갛고 파란 띠를 가세침복으로 둘러 노란 띠로 허리춤에 돌려 묶고는 고깔을 쓰고 들어온다. 삼지창 모가지 끝에 영(令)이라 새겨진 붉은 기를 매달고 들어온다. 선선하게 웃는 얼굴이다. 수백 송이 담배꽃이 수국수국 피어 수탉의 벼슬처럼 도도록하게 솟아오른 절정을 붉은 장미가 함박 웃으며 눌러 잡았다. 고깔은 남자와 여자가 되어 벙거지 위에 부들상모 매달고 들어오는 쇠잽이를 따라 징과 장구, 버꾸와 소고재비의 머리 위에서 굼실굼실 춤을 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꽉 찬 달의 날, 사람들은 땅 따당 땅 따당 땅 따당 땅땅~~ 따당 당 따당 따당 당 따당 따당 당따당 땅땅~~ 굿을 치며 빙 둘러 선다. 모두가 일가붙이들, 서로 다른 성씨들이 만나 살을 나누고 피를 나누어 성이 되고 아우가 된 사람들~~ 다른 동네 사람들이 아니어도 저희들끼리 이불 한 채 만들어서 서방이 되고 각시가 되었다. 어디서 들어온 성씨들이건 입도조가 누구든 설 씨가 차 씨를 만나서 식구가 되고, 김 씨가 이 씨를 만나서 싸리 울타리 만들어 호박넝쿨 푸지게 늘어뜨리고, 박 씨가 장 씨를 만나 크게 웃으며 니 것 내 것 따지지 않고 내어주던 날들, 이들은 언제나 같은 소쿠리 안에 옴팍하게 들어앉아 살아가는 한 핏줄 한 형제 같은 이웃이 되었다. 경계할 것이라고는 그 무엇도 없는 구순한 사람들, 그들이 한 데 모여 굿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별 일이다. 아까부터 사람들 들어서는 마당 가운데에서 한삼자락을 휘날리며 어정거리는 사람이 있다. 흰 바지 무릎까지 내려오는 흰색 장삼을 입고 머리에는 짚으로 엮은 모자를 쓰고서 뾰족하게 솟아오른 모자 끝에는 흰 끈과 노랑 끈을 달아 늘어뜨렸다. 자그마한 체구에 연지 곤지를 찍고 알사탕만큼이나 둥근 두 눈에 동짓날 뚝 떼어 쌀가루에 굴려놓은 새알심 같은 코를 하고는 앵둣빛 입술인가, 하얀 이 두 개가 보인다. 얼핏 보면 금방이라도 또르르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고, 서글피 다시 돌아보면 순박하게 웃고 있는 얼굴… 하얀 가면의 여인은 조리 중이다. 

  먼 옛날 섬나라 왜구들이 무리 지어 명량 바다에 나타나 진을 치던 시절에는 적들의 동향을 세세히 알아내어 아군에게 신호를 보냈다는 여인, 그 여인의 허리 뒤춤에는 복조리 두 개가 등을 맞댄 채 걸려 있고, 붉은 옷을 입은 화약이 댕글댕글 걸려 있다. 파란 복주머니 옆으로는 단도가 걸려 있고, 배꼽 위 허리에는 노란 옷을 입은 화약통이 너설너설 묶여진 노란 끈 사이에 매달려 있다. 지지대를 감아 올라가며 피어나던 노란 꽃이 배배 말라비틀어져 늘어진 열매를 축 늘어뜨리며 살찌워가는 물외처럼, 참빗살나무 기둥 삼아 배배 틀고 오르며 호로롱 호로롱 방울꽃 피워내는 더덕순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무엇이 그리 다급하다고 한삼자락 휘날리며 마당을 서성대는가. 고깔을 쓴 사람들은 저마다 흥이 일어 궁둥이를 흔들고 붕어배래기 한껏 올리며 나비춤을 추는데, 수수한 얼굴에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고개를 틀어 허공을 바라보며 훠이훠이 한삼자락 새를 쫓는다. 

  등 굽은 노인 하나가 삐툴빼툴 덜렁덜렁 춤을 추며 아양을 떨고 재롱을 부리며 허리 아픈 시늉을 할 뿐인데, 젊은 각시가 탈속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속을 끓인다. 흰 바지에 도포를 입고 붉은 얼굴의 가면을 쓴 노인, 허리를 잡아가며 묶은 붉은 띠를 두 손에 나누어 잡고 춤을 춘다. 붉은 가면 위에 창부라는 검정색 글자를 새긴 모자를 쓴 노인, 그에게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일까? 노랗고 파란 띠를 쭉쭉 그어 묶은 것은 소포마을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는데, 저 젊은 각시탈은 어째서 저리 안절부절못하는 것일까? 세 발자국 뒤로 처지다가 한 발자국 다가가고 금방이라도 잡힐 듯한 거리에서 저 먼 곳 풍경처럼 덩실거리는 사람들, 고깔 쓴 사람들, 그들을 향해 한삼자락 날리는 젊은 각시의 외침… 순령수는 이 소리 듣는가? 애가 닳는다. 

  허리를 있는 대로 구부리고는 땅 속으로 처박힐 것처럼 몸을 낮춰 초랭이 방정 깨방정 오두방정으로 왜죽거리던 노인이 팔을 뒤로 빼는가 싶더니 허리를 쭈욱 펴고 선다. 그리고는 힘차게 걸어 마당 가운데를 활보한다. 위풍당당한 걸음, 아군의 동태를 파악하고는 적진으로 들어가 낱낱이 꼬아 바칠 것이다. 옛날에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난폭한 왜구들 창부의 말을 길잡이 삼아 숨죽여 들어와서는 왜장치며 난동을 부릴 것이다. 

  다행이다. 입을 꽉 다물고는 살짝 내리감은 눈에 서린 깊은 침묵이 이내 돌아서며 결심을 굳힌다. 농악대를 이끄는 최고의 어른 상쇠영감의 무뚝뚝한 걸음에 힘이 실린다. 꼭두서니빛 더그레의 목을 타고 가슴으로 내닫는 깃 태극의 파란 물결이 뚝심 있게 일어선다. 

  워어어이이~ 군중을 모으는 소리가 울리고 땅 땅 땅땅 따다당땅 땅땅 서로 인사를 시킨다. 마주 보는 얼굴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웃으며 숙이는 고개, 뒷짐을 진채 멀뚱히 서 있던 창부가 우두망찰하는 사이 짧게 끊어치는 소리가 서서히 조여 온다. 중쇠가 따르고 끝쇠가 따르는 마당에 짧은 뜀박질이 한 박으로 퍼지고 끝쇠의 암꽹과리 둥근 복판이 물결처럼 일렁인다. 어느 장인의 손끝에서 두들겨 맞으며 피어난 꽃잎의 함성인가. 방짜유기의 혼이 흔들리며 퍼진다. 대나무 뿌리 마디진 굴곡 끝자리에 박힌 둥근 나무심이 땅 땅 땅 땅 끊어치며 돌아가는 뒤를 따라 징소리가 퍼진다. 모든 소리들을 끌어안고 뱉어내며 다독이는 소리, 갯벌의 숨소리로 소포만의 경계를 넘어 지산포구 골골마다 닿으며 목포로 가고 해남으로 가고 제주로 간다. 도도록한 수탉의 벼슬 눌러 잡은 장미꽃 한 무더기 머리에 이고 뛰는 아짐, 부푼 가슴 위로 드러난 얼굴, 웃음은 사라지고 수심만 가득하다. 배 타고 나간 어느 날 수평선 끝까지 가보아도 찾을 수 없었던 지아비, 끝내 집 안으로 들이지 못하고 맥없는 날을 잡아 상을 차리는 인지리 아짐 처진 입술 뭉툭하게 솟은 콧등 처진 눈초리 옆으로 자글자글 몰려든 주름이 물처럼 흐른다. 징소리 우는 소리, 징소리 부르는 소리, 징소리 타오르는 소리……인지리 그 아짐 뜬 자리로 앵무리 양반 정갑수가 들어선다. 양반인지 상놈인지 알게 무언가. 그저 끝자리에 양반자를 붙여 앵무리 양반 앵무리 양반 하고 불러주니 양반으로 살아온 세월, 술을 말로 받아먹으며 절어온 인생……오늘따라 참말로 우습게도 생겼다. 동글동글 눌러앉은 코에는 숯검정을 묻히고 빛깔이 사라진 돔부콩빛 입술에는 지난여름 흐드러지게 피어났던 접시꽃 진분홍 립스틱을 발라놓았다. 젊은 날에는 여자께나 울렸었더라는 전설을 훈장처럼 달고 사는 늙은이 정갑수의 눈썹이 앞머리는 사라져 흔적뿐이고 꼬리만이 살짝 남아 옆으로 틀어 앉았다. 몇 가닥은 진한 것이 어린 손주 놈 짓궂은 장난이 크레용으로 그어대다 팽개쳐둔 모양으로 엉성하다. 설을 맞이한 지 보름이 다 되었으나 아직 녹지 않은 눈이 희끗희끗한 아침 언저리에 햇살 받은 정갑수의 꾀죄죄한 얼굴이 함빡 웃으며 징을 두들겨댄다. 품새로는 장정의 기운 아직 펄펄한 모양으로 창부를 잡기만 잡으면 어깨 위로 번쩍 들어 올려 빙글빙글 돌리다가 이놈을 저 바닷물 밀려드는 방파제에서 휘리릭 던져 물수제비 한 판 멋들어지게 뜨리라 결을 세우는 모양새다. 

  징소리가 요란하게 지나서 가고 막 부풀어 오른 풀빵마냥 오목조목 살이 오른 오대성이 마누라가 들어선다.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장구를 어깨에 메고는 푸지게 웃으며 들어온다. 날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 흘낏흘낏 쳐다보는 줄도 모르고 제 기분에 들떠 웃고 떠들고 재재거린다. 조신하게 굴라고 잔소리를 해대는 시어머니 소포댁의 지청구가 등짝을 한 대씩 갈겨도 그때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넉살 좋은 아낙 오대성이 마누라는 장구가 일품이다. 30년도 넘게 40년이 다 되도록 살아낸 오동나무를 깎아 만든 장구를 어깨에 둘러메고 궁채와 열채를 번갈아 두들기며 내는 소리에 육자배기 한 가락을 발라내면 소금 한 차대기를 십일시 장까지 이고 가서 목이 터져라 외쳐대며 팔아도, 지금 장까지 배 타고 나가 두 차대기 세 차대기 쌓아놓고 팔아도, 지질머리 나는 노동의 순간들을 다 잊을 수 있다. 장바닥에 나와 물건을 둘러보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흥정을 하고 바가지에 담으려는 짧은 순간, 뒤돌아서 어물쩡 가버리는 사람들의 뒷꽁무니를 멍하니 바라보려면 속이 뒤틀리고 쓰릴 때가 어디 한두 번이던가. 뜨겁게 달구어지는 두 볼의 열기가 가슴으로 쓸려 내려오면 그것은 다시 입 안에 고인 씁쓰름한 침에 섞여 위벽을 타고 장으로 내려가 쌓인다.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뜨거운 것이 가슴 한복판을 태우면 부채를 들고 착착 소리가 나게 흔들어보았자 손에 땀이나 솟고 팔목이나 시큰거리지 뾰족한 수 있을 리 만무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 틈에 끼어 태평소 날라리 소리에 징소리 따라 돌며 장구를 치다보면 어느새 가슴에 물이 든다. 손 담그고 찰랑이다보면 손끝에 묻어오는 차가운 기운, 뽀얀 속살 드러내지 않아도 가장 깊은 곳까지 적셔오는 서늘한 기운, 그 속에 발 담그고 뛰어놀던 가시내 적 푸른 충동, 그것이 물밀려 들어온다. 더엉 더엉 덩 딱 궁 따궁 궁 따 궁 따 궁~ ~ 봉숭아물 덜 들었다고 있는 대로 따다가 쿵쿵 찧어 싸매던 시절, 그때는 그 물이 얼마나 고통에 절은 물인지 몰랐다. 다만 첫눈이 올 때까지 간직하려던 첫사랑 꿈이었을 뿐, 그때 그 꿈 되살아오는 순간은 오동나무 탱탱하게 울리는 궁채와 열채의 소리 속에서 뛰는 순간일 뿐 이제 더는 없다. 오대성이 굵은 어깨가 지네 발톱의 옹위를 받으며 일어서는 농기를 들고 마당을 휘저어도 오동나무 파인 속을 덮어주며 매를 맞는 쇠가죽 판만큼 믿음직하지는 않다. 시어머니 소포댁 무심하게 닿는 등짝의 손매조차 막아주지 못하는 오대성이는 창부를 잡으러 가는 마당에 마누라를 놓아주어야 한다. 그대로, 놀던 대로, 맘껏 놀라고, 놓아주어야 한다. 

  벙거지를 쓰고 고깔을 쓴 사람들, 정월의 마당에서 흥에 겨워 뛰는 사람들, 고동치는 심장의 소리가 한 곳으로 모여든다. 궁 궁 궁~~ 덩 덩 덩~~ 징 징 징~~ 땅 땅 땅~~ 삐이이이~~ 삐이이이 삐이~~ 빠르게 몰아치는 사람들의 한 박이 영기 가세(가위) 잡은 사북의 자리에 주저앉은 창부를 가운데 두고 몰려들어온다. 겹겹으로 에워싸는 사람들 횃불의 함성으로 들어와 결박을 지운다. 저만치 물러앉아 능선을 이루는 산 그림자 그 넓은 나루터 마당에서 굼실거리는 주황의 담배꽃 수탉의 벼슬 닮은 형상으로 성곽을 이루고, 사람들 관자놀이께서 붉게 피어난 장미 척척 펴 바른 황토흙 사이 돌 되어 담장을 이룬다. 아우성이 물결을 이루는 정월 대보름의 아침 액을 막고 복을 부르는 벽사진경의 의식 속에서 조이다 풀고 다시 조였다 풀어주는 사람들, 염탐꾼 창부를 징치하는 춤을 춘다. 승리의 굿소리 소포만 염전 끝까지 퍼져 뱃사람들 길목까지 나아간다. 

  그러나 흥겨운 방심을 틈타 창부가 도망친다. 조리중이 알사탕 까만 눈을 굴리며 펄쩍펄쩍 뛴다. 상쇠영감의 팔을 붙잡고는 도망치는 창부를 가리키며 한삼자락을 흔들어댄다. 상쇠영감의 호령을 듣고 쇠잽이들이 뛰어나온다. 청년장수들의 심장에 불이 붙는다. 쟁 삼마치 하라는 호령소리에 징소리 울리던 징잽이들의 발걸음이 다급하다. 뒤를 따라붙는 장구잽이들의 떠덩거리는 소리가 물밀려 들어온다. 버꾸들의 힘찬 울림이 불타오르는 쇠잽이 심장 속으로 파고든다. 길 잃은 소고 할멈이 장구패 속에서 어정거리다가 버꾸패 속으로 들어간다. 엉거주춤 발걸음이 뒤엉키는 찰나 무언가 뒤를 잡아끈다. 겨우 몸을 세우고 돌아보니 앵두나무집 뚱뚱이다. 나이는 서너 살 어린것이 언니들보다 더 늙어 보인다고 퉁을 맞곤 하던 뚱뚱이가 간격을 벌리며 자리를 내어준다. 놀다 보면 다 그렇지 뭐, 별 일도 아닌디이, 시치미를 떼며 소고를 두드린다. 괜스레 창피스럽고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지만 표를 낼 수는 없다. 그냥저냥 섞여가는 것이다. 두식이 튼실한 놈이 벙거지 눌러쓰고 부포 내두르며 뒤따르지 않는가. 꺽다리 철식이도 부포 내두를라 청홍띠 쥐고 나비춤 출라 부산스럽지만, 그래도 총각들이 고개를 까닥거리며 발맞추어 춤추는 모양은 내 새끼 아니라도 듬직한 것이 옹골지잖여,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섞여 뛴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 창부를 추포하려 뛰어가는 사람들이 다시 영기 앞에 쭈그려 앉은 창부를 에워싸며 체포의 망을 펼친다. 물 셀 틈 없이 촘촘하게 조여 오는 사이 영기 끝 삼지창 날카로운 쇠뿌리에 검은 모자가 걸린다. 창부라고 쓰여진 글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잠시 멈추었던 태평소 날라리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악기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를 뿜어내느라 박명관이의 떡 버티고 선 몸이 움찔거린다.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 폐 속에 도사리고 앉은 바람을 있는 힘껏 밀어내는 통에 얼굴은 홍당무처럼 붉어지고 관자놀이에는 푸른 핏줄이 오동통하게 돋아온다. 포로의 귓전을 사정없이 긁어대는 소리가 비탈진 산등성이 아래로 다닥다닥 붙어사는 사람들의 삿갓지붕 구불거리는 고샅을 샅샅이 훑고 다닌다. 

  앵두나무집 뚱뚱이 앞에서 소고를 치는 할멈까지도 힘이 솟는 마당에 붙잡힌 장만상은 모든 것을 포기한 자의 표정으로 앉아 있다. 갓난아기 기저귀감 같은 천을 턱 밑에서 감아올려 정수리 꼭지에 질끈 동여맨 모양이 처량하게 우습다. 변소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 하나 꼬나물고는 푸우 연기를 날리는 사내놈 모양새로 앉아 있다. 가새질러 잡은 깃대를 콩콩 내리 찧으며 발끝을 통통 구르는 시늉의 영기수 창끝에서 창부의 빼앗긴 모자가 바람에 날린다. 동네 언덕배기를 뛰어다니며 연을 날리던 꼬마 놈들의 끊어진 연이 동구밖 늙은 팽나무에 걸려 시나브로 사그라져가는 모양으로 덜그럭거리며 힘을 잃어간다. 상쇠영감의 쇳소리가 새로운 가락을 타고 돌아든다. ‘땅도 땅도 내 땅이다 조선 땅도 내 땅이다~’ 언감생심 한조금의 흙이라도 내 나라 내 땅의 것인데 어찌 왜놈 따위가 넘볼 수 있더란 말이냐, 꿈도 꾸지 말라는 엄포를 놓는 가락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발을 구르며 땅을 다지던 노동의 주술처럼 태사혜 신은 발을 힘차게 구른다. 노략질을 해오려는 자들의 염탐꾼 창부를 징치(懲治)하는 소금꽃 하얗게 피어나는 마을 걸군농악대 사람들의 굿: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진다. 서산대사 진법군고의 맥(脈)을 이어받은 사람들, 모두가 순령수 되어 “유아군중에 불의봉격하야 상응상진이라가 포적참수위로 너희들도 제재 일엽이라가 순전고할 길로 분부청령하라”를 외치며 ‘순령수우~~’를 부르는 집사(執事) 병식이의 명을 받는다. 사람들의 얼굴에 피어나는 웃음이 흥의 물결을 타고 도도하게 흘러서 간다. 벽파진 파고들어 흘러간 물이 명량 앞바다 울둘목에 닿아 서로 뒤채며 어우러져 흘러서 간다.     


  소포나루 사람들 걸군농악 굿쟁이들이 풍물을 잡으며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루터 마당에서 한 판을 크게 놀던 사람들이 당산에 들어 제를 모시고는 경건한 표정으로 나루터 마당까지 오더니 이내 걸음을 옮겨 마을 사람들 붙어사는 고샅으로 들어선다. 집집마다 들어서 풍물을 치며 액을 쫓으려는 것이다. 상쇠영감을 두고 늘어선 쇠잽이들을 둥글게 싸안은 징잽이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는 가락으로 몰아댄다. 쇠의 높은 소리를 헝겊으로 둘러싼 채를 들어 치는 징잽이들이 감싸 안는다. 정갑수의 꾀죄죄한 얼굴은 잔뜩 긴장한 모양으로 굳어 있는데, 너부데데한 얼굴 길쭉하게 흘러내려 소를 닮은 덕춘이는 빙그레 웃으며 징을 친다. 저도 모르게 오르는 흥인가. 사자의 탈을 쓰고 어정거리는 놈처럼 두 발을 들었다 놨다 하며 흥을 퍼 올리는 사이사이로 무릎이 구불거린다. 그럴 때마다 무릎 관절이 툭툭 볼가지다 들어간다. 벌쭉벌쭉 덜렁거리며 춤을 춘다. 

  우중충하게 흐린 하늘에서 진눈깨비 같은 것이 날린다. 눈이랄 것도 없는 것이 먼지보다 차갑게 날리다 만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굿을 친다. 박명관이의 태평소 날라리 소리가 꽹과리 소리에 갇혀 들려오지 않는다. 두 갈래로 나뉜 길의 중간에 버티고 서서 불어대는 소리가 징소리에 묻힌다. 꽹과리와 징이 장구와 소고의 소리를 보듬어가며 어우러지게 하는 동안에도 어쩐지 태평소의 소리는 잦아들어간다. 그런 중에도 장만상이의 늙은 어머니는 너울너울 춤을 춘다. 훨훨 나는 갈매기 되는 춤을 춘다. 두 팔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며 지화자 좋은 춤을 춘다. 머리는 백발에 가까운 노인이 온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춤을 춘다. 대문 앞까지 나와서 자꾸만 처져 내려가는 허리를 되는대로 펴고서 춤을 춘다. 

  “아이, 만상아, 너는 어찌서 긍께 그 잘난 허우대로 맨날 창부만 허냐? 아이, 긍께 넘 허디끼 장구나 치고 징이나 치고 놀먼 넘 보기도 좋고 좀이나 좋냐? 아이 꽹과리는 냅두고라도 북도 있는디, 노상 쭈글치고 앉아 갖고는 똥싸는 놈맹이로 그라고 죽상을 씨고 그러냐아? 긍께 니가 장만상이지 장죽쌍이냐? 어허……. 아그 이놈아……이름이 아깝다아. 아까워. 돈을 얼매씩이나 퍼주고 지어준 이름인 줄도 모리고, 참말로 속 상헌다이.”

  장만상이 그 꾀죄죄한 모습을 볼 때마다 잔소리 타박이 늘어지던 노인이 이 아침에는 흥겨운 가락을 타고 춤을 춘다. 발을 들었다 놓으며 이렇게 돌고 저렇게 돌고 박수를 치며 놀아도 매 양 그 자리다. 구부러진 허리에 마디마디 쑤시지 않는 곳이 없다며 우는 소리 섞어 푸념을 늘어놓던 노인의 다리 사이가 둥글게 벌어진다. 젊다던 시절이 고작해야 몇 년 전일 텐데 마름모꼴로 벌어지는 다리는 관절염이 씨 뿌리지 않은 밭에 풀 돋아나듯이 번져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 좋기로는 이보다 더할 수 없다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장만상이네 대문 앞에 밀어닥친 굿패들이 위협을 한다. 땅 따당~ 땅 따당 땅 따당 땅땅~ 따다다 땅 따당 따다다 땅 따당~ 따다다 땅따당 땅땅~ 솔부엉이 같은 놈이 자꾸만 대문 안으로 들어서려는 동작을 한다. 벙거지 위에 꽂힌 부들상모가 끄덕끄덕 내젓는 고갯짓에 따라 너울거린다. 둥근 테 안경이 얼굴의 절반을 덮어 누가 보아도 부엉이 상호를 한 놈이 씨익 웃어가며 자꾸만 들어서려 한다. 장만상이 늙은 어머니 와우리댁이 환하게 웃는 낯으로 갈매기 춤을 추며 쫓는다. 아들놈 만상이랑 늘 붙어 다니는 놈이 씰룩씰룩 웃어가며 돌아서려다 다시 발을 크게 뻗어 밀고 들어오려는 자세를 취한다. 와우리댁이 온몸으로 막아선다. 문 바깥에 머물고 있는 좋지 않은 기운들은 사람들 치는 굿소리에 놀라 달아나고, 집 안에 머물고 있던 좋은 기운은 꽉 붙들어 새어 나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리고 올해의 큰 복은 정중하게 맞아들여 정갈한 곳에 모셔놓아야 하는 것이다 윗대 조상들이 해오던 습속을 그대로 이어받은 와우리댁의 춤이 한 치의 벗어남도 없는 자리에서 훠이 훠이 한 마리 높이 솟은 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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