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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해원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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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7. 2024

17화. 정읍네 소희 가시는 길 호상이로구나

제3부. 기다리는 여심, 환생

  님 오시던 길 이제는 님 되어 길 따라간다. 

     

  그 해 뜨겁던 여름, 팔월의 하늘은 사람들에게 엎드리라 하였다. 중복(中伏), 치우치지 아니하는 마음으로 엎드리라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치우치도록 맹렬한 더위를 정수리 맡에 흩뿌려놓고 다음날 마당에는 대서(大暑)를 올려놓았다. 소서와 입추 사이에 드렸다 하나 절기상으로는 열두 번째에 놓이는 날, 염소의 뿔도 녹일 만큼 무서운 더위를 마당에 흩뿌려 놓았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명주실강을 만들던 여인들의 마당, 그곳에서 세 여자는 귀얄에 풀을 발라 가닥가닥 늘여놓고, 들말 끝에서 끄싱개를 불러오며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한 바퀴 반을 돌아 들말에 놓이면 뱁댕이가 들어오고 뱁댕이를 안고 한 바퀴 반을 돌면 또 뱁댕이가 들어와 간격을 만들고 탄력을 만들어내던 그 여름도 어떻게 지나갔는가, 가을은 또 성큼 다가와 터트리는 매미 울음 사이로 사과 물오르는 향을 놓고 저만큼 물러서 있었다. 

  소희는 베틀 선다리에 도투마리를 올려놓는 복흥댁을 옆에 두고 신나무를 바라본다. 용두머리에 귀를 물린 원산의 몸뚱이에 붙잡혀 활등처럼 휜 나무가 직녀의 끌신에 이끌려 가면서 투덕투덕 오르고 내리고 할 것이다. 도투마리에 감긴 날실의 허리를 긁으며 이끌려 다니는 한 필의 길에서 북을 타고 날실의 강을 오가는 씨실의 눈물, 그것은 문득, 용두머리에 귀를 물린 신나무가 퍼 올린 물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물 바닥 한켠에 붙잡힌 운명, 메마른 몸에 마중물 한 바가지를 들이켜고 뻑뻑 힘을 주어 오르내리면 꾸르르륵 꾸루르르륵 가래 끓는 소리를 내고, 다시 한 바가지 물을 들이부어 뻑뻑 힘을 주어 뿜어 올리면 쾍쾍거리다가 쏟아내는 폭포수 같은 물, 그것이 직녀의 발에 이끌려 다니며 한 필의 베를 물려 나오게 하는 신나무라는 생각을 한다. 얼마나 긴 시간을 몇 필의 베로 짜이게 할 것인가. 오르내리는 횟수만큼 잉앗대에 매달려 꿈뻑꿈뻑 졸음에 겨울 나부산대 끝 눈썹노리, 그 설움, 지워지지 않을 눈물의 세월, 통한의 세월……

  ……그 강, 씨실이 북을 타고 오간 길 날실의 강이 정읍네 소희 마지막 가는 길에 하얗게 펼쳐져 있다. 


   천문이가 기다리는 바다, 세방의 노을 지는 곳 너머 천근(天根)이 새겨진 곳, 그 어디쯤으로 가는 길에 펼쳐진 씨실 품은 날실의 강, 그곳으로 간다. 

 거대한 새, 학 한 마리, 붉은 혈인(血印)의 흔적 대가리에 새기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운명을 거스르지 못했던 남자, 도영의 춤에 휩싸여 붉은 꽃신을 신는다. 한 짝의 신발을 찾지 못해 헤매던 남자의 추억이 있던 바다로 간다. 


    허어 어허어 어허~ 으으어어 어어어~

    재~해 ~에 에~ 에~에헤~에~ 호상~

    제~해 ~에에~ 에~에헤~에~ 호상이로구나~

    나~무~여 허어 어허어 어히~ 여~ 어~ 로구나

    다 냐 다 허~ 여어 허~어로구나

    나무 나무여~아~미~타~불


  멀리서 대금 우는 소리 들려온다. 사람 애간장 녹아드는 밭은 소리 흐느낌이 초혼의 고복의식처럼 들려온다. 마디를 끊어치는 장구가 덩 따 덩떠덩 덩 따 궁~ 서럽게 울며 나온다. 씨실이 북을 타고 오가던 길 날실의 강에 정읍네 소희 마지막 가는 길이 하얗게 펼쳐져 있다. 지워지지 않을 눈물의 세월, 통한의 세월……그 강으로 하얀 빛깔 명주실 도포를 입은 도영이 춤사위 실은 걸음으로 들어온다. 쟁그랑 쟁쟁~~ 쟁그랑 쟁쟁 소희의 손끝에서 울리던 종이 도영의 손에 들려 나온다. 너울너울 나비 한 마리 소맷자락 높이 들어 올리며 춤을 춘다.

  발등까지 내리 닿은 옷자락은 나비의 몸이 되고 오금팽이 아래까지 축 늘어진 소맷자락은 활짝 펼친 날개가 된다. 세상사 온갖 시름 아직 털어내지 못한 얼굴은 검은 듯 붉고 이마를 둘러 묶은 수건은 결연한 의지인 양 뒤로 돌려 나비고름으로 묶었다. 그 위에 눌러쓴 백립 갓 위에는 바람에 실려 형체 없이 날릴 꿩의 날개인가. 부들부들 질정 없이 흔들리며 날리는 억새꽃잎인가. 하얗게 날리고 있다.

  합죽선 높이 들고 밤하늘 깊은 곳에 별 하나 점을 찍던 손에 은종인가 금종인가, 청룡 한 쌍이 깃들어 숨 쉬던 용소(龍沼)를 들고 세방의 노을 지는 곳 너머 천근(天根)이 새겨진 곳을 향해 갈 소희의 넋을 위무하는 춤을 춘다. ~ 오늘같이 좋은 날 때가 되고 시가 찼던가 이 정성을 다 발원했으니 복 받기 기원하는 후손들 사는 자리에 복덕주고 생기주는 무주상보시 무량무변의 보시 다했으니 가시는 길 금다리 옥다리 세왕다리 건너 왕생극락 합시다아~ 그려~ 추어올리던 소희의 길 닦음 소리가 호상(好喪)으로 매겨진다. 세왕산 가시자고 하적(하직)을 하는 소희의 넋에게 호상이라고 말을 해준다.      


   동에로 뻗은 가지 금호보살 열리시고

   남에로 뻗은 가지 목토보살 열렸네

   서에로 뻗은 가지 수호보살 열리시고

   북에로 뻗은 가지 화보살 열렸네

   나무야 나무야 나무나무 나무야 

   나무 불이나~아~미~타~불     


  이제 소희의 넋은 청룡 한 쌍 깊이 잠든 용소에 담겨 배에 올라앉는다. 도영의 손에 이끌려 높이 올라선 용선(龍船)이 명주실강에 내려선다. 얼마나 멀게 뻗은 길인가. 얼마나 거칠게 뻗은 길인가. 누구도 함께 갈 수 없는 길, 홀로 가야 하는 길 ……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의 영혼을 이끌어 닦아서 보내주던 길 위에 이제는 자신이 섰건만 그 아득한 거리를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강물은 잔잔하다. 도영의 손에 이끌려 세왕산 가는 소희의 부음(訃音)을 들었을까. 오고 가는 길목에서 갖가지 사연을 실어 울고 웃으며 길을 가던 수많은 영혼들의 탄원이 저승의 강을 수호하는 신들에게 닿았음일까. 순풍에 돛 달고 나아가는 배처럼 명주실강에 두둥실 떠오른 용선은 도영의 손길이 이끄는 대로 막힘없이 나아간다. 씨실을 실어 날실의 강을 건너던 목선(木船) 북처럼 물살을 가르며 한가로이 떠간다.    

  

   연화대 가세 구푸데 가세 

   이승길을 닦을려면 쇠시랑 괭이로 길을 닦고 

   저승길을 닦으려면 여래 염불로나 길이나 닦세 

   이 다리를 실수허면 화탕 도산을 못 면허고 

   이 다리를 잘 건너야 왕생극락을 가신다네

   나무야 나무야 나무나무 나무야 

   새왕산 가시자고 나무아미타불 


  소희의 굿마당에서 에~에에~에헤에~야 에~에헤~에~에헤에~야 천근이야 천근이야~~소리를 따라 부르던 사람들 모두 호상이라고 말을 받는다. 정읍네 소희 가시는 길이라고 소식 들은 사람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다 나와 있다. 멀리서 영롱하게 비쳐오던 가마, 상여 타고 님 찾아가는 길 배웅하러 다들 나와 있다. 허리 구부러져 지팡이 짚은 사람, 검은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는 백발의 이름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나와서 어정거리고 있다. 아직 젊어 꽃다운 나이 혈기 방성한 사람들도 나와서 이런저런 일들을 돕고, 젊은 장정들 두세두세 모여들어 상여를 메고 갈 상두꾼으로 나와서 막걸리를 마시며, 울음을 우는 아들과 딸, 며느리와 사위를 바라본다. 상복으로 갈아입고 마지막 걸음의 뒤를 따를 혈육들의 눈물을 보며 따라 운다. 하얀 무명 펼쳐 어깨에 메고 길을 나서려는 동네 아짐들의 얼굴에도 눈물이 흘러 번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전에 정읍네 소희가 그랬던 것처럼 ‘~ ~ 호상이로구나’를 뽑아 든다. 꽹과리를 들고 장구를 메고……북을 메고서 소고와 함께 가는 사람들 다 함께 ‘어화 넘차 어허야~ 이제 가면 언제 오나~’를 따르며 지난날을 회상한다. 쇠시랑 괭이로 길을 닦고 여래 염불로나 길을 닦던 사람들 모두 흰옷을 입고 순백의 이별을 맞이한다. 

    

  어-  어-  어-     


  땅거미 짙게 내려 어둑어둑해지던 하늘에 이제는 밝은 기운 한 점이 없다. 시복이네 집 뒷곁 담장을 헐은 음습한 곳에 다 쓰러져가는 초막이 하나 있다. 온 동네 사람들 누구든 마지막 가는 길에는 어김없이 타고 갈 가마 상여와 영여가 널브러져 있다. 누구라도 끝내는 탈 것이지만 끝내를 두려워하는 사람 누구든 햇살 맑게 부서지는 환한 대낮에도 다가가기를 주저하는 곳이다. 그런데 오늘 동네의 큰 어른 소희 가시는 길이라고 상두계꾼 호상계꾼 누구든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가 해체되어 널브러져 있는 상여틀과 영여틀 조각들을 들고 나온다. 

  소나무와 구름이 그려져 있고, 연꽃과 사슴이 그려져 있는 판을 휘감고 날아오르는 용의 날선 이빨이 그저 누군가의 붓에 의해 쓱쓱 그려진 것일지라도 흠칫 놀란 심장이 쿵쿵거리게 한다. 


  “어이, 판석이, 어쪄? 장화(종이꽃) 만들 사람들은 다 모였는가?”

  “예. 아직 다 모인 것은 아닌 것 같으디라, 기다리고 자실 것 없이 그냥 만들랑갑이요.”

  “그랴? 장화계꾼들이 영 굼뜬가비다. 언지 다 만들라고 저렇게 꾸물거린당가?”

  “사람은 많응께 고닥 만들지라.”

  “아, 이 사람아. 영여고 상여고 빽빽허게 다 채울라믄 없어도 이백팔십 숭어리는 넘어야 허고, 삼백 숭어리가 넘어얄 것인디……, 아, 장화계장이 누구여?”

  “아, 성님. 사람 마음이 다 지각각이다봉께 그렁마요. 얼릉얼릉 서둘팅께 역정 그만 내시요오. 귀가 다아 아프다고 울상이요.”

  “아, 그랴. 어서들 서둘러. 자정 넘으먼 쩌어그 강 초시 양반 다시래기 헌다고 올 것인디, 그리도오 연습은 한 번씩들 히봐얄 것 아닝가.”

  “글고오, 만상이, 꼭두는 챙겼는가아?”

  “예. 다 챙겼능갑인디……멪 개가 모자란 성 싶으요.”

  “아이, 지난번에 쓰고 잘 뒀을 틴디?”

  “그런다고는 했는디……, 닭이 모서리 네 구석 꼽을 것까지는 다 맞는개비고오, 측면에 붙일 것은 있고오 얼추 다 있는디, 동방삭도 있고오, 용, 관음보살도 계시고오, 다 있는디이……아앗, 어라, 팔선녀가 부족허구만요. 팔선녀가아 어디를 가셨다요오. 팔선녀어…….”

  “염병허네에. 선녀라고헝께 고것도 인물탐이라고 꼭 고것만 챙겨서 잃어버렸다냐? 만상이 너그 집 작은방에 몰래 갖다 숨켜놨냐? 어쩠등간에 못이 부족허믄 안 되는디, 거그다가 쇠못 댈 것이냐? 얼릉 찾아 놓등가 새칠로 맨들등가아 허고……서둘러어.”


  장만상이 흐흐거리며 사람 좋은 웃음을 웃는 사이에도 사람들의 손끝과 발끝이 바쁘게 움직인다. 문상하러 오는 사람들 손에 들려오는 부조물들이 솥에 들어가고 샘물에 씻겨서 상에 올라간다. 상갓집 제청에 들어서는 발길들이라 어쩐지 무겁고 심란한 가운데서도 꽹과리 을러보는 소리와 장구 맞추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고 북이며 소고며 태평소 쇄납까지 한데 어우러지느라 수선을 떤다. 

  어느덧 자정이 가까울 무렵 강 초시가 들어서고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상갓집 잔치가 흥을 타려 움직인다. 소희 영정 앞에 절을 하는 강 초시의 눈에 눈물이 솟는다. 지나간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가. 두 번의 절이 느리게 이루어지고 거무튀튀하게 칠한 눈두덩이의 칠이 주르륵 줄기를 이룬다. 상주들과 맞절을 하는 동안에도 다 떨어진 갓을 빨래 쥐어짜 듯 잔뜩 쥐어짜놓은 것이 맥없이 흔들거린다. 큰 어른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하러 온 꼬라지 하고는 참말로 격조 없는 차림 같지만 천문이네 살아온 삶의 마당 마당에서 함께 해온 나날들에 베인 숨소리와 한(恨)의 소리들이 그저 맞잡고 울음을 운다.  

    

  어- 어- 어 

 크게 부르짖는 소리가 세 번 들려오고 종이로 만든 상여가 들어온다. 물살을 가르며 노 저어 가는 배 모양의 상여틀이 새끼줄 위에 외베를 감싸고, 그 위에 빈 관을 올려 천으로 감싼 뒤 꽃대에 지전과 담배꽃을 달아맨 상여가 들어온다. 상두꾼들 호상꾼들 다부진 어깨에 올라가 들어온다. 

  ~ 땅 땅 땅따당 땅땅 땅따당  따당 따당 땅따당 ~ ~

 꽹과리 소리가 들려오고 장구소리 섞여 들어오는 사이로 쇄납의 소리가 판에 흥을 돋구어 올린다. 먼지가 뒤섞여 날리는 판을 쓸고 닦아내어 정갈하게 만들려는 것처럼 쇠와 장구와 북이 쇄납의 소리에 섞여 판을 열고 징이 끝을 맺어 상여를 맞아들인다.      


   어-  어- 어-


   애애 애애 애야- 애- 애애- 

   애-애야 애- 애애- 야

   어이를 갈꺼나 어이를 갈꺼나나

   심산험로를 어이를 갈꺼나 

   애애 애애 애야- 

   애- 애애- 애-애야 애- 애애- 야     


   바람도 쉬어 넘고

   날짐승도 쉬어가는

   심산험로를 어이를 갈꺼나 

   애애 애애 애야- 

   애- 애애- 애-애야 애- 애애- 야    

 

   북망산천이 멀다고 허는데

   저 건너 안산이 북망일세

   애애 애애 애야- 

   애- 애애- 애-애야 애- 애애- 야    

 

   우리같은 초로인생

   아차 한번 죽어지면

   북망산천의 흙이로구나

   애애 애애 애야- 

   애- 애애- 애-애야 애- 애애- 야     


   가난님 보살

   가나님 보살

   가자서라 가자서라

   가난님 보살

   세왕가고 극락가세

   가난님 보살~~


  상두계 호상계 장화계 할 것 없이 모두 덤벼들어 상여를 꾸미고 영여를 꾸미느라 북새통을 이루던 시간들도 지나가고 그들 모두가 하나 되어 상여를 메고 제청으로 들어선다. 칙칙한 어둠과 향내가 마당 가득 흘러넘쳐 안개에 휩싸인 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상두꾼들이 상여를 메고 오는 앞에 앞소리를 메기는 사람과 뒷소리를 메기는 사람이 요령을 흔들며 애소리를 후렴으로 붙인다. 모두가 함께 부르고 앞소리꾼 뒷소리꾼 메기고 받는 사이로 사람들 후렴으로 붙여 눈물을 흘린다. 애잔하게 흐르는 소리가 모두를 울리는 밤 상여 뒤에는 만장과 공포가 따르고 가상제가 따른다. 날이 밝으면 상주들에게 있을 일을 밤에 미리 치르며 상주들을 웃게 해주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소희 살았을 적 모습의 한 장면으로 펼쳐진다. 그 뒤를 따라오는 다시래기 가상제가 도굿대를 들고 따라들고 강초시와 사당이 뒤를 따라든다. 살아온 시간들이 천문이가 했던 대로 소희가 했던 대로 따라서 흐른다. 밤이 흐른다. 설움이 흐른다. 바람이 흐르고 구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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