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기다리는 여심, 환생
어— 어— 어-
앞소리꾼 길게 늘여 부르짖는 소리가 세 번 울리고 상두꾼들 모두 따라 부르짖으며 꽃상여를 내려놓는 사이로 꽹과리 장구소리 울려 나오고 쇄납 날라리 소리가 태평하게 울려 나온다. 상갓집의 정경으로는 흥겨움이 두둥실 떠오른 달빛을 감고 흐르며 서러운 사람들의 눈물짓는 소리를 애써 감싸 안는다. 쉬 쉿 쉬이이……. 우는 소리 되게 하며 떼를 쓰는 어린 손주 놈 어르고 달래느라 진을 빼는 할미가 등을 쓸어내리며 내는 소리처럼 애가 잦게 우려낸다. 그 와중에도 몸을 흔들흔들 발을 틀어 올리고 내려가며 춤을 추는 이도 있다. 오랫동안 길들여진 풍속이라 욕할 이 없건만 어쩐지 그 모양이 서럽게 우습다.
허- - 허- -허어이
이 집이 뉘 집이냐?
다시래기 허는 사람들 다들 모여
다시래기 허는 상갓집 제청 아닌가아?
- 맞어, 맞어.
자아, 우리 다시래기꾼들 한 번 놀다나 가세에- -
사내놈 하나가 멀쩡한 얼굴 뽄새로 걸어 들어오더니 팔을 휘저으며 사람들을 행해 말을 뱉는다. 여기가 뉘 집이냐고 묻고는 가랑가랑한 소리를 내어가며 한 번 놀다나 가자고 흥을 돋운다. 모여 앉은 사람들 향내 진하게 묻어나는 덕석에 발을 괴고 앉은 채로 맞어! 맞어! 고개를 끄덕이며 한판 흐드러지게 놀아볼 생각을 한다.
아따, 옛날 어르신들 하시는 말씀도 안 들어봤소?
- 뭐시라고? 뭔 말?
흉년에 논 마지기나 팔지 말고 입 하나 덜라고 안 하딥끼여?
- 그라지 그라지.
아, 방 안에서 빼짝 밥이나 축내고 있는 당신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이
얼마나 얼씨구 절씨구 할 일이여?
- 예라이 썩을 놈, 염병할 놈 같으니라구.
자아, 이왕지사 이 마당에 들어왔으니이
상주분네와 내기 하나 합시다아.
- 무슨 내기? 뭔 내기이?
무슨 내긴고 허니이
오늘 저녁에 우리가 다시래기를 히서
오늘 여기 오신 상두꾼들과 굿을 보러 온 동네 사람들에게
닭으로 죽을 쑤어서 주기로 허고오
- 그라지--그랍시다아
만약에 상주분네들이 웃지 않을 경우에
우리 다시래기꾼들 품삯 하나도 받지 않기로 허는 것이 자아, 어쩠겄소?
- 옳소. 그랍시다아~~ 그리여
이마에 하얀 띠를 두르고 상투 틀어 올린 자리 가운데로 짚신 두 짝을 얽어 묶은 사내놈이 가(假)상제 분으로 들어와 다시래기 서두 사설을 늘어놓는다. 위아래 하얀 무명옷을 입고서 허리 가운데로 이엉을 엮어 묶었다. 소포뻘에 흐드러지게 늘어서서 바람에 흔들리다가 우듬지에 꽃차례 매달고 한 곳으로만 한 곳으로만 향하던 마음도 어느샌가 내려놓고 늙어버린 원추화서(圓錐花序)의 시름 가득 안은 갈대 속살만 추려내어 지푸라기 섞어 치마처럼 둘렀다. 소희네 집 초라한 지붕 한가운데에 여덟 팔자(八字)로 엮어 내린 용마름처럼 꼬아 허리를 둘렀다. 그리고는 미투리 신은 발을 질질 끌고 한쪽 다리를 삐딱하게 구부려 절며 한쪽 손에는 도굿대(절구공이)를 들고서 사람들을 홀린다. 아버지든 어머니든 어버이 돌아가신 슬픔에 빠져 있는 상갓집 제청에서 상주들을 웃겨준답시며 억지소리를 늘어놓는다. 흉년에 논마지기 있는 것 팔지 말고 입 하나 더는 것이 상책이라 일렀더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이라며 공자 씨 맹자 씨 주옥같은 말씀들 줄줄이 써 내려간 병풍 앞에서 썩을 놈 염병할 놈 오살헐 놈……. 온갖 험한 욕지거리들을 들어가며 재담을 풀어낸다. 그리고는 내기 허락을 받겠다며 꼴에 장단 없이는 못 가는가, 풍악을 거느리고서 몸을 한쪽으로 있는 대로 구부려서 다리를 절게 하고는 팔을 위풍당당하게 흔들어대며 들어간다. 그 꼴이 하도 우스워서 웃어대는 사람들과 꽹과리와 북, 장구를 두들겨대며 흥을 한껏 고조시키는 가운데 가(假) 상주 앞에서 쭈그려 앉아 묻는다.
“아이고오, 상주니임. 얼마나 영광스러우십니꺄?”
“에잇, 쩟…….”
“아, 이런 영광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껴?”
“그것을 말이라고 허냐, 멋이라고 허냐?”
“오늘 저녁에 다시래기를 좀 하고 놀게 승낙 좀 해주십사아 허는데 어쩌시렵니꺄?”
“잘만 하시게. 잘만 하믄 저기 제례청에 걸려 있는 당목천 다아 걷어다가 우리 다시래기꾼들 다아 옷 한 벌씩 해줌세. 또 잘만 허믄 닭죽도 끓여주고 헐튼게 잘만 허시게.”
“자아, 어쩌. 다들 들었제?”
“들었어. 우리들 다아 들었어.”
“자아, 승낙도 받어내었으니, 이제 다시래기를 한 판 해봐야지 않겄소? 그리도 다시래기를 헐라믄 가상제 나부텀 굿을 헐랑가 못 헐랑가 한 번 히봐야 쓰겄는디, 주제에 장단 없이는 못 놀아.”
장단이 덩더르르응~~ 소리꾼 목청을 가다듬듯 울려나온다.
만수 만수 만만수우
이런 만수가 또 있느냐
푹 쑤셨다 피나무
배 뽁 나왔다 배나무
방구 뽕뽕 뽕나무
한 다리 절었다 전나무
왼갖 나무가 매화로구나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대활연으로 설설이 나리소사~~
다리를 절름거리는 행색을 하고서 도굿대를 도깨비방망이 흔들어대듯이 흔들어댄다. 어기적어기적 춤을 추고 소리를 해가며 사람들과 더불어 한판 굿을 해가는 어름에 당달봉사 한 사람이 사당패 아낙을 따라 들어선다. 가상제 물러간 자리에서 ‘에헴’ 기침 소리가 들려온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석교리에서 태어났지만 집안은 거기서 거기, 다를 것 없이 세습무계 집안의 자손이다. 무속의 가업을 잇고 싶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뭍으로 나가 공부를 한다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성적이라는 것은 거기서 거기, 뾰족하지 않았다. 어느 한 해 명절을 맞아 집으로 온 사내놈이 열여덟의 나이에 결국은 당달봉사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유랑극단이고 연극이고 뭐고 하는 것들이 강 초시 어린 청춘을 날마다 칠십 넘은 노인으로 만들고 눈을 뜨고 있으나 앞을 보지 못하는 봉사로 만들어버렸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사람들을 울리고 웃겨 왔다.
오늘 정읍네 소희의 호상 마당에 들어서도 여전히 칠십 넘은 노인의 행색으로 거지꼴 함뿍 배긴 걸음으로 뺑덕이네 궁둥이를 차며 들어선다. 봄 맞아 꽃물 함뿍 먹은 꾀고리빛 저고리에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영산홍빛깔보다 고운 물 먹은 꽃분홍치마를 입은 뺑덕이네 모양이 오늘도 당달봉사 강 초시에게 물찬제비같이 예쁘다. 그냥 너부데데한 호박마냥 푹 퍼진 낯바닥에 연지 곤지는 찍고, 낯바닥 곳곳에 기민지 주근깬지 알 수 없는 먹물을 잔뜩 묻히고, 틀어 올린 머리에 옥빛 푸르게 돋아 오르는 비녀를 꽂은 모양새가 천하의 절색이라기엔 우스꽝스럽게 생겼다. 그런데도 소리는 듣는 사람 가슴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어가 쨍하게 울리는 통이 무척이나 쾌활하고 구성지다. 그런 여인이 흥청흥청 어깨를 너울거리며 재청 마당으로 들어선다. 사람들이 너나없이 웃으며 박수를 친다. 깊어가는 밤이 자정을 넘어서 날이 바뀌었건만 마당 가득 모여서 상(喪)을 치르는 사람들의 마음에 죽음은 이미 살아 돌아오는 길목에서 함께 웃고 즐기며 떠드는 굿이 되고 마는 것이다.
“휴유, 다 왔소.”
어깨 위에 얹어 심 거사를 이끌고 오던 지팡이를 내려놓으며 말을 한다.
“아여, 마누라. 여가 어딘가?”
“아, 그것도 모리고 따러왔소?”
“아, 멋모르고 따러왔지.”
까막까치 땍땍거리듯이 땍땍거리며 말을 받는 마누라 뺑덕이네에게 웃음으로 받아친다.
“아, 여가 어디냐면요, 여가 다시래기 하는 상가 제청이요.”
“그렁께 여가 다시래기 허는 상가 제청인디, 여가 정읍양반네 아짐 호상마당인가?”
“야. 그렇구만이요.”
“아, 그렇겄네.”
“아야, 우리 만난 지가 오래 됐네. 우리 도굿대 춤 한 번 추세.”
에헴 잔기침을 하고는 즐거운 목소리를 내어 곰방대 긴 장죽을 흔들어대며 춤을 청한다.
“예. 그럽시다, 영감.”
이내 뺑덕이네가 박수를 치고 춤이 시작된다. 하얀 도포자락 길게 늘여 입고 노란 술띠를 길게 늘였다. 검은 천조가리 누덕누덕 기워 입은 꼬락서니에 팍 눌려 짜부라진 갓의 테두리가 들쳐지며 우줄대는 것이 거지나 진배없지만 얼굴색만은 화색이 돈다.
감은 것처럼 가느스름한 눈두덩에 검은 회칠을 하여 당달봉사가 되고 두 미간 사이에는 주름이 깊이 박혔다. 콧망울을 사이에 두고 깊이 패인 팔자주름과 확연하게 새겨진 인중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지만 양쪽으로 곧게 뻗친 수염은 금방이라도 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신선의 것처럼 물 위를 걸으며 물고기를 낚아챈 황새가 두 날개를 활짝 펼친 것처럼 멋스럽다. 건듯하면 죽은 곽 씨 부인 타령이요, 인당수에 빠져 죽은 심청이 타령이나 하니 내가 어디 영감한티 정 붙이고 살겄소? 타박을 당하면서도 무엇이 좋은지 도굿대춤이나 추자며 뺑덕이네를 부추긴다. 그리고 두 내외가 손뼉을 치고 팔을 까딱거리며 춤을 춘다. 얼마나 짚고 다닌 것인지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맺혀 있는 지팡이를 들어 까딱거리고 곰방대 긴 장죽을 까딱거리며 춤을 춘다. 현철하신 곽 씨 부인 앞 못 보는 지아비 하루 한 끼라도 거르지 않게 하려 남의 집 품앗이해서 얻어온 곡식 알맹이가 튀어 오르지 않게 손으로 씻어가며 찧던 도굿통(절구)의 아가리를 벗어나지 않는 춤이다. 장단에 맞추어 한쪽 발을 허리까지 들어 올리고 두 팔을 쭉 뻗어 올려 까딱거리며 추는 춤이 웃음을 자아낸다. 박수를 치는 사람들의 입 언저리가 벙싯거리고 어깨가 들썩거리며 웃음소리가 마당을 가득 채운다. 찔끔찔끔 눈물을 훔치던 사람들도 어느새 벙싯거리며 웃고 있는 자신이 한심한지 고개를 수그리며 표정을 다스려보려 하지만 우스꽝스러운 두 사람의 품새와 우스꽝스러운 말소리에 맥없이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누가 누구를 나무랄 수도 없는 정읍네 소희의 호상 마당을 비추는 별들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지 멀찍이서 유난히도 반짝이며 밤을 밝힌다.
에라 요년 가시낙년아
밥 차림시로 머리 긁지 말어라
이 떨어진다 지나 헤~~
잘도 하네 에~ 헤에~
잘도나 허어헌다
우리 거사 사당이 잘도나 헌다
뺑덕이네와 당달봉사 심 거사가 노래를 한다. 소리북 장단에 맞추어 마디마디 고개를 넘어가는 가락을 타고 굴곡진 세월을 노래한다. 밥 차리면서 머리 긁지 말라며 가시낙년을 어르는 심 거사의 노랫소리를 거들어 잘도나 한다며 장단을 맞춘다. 하늘이 내리신 천생연분 아낙과 낭군의 소리가 흐드러지게 밤하늘에 퍼져나간다.
“영감 어찌요?”
“어따 자네는 어째 그리 물찬제비만치로 이삔가아?”
“아이고오 영감도. 아니, 앞도 못 보는 영감이 그걸 어찌 안다고 그러요?”
“해는 뜨건께 삘건 줄 알고 밤은 캉캄헌께 껌한줄 안디 아, 어찌 내가 자네를 모르겄는가아? 자네만 보먼 어찌 쩍쩍 들러붙고 자네 품으로 푹 들어가고 잪어. 그랑께 물찬제비 아니고 멋인가아?”
심 거사가 치마폭을 풀썩 들어올리는 뺑덕이네 품으로 쏙 들어가려는 행신을 한다. 남사스럽고 얼굴 붉어질 것인 줄 아는지 앞도 못 보는 사람이 괜스레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붉힌다.
“아야, 마누라, 자네 긍께 산고달이 언젠가?”
“아니 영감, 날마다 한 이불 덮고 잠시롱 그런 것도 모리요?”
“흐응, 내가 건덕굴로 사네.”
산고달을 묻는 심 거사에게 뺑덕이네가 손가락을 짚어보더니 열한 달 하고도 반 달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옥신각신하다가 새끼가 나왔다 치고 자장가를 불러본다고 말한다.
둥둥둥 강아지
어허 둥둥 강아지
두 ~ 두둥둥 어허 둥둥 강아지
어서 어서 자라나
애비 품으로 들어오니라
어허허 ~ 둥둥 강아지
꺼적 밑에서 생겨났느냐
어허 둥둥 강아지
내 새끼는 꽃밭에서 자
남의 새끼는 개똥밭에서 잔다
어허 둥둥 강아지
둥둥둥 강아지
두리 둥둥 강아지
물에 빠진 강아지가
물속에서 나오네
밥 한 통을 다 먹는다
어허 둥둥 가앙지
둥둥둥둥 허둥둥 강아지야~
소싯적에 많이도 불러보았던 자장가 한 대목이다. 심 거사 기억 속에서 또렷하게 솟아 나오는 장면이 슬프게도 노래가 되어 흘러나온다. 어미 잃은 심청이 어린 핏덩이가 배가 고파 앙 앙 울면 어찌해볼 도리 없는 밤이 질기게 길었었다. 아침이 다 되기도 전에 우물가 아낙네들 소리 들려오면 어린 자식 끌어안고 우물가로 나가 동냥젖을 얻어 먹이던 날들, 해질 무렵 젖을 배부르게 먹고 잘도 노는 딸아이를 재우면서 불러보던 노래들이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면서도 또 흥이 나게 부르던 노래들인가. 참으로 기막히게 부르던 노래들을 지금은 딸아이마저 잃고 뺑덕이네와 들러붙어 살아내는 날들에 다시 한번 불러보는 노래이다. 그 노래를 지금 석교리 사람 강 초시가 부르며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초상집 슬픈 마당에서 아기를 배고 출산일이 언제인가를 가늠해 보는 심 거사의 자장가 한 자락이 어허 둥둥 강아지 되어 나온다. 누덕누덕 기운 옷차림이 무슨 상관이랴. 어서 어서 자라나 애비 품으로 들어오너라 축원을 하는 심거사의 몸짓은 절절한 것이다. 목을 비틀어 졸여서 밀고 당기며 끌어내오는 바람이다. 지팡이와 곰방대 긴 장죽을 힘들여 밀고 힘들여 당기며 소리를 한껏 졸인다. 맺고 푸는 소리들이 늘그막에 자식타령을 하는 심 거사의 더할 것 없는 소망을 보타지게 만든다. 어디서 생겨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옹골지게 기다려지는 심정을 안타까이 우려낸다. 뺑덕이네의 도굿대춤과 어우러지는 추임새를 들어가며 절로 흥이 나는 모습으로 뱃속의 자식을 나왔다 치고 불러 어르는 것이다. 소멸의 마당에서 다시 태어나는 생산을 비는 언어로 빚어내는 노래 흥물결 속에서 자신의 새끼는 꽃밭에서 자고 남의 집 새끼는 개똥밭에서 잔다고 을러댄다. 위협이랄 것도 없이 을러대는 소리가 신명 나게 어우러진다. 물에 빠진 강아지가 물속에서 나오더니 밥 한 통을 다 먹는다고 좋아하는 늙은이의 어우러짐이 촐싹거리며 춤을 추는 뺑덕이네의 “하이고오~~ 우리 영감 잘 한다!” 는 추임에 한껏 고무되어 나오지도 않은 자식 나왔다고 치고 골격까지 달아보고야 마는 심사로 한쪽에 쭈그려 앉는다. 그리고는 다 낡아빠진 지팡이를 매만져가며
요거는 두상, 와따 그놈 두상이 꼭 메주대가리처럼 생겼다.
요것은 눈, 아따 요놈 눈봉께 꼭 동지섣달 얼어죽은 말 눈 같다
요것은 코, 아따 코도 튼실하게 좋게 생겼다
요것은 입, 와따 이놈 입도 쫙 찣어진 것 봉께 크먼 술 잘 퍼먹게 생겼는걸
요것은 앞가슴, 와따 이놈 앞가슴 쩍 벌어징께 크먼 심깨나 쓰겄다
요것은 배꼽, 와따 배꼽도 꼭 요강꼭지만 허세. 무지허니 크다
요놈 내려갈수록 연평도 조기잡이 배 돛대마냥 딱 걸려야지 흘러내려가불먼 내 신세는 낭패다
에라~~순. 베리부렀다아 (영감, 멋이다요?)
영감이고 땡감이고 어마 허망할세. 배꼽 욱으로는 나 탁이고 배꼽 아래로는 자네를 탁이부렀네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아 허망하다고 말하며 웃는다. 새로이 태어날 생명에 대한 간절한 심정이 짙게 배어 나온다. 그러면서도 강 초시의 행동과 말들이 지켜보는 사람들을 웃음 속으로 몰아넣어버린다. 누구라서 태어날 자식에 대한 바람이 없으랴. 그 간절한 기대와 설렘을 여지없이 뭉개버린다. 옳지, 옳지, 그려, 그려, 오냐, 오냐, 가자가자가자~ 골격을 달아가는 동안 두상은 메주대가리 같고 눈은 동지섣달에 얼어 죽은 말 눈 같다고 말한다. 눈 코 입 번듯한 모양새 갖추고 건장하고 늘씬한 모양으로 태어나주기를 바라는 세상 모든 부모의 바람을 여지없이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림으로써 상두꾼들과 상주들까지를 웃게 만들어버린다. 배꼽이 요강꼭지만 하다고 말하며 옹골져하는 너스레가 초상집 마당을 웃음의 도가니로 만들어버린다. 광대, 무어라 표현해 내기 어려운 이름 광대, 강 초시가 퉁퉁 부은 눈으로 퀭하게 앉아 우는 가희를 웃게 만든다.
한쪽에서 낙지를 탕탕 쳐대고 닭을 푹 고와서 대추와 마늘 물러지게 만드는 사이에도 사람들은 강 초시의 재담과 익살에 한바탕 웃어대며 삐져나온 눈물을 훔쳐낸다. 밤은 그렇게 정읍네 소희의 호상마당에서 무르익어간다.
열한 달하고도 바안 달! 이나 되었다는 아기를 두고 골격을 달아보는 놀이가 끝날 무렵 자시는 깊어 축시를 엿보고 있다. 사람들의 흥물결도 잠시 쉬어가는 마당에는 닭죽이 한 솥 나오고 있다. 교자상 서너 개를 맞붙여 놓은 곳에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탕탕 쳐서 참기름 흠씬 둘러놓은 낙지에 깨소금 범벅이 되어 있는 것을 푹푹 끓여 온 동네 천지사방으로 냄새를 고르게 퍼 나르는 닭죽에 들어붓고는 복남이네 집에서 볏짚에 엮어 가져온 달걀을 톡 깨뜨려 넣어 끓여 냈다. 겨우내 묵은 배추김치가 접시마다에 듬뿍듬뿍 담겨 있고, 삭을 대로 삭은 홍어가 접시마다에 그득히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겨우내 꽁꽁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어느 날은 죽고 어느 날은 살아서 대쳐 지고 무쳐지던 봄동과 시금치가 하나는 겉절이로 하나는 나물로 접시에 나붓이 들앉아 있다. 옥주골 넓은 밭이랑마다에 촘촘하게 심겨진 푸른 대파들이 어슷어슷 썰리고 퉁퉁하게 잘려서 버무려지고 구워져 사람들의 입 속으로 들어간다. 양재기 대접마다에 콸콸 쏟아져 흐르는 막걸리와 소주들이 사람들의 흥을 서럽게 만들고, 사람들의 슬픔을 또 흥겨움으로 이끌어간다.
천둥소리를 동반했었다. 콰과광 쾅쾅 번갯불 내리치는 요란함도 있었다. 음력 일월이 끝나가는 곳에 들어 비를 부르는 우수(雨水)가 지나고 초여드레 지나간 달에 살이 올라 빠진 구석 없이 퉁퉁해진 날에 경칩이 들었다. 바닥을 핥으며 지나가는 바람의 위세는 대단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내리는 눈은 사람이 딛고 가는 땅에 착 달라붙어 살을 찌웠다. 맨드름하게 찌우고 우락부락하게 찌우며 칼날처럼 날카롭게 자신의 몸을 갈았다. 바드득 바드득 한길바닥에 달라붙어 사람들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위세를 부렸다.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휘잉휘잉 날아서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만물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어버렸다. 그 위세에 깜짝 놀란 사람들은 그 계절 혹독한 추위에 장군의 칭호를 붙여 동장군이라 일컬으며 몸을 한껏 움츠렸다. 그리고는 문 밖에 나오는 것을 극히 꺼려 아랫목 구들에 누워 한 계절을 보낼 요량을 했다.
그러나 혹독한 시련의 계절에게도 시련이 닥쳐 봄을 불러오는 비가 내리고 말았다. 요란한 천둥과 번개를 내리치며 비를 내렸다. 목우봄비 곡우봄비, 그것은 겨울의 끝자락에 내리며 땅 속 깊숙한 곳에 깃들어 겨우내 잠을 자던 짐승들을 호통 쳐 깨웠다. 어서 일어나라고 어서 잠자리를 털고 나와 기지개를 켜라고 호통을 쳤다. 경칩은 이미 따스한 날이다. 아직 춘분까지는 보름이 남아 있고, 곡우까지는 또 청명 너머 보름이니 한 달이 족히 남아 있지만, 하늘이 땅에 딛고 살아가는 구순한 사람들을 위해 내린 온화한 미소, 춘우(春雨) 봄비는 이미 혹한의 무리들에게 점령당해 옴짝달싹하지 못하던 땅에 박힌 날카로운 비수(匕首) 얼음덩이들을 쓸어가 버린 지 오래되었다. 보름씩이나 지났다. 그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는 촐싹 맞은 개구리 놈이든 음흉하게 똬리를 틀고 앉은 배암 놈들이건 모두 일어나 봄을 맞으라고 이불을 걷어치워 버린다. 꽁꽁 얼어 있던 흙살들이 몸을 풀어 쩍쩍 갈라지니 그것들을 이불마냥 덮고 잠들어 있던 놈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기지개를 켤밖에 별수가 없는 것이다.
바늘이 자시(子時)를 지나고 축시(丑時)에 들어서면 세상은 암흑이다. 밤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밤이다. 바다 한가운데서 길을 잃지 말라고 켜놓은 등대 불빛만이 하늘 가장 깊숙한 곳에 박혀 있는 별빛마냥 깜빡깜빡 세상을 비추어도 도대체 물러날 기색 없이 떡 버티고 들앉아 있는 어둠은 분별을 허락하지 않는다. 먹빛의 농담(濃淡)에 따라 그 묽기가 달라지면서 흑이 백을 향해가는 빛의 속성마저도 축시의 어둠은 농담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어둠의 시간, 칠흑의 순간들에는 찰나가 없다. 섬광처럼 지나가는 촉수의 찰나도 어둠에 묻혀 가늠이 되지 않으니 그것은 없는 것이다. 하여 사람들을 잠재운 시간 축시에는 귀신들이 활동을 한다. 사람들이 사는 곳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사람들이 만지던 물건들에 혹시라도 남아 있을지도 모를 온기를 더듬느라 왕성하게 움직이며 눈을 둥싯거린다.
이토록 어둠의 시간을 앞에 두고 사람들이 모여 앉아 떠들썩하게 음식을 먹고 사물을 두들긴다. 경칩의 아침을 맞아 영롱하게 빛나는 가마 상여를 타고 도영과 천문이의 추억이 서린 세방의 바다를 향해 떠나갈 큰 어른 소희의 영정을 앞에 두고 모여 앉아 닭죽을 먹는다. 석교리 영감 강 초시도 아낙 사당과 함께 앉아 닭죽을 먹고 술을 마신다. 지내온 정으로야 석별이라는 말이 안타깝고 그지없이 슬프나 또 씻긴 몸과 영혼이 떠나는 길이 적적하지 않도록 밤새 놀아주는 업살이 설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니, 으슬으슬 한기(寒氣)가 드는 몸을 다스리려면 먹어둘 수밖에 없으리라. 산다는 것이 그런 것이니……. 삶과 죽음의 경계가 한 마당에 도사리고 있으니 뜨듯한 국물에 쌉싸름하니 목에 감기는 한 잔의 술에 데우는 마음엔 슬픔이 가득이라 또 한 판 놀아주는 것이 음덕이리니,
“자아, 다들 맛있게 드셨습껴? 걍 따땃허고 보드란 것이 목 안으로 넘어가니, 거어 콱 맥혀 있던 속이 다아 풀리고, 거기다가 술까지 넉넉허게 마셔놓으니, 아니 이놈 가상자도 사지가 쫘악 풀려 노글노글하니 한 판 흐드러지게 놀지 않고는 그냥은 못 가겄구만요.”
허허거리며 앞으로 나온 가상제가 도굿대를 휘둘러가며 사설을 늘어놓는다.
“자아, 이제 다시래기를 참말로 잘 혀서 이 고을 저 고을 명성이 자자헌 영감 강 초시를 모실 것인디, 만약에 박수를 많이 치는 사람은 복을 그냥 많이 받을 것이지마는, 뭐가 그리 잘났다고오 별쭝나게 박수도 안치고 허는 사람은 복을 받을라믄 받고 말라믄 마시기요.”
미투리 얹은 머리를 까닥거리고 도굿대를 어깨 위로 올려 을러대던 가상제가 들어가고 사당 뒤꽁무니에 달려 나온다.
언제 갈아입었는가. 아낙네 사당이 하얀 저고리에 하얀 치마를 입고서 심 거사 강 초시 지팡이를 붙잡고 걸어 들어온다. 꽹과리 소리가 마당 가득 울려 퍼지고 쇄납 소리가 흥겹게 울려 나오는데 심 거사 강 초시는 누덕누덕 기운 도포에 술띠는 길게 늘이고 첨벙첨벙 걸어온다. 그리고는 도굿대춤을 한 판 추는 데로 가상제가 들어와 푹푹 찔러댄다.
“어허이, 뭣이 이렇게 툭툭 찔렀쌓는고?”
“거사님, 거사님, 저어 건넛마을 이 생원댁에서 개가 새끼 날라고 헌다고 정문(경문)하러 오시라는디, 어찔라요, 가실라요오 안 가실라요?”
“뭣이, 개가 새끼 난다고 나더러 정문하러 오라고오?”
눈을 있는 대로 까막거리고 팔자수염을 움찔움찔해가며 말을 되묻는다.
“다녀오시오. 다녀오셔. 많이 벌어갖고 오시기요.”
가상제가 귓가에 속삭이듯 말하며 부추긴다.
“차암, 벌어먹는 팔자도 더럽세쎄. 아, 사람도 아니고 개 새끼 난다고 나더러 정문하러 오라고오야?”
오지게 기가 막히는지 말도 안 나오는 행신을 한다.
“뭐 그라고 저라고 헐 것 없이 가셔서 많이 벌어갖고 오시기요.”
“으이, 산고달도 되고 했응께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가상제가 돌아들어가는 사이 언제 들었는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뺑덕이네가 북과 장구를 들고 들어온다.
“어이, 마누라아!”
사당이 미처 다 부르기도 전에 징과 장구를 들고 와서는 심 거사에게 안긴다.
“거참, 동작도 빠르세. 마누라, 저 건넛마을 이 생원 댁에서 개 새끼 난다고 정문하러 오란께 가긴 가야 쓰겄는디, 내가 요새 짬 껄쩍찌근헌 것이 있네에.”
“영감, 뭣이 또 그렇게 껄쩍찌근 허다고 히 싸 요?”
말하는 사이 중이 와서 사당을 찝쩍거린다. 그러자 사당이 조아라 손장난을 하며 웃어댄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심 거사는 알 리 없는데
“뭣이 껄쩍지근하냐고? 요새 뒷골 중놈이 들락날락하는 것 같은디이, 워매, 워매. 그 중 놈 내 얘기 좀 들어보게. 동네 지사 날짜는 다 알고 댕기고, 동네 혼자 사는 과부 냄새는 슬슬 다 맡고 댕기고오, 쩌어 썩은 대추나무에다가 고쟁이 하나만 걸쳐 놓아도 침 질질 흘리고 환장허고 댕기는 중놈이 있네.”
“으응.”
“옛 말에 십벌지목이라는 말이 있네.”
“시뻘주먹?”
“으이.”
“시뻘주먹이 시뻘주먹이지 멋이다요?”
“그것이 뭔 말인고 허니, 열 번을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아 이 말이여.”
“아이고오, 여보 영감.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나 한티는 영감밲이 없소. 그렁게 걱정 붙들어매고오. 어서 가서 하룻밤 푸욱 주무시고 돈이나 잠 많이 벌어가지고 오~ 시~ 요.”
“야아, 가긴 가겄으나 나 가기 전에 그리고 개 잘 팔라고 개타령이나 한 번 불러보고 가야 쓰겄네에.”
“그러시오.”
개 사가게에
개 사가게에
돈 갖고 개 사가게
이 개개 개개야
저 개개 개개야~~
이 개 이 개 애~~
짜부라진 갓을 출렁거리며 지팡이를 들어 올려가면서 개타령을 부르던 심 거사의 타령이 자꾸 같은 곳에서 맴을 돈다. 복숭아뼈에 닿을 만큼 기다랗게 매단 북이 덜렁덜렁 다리 사이로 엉겨 들고 한쪽 손에 들고 있던 꽹과리가 곰방대 긴 장죽과 함께 오르내리며 덜렁거린다. 그러는 사이 함께 개타령을 부르던 사당의 소리가 잦아드는 성싶은지 지팡이로 땅을 굴려가며 사당을 찾는다. 맷방석에 둘러앉아 굿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앞을 못 보는 심 거사의 사정이 딱해 보이는지 사당의 못된 행실을 일러주며 타박을 한다. 바람이 건듯건듯 불어 차양에 걸려 있는 백열등이 흔들리고 사람들의 옷깃을 파고들어 살갗을 스쳐가는 동안에도 축시 어두운 밤에 사람들은 흥에 겨워 웃어가며 사당의 엉뚱한 짓을 심 거사에게 일러바친다.
십벌지목을 시뻘주먹으로 받으며 자신에게는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당신밖에 없다고 다짐을 놓던 아낙이 동네방네 여인네들을 다 훔쳐 놀던 중놈과 어우러져 한판 즐거움을 엮어낸다. 잘 깎아놓은 밤톨 같은 얼굴이 곱상하다. 허우대는 크고 걸지게 생겨먹은 놈이 머리에는 수숫대를 엮어 만든 송낙을 쓰고 송낙 꼭지머리에는 장삼빛깔 붉은 천으로 댕기 묶듯 묶어 놓았다. 그런 놈이 잘 다려 풀 먹인 가사를 입고 바랑을 멘 채로 심 거사 등 뒤에서 사당과 껴안고 둥실거리며 춤을 춘다. 얼마나 깨소금 쏟아지게 즐겁고 흐뭇한지 그 웃는 얼굴에서 번지르르 기름기가 좔좔 쏟아지듯 흐른다. 목에 건 백팔염주는 단 한 번도 굴려보지 않은 것처럼 매끈둥하게 빛이 나는데 흥은 흥대로 올라 축시 검은 밤이 무색하게 즐겁다.
“어야, 마누라아!”
세상이 떠내려갈 듯 호령이 날 선 부름 소리가 동네를 떠들썩하게 울려 퍼진다.
“예에에~~예!”
혼비백산하여 둥그러지고 자빠질 듯이 거꾸러지며 달려와 선다.
“자네 어디 갔다 오는가?”
“어디 갔다 왔냐고? 오줌 누고 왔어.”
지팡이를 부여잡고 엉거주춤 서서 묻는 심 거사에게 자꾸만 처져 내리는 배를 추어올리며 천연덕스럽게 대답을 한다. 구경하는 호상꾼 아짐 하나가 어믄짓 하다가 왔다고 일러주지만
“오줌 누고 왔다고? 아까 물 무지하니 퍼먹대.”
“밑도 허한께 오줌도 자주 나오요.”
“어디 가지 말고 노래 할 때 꼭 옆에 서 있게에. 어디 가지 말어. 으응?”
신신당부를 한다. 그러나 철석같은 다짐도 그때뿐, 사당은 또다시 중과 어우러져 색이 짙은 놀음을 한다. 커다란 손으로 번지르르한 얼굴을 매만지고 부둥켜안고 다리를 걸고 헤헤 실실 춤을 추면서 판이 걸게 밤놀음을 한다. 어깨에 짊어졌던 북을 내려 땅에 부리고 갈지자걸음을 걸으며 아낙을 찾아보지만 멀지도 않은 곳 세 걸음도 안 되는 곳에서 얼싸절싸 어우러져 노는 사당은 온데간데없다. 당달봉사 심 거사에게만 온데간데없는 아낙을 찾아 목이 쉬도록 불러대던 심 거사의 지팡이가 툭 멈춘다. 신발 하나가 걸린 것이다. 흘러가는 개울물에 떠내려가던 검불들이 걸린 것처럼 걸려드는 신발을 붙잡고 매만지는 심 거사의 모양이 우습기도 하지만 처량하다.
서방님 정문하러 편안히 가시오
오냐 나는 간다 너는 잘 있거라
이제나 가시면 어느 시절에 올라요
언제나 올란 줄 나는 모르겄네
아이고 답답 아이고 답답 설운 시상
차마 서러워 못살겄네
요놈의 시상을 어찌어찌 살꼬오
노래나 부르지 않았으면 밉지나 않지. 철석같은 약속의 말을 노래해 놓고 정문하러 간 자리에 물기도 마르지 않았건만 ‘어서 가서 영원히 오지 말라’ 고 손을 까분다. 밉살스런 말과 행동과 다짐이 보는 사람들의 가슴에 웃음을 남기면서도 불을 지른다. 어느 만큼 타다가 스르르 꺼질망정 초상집 마당에서 사람들 가슴에 타오른 불길이 심 거사의 더듬더듬 더듬어가는 발걸음에 꽹과리 쇄납 합주 흥건하게 울려 배웅한다.
노승노승 들어를 오소
노승노승 들어를 오소 ~~
담밖에 노승 들어를 오소
손을 눈썹 위에 올리고 이곳저곳을 살피던 중이 주춤주춤 들어온다. 그리고는 헤헤 웃으며 손을 맞잡고 예쁘다고 매만지며 좋아라 웃음을 웃는다. 다시래기 하는 사람들 말로 지랄 염병을 한다. 어느 구석에 선가는 귀신들은 다 죽었능갑다고, 저런 놈들 안 잡어가고 뭐 하고 댕기는 줄 모르겠다고 입을 오물오물해가며 욕을 한 동이나 되게 퍼붓는다. 안 그래도 축시라 귀신들이 활개를 치며 돌아다니는데 보이지 않는 것이라 아무것도 모른 채로 욕을 곱씹어댄다.
경칩을 맞는 밤이 깊어간다. 축시가 아무리 깊은 밤이라 하여도 이 날은 보름이라, 시나브로 빛을 잃어간 그믐달이 조금씩 차올라 초승달이 되고 반달이 되고 보름달이 되는 날 밤이라 세상은 밝다. 구석지에 들어앉아 젊은 시절 다른 여인의 품에서 놀아나던 서방이 늘그막에야 집이라고 돌아와 조강지처를 찾던 그 서러운 밤을 잊지 못한 여인의 설움이 귀신을 불렀던가. 하지만 귀신은 다가올 수 없었다.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이 온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기도 하겠지만 이 동네 저 동네 할 것 없이 부음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모여 앉아 다시래기 굿판을 벌이는 자리라 더듬을 수가 없는 것이다.
큰 어른 소희 가시는 길에 다시래기 없어 갈 수 있겠는가. 강 거사와 그의 아낙 사당이 벌이는 굿 한 판이 없어서 그 먼 길을 갈 수 있겠는가. 춘우 빈 가지 환하게 비쳐 들어오는 창호 문살 밖에서 속살거리는 날들을 세어가며 손꼽아 기다리던 사람, 도영의 손에 이끌려가는 길, 그 길에 축시는 머뭇거리다가 인시를 맞는다. 극렬한 어둠은 가고 희뿌옇게 밝아오는 새벽이 오는 것이다. 비로소 사람이 새 숨을 쉬는 시각, 그 생명이 움트는 시각에 옥주골 지산면 소포리 소개나루터 사람들 생명을 맞잡는다.
중놈을 찾아 마당을 한 바퀴 휘돌던 심 거사가 오다가다 꼿꼿이 서서 피 빼짝 흘리다가 오그라져 뒤질 여편네라고 욕을 해대는 것에 한편 통쾌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다 함께 중놈을 찾아 휘돈다. 그 틈에 가상제는 도굿대를 세워놓고는 심 거사 귀에 중놈 신발이라고 고자질을 한다. 얼굴이 벌게지며 사당을 잡아 족치려거니 중놈을 잡아 족치려거니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틈에 사당이 나동그라진다. 그리고는 천연덕스럽게
“여보 영감, 배 아퍼 죽겄소. 그렁게 아니고 내가 산기가 있능갑소.”
“뭣이여? 산기가 있어? 긍께 애기가 나올라능 거여?”
“예. 그렁가빈게 애기가 잘 나오게 정문을 좀 해주시오.”
“그리여. 그람 내가 독경을 히주어야지.”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드러누워 아이고오를 외친다.
삼십삼천 도솔천
홀애비 죽은 넋이는 과부방에다 몰아넣고
과부 죽은 넋이는 홀애비방에다 몰아넣어라
처녀 죽은 넋이는 총각방에다 몰아넣고
총각 죽은 넋이는 처녀방에다 몰아넣어라
동지섣달 남의 아내 ㅇㅇㅇㅇ
붕알이 얼어죽은 귀신
너도 먹고 물러가라
너도 먹고 물러가거라
무당 죽은 넋이는 방울통에다 몰아넣고
기생 죽은 넋이는 장구통에다 몰아넣어라
동에 동방 청제지신 너도 먹고 물러가고
남에 남방 적제지신 너도 먹고 물러가고
서에 서방 백제지신 너도 먹고 물러가고
북에 북방 흑제지신 너도 먹고 물러가라
정성이 부족하야 호박떡이 설었구나
명태대가리 꼼짝마라 날만 새면 내 것이다
세상없는 멋쟁이 남자라고 말들을 한다. 광이 나게 닦아놓은 구두를 신고 흰 양복 빼입고 어디고 가면 동네 가시나들 몰려들어 줄을 섰노라고, 아낙을 시도 때도 없이 울렸더라고 말을 듣는 사내놈이 당달봉사 노릇으로 곰방대 긴 장죽으로 바닥을 두들겨가며 노래를 부른다. 팔을 들어 올렸다 내리고 가슴을 접어가며 애가 잦게 불러댄다. 한편으로는 웃어가면서 호박떡이 설었다고 부르며 웃고 명태대가리는 꼼짝 마라고 자기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웃는다. 모든 것이 하룻밤 놀음이라 절절할 것도 애절할 것도 없지만 사람들을 웃기고 부모 잃은 자식들을 위로하고 웃게 해 주려는 심사로 무척이나 애를 쓴다.
그리고는 배가 아프다고 드러누워 아이고 소리를 목청껏 외치는 사당을 위해 ‘에이고, 에이고’ 힘은 자기가 쓸 테니 아기만 낳으라고 말하며 꽁꽁 힘을 쓴다. 그런다고 아기가 나오나, 산고가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닐진대 ‘그냥 팍 싸부러라아.’ 고함을 치고 ‘그냥 팍 부서부러라.’ 외치면서 무탈하게 나오기를 고대한다. 중놈이 와서 배를 주무르고 가상제가 배를 주무르면서 그 짬에도 놀음을 한다. 결국 온갖 방정이 초상집 마당을 떠들썩하게 울릴 때 드디어 아기가 나왔다고 소리를 지른다. 중놈의 손에 들려 나온 아기가 다시래기의 마지막 절정을 뒤흔든다.
겨우내 땅 속 깊이 들어가 잠을 자던 짐승들도 덮고 자던 흙을 털고 나오는 경칩을 위해 우수에는 천둥이 치고 번개가 사람들 사는 땅 위를 헤집고 가며 목우봄비 곡우봄비를 내렸던 것처럼 큰 어른 소희 가시는 길 외롭지 않게 옥주골 소포나루 사람들은 축시가 인시를 맞는 새벽에 새 생명을 태어나게 했다. 백동비녀 꽂은 소희 밤이 깊도록 새벽이 다 오도록 망자들의 몸과 영혼을 씻어 올려주며 환생의 춤을 추었던 것처럼 옥주골 사람들 울며 웃으며 새 생명을 잉태하고 낳아 환생의 염원을 담아냈다. 자시가 축시를 건너 인시로 오는 길목에서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울음을 목놓아 불러낸 것이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에~~에~~ 아리랑 음 음 음 아라리가 났네~~’를 부르며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 구순한 사람들의 얼굴 가득 웃음꽃이 피어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