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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해원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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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7. 2024

16화. 해탈의 마당에 생명의 씨앗을 심어라

제3부. 기다리는 여심, 환생

  “아가……아가, 눈을 좀 떠보아라. 으응?”

  며칠째 앓아누운 가희가 눈을 뜨지 않는다. 자그마한 몸은 자꾸 밑으로 까라지는 모양으로 처지고 열은 펄펄 끓어 온몸이 불덩이다. 수건을 적셔 이마에 올려놓고 몸을 감싸놓아도 수건은 금세 뜨뜻해진다. 마음이 타들어간다. 며칠째 밥술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딸아이 곁에 앉아 지켜보지만 마음만 밭을 뿐 이렇다 하게 할 수 있는 무엇이 없다. 답답하고 초조해질 뿐,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도 멈추어버린 것 같은 적막감만이 가슴의 벽을 타고 흐른다. 댕 째깍 댕 째깍 대앵 째깍 쪽마루 허름한 벽에 걸린 괘종시계는 잊지 않고 때맞추어 종을 울린다. 대앵~ 한 번씩 울 때마다 긴 여운 속에서 초침의 움직임과 동시에 째깍 째깍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백동빛 추를 유난히도 신기해하던 딸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동그란 추를 잡아보고 싶어 발돋움하며 재잘거리던 날들의 영상이 떠오른다. 제 아빠의 팔에 안기어 뚜껑을 열고 바쁘게 움직이는 추를 덥석 잡고는 깜짝 놀라 가슴에 안기던 날들의 웃음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온다. 깡통의 뚜껑을 열고 숟가락으로 건져 올린 황도의 덩어리처럼 미끈둥하게 빠져나가던 날들의 놀란 울음에 터지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봄날의 아지랑이 되어 들판 저 너머에서 아련하게 들려온다. 헛구역질처럼 슬픔이 밀려온다. 뱃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어린 생명이 움찔움찔 몸을 뒤튼다. 발길질을 한다. 불룩 솟았다 쭈르륵 미끄러지고 불룩 솟아오르는 곳에서 발뒤꿈치가 잡힌다.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이 인다. 생명이다. 눈앞에서 깨어날 줄 모르는 아이와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아이가 아버지 잃은 슬픈 계절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부지……아부지…….”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일까? 있는 힘껏 달려가면 금방 닿을 것 같다. 걸어서 가면 점점 더 멀어질 것 같다. 그곳에 아버지가 있다. 옷은 얼룩덜룩 흙이 묻어 있는 것처럼 지저분하고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있다. 부스스한 얼굴이 희미하게 알아보는가, 어린 가희를 향해 걸어오는 것 같다. 뒷걸음쳐 가는 것도 같다. 왜 아버지가 자꾸만 멀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

  먼 데 가서 굿을 하고 오다가도, 장에 가서 물건을 잔뜩 사가지고 오다가도 가희가 부르면 한달음에 달려오던 아버지다. 그런데 지금은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머리 위까지 끌어올려 빙글빙글 돌리며 크게 웃던 그 아버지가 아니다. 알 수가 없다. 이상하다. 무서워진다. 


   “아부지……아부지……이리로 와. 이리로 오라고…….”


  악을 악을 쓰는데도 아버지는 멍청하게 바라만 볼 뿐 대답이 없다. 그냥 모든 것이 희미할 뿐이다.

  “아부지, 장구 가지고 가. 응? 장구 가지고 가. 어매가 마당에다 버린당께. 얼른 와서 가지고 가.”

  주저앉는다. 퍼버리고 앉아서 자꾸만 멀어지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울어댄다. 목이 아프다. 목이 안에서 갈라지는 것 같으면서 따끔거린다. 캑캑 기침을 한다. 입 안의 끝이 마른다. 숨이 넘어갈 것처럼 기침을 한다. 눈물이 나온다. 눈물이 나오는데 목구멍이 쓰라린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이 그냥 어린아이의 느낌일 뿐 무어라 규정지어 말을 할 수가 없다. 배도 아픈 것 같고 가슴도 아픈 것 같은데 저쪽에서 어매가 부른다. 


   “아가……아가, 눈을 좀 떠보아라.”


  애가 타게 부르며 자꾸만 눈을 뜨라고 재촉을 한다. 어매는 참말로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분명히 눈을 뜨고 있는데 왜 자꾸만 눈을 뜨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아직도 밉다. 어매가 밉다. 무서워 죽겠는데 눈을 희뜩하게 뜨고서 악을 악을 쓰면서 방 안에 있는 그릇들을 마당으로 내던지는 어매가 무서워 죽겠는데……가기 싫다. 어매가 부르는 곳으로 가기가 싫다. 도리질을 한다. 눈을 질끈 감으며 도리질을 한다. 아부지한테 갈 거다. 어매가 마당에 내팽개친 장구를 들고 아부지한테 갈 거다. 그런데 왜 아부지는 멀리 가버리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가희가 일어선다. 검은 빛깔의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땀에 젖고 눈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린다. 어매가 바가지에 박박 문질러서 씻어놓은 미역가닥 같기도 하고 물에 씻어 불린 매생이 같기도 한 머리카락이 얼굴을 뒤덮으며 귀찮게 한다. 손으로 쓸어 올리며 앞을 본다. 금방 손이 닿을 것 같은 곳에 아부지가 서 있다. 아부지가 가희의 양팔을 잡는다. 가희의 눈을 들여다본다. 그리고는 뭐라고 말한다.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무슨 그런 얼굴이 있는가, 아무것도 없는 얼굴로 가희를 바라본다. 슬프다. 아버지가 웃지 않으니 슬프다.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어 들어 올리며 빙글빙글 돌리고 볼에다 뽀뽀도 하고 눈을 들여다보며 찡긋 웃어주기도 해야 하는데, 그리고는 아버지 굵은 팔뚝에 걸터앉아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데……아부지는 아무 것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나쁘다. 아부지가 나쁘다. 

  귀찮다. 어매가 자꾸 얼굴을 부빈다. 어매의 냄새가 퀴퀴하다. 어매한테서 쉰 냄새가 난다. 며칠 지난 밥에 콩깍지 빛깔의 꽃이 피고, 군데군데 강냉이 튀밥 색깔의 꽃이 피면 풍겨오는 냄새가 난다. 끈적끈적하다 어매의 눈물이 자꾸 이마에 떨어지고 코에도 떨어지고 입술에도 떨어진다. 짜증이 난다. 소리를 지르고 싶다. 

  아부지가 저고리 안쪽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낸다. 노란 손수건을 꺼낸다. 난초 꽃잎이 단정하게 피어 있는 노란 손수건을 펴더니 둘둘 만다. 그리고는 가희의 손목에 둘러 묶는다. 어매에게 주라고 말한다. 보랏빛 난초꽃이 얼굴을 드러낸다. 환하게 벙그러진다. 아부지의 손이 밀어낸다. 등을 톡톡 친다. 힘껏 밀어낸다. 

 ‘아악…….’

  아부지가 손을 흔든다. 가다가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고, 가다가 뒤돌아보면 손을 흔든다. 아부지의 손에는 손수건이 없다. 다만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 맹탕 같은 얼굴만 있을 뿐.   

   

    가자서라 가자서라 씻김정산 가자서라

    우두영산 자자서라 좌두영산 가자서라

    모씨가문 선영조상 모씨가문 선망조상

    삼오칠백 영가혼백 삼오오백 영가혼백

    천고학생 죽은신위 청춘남자 청춘여자

    영도정자 대도정자 목욕하고 극락가자

    누덕철망도 벗고 가세 금사망도 벗고 가세 

    부정도 벗고 가세 중복도 벗고 가고 개복토나 벗고 가세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아 나라가 편해야 신하가 편해

    웃대 선망조상부터 차례차례 제 차례로 손길 잡아 오시어서

    목욕하고 극락가자~

    사람이 생겨날 적 집자리에 탄생할 적

    목욕없이 클 수 있소

    정부부 정사랑 첫날밤 만날 적에

    목욕없이 만날소냐~

    소년이나 백발이나 황천길에 가실 적에

    목욕없이 어이 가리오
     쑥물로 목간하세 향물로 해갈하세 정화수로 벗고 가자

    오날 오신 양가조상 가련하구나 부모형제 일신

    처량하신 청춘망자~

    하늘 울어 천둥대신 땅이 울어 지둥대신

    하늘이 일러더냐 땅이 일러더냐 

    천지지신이 일러더냐 일월성신이 일러더냐

    소동파 죽어지니 적백놀음이 허사요 

    제갈공명 죽어지니 사통천문이 허사로다

    천리접종 송건이는 휘양남에 죽어있고

    남중일색 호충선이 대장성도 죽어있고

    황후불러 눈치하니 순임금도 죽어있네

    말 잘허는 소진장 열국제왕 다 달려도

    불쌍하신 모씨망자 염라대왕 못 달려서

    황천객이 되었구나~서럽고도 서러워라

    불쌍하신 모씨망자 한번 아차 죽어지니

    육지장포 일곱매듭 상하로 잘끈 묶어

    소방산 대뜰 위에 덩두렇게 올려매고

    북망산으로 향하리라~~ 북망산천 가고 보니 

    산토로 집을 삼고 송죽으로 울을 삼아

    두견새 벗이 되야 산은 첩첩 밤 깊은데

    홀로 외로이 누웠으니 서럽고도 서럽구나

    처량하신 넋이로세 불쌍하고 가련하신

    모씨망자 원당 풀고 한당 풀어 

    극락세계 가실 적에 육십갑자에 매였구나~     


  새벽안개 짙게 내려앉은 팔월의 마당으로 석구네가 쟁반을 들고 내려온다. 네모반듯한 스뎅 쟁반에 그릇 세 개가 놓여 있다. 쑥물이 담기고 향물이 담기고 정화수가 담겨 있는 그릇 옆으로는 액 그릇이 놓여 있다. 제 몸을 태워가며 어둠을 밝히는 초 하나가 꼿꼿하게 서서 정읍네소희를 바라본다. 

  원왕생 원왕생 나비몸 되고 새몸 되어 오만신선이 되어 가시면서 극락 가시라는, 원왕생 세왕 가시자는 축원가를 부를 소희가 맷방석에 앉는다. 치맛자락을 펼치며 앉은자리가 선득거린다. 팔월의 땡볕이 식은 자리에 안개가 내려앉으니 짚자리가 머금고 있던 물기가 속옷을 적신다. 축축한 기운이 살갗에 닿으며 끈적거린다. 꿉꿉하다.

  소희가 창호지를 펼친다. 양손으로 누벼가며 펼쳐놓는다. 하지만 둘둘 말린 창호지 끝이 살짝 들리며 말리려 한다. 그것을 다시 손으로 쓸어가며 네모반듯하게 펼쳐놓는다. 양가 선영조상들이 입고 갈 옷들을 하나씩 꺼낸다.

  하얀 속적삼에 개나리꽃빛 저고리가 덧입혀진다. 칡꽃 빛깔 바지가 반으로 접혀 저고리 섶 사이로 들어간다. 맑은 하늘빛 저고리에 비둘기빛 물먹은 바지가 놓이고, 앵두빛 붉은 저고리에 꾀꼬리빛 치마를 얹으니 양쪽으로 벌려놓은 소매가 살며시 접힌다. 주황빛 노을 물드는 저고리에 은가루 섭섭지 않게 뿌려놓은 옷이 소맷자락 모으고 그 사이로 하얀 버선이 놓여진다. 한 벌씩 몫몫으로 만들어진 옷들이 모두 포개어지자 소희가 창호지 하나를 펼쳐 덮는다. 마치 홑이불을 펼쳐 덮어주는 것처럼 정갈하게 덮는다. 연둣빛 고운 저고리에 진달래꽃빛 치마의 물빛이 창호지에 스며들어 돋아 오른다.

  “누구 옷이다냐아? 빛깔들이 걍 이삐네에.”

  누구의 덕담일까. 마당에 웃음소리가 차오른다. 

  “살았을 적에는 저런 옷 한 벌 제대로 못 입어본 것 같은디이……스읍 후우……아따, 오늘은 호강허네에.”

  꽁초만 남은 담배를 한 번 더 양껏 빨아재끼던 노인이 입 안 가득 물고 있던 연기를 파아 내뿜으며 말을 한다. 그리고는 다 닳아버린 꽁초를 땅바닥에 짓이기며 창호지에 덮인 옷가지 뭉치를 바라본다.

  “참말로. 살아서는 머했는가, 제대로 된 옷 한 벌 입어본 기억이 없는 것 같은디, 이미 죽어서 멋이 됐을랑가는 몰라도 후손들이 저라고 굿을 한 판 히준께 신수가 훤해지는구만.”

  “아따, 젠장맞을……뭣헌다고 담배는 그렇게 끄실러쌈성 옆이 사람 얼굴에다 대고 뿜었쌌능가아 모리겄네. 오소리 잡을랑 것도 아님성 오지게 피었쌌네에.”

  누렇게 뜬 얼굴 곳곳에 검버섯 핀 노인이 눈을 찡그리며 타박을 한다. 

  “이라고 저라고 궂은 말 헐 것 있당가. 걍 좋은 말들만 혀어. 매랍시 군소리 해싸믄 좋은 옷 입고도 마음 상헝께 좋은 말들만 혀어.” 

  “긍께이. 인자 가면 또 언지 올랑가 기약도 없는디, 넘 좋은 잔치에 재 뿌리지 말고 좋게 좋게 보내주세. 승룡이놈도 발이 잘 안 떨어지겄구만. 춘심이 그 사람이 얼굴 한 번 비처주면 불려온 보람이 더 클 것인디.” 

  입맛을 쩟쩟 다시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하늘을 본다. 윗도리 주머니에서 거북선담배가 끌려 나온다. 입이 쓴 지 가슴이 쓴 지 가래를 콰악 돋우어 올린다. 그러면서도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후우우 연기를 쏟아낸다. 한숨이 함께 뭉쳐 나오는 연기가 공중으로 퍼져나가며 바람에 흩어진다.  

  “그렁게 말여. 사램이 모진 것인가. 아니믄 딴 사정이 생긴 것인가아. 그렇구만.”

  튕겨 나오는 원망도 터져 나오려는 욕지거리도 못이긴 척 내려놓는다. 


  정읍네 소희는 혼백함(魂魄函)을 만든다. 각자의 몫으로 옷 한 벌씩을 받아 입고 떠날 선영조상들을 씻기기 위해 영대를 세운다. 맷방석 위에 가운데가 푹 파인 또아리를 놓고 놋그릇을 얹는다. 살았을 적의 그릇보다 두 배나 큼직한 그릇 안에 선영조상의 넋을 담는다. 천문이가 제 아버지 백수에게서 배운 대로 가위를 돌려가며 오려낸 넋의 형상을 그릇에 담고 며느리를 불러 목욕비를 놓게 하더니 뚜껑을 덮는다. 그 위에 또아리를 얹고 가마솥뚜껑을 얹는다. 사람의 형상으로 세워진 영대 앞에서 금빛 찬란하게 빛나는 신칼을 지전다발의 손잡이 구멍에 끼우고는 ‘가자서라 씻김정산으로 가자서라 우도영산 좌도영산으로 으으음~ 으으으음~ 가자서라’ 씻김 목욕을 청한다. 조상 전에 밝힌 촛불들이 한 치의 굽힘도 없이 꼿꼿이 타오르며 밝게 빛나는데, 굿잔치를 준비한 며느리의 부축을 받으며 씻굼 목욕의 장으로 나려 온다. 이미 신조상 구조상들이 둘러앉아 하나씩 운감하며 맛을 본 음식들은 접시접시마다에 놓여 있으나 어쩐지 가시는 길 출출할 때 드시자고 봉지 봉지 싸놓은 듯 몫몫으로 놓여진 듯 보이기도 한다. 

  정읍네 소희는 동서남북 방향을 잡고 중앙을 기준 삼아 솥뚜껑을 두드리며 육십갑자에 매인 영가들을 모두 불러 차례를 정한다. 모씨 가문 선영조상 모씨 가문 선망조상 삼오칠백 영가혼백 삼오오백 영가혼백 천고학생 죽은 신위 청춘남자 청춘여자 영도정자 대도정자 모두 나와 누덕철망 금사망 같은 더러운 것들 부정한 것들 모두 훌훌 벗어던지고 미련 없이 돌아서서 극락 가자고 청배한다.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는 영대를 두드리며 지전 다발로 씻어낸다. 금빛 찬란하게 빛나는 신칼의 단호한 의지를 착착착 소리 나게 세우며 순서를 정한다. 가난밖에 물려준 것이 없다고 스스로 자책하던 조상들이다. 빈손으로 찾아와서 차려놓은 음식들을 먹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라고 스스로 술비노래 부르고 방어소리 부르며 대냉기 해오던 어른들의 신령(神靈)됨으로 입춘노적을 붙여주며 경계 사이로도 덕담을 내리시던 조상들에게 차례차례 목욕을 하시자고 소리를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아 나라가 편해야 신하가 편해. 그러니 웃대 선망조상부터 차례차례 제 차례로 손길 잡아 오시어서 목욕하고 극락가자~’고 극진하게 소리말을 한다. ‘아아아아 아아아아 아아’ 천문이의 바라지 소리가 들려온다. ‘딱 따따따 딱 덩 딱 따따따따~따라라 딱 따~~’ 장구 소리가 들려온다. 낭창거리며 흐드러지던 장구소리는 이제 한풀 꺾인 소리로 낮게 들려온다. 얼굴빛도 지친 기색이 완연하다. 한참 신명이 오르던 순간들은 이제 떠나온 자리로 돌아가야 할 선영조상들 씻김의 자리에서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떠나온 자리로 되돌아갈 조상님네들을 배웅하려는 씻굼에 아쉬움이 갈마드는 심사를 도저히 고인(鼓人) 따위의 마음으로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어쩌면 조아림으로 조상님들의 심기를 살펴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지 시작의 줄기를 잡을 수조차 없이 웃대에서 아래로 아래로 받들어 내려온 세습무가(世襲巫家)의 몸에 밴 습덕(習德)인지도 모를 일이다. 

  정읍네 소희의 손이 쟁반에 놓여진 쑥물 향물 정화수 그릇에 닿는다. 신칼을 그릇마다에 가져가 일러주고 사람이 생겨날 적 집자리에 탄생할 적 목욕 없이 클 수 없고, 정부부 정사랑 첫날밤 만날 적에 목욕 없이 만날 수 없으니 소년이나 백발이나 황천길에 가실 적에 모두 쑥물로 향물로 정화수로 벗고 가자고 일러준다.

  무슨 인연일까? 전생의 어느 고(苦)에서 연(緣)을 맺어 나온 연분인가, 도대체 알 수 없는 인연의 법으로 만나 씻김 자리에 나왔는가,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지극한 사랑의 업앓이일지도 모르는데, 


  “어이, 정읍네, 자네 소리가 어째 그리 서럽게 들려오는가 모르겄네. 내 이곳에 불려오는 영광을 입었을 때 자네의 이끌림을 받아 왔는데 이제 새벽이 다 되어 되돌아가야 한다하니, 어쩐지 목이 메이고 가슴이 답다압허네.”

  “음식상을 거하게 받고 술대접 받음성 춤을 추고 놀 때 지금의 이별이 있을 것을 짐작 못한 바는 아니었는데……그래도 너무 푸지게 놀았던가. 또다시 이별을 눈앞에 두고 보니 가슴이 먹먹하고 자꾸 설운 생각이 드네. 정읍네 자네  생각은 좀 어떠신가?”

  “고마운 마음 이루 말헐 수 없제. 물론 굿잔치 벌이자는 주장이야 우리네 권속 저 어여쁜 며느리지만 말이여, 지도 먹고살기 팍팍헌디 자꾸 질척거리고 한 번에 될 일도 두 번 세 번을 거쳐야 보돕시 이루어지고, 그것도 다 된 밥에 코 빠뜨리게 삐걱대고 어긋나니께 성가시고 애가 닳아 안 뒤주 헐고 바깥 뒤주 헐어 이 잔치를 마련했는디이……사람들이 어디 다 안당가. 자네 서방님 천문이 장구 휘갈기고, 자네 시아재들 아쟁 켜고 젓대 불고 태평소 불어 흥을 돋과주면 죄갚이 고된 시달림에 녹초가 되어버린 몸과 정신이 툭툭 털고 일어나 개운해진다는 것을 어디 사람들이 알겄는가? 그렁께 이런 자리 와서 놀아본 우덜이나 알제. 근디 어째 자꾸 서럽고 무선 생각이 드능가 모리겄네.”

  “그만들 하시오. 저 사람 저녁내 밤새 춤추고 노래허고 달래줬는디, 그만 허면 됐지 뭘 더 바랜답니까? 염치가 있어야제 말이요. 그것도 모자라서 옷까지 마련해놓고 쑥물 향물 발라 씻어주고 정화수로 닦아준다는디 얼른얼른 차례 지켜 받읍시다. 사돈네 집안 권속들이야 저 며느리가 그냥 며느리지만, 우리 권속들한티는 딸내미요. 낳은 정 기른 정 다 내려놓고 시집을 보내놓고 고생할까 안타깝고 시집 식구 눈치보고 아파할까 노심초사 헌 날들이 부지기수요. 근다고 배불리 먹이고 좋은 옷 입혀서 호강 시켜본 일은 우리도 없이 산께 못했지만……그리도 넘의 집에 지 혼자 몸으로 들어가서 자식 낳고 산 세월을 생각허면 누가 뭐라 안 해도 가슴 먹먹헐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그래, 가기 싫다고 띵깡이나 부리고 앉았으면 어떻게 헌다요? 상 챙겨준 보람도 없이 말이요. 싸게싸게 줄 섭시다.”

  “아따 젠장맞을 입바른 소리는 팔월 땡볕만큼이나 짱짱허시.”

  “정읍네 저 사람이 안 그러요? 북망산천 가기 싫은 것 알고 있고, 서러울 것 안다 허지 않소?  소동파 죽어지니 적백놀음이 허사요 제갈공명 죽어지니 사통천문이 허사라고 허지 않소. 게다가 불러준다고 누군지 일일이 알 수 없겄지만 천리접종 송건이는 휘양남에 죽어 있고, 남중일색 호충선이 대장성도 죽어 있고, 황후 불러 눈치 하니 순임금도 죽었다고 말허는디 더 볼 것 있다요? 우리 같은 객들이야 황천객이 되었다고 특별히 서러울 것도 없을 것 같응게 닭 홰치는 소리 들려오기 전에 얼른 얼른 합시다.”     


    이것은 쑥물이요 쑥물로 목간하자

    쑥물로 목간하여 비린내도 벗고가세 약내도 씻고가자 

    땀내도 벗고가세 비린내고 씻고가자 누린내도 벗고가자

    땀내 약내 다 벗고가자


    아무리 쑥물이 좋다한들 향물 만큼 좋을손가

    이것은 향물이요 향물로 해갈하자

    향물로나 목간하며 도산지옥을 면해가세 화탕지옥을 면해가자 

    한빙지옥을 면해가세 발설지옥을 면해가자

    철산지옥을 면해가자 추해지옥을 면해가자

    좌마지옥 다 면하소사~~


    쑥물 향물이 좋다한들 정화수만큼 졸을소냐 

    정화수로 목간하자 정화수로 해갈하면 

    오구 간신 면해가세 드는 간신 면해가세 

    심장 녹든 간신이야 간장 녹든 간신이야 애 녹던 간신이야     


    현관문 열고가자 중간문도 열고가자

    중고깔 벗겨다가 부처님전 시주하고

    나무고깔 벗겨다가 산신님전 받쳐놓고

    정고깔 벗겨다가 용왕님께 바칩시다

    씻김 천도 가자서라

    쑥물로 목간하자

    향물로 씻고가세 

    정화수로 벗고가자


  정읍네 소희가 쑥물이 담긴 그릇을 손에 들고는 액살 그릇에 불 밝힌 촛불 위에 세 번을 돌린다. 귀얄에 물을 묻혀 솥뚜껑 위에 싹싹 돌려 펴 바른다. 그리고는 선영조상들이 입고 갈 옷을 덮은 창호지 위에 펴 바르며 땀내 약내 비린내 누린내를 다 씻어내고 벗어내고 가자고 청한다. 석구네 방울 흔들어 신을 부르는 말들을 읊어가며 접신이 이루어졌을 때 오만상을 써 가며 왝왝 구역질을 하고, 꺼억 트림을 하며 “으메, 조상 중에 약 먹고 간 조상이 있는 가부다. 트림이 올라와싸서 비위가 틀어징께 사람 죽겄네에.” 하며 구설을 하는 것도 다 쑥물로 씻고 벗고 가야 할 냄새인 것이다. 인간살이 하고 많은 날들 속에서 가릴 것 없이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먹고 말하고 행동한 것들이 죄가 된 것이다. 누가 알랴. 다만 명부전에서 너를 한 번 돌아보자, 네 삶의 자리를 한 번 돌아보자고 비추는 면경 앞에서 낱낱이 도드라져 나오는 것이니, 알도살도 못한 것들이라고 핑곗거리를 찾아대 봤자 공허한 메아리 되어 흩어져버리고 말 것이 아닌가. 그것을 씻어내고 닦아내자며 귀얄에 물을 적셔 닦아주고 씻어내 주니 그 공덕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천문이를 따라 아낙으로 살아오는 동안 등 뒤에서 받아온 멸시와 천대는 누가 무엇으로 갚아줄 것인가. 이것 또한 빚을 지는 것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누덕누덕 묻은 죄와 부정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니, 오구시황님의 일곱째 따님이신 버리덕이 공주의 심성을 물려받은 현신으로 보고 맡길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쑥물이 좋다한들 향물만큼 좋을쏘냐 이것은 향물이요 향물로 해갈하세 소리하며 손  잡아끈다. 귀얄에 묻은 향물을 평생 밥 지어먹고 살아온 솥단지 뚜껑에 적셔가며 해갈을 시킨다. 액막이 액살 그릇을 돌릴 때 제일 먼저 사람의 머리 한 중앙 정수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처럼 가마솥의 뚜껑은 넋의 머리를 상징하는 것이니, 동서남북 네 방향을 잡아가며 중앙을 향해 적셔가는 것이다. 그리고는 귀얄에 향물 듬뿍 적셔서 창호지 위에 펴 바르며 오구시황님 외손 발복하시어 외손들에게 명부전 전장하시던 열 곳의 지옥을 면해가자고 청한다. 도산지옥을 화탕지옥을 면해 가고 좌마지옥까지 다 면해 가자고 손잡아 끈다.

  쑥물 향물이 좋다한들 정화수만큼 좋을쏘냐 정화수로 목간하자고 원을 한다. 귀얄에 묻힌 정화수로 솥뚜껑을 닦아내고, 다시 귀얄에 정화수를 묻혀 창호지 위에 뿌린다. 착 착 착 뿌리고 탁 탁 탁 점을 찍듯 귀얄에 적신 물로 창호지 위를 적신다. 그리고는 오구 간신, 드는 간신, 심장 녹든 간신, 간장 녹든 간신, 애 녹던 간신까지 모두 면해 가자고 청한다. 잠시 앉아 콩 꼬투리만 까는 동안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간다. 콩나물 한 주먹을 추려서 씻어내고 삶아내는 동안에도 실체조차 없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나고 든다. 그것이 언제 적 일인지도 가물가물한 것들이 문득 생각의 망에 걸려들어 분노하게 하고, 욕지거리를 뱉게 하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망상, 번뇌 그런 것들이 사람을 불현듯 죽게도 하고 살게도 한다. 현실에서는 차마 할 수 없는 것들을 순식간에 해치우게 하고, 현실에서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스스로 일어나게도 하며 스스로 애간장 녹게 만든다. 집착, 사랑이라 말하고 모든 것을 덜어내어 너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색을 내지만, 그러나 그것은 철저히 자기 자신의 욕망이고 허영인 것을 모른다. 망상과 집착 그리고 욕망들이 한데 엉겨들어 춤추고 까불어대는 마음 안에서 심장은 불타오르며 녹아내린다.

  정읍네 소희는 그런 모든 마음속 더러운 검불들을 눈덩이처럼 만들지 말고 쑥물보다 좋고 향물보다 좋은 정화수로 씻어내고 가라고 이른다. 이미 산 사람이 아닌 혼령들에게 하는 주문인데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이르는 말로 받아들이고 위로받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살아서든 죽어서든 모든 괴로움의 시작은 마음이기 때문이리라. 아무것도 없는 순백의 결로 태어나고도 살아가는 동안 새까맣게 물든 사람들, 그것이 죄의 덩어리인 것을 모른다. 그것을 물로 씻어내는 여자 정읍네 소희의 손길이 창호지를 걷어 접는다. 홑이불처럼 덮고 있던 종이에 묻어난 죄의 물을 거두어낸다. 씻김은 길고도 먼 길, 혼자서 걸을 수밖에 없는 길이다. 면경에 비친 자신을 타인의 눈으로 보고서 판별해야 하는 것이다. 남은 알 수 없는 나만의 공간에서 나 홀로 빚어낸 모든 것들, 꽁꽁 숨기고 스스로 망각해 버리면서 모르는 척 딴전을 피웠던 모든 것들을 명부전에 걸린 업경(業鏡)은 다 알고 있다지…….


  정읍네 소희가 쑥물로 목간하자 향물로 씻고 가자 정화수로 벗고 가자 청하는 소리를 하며 혼백함을 꺼낸다. 솥뚜껑을 들어내고 괴고 있던 또아리를 들어내고 혼백함 그릇을 손에 든다. 그리고는 괴얄에 쑥물이고 향물이고 정화수를 차례차례로 바르며 씻기고는 문을 열어간다. 혼백함에 묶여 있는 선영조상들을 문을 열어 깨끗한 신으로 맞아 극락왕생 천도를 시키려 준비를 한다.      


    첫 문은 염왕문이요 두차문은 허문이요 세차문은 초개문 

    네차문은 시황천문이요 다섯차문은 동국합창문이요 여섯차문은 금강문이요 

    일곱차문은 옥경문 여덟차문은 팔장문이요 아홉차문은 수군문이요 

    열차문은 불성시황사문이라~ 그 문 안에서 사재와 모든 지옥을 다 면하시고 나오소오사~~   

  

    신이여~~신이로구나~~ 외치며 맞아들인다.   

  

  하얀 물결 굼실거리는 지전다발을 흔들어 혼백함을 소재하고 행주로 둘러가며 닦듯이 닦아낸다. 정읍네 소희의 손에서 닦여지는 혼백함 놋그릇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금빛 물결 찬란하던 신칼은 지전다발에서 뽑혀 나와 혼백함을 톡톡 두드린다. 곧이어 소희는 손을 밀어 톡 치며 며느리의 손으로 양가 선영조상들의 넋을 받아들게 한다. 천문이의 장구가 ‘덩 떠르르르 지긍지긍지긍 덩 떠르르르르~~지그지그지그~~덩 더르르~덩~’ 눈물을 쏟고, 천수의 아쟁이 통한의 강을 건너 해탈의 마당으로 내려선다. 드디어 양가 조상들 모두 두텁게 쌓였던 죄업을 다 씻고 지옥의 문을 빠져나와 신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아아아 헤에요 아아아에헤요 천근이야 천근은이야~~아아아 에헤요~~     


  하늘에 뿌리를 두는 것이 근본이라고 한다. 마당에 둘러앉아 석별의 정을 나누려는 이웃사람들도 모두 하나가 되어 ‘아아아 헤에요 아아아에헤요 천근이야 천근은이야~~’를 따라 부른다. 천문이와 천수, 종수와 석구네가 모두 입을 모아 ‘아아아 헤에요 아아아에헤요 천근이야 천근은이야~~’를 부른다. 통한의 강을 건너 해탈의 마당으로 나온 신령스러운 옛사람들이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밥주라, 노자주라, 큰 굿해주라 헐 것이요

    오늘날 자식들 덕택으로 누덕철망, 금사망

    객사 액사도 다 면하고 저승왕 저승지옥

    저승간신, 저승동갑, 저승사제도 모두 여의게 해주었으니

    아아아 헤에요 아아아에헤요 천근이야 천근은이야~~   

  

  모든 원당 한당 다 풀었다고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며느리 자손 아들나리 자손 모두 모두 무사태평 만사형통 소원성취 하라고 손을 모아 합장을 한다. 허리를 숙인다.      


    헐벗은 사람 옷을 주어 구난공덕 선업을 쌓으라고 입춘노적 다시 붙여주고

    배고픈 사람 밥을 주어 아사구제 선업을 쌓으라고 입춘노적 다시 붙여주고

    목마른 사람 물을 주어 급수공덕 선업을 쌓으라고 입춘노적 다시 붙여주고

    병든 사람 약을 주어 활인공덕 선업을 쌓으라고 입춘노적 다시 붙여주고

    좋은 밭에 원두 심어 행인해갈 선업을 쌓으라고 입춘노적 다시 붙여주고

    높은 산에 법당 지어 중생공덕 선업을 쌓으라고 입춘노적 다시 붙여주고    

 

  이제 갈 때가 되었노라고 천근 노래를 부르며 일어선다. 며느리의 몸 구석구석 쌓인 눈물의 흔적들을 닦아주고, 당대 자손 발복 염원을 담아 생명의 꽃 씨앗을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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