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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해원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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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7. 2024

15화. 땅도 땅도 내땅이다

제3부. 기다리는 여심, 환생

  “자는가?”

  불 꺼진 어두운 방 안에서 입은 옷 대충 벗어놓고 누워 부스럭거리던 상쇠영감 홍술이 묻는다. 

  “아니여라. 뭐 필요하신 거라도 있는가라?”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잠을 잊는가, 일부러 한쪽 팔을 눈가에 올려 누르고는 잠을 청해 보지만 좀처럼 잠이 들지 않는다. 

  “아니, 뭐 필요한 것은 없는디, 으째 잠이 통 오지 않는구만.”

  “사실은 저도 잠이 오지 않아 그냥 누워만 있구만이라.”

  “희수, 자네 참말로 잘하더구만. 으째 동네서 연습을 할 때보다 더 잘 헝께 영 딴 사람 보능 것 같더만. 아주 신명이 올라부렀어.”

  “아직도 부족한 디가 많은디 영감께서 그리 말씀을 해 주싱께 챙피헌 마음이 드는구만이라.”

 왁자하던 선착장 주막에 들었던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집으로 돌아가고 몇 남지 않은 사람들도 둘씩 셋씩 무리지어 들어간 방에서 깊은 잠에 빠져든 밤이다. 옆방에서 잠든 치들의 코 고는 소리가 벽을 타고 들어온다. 그런데도 누군가 상쇠영감의 말을 엿듣고는 칭찬을 낼름낼름 잘도 받아넘기는구나 쥐어박기라도 할 것 같은 생각이 일며 얼굴이 붉어진다. 

  “아니여. 잘 힜어. 참말로 잘 혔어…….”

  “고맙구만이라.”

  “희수야, 근디, 근디 말이다아……, 너그 아부지는 장구를 참 잘 쳤다. 열채고 궁채고 잡었다허면 그 솜씨를 따러갈 사램이 없었다. 니가 판에서 버꾸 치며 노는 것을 봉께 어쩐지 너그 아부지 생각이 자꾸 나는디, 눈물이 나는 것이 참말로 잔 그렇드라.”

  목이 멘다. 순간 피어올랐다 순간 사라지고, 이것저것 불쑥 일어나 앞도 뒤도 없이 뒤엉키고 마는 생각 부스러기들로 인해 몸은 피곤한데도 정신은 도리어 말짱해지는 까만 밤에 느닷없이 나오는 아버지 이야기에 목이 메어 온다. 

  “희수야, 우리덜이 매양 정월이든 언지든 치고 노는 매굿이라는 것이 사실은 액막이다. 뭐 모 심고 보리 심는 논 가운데 들어가서 방갓 쓰고 노는 굿이야 들노래 흥겨운 가락이겄지만, 그렇다고 삐잉 둘러봐도 맨 바다뿐인 섬마을에서 농사라고 히봤자. 별 것 없는 것이고……실상은 일 년 열두 달 아무 탈 없이 잘 살아보자고 허는 굿이제 별 것 아니다. 쩌그 임실 강진 사람들은 니 동네 내 동네 헐 것도 없이 순창허고 어깨 맞대고 상께 첩첩이 산중이라 배고픈 시정이 곤란헌 때도 많던가비라 걸궁도 치고 그런다등만, 그런다고는 히도 그짝 사람덜은 땅이 넓응께 액막이보다는 두레농악에 심을 쓰능가비더라. 긍께로 굿가락이 심찬 것이 빠르게 몰아치등마이. 근디, 쩌그 정읍이나 부안 사람들은 잔가락을 많이 쓰더라. 어찌 그럴꺼나? 거리가 좀 떨어져 있긴 혀도 다 같은 북돈디 말이여, 가락이 그렇게도 다를 수도 있당가이, 솔찮이 달부던디이……”

  “예. 가락도 많이 다르고 노는 것도 많이 다르더구만요. 근디, 순창허고 임실은 산세가 험허고 골짜기도 짚은디 거그서 거그라 어깨를 맞대고 있는 폭잉께 사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은데, 정읍허고 부안은 칠보 그 높은 산을 건너서 태인을 거쳐 강께 거리도 멀고 사는 것도 완전히 다릉가벼라. 글고 사람들한테 들응께 정읍하고 부안은 들판이 엄청나게 넓다고 허등마요. 고부 정읍, 부안 김제는 가도 가도 들이 끝이 없이 이어져 있다능구만요. 김제 같은 디는 산이 없단디라……글다 봉께 농사지어 가을이면 쌀이고 보리고 넘쳐나고 콩이고 밀이고 넘쳐낭께 농악도 한 번 놀면 푸지게 논다능구만요. 그것도 집안마다 살림은 다르겄지만은 두레 농악이 겁나게 크게 벌어징게 가락도 잔가락이 많이 들어가고, 노는 것도 멋이 들어 동작들이 겁나게 이쁘고 화려하다고들 허등마요.”

  “그려. 살림살이가 좋으면 당연히 풍류 잡아가며 놀겄등만.”

 누운 채로 한숨을 쉰다.

  “언지라도 한 번 세상구경 나가봐야 쓸랑갑다. 우물 안에 사는 개굴치도 아닌디 말이여 섬구석에 쳐박혀 상께 시상을 알어야지 말이다……그건 그렇고, 희수야, 요즘 니 어매는 쟌 어떠시냐? 이런 사람 보기에는 에징간허신 것 같은디, 사람들 말은 여러 갈래던디 참말로 그러냐?”

  “예. 예전과는 다르게 총기도 많이 떨어지신 거 맹이고, 늦게 온다 일찍 온다 성화가 더 불 같아지셨구만이라.”

  한숨을 쉰다. 낮게 눌러 쉬는 숨이라도 둘밖에 없는 조그만 방 안에 빠져나갈 틈이 없으니, 그것이 서로의 가슴을 조이는 숨이 되어 무겁게 내려앉는다.

  “그리야.”

  “…….”

  “희수야, 그 해에도 우리는 액막이를 심허게 했어야. 그 때는 먼 일인가는 모르겄는디, 자꼬 사람들 마음이 어딘지 모르게 불안허고, 톡별나게 죄진 것도 없는디 자꼬 뒤가 켕기고 말이여, 참말로 그런 해는 건성으로 살어서는 큰 탈이 나부럴팅게 싶어 다들 조심해야 된다고 말히쌈성 조심조심 살었이야. 당산 들어 제 지내고 내려와 집집마다 들어가서 나쁜 기운 씻어내고 좋은 기운 들일라고 돈도 술도 내고 떡도 내고 험성 다들 마음을 모으니라고 마음속에 땀을 쟁에 놨어야. 땀이라는 것이 정성잉께 풀떡풀떡 차곡차곡 쌓아두고 함부로 내뿜지 않았어야. 샘굿 헐 때는 참말로 볼만 했다. 뛰면서 우렁차게 외치면서 서로 권하고 서로 나누면서 참말로 가슴 벅차게 뛰었어야. 그 때는 그랬는디……. 너는 잘 모를 것이다. 느그 아부지 당헌 일을 안다고는 히도 다 모를 것이고, 그 날도, 그 아픈 설움도 너는 모를 것이다. 너그만 아픈 것이 아니고 동네 사람들 마음 한 구석 다들 아프니께 서로들 입을 다물어버렸지. 약속이라는 것도 없었는디……다들 그맀어. 전쟁이 나도 그런대로 지나가고, 오른쪽으로 섰는가 왼쪽으로 섰는가 험성 따져 묻는 동안에도, 그리서 이런 사람 눈에는 죄도 없는 사람들을 한 데 묶어 총으로 쏴불던 시절에도 우리 동네는 큰 피해 없이 지내 갔는디……어쩐다고 그 해는 그렇게 그랬는지, 언진가는 한 번 하늘에다가 삿대질을 험성 물어볼라고도 했구만. 아퍼야. 멍든 가슴이 무시로 아퍼야.”

  “……아버지.”     


  “희수야, 너그 어매 굿은 참말로 걸지고 좋았다. 그런 중에도 말이다아, 우리덜이 치는 매굿에 샘굿도 있고 문굿이나 정재굿도 있제만은 너그 어매 허는 굿에는 비길 것이 없제만은 말이다, 모든 굿에는 맺고 푸는 자리가 있게 마련이잖냐? 그란데, 맺고 푸는 디에도 자잘헌 디가 있고, 굵으면서도 묵직헌 디가 있어야. 우덜이 걸군농악을 칠 때도 창부놈을 발견허기 전까지는 얼마나 가볍고 즐겁냐? 참말로 명관이놈 태평소 불어재끼는 날라리 소리 들어감시로 꽹과리 소리 매기고 장구소리 풀어놓으면 참말로 다들 얼굴에 꼬깔맹이로 화사하게 웃고들 뛰잖냐. 다들 풀어져 있는 거여. 그러다가도 조리중 그 가이내가 눈 부리부리 뜨고 아장거리면서나 한삼자락 펄럭거리면 참말로 걍, 그것이 그냥 허는 짓거리인중 아는디도 말이여, 이상케 가슴이 뛴다이. 왜 긍가 모르겄어야. 가슴이 둥개둥개 뛰면서 맴이 바빠져야. 고걸 누룰라고 그냥 그런 것이다아 셈을 허는 디도 안되야. 참말로 조리중 가이내 고것이 애물단지 같어야. 긍께로 어쩔거여. 뛰야지. 기양 한 박으로 침성 빠르게 몰아가면서 거 만상인지 우거지상인지 창부놈을 몰아재끼잖냐? 말허자면 고거이 맺는 것 아니겄냐? 성질 같어서는 영기 앞에 쪼글치고 앉었는 그 창부놈 다리를 걸어서 자빠뜨려갖고 다리몽댕이를 걍 작신 분질러 놓고 잪은디, 아이, 고놈이 쩟, 호랭이나 물어갈 놈, 참말로 세상없이 착헌 놈 장만상이놈 아니냐? 어쩌겄냐? 또 풀어줘야지. 긍께로 굿이란 것이 그런 거여. 사정 봐감성 풀었다 조였다 험성 강약을 조절허능 거여. 긍께로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덩기덩기 덩기덩 덩기덩기 덩기덩 ~ ~ 치면서 가운데로 모여들었다 뒤로 빠졌다 험성 간격을 벌려놓는 것이여. 아무리 그놈이 미운놈이여도 미운놈 떡 하나 더 주드라고 숨통을 풀어줌성 조이고 풀어줌성 조이고 허능 거여. 인정이이라는 것이 그런 거여, 금성 한 판 늘어지게 노는 것이제.”

  “… ….”

  “희수야, 자냐?”

  “아니여라.”

  “근디 소리가 없응께, 잘란디 내가 자꾸 말을 겅께 니가 괴로운가비다.”

  “아니여라. 영감님 말씀 새겨듣고 있구만이라. 다 알고 있는 것 같은디도 들으면 들을 때마다 새로운게 새겨 듣니라고 그렇구만이라.”

  “그려. 자세가 됐다. 너도 잘 알제마는 한 박으로 몰아치는 것도 달러야. 창부놈 붙잡으러 갈 때는 같은 한 박이어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 같은 것이 있는디, 잡어갖고 풀어줄 때는 느슨해지면서 여유가 있어야. 긍께, 고럴 때 풍류의 감정이 생겨야. 꽉 잡아 몰아붙일 때는 괘씸한 마음과 이놈을 본때를 보여줘야지 험성 앙심이 생겨나는디, 안으로 죄였다 밖으로 풀었다 헐 때는 괜시리 불쌍한 생각이 들면서 너무 했는가 싶은 맘도 생겨야. 긍께 자연 박자에도 밀고 땡기는 것이 생기는 것이여.”

 “그란디라, 영감님, 지금이야 평화로운 시절이고, 옛날 임란과는 다른 때니까 창부가 그저 마음 좋은 만상이 아재지, 그 옛날로 치면 세작인디라 마음이 그렇게 허술해서 쓰겄는가라?”

 “그려. 니 말이 틀린 디가 없는디, 말허자면 그렇다는 것이제. 어디 임란까지 올라가겄냐? 우덜이 왜놈덜한티 꽉 잽혀갖고 옴짝달싹 못헐 때도 우덜 걸군농악은 독립을 해야 된다고 일깨우고 댕기는 선상들헌티는 참 요긴허게 쓰였으야. 독립군 허는 사람들도 먹어야 할 것이고, 옷도 입어야 하는디, 그런 것들은 제쳐두고라도 총도 사고 무기도 만들어야 허니께 돈이 많이 필요하제. 그란디 우덜 같은 사람들은 심바람 허기도 좋고 왜놈들 눈을 돌려 두는 디도 잘 써먹었어야. 어디 그것만이냐? 우덜이 모여갖고 굿을 침서나 독립을 해야 된다고 마음을 모으는 디도 농악은 지 역할을 톡톡히 했어야. 그렁께 왜놈덜이 앞잽이놈들 세우고 와서는 꽹과리고 징이고 다 뺏아가불고, 그놈으로 총알 맹글고, 그리갖고는 우덜 조선 사람들을 꼼짝도 못 허게 허고 그랬제. 사람들 모이도 못허게 막았이야. 조금만 뭣헌 소리 하믄 귀신같이 알고 와갖고 묶어가불고, 총 쏘아불고, 칼 차고 댕김성 매급시 철거덕거리고 말이다. 징했어야. 그 시절을 어떻게 용케 죽지 않고 살어서 요러고 살고 있는디, 참말로 꿈만 같이야. 근디 고거이 옛날 얘기지 지금이야 개명천지 아니냐? 결기는 죽지 않고 살어서 아직도 꽹과리 잡고 징 잡으면 어쩐지 다들 마음이 달라져갖고는 장만상이놈을 어떻게든 봐불라고 허는디, 그것도 어디까지나 농악 본이 그렁게 그라지 그것이 어디 참말이겄냐?”

  “그렇지요. 근디, 우리 소포리 농악이 참말로 서산대사 진법농악일까라?”

  “그러지야. 그것이 그랬다는 기록이 아직도 남어 있응께. 긍께 우리 소포리 농악이 근본이 조촐허지가 않어야. 너도 알랑가 모르겄다만, 지금이야 세월이 흘러서 집사를 병식이가 맡고 있지만 주찬계 어른 집안에서 서산대사 진법농악이라고 보는 걸군악보의 후반부 일부를 갖고 있었어야. 긍께 주찬계 그 어른이 그것을 신주단지 모시대끼 보관을 해 왔는디, 그것이 임란 때 서산대사가 창안한 진법이라는 말도 있고, 이 충무공 휘하 장병들이 소포리 서북간방 있잖냐? 둔배산 아래 염전에서 한 달허고도 열흘씩이나 모종의 작전을 수행하는디 권 씨의 염전막에서 일하던 염부들을 걸군조직으로 활용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응께, 어쨌든 우리 걸군 농악이 나라를 지킬라는 디로 긴요하게 쓰였던 것은 사실잉가비더라. 어야. 사실 그 말이 전부는 아닌디… …아야, 너나 나나 잠자기는 글러부렀다. 일어나서 불이나 좀 키봐라. 담배나 한 대 꼬실림성 말히야지……입이 씨다. 사램이 늙는갑다.”

  희수가 일어나 불을 켠다. 천장에서 달고 내려온 끈에 매달린 백열등이 차갑게 흔들린다. 백열등을 꽉 물고 있는 새까만 소켓 옆구리에 달려 있는 스위치를 돌려 불을 켠다. 삼십 촉짜리 불빛이 어둠을 몰아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방인가. 천장 곳곳에 쥐들이 싸질러놓은 오줌들이 누렇게 바래 얼룩덜룩 점점이 박혀 있고, 벽을 타고 쪼르르 내려오다 말고 도망쳐 올라간 쥐 놈들 발길질에 채인 흙벽에 생채기가 생기면서 떨어져 내린 굵직한 흙덩이 냄새가 후줄근하게 풍겨온다. 한 모금을 힘껏 빨아 입 안 가득 물고 있다가 뿜어내는 담배 연기가 자리에 앉는 희수의 얼굴을 덮는다. 안개 같은 연기에 휩싸인 희수가 눈을 찡그린다. 매캐한 담배 연기가 눈을 찌르고 눈에서는 알싸한 눈물이 솟는다. 그 냄새가 폐부 깊숙한 곳으로 파고든다. 심장이 울린다. 고동친다. 뻑뻑 빨아재끼던 담배꽁초가 타들어가 투박한 손에서 잉깔라진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내놈들의 담배가 잉깔라진 재떨이의 우둘투둘한 면에서 또 한 개비의 담배가 잉깔라진다. 황갈색의 가루가 침에 절어진다. 무엇이 이 밤 상쇠영감을 잠 못 들게 하는가. 액막이 그것이 어쨌다는 것인가? 도통 알 수 없는 밤이 두 사람을 두고 혼자서 간다.      


   아따 우리 마을 터신들께서 그동안 너무 배가 고파 서러웠는디

   인자 배가 절반 정도 차올르요. 여기 배꼽까지 올라왔소이~~

   자, 오늘날 천 가지 만 가지 일만 가지 부정 싹 다 걷어다가

   손끝에 담뿍 씻어서 우리 마을 사람들 가는 길에 쌓인 부정까지

   다 빗자루로 싹 싹 쓸어서 던져버리고 

   생기 주고 밥도 주고 좋은 기운 다 주어서

   복되고 재수 좋은 날들로만 이루어지자고

   천 부정 만 부정까지 다 걷어나가 봅시다 그려이~~   

  

   왕아 신아 액이로구나~~


   액을 막어 예방허고 살을 막어 삭제해 

   하나 옷을 벗어다가 열의 액을 막었네 

   열의 옷을 벗어다가 하나 액을 막아주세 

   정칠월 이팔월 삼구월 사시월 오동지 육석달이 

   번개같이 넘어가도 궂고 낮은 살기는 막아서 예방하세~~~ 

    

   동서남북

   정월에 드는 액은 정월대보름날로 막아내세

   이월에 드는 액은 이월연등달로 막아내세

   삼월에 드는 액은 삼월삼짇날로 막아내세

   사월에 드는 액은 사월 초파일날 막아주세

   오월에 드는 액은 오월단옷날로 막아내세

   유월에 드는 액은 유월유두날로 막아내세

   칠월에 드는 액은 칠월칠석날로 막아내고

   팔월에 드는 액은 팔월한가위날로 막아내세

   구월에 드는 액은 구월중구날로 막아내고

   시월에 드는 액은 시월시제날로 막아내세

   동짓달에 드는 액은 동지섣달로 막아내세

   섣달에 드는 액은 섣달그믐날로 막아내세

   액을 막어 예방하고 살을 막어 삭제(朔祭)할제    

 

   전라남도 보배섬 보배읍 지산면 소포리 사람들 

   액이나 막아주세~~(사설 생략)


  에에루 액이야 어라 종천 액이로구나~~~~     


   동에는 청제장군 청말에 청안장 청투구 쓰고 

                  청갑옷 입고 청가래 청살을 손에다 들고 동방으로 떨어져 

                  집안에 (수)살을 다 걷어가세

                  에에루 액이야 어라종천 액이로구나~~~~

   남에는 적제장군 적말에 적안장 적투구 쓰고

                  적갑옷 입고 적가래 적살을 손에다 들고 남방으로 떨어져서

                  집안에 (우환)을 다 걷어가세

                  에에루 액이야 어라 종천 액이로구나~~~~

   서에는 백제장군 백말에 백안장 백투구 쓰고

                  백갑옷 입고 백가래 백살을 손에다 들고 서방으로 떨어져서

                  집안에 (관제)도 다 예방하세

                  에에루 액이야 어라 종천 액이로구나~~~~

   북에는 흑제장군 흑말에 흑안장 흑투구 쓰고

                  흑갑옷 입고 흑가래 흑살을 손에다 들고 북방으로 떨어져서

                  집안에 (삼제)도 다 걷어가세

                  에에루 액이야 어라 종천 액이로구나~~~~

   중앙에는 황제장군 황말에 황안장 황투구 쓰고

                  황갑옷 입고 황가래 황살을 손에다 들고 중앙으로 떨어져서

                  집안에 (신살)도 다 걷어가세

                  에에라 액이야 어어라 종천 액이로구나~~     


  “느그 오매가 액막이를 헐 때는 느그 아부지도 긴장을 많이 했어야. 제석굿을 할 때는 모든 것이 푸지고 모든 것이 넘치게 좋은디, 긍께 장구가락도 그냥 늘어지게 낭창낭창 사치스럽고 흥에 겨운디 말이여, 액막이로 들어서면 모두가 얼굴판부터가 달려져분다 이거여. 웃음기가 다 거두어지고, 어딘지 불안하게 굳은 표정으로 촉각을 세운다 이거여.”

  “아닌 게 아니라 어매 굿 허실 때 한 번씩 따러가 보면 액막이 할 때는 유달리 긴장을 하시등마요.”

  “그라제. 진짜 굿의 목적이 어쩌면 거그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여야. 누구든지 살어가는 디 가장 중요헌 것은 사램이 살고 죽는 것잉께, 막말로 돈이라는 것이 꼭 그러겄냐마는 그리도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 돈이여야. 물론 없으면 불편허고 있으면 세상에 질로 좋은 것이 돈이여. 못난 사람도 돈 있으면 잘난 사람이 되야불고, 본래 잘난 사람은 더더구나 더 좋은 것이 돈이제마는. 거어, 나 같은 사램은 마누래보다 더 존 것이 돈이지만 말이다……헤헤, 그것 없다고 완전히 죽는 것은 아니어야. 하지만 건강은 한 번 잃으면 다 잃는 것이나 진배없어야. 나무 부러진 디다 풀 붙인다고 그것이 살어나겄냐. 긍께 뭣보다도 중헌 것이 건강인디, 액막이라는 것이 종국에는 해로운 기운은 모두 없애버리고 좋은 것만 골라서 받자는 것 아니겄냐? 사람이 돈도 있고 건강도 좋으면 금상첨환디, 얼굴에 구정물 튀면 있던 돈도 솔래솔래 기어나가버리고, 넘보기 그렇게도 호사스럽던 권력도 사실 말이다, 얼굴에 구정물 튀고 이름짜에 흙탕물 튕기면 하얀 모시옷 차려입고 나간 길에 흙탕물 뒤집어쓰는 것잉께 …… 스으읍 푸우…… 어쩌겄어? 벗어야지. 웃옷 벗으면 아래옷 벗어야 허고, 그러니라 허면 속옷도 벗어야겄지. 우세도 그런 우세가 없제. 허기 좋은 말로 인생사 새옹지마라고들 허는디……그것이 그렇게 되기까지 쉽지가 않은 것이다. 긍께로 액막이가 잡다한 것들을 싹 쓸어내는 것이고, 맑고 깨끗헌 기운들로 채워 넣는 것인디 말이여……. 그때는 긍께 어찌서 그놈의 액살(厄煞)이 그리도 두껍고 찰거머리마냥 질기고 드샜는지, 차암 알다가도 모르겄당께.”     


  하얀 쾌자를 입은 소희가 마당을 빙빙 돌며 축원을 한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처럼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축원의 말을 한다. 그동안 마을 사람들의 안위를 위해 일 년 열두 달 쉬는 날 없이 지켜온 정성이건만 그런 마을의 성주인데, 그래도 마을의 터줏대감인데 대접이 소홀했다고 서운해하던 신들이 오늘은 마을 사람들의 정성을 가상하게 여겨 배가 차오른다고 말을 전한다. 그러니 천만 가지 오만 가지 모든 부정한 것들은 빗자루로 싹 쓸어서 던져버리자며 들고 있는 정종의 상아 채를 위에서 아래로 빗겨 내리며 마당을 쓸어내는 행신을 한다. 그리고는 생기 주고 복도 주자고 청하며 독백 축원의 끝을 쳐올린다. 소리꾼의 너름새가 끝나고 창이 시작되려는 것처럼 ‘걷어나가 봅시다 그리여 ~’ 끝에 힘을 주어 한껏 추어올린다. 순간의 추임새가 ‘왕아 신아 액이로구나~~’ 후렴을 받는다. 축원을 들으며 긴장의 끝을 마름질하던 천수의 아쟁이 밑으로 깔리는 소리를 거두어 위로 펼쳐낸다. 신들의 일 년 열두 달 들인 정성과 노고를 위로하는 현을 켜 올린다. 목을 비틀어 내는 소리에 한(恨)을 한껏 조였다 풀어낸다.  

  소포나루 소금쟁이들 걸군농악 집사가 멍석 가운데 자리에 앉는다. 걸게 차린 상 위에 있던 옴팍한 제기에 쌀이 담긴 하얀 그릇을 얹는다. 동그랗게 말린 촛불이 바람에 일렁이며 타오른다. 덩 떠덩 덩 떠덩 차츰 흥을 올리며 울려오는 장구소리에 천문이의 구음이 드문드문 섞여 들어온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소리처럼 저 먼바다 위에서 노 저어 오는 사공의 뱃노래 가락처럼 섞여 들어온다. ‘왕아 신아 액이로구나~~’ 받쳐 올린 소리 끝에 ‘에에 에에엥에에~~’이어져 나오는 그 소리가 맑고 청아한데 소희는 차가운 바람 끝에 발갛게 일어나는 손을 둥글게 말아서 그릇을 들고 집사 곁으로 다가간다. 치맛자락이 살풋살풋 들썩이는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의 기운을 차게 느낀다. 액 그릇을 집사의 머리 위로 돌리며 ‘액을 막어 예방허고 살을 막어 삭제해~~’하며 ‘하나 옷을 벗어다가 열의 액을 막었네~~ 열의 옷을 벗어다가 하나 액을 막아주세~~ 기원을 노래한다. ’정칠월 이팔월 삼구월 사시월 오동지 육석달이 번개같이 넘어가도 궂고 낮은 살기는 막아서 예방하세~~~굿의 가장 큰 의미를 담아낸다.

  동서남북에서 들어오는 모든 액을 막아내자고 노래하는 소희의 액 그릇이 집사의 정수리에 가 닿는다. 사람의 가장 큰 기운은 정수리를 타고 흐르는 것인지, 정수리 정중앙 숨구멍에 ‘정월에 드는 액은 정월대보름날로 막아내자~~’고 축수(縮首)를 한다. 축수라 하여 당장에 고개를 조아리고 드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 마음 매무새는 신 앞에 비는 형국이라 경건함이 조아림의 예(禮)인 것이다. 그리고 이월의 액은 집사의 왼쪽 어깨로 가고 삼월의 액은 오른쪽 어깨로 가서 복을 바라는 연등으로 밝혀 씻어내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뱀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화창한 날 삼짇날 날아오르는 나비와 지저귀는 새의 소리로 묵은 기운 된 기운 털어내자 축수한다. 진달래꽃 따다가 둥글게 빚은 떡에 얹어 먹으며 새살 돋게 하자고 축수한다. 얼마나 무거운 어깨인가. 자신과 더불어 살을 나누고 피를 나누어 맺은 인연의 끈이 단단히 동여매고 있는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두 어깨다. 그곳에는 소금 가마니가 실리고 쌀가마니가 실리고 콩 자루가 실린다. 괭이자루 삽자루 휘둘러서 일구어낸 곡식들이 식솔들 입으로 들어가는 배부른 시간을 위해 두 어깨는 물집이 잡히고 괭이가 박힌다. 처마 밑에 둥지를 튼 제비 한 쌍이 까놓은 몇 개의 알에서 구멍을 뚫고 나와 입을 벌리는 노란 주둥이의 생명들처럼, 자신의 혈육이 밥 잘 먹고 잠 잘 자는 따사로운 날들을 지키려는 어깨에 소희는 액 그릇을 들고 돌리며 닦아낸다. 

  마당을 빙 둘러앉은 사람이나 멀찌감치 떨어져 구경꾼 행세로 서 있는 사람이나 숙연해지는 시간, 액은 그릇에 담겨서 촛불을 밝히며 집사의 오른쪽 다리로 간다. 겹치고 앉은 다리의 오른쪽은 사월초파일로 막아낼 사월의 액이고, 왼쪽은 오월 단옷날로 막아낼 액이다.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쌀 몇 됫박을 묶어 지력산 자드락에 숨은 듯이 앉아 있는 절로 가는 사람들, 좀 더 영험한 곳을 찾아간다고 동석산으로도 가고, 저기 멀리 비끼내 마을 너머에 있는 첨찰산 계곡 물 시원한 쌍계사까지 찾아가는 사람들, 그 마음으로 금골산 마애여래좌상 앞에 조아리고 오층석탑을 도는 사람들, 그들 모두가 섣달그믐날 걸군농악패 집사가 되어 닦아낸다. 오월이라 단옷날이라고 뭍에 사는 사람들마냥 창포물로 머리 감을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들, 고깔이나 쓰고 뛰는 사람들 모두 오동지 육석달을 번개같이 넘어가도 궂고 낮은 살기는 막아서 예방하자고 왼쪽 다리를 쓸어가며 닦아낸다. 씻어낸다. 

  덩기 덩 따 덩기 덩 따 궁 따 궁 따 울려오는 장단 사이에서 가물거리다가 잦아지다가 일어서며 다가오는 천문이의 액을 막자는 넋 울림이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기어코 감당해 내야만 비로소 사라져 가는 액을 예방하자고 추어올리는 천문이의 소리를 들으며 몇몇 사람들은 눈물을 찍어낸다. 집사의 등 뒤에서 유월의 액을 닦아내고 칠월의 모퉁이를 돌아 팔월의 한가위 마당에서 다시 집사의 정수리 숨구멍을 틔워 액 그릇을 돌리는 소희의 굵게 말리는 소리가 쉬지 않고 달려서 고(苦) 상으로 간다. 일곱 개로 묶이고, 아홉 개로 묶이고 열두 개로 묶인 고 뭉치가 놓인 상 위를 뱅뱅 돌려 구시월 동짓달 액을 막아보자고 축수한다. 그리고는 큰상 앞으로 가더니 섣달에 드는 액을 막아낸다. 내처 걸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달려온 액막이의 한 고비가 ‘에에루 액이야 어라 종천 액이로구나~~~~’ 후렴구로 돌아든다. 

  종천이란다. 사람들의 살림살이 사랑살이 틈을 엿보다가 슬쩍 들어와 치고 나가는, 때로는 가마솥 밑바닥에 눌러앉은 누룽지마냥 굳건하게 들러붙어 맹세코 떨어지지 않으리라 붙잡고 피를 말리는 액은 모두 종천하라고 한다. 종내는 하늘로 가서 대접받으라는 덕담으로 들리지만 그것들은 또 저마다의 업의 크기로 업칭에 얹혀 심판을 받을 것이니, 그것은 땅에 사는 사람의 몫이 아니다. 종천으로 달래 보내는 사람의 지혜는 덕이 되고 복이 될 것이나,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한 것은 인과응보 아니던가. 뿌린 대로 거둘 것이니 ‘에에루 액이야 어라 종천 액이로구나~~’로 걷어낸다. 보배군 보배읍 지산면 소포리 사람들의 모든 액을 낱낱이 불러 축원장에 모아두고서 오방(五房)에 앉은 장군들을 불러 실어 보낸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는 어느 문사(文士)의 시심(詩心)처럼 한 고비를 넘어 새로운 길로 들어선다. 보배섬 사람들 아무렇지도 않게 흥얼거리는 흥타령의 한바탕 꿈처럼 에에루~ 장단으로~종천을 시킨 다. 

  소희의 차가운 손이 한 줌의 쌀을 집는다. 그리고는 집사 앉은자리로 와서 동방의 청제장군을 부른다. 집사의 머리 위로 액 그릇을 올리고 한 손으로는 물살을 만들어 여울지게 하고는 청말에 청안장 청투구 쓰고 청갑옷 입고 청가래 청살을 손에다 들고 동방으로 떨어져 마을의 (수)살을 다 걷어가자며 손에 들었던 몇 줌의 쌀을 멀리 던져버린다. 그리고는 시치미를 뚝 떼며 에에루 액이야 어라 종천 액이로구나~~~~노래를 부른다.

 남방의 적제장군은 적말에 적안장 적투구 쓰고 적갑옷 입고 적가래 적살을 손에다 들고 소희의 손끝에 올라앉는다. 멈추지 않고 걸어서 집사의 머리 위에 또아리를 만들고는 흩뿌리는 한 줌의 쌀과 함께 남방으로 떨어져서 마을의 (우환)을 다 걷어 하늘로 총총 달려서 간다. 날개 돋친 적안장을 두른 적말을 타고서 하늘로 달려서 간다. 에에루 액이야 어라 종천 액이로구나~~~~ 섣달그믐 하늘은 구름을 쓰고 낮게 내려앉아 있지만 마을 사람들의 액은 종천의 길로 간다. 

  서방의 백제장군은 백말에 백안장 백투구 쓰고 백갑옷 입고 백가래 백 살을 손에다 들고 고(苦) 상에 앉아 소희를 맞는다. 물동이전에 넘치도록 담겨지는 물살을 만드는 소희의 손사래 배웅을 받으며 서방으로 떨어져서 마을의 (관제구설)도 다 예방하겠다 말을 달린다. 백투구 쓰고 백갑옷을 입고 결의에 찬 모습으로 달려 나가는 장군의 위엄으로 에에루 액이야 어라 종천 액이로구나~~~ 길을 나선다. 한 줌의 쌀알들이 넓게 흩뿌려진다. 

  극진한 예우는 북방의 흑제장군에까지 이른다. 과일이고 떡이고 걸게 차려진 큰상 앞에 앉아 술 향에 취해 소희를 맞는 흑제장군은 흑말에 흑안장 흑투구 쓰고 흑갑옷 입고 흑가래 흑살을 손에다 들었다. 휘휘 저어 정안수 그릇에 물을 담는 행신의 소희를 보며 일어선다. 북방으로 던져지는 한 줌의 쌀알들을 보고는 일어서면서도 못내 아쉬운지 주춤거린다. 팔을 들어 올려 둥글게 말아가며 얼씨구 절씨구 춤을 추는 소희를 뒤돌아보며 북방으로 길을 잡아 나선다. 마을의 (삼제)도 다 걷어서 에에루 액이야 어라 종천 액이로구나~~~~ 멀어져 간다.

  중앙의 황제장군 황말에 황안장 황투구 쓰고서 집사의 머리 위를 휘휘 저어 남아 있는 모든 액을 거둔다. 그리고는 황갑옷을 입고서 고(苦) 상으로 가서 혹시 모를 액을 다 거두고 황가래 황살을 손에다 들고서 흑제장군 앉았던 자리로 간다. 늘쩍지근하게 앉아서 버르집던 검은빛 액살을 모두 거둔다. 그리고는 사방을 둘러보며 마을에 도사리고 있는 (신살)도 다 걷어서 에에라 액이야 어어라 종천 액이로구나~~한다. 

  소희가 춤을 춘다. 액 그릇을 올려 들고서 춤을 추고 고인(鼓人)의 바라지 장단이 급물살을 탄다. 천문이의 장구소리가 왼손에서 궁 궁 궁 궁 궁 휘몰아들고 오른손에서 북광쇠 소리가 신명을 부른다. 종수의 태평소 날라리 소리가 굿잔치 흥을 퍼 올리며 신명들을 배웅한다. 다시 오시자고 불러놓고 어서 가시자고 손짓을 하는 사이 소희는 축원장에 쌓인 액살을 모두 문밖으로 버린다. 그 사이에 바라지 장단은 삼현육각의 예로써 청정한 기운의 물을 쏟아놓는다. 모든 불안의 짐을 벗어던진 소포나루 사람들의 얼굴에 비로소 웃음이 퍼진다. 

  소희가 다시 축원장을 큰상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벗는다. 연꽃 모자를 벗어 세 번을 돌리고는 축원장 위에 올려놓는다. 멀리서도 듣고 흥겨운 물살 피어오르게 하는 천문이네 바라지 장단에 맞춰 빙글빙글 돌며 쾌자를 벗는다. 그 쾌자를 두 손에 받쳐 들고는 오방을 잡아 절을 한다. 액을 들고 오는 살도 신(神)으로 예우하는 세습무의 습속이 짙게 배인 몸이 허리를 굽힌다. 그리고는 쾌자를 들어 큰상을 휘휘 저으며 씻어내고, 집사의 머리 위를 휘휘 저어 닦아내고, 빙글빙글 돌아가며 자신의 머리 위를 닦아낸다. 너울너울 휘날리는 쾌자자락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신들을 울린 여자 소희는 무릎을 꿇고 신 떠난 자리에 절을 한다. 마을의 안녕을 위한 소명(召命)의 춤이 일어나 반절을 하는 순간 박수가 터져 나온다. 사람들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흐르며 웃음이 피어오른다.     

 

  “희수야, 우덜이 너를 업고 뛰었어야. 세 살이나 먹었을까? 아니여. 네 살이 다 먹어갈 땐디, 우덜이 너를 업고 뛰었어야. 실지로 너를 업은 등짝은 장만상이 등짝인디, 그것이 우리가 모두 너를 업은 폭이였어야. 그날 우리 마을 사람들 다들 울었다. 그려, 울지 않은 사램이 없었이야. 원 없이 울어버렸다.”

  “그게 무신 말씀이시당가요? 왜 저를 업고 뛰어롸우? 제가 무동었어롸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처음 듣는 말에 놀랍기도 하려니와 자신이 걸군농악의 무동으로 올라서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영감님, 게다가 만상이 아재는 창부 아닌가롸우? 옛날부터 지금까지 창부는 줄곧 그 아재였던 것으로 아는디요.”

  “그랬제. 만상이 그놈, 평상시는 그렇게 멀쩡허다가도 농악만 시작했다 허면 창부는 내가 해야겄지롸우? 나 말고 헐 사람 또 누가 있겄소? 그리도 내가 창부를 히야 딴 놈 못들어오제. 험서나 뒷짐은 지고 무릎팍 굽혀갖고 허리는 구부정거림성 걸음도 넘들 한 걸음으로 갈 것을 반으로 나눠갖고나 신발 끄심성 가잖냐? 참말로 빌어먹게 생긴 꼬라지를 만들어내는디, 이런 사람 돈주고 허래도 그렇게는 못헐 것이다. 근디도 그놈은 능청맞기가 참말로 오뉴월 엿가락 돌라먹고 입 씻어분 놈 같이 천연덕스럽당께. 그리도오 그놈이 그 날은 너를 업고 뛰었어야. 천문이 형님이 살어서 왔다고 왜장치면서나 울면서나 웃어가면서나 너를 업고 뛰었지야. 마을 사람들 풍물 크게 침서나 다들 그렇게 받고 그렇게 뛰었지야.”

  어렴풋이 떠오르는 잔상 하나 짤막짤막하게, 조각조각 잘린 형태로 구겨진 사진이 찢어진 것처럼 떠오른다. 그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붙여놓은 것처럼 떠오르는 기억이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종잡을 수 없다. 

  “왜 우리 아부지가 저로 살어서와라?”

  “다들 그렇게 생각허고 그렇게 믿고 싶어 했이야. 그럼성 방 안으로 숨어버린, 불도 빛도 들오지 않는 구석탱이 골방으로 숨어버린 것맹이로 싸리울 밖으로 나오지 않는 너그 엄니를 밖으로 나오게 할라고 우리 마을 사람들이 다 합심을 혀갖고 풍물을 잡은 것이제. 굴속에 틀어박혀 도사리고 앉은 오소리를 굴 밖으로 나오게 할라고 덜 마른 솔가지 쑤셔 넣는 것마냥 풍물을 잡음서나 도둑질 하듯이 너를 데꼬 나와 한판 뛰고 논 것이제. 그럼성 마을 사람들 천문이 잃은 설음을 털어내고 절대로 살어서 더는 굿 안 헌다고 문 닫고 들어가 옴짝달싹도 않는 너그 엄니를 흔들어 밖으로 빼올라는 것이었제. 오목조목 꼭 빼닮은 것이 씨도둑은 못허더라고, 너는 너그 아부지 도싱허다. 도장으로 팍 눌러 찍어놓은 것 마냥 꼭 닮은 것이 내가 누구라고 안 히도 누구나 한 번 보믄 어, 니가 천문이 아들놈이로구나. 헐 만치 너그 아부지를 똑 빼닮었다. 느그 아부지 가고 여덟 달이나 돼서 나온 너를 너그 아버지 현신으로 본 것이제. 말허자믄 천문이가 환생이라도 해온 것마냥 생각했더란 말이여.” 

  “우리 아부지가 마을 사람들에게 그렇게 큰사람이었어라?”

  “그랬제. 너그 아부지는 소금농사도 안 허고, 물질도 안 하고, 허는 것이라고는 맨날 느그 어매 넘으 집 빌어주는 디 따러가서 장구 치고 북 치고 허는 것인디, 우리 마을 사람들은 어디가 좀만 아퍼도 느그 집을 찾어가서 말허고, 섬이다 봉께 메루치 잡고 새비 잡을래도 너그 집한티 부탁을 했다. 조구 잡으로 갈라면 그것이 어디 하루이틀이냐? 그렁께 곡우께나 돼서 조구울음 소리 들린다고 술렁이면 나가갖고 망종 때까지는 바다 우에 떠 있어야 헝께 느그 어무니 아부지는 우리 곁이 붙어사는 하눌님이고 부처님이고 조상님이였어야. 허다못해 에미 소가 새끼만 낳는 디도 터덕거리믄 너그 집을 찾어가서 하소했어야. 다급허닝께. 그랬는디, 느그 아버지가 그렇게 변을 당헝께……”

  퉤, 퉤 침을 뱉어 담배를 짓이겨 끄고는 다시 새 담배를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운다. 그리고는 풍물치고 노는 사이사이로 들어 다니며 물건을 파는 장사치들에게 산 라이터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고개를 수그린다. 그리고는 이마에 힘을 주어 주름살을 모아 잡으며 말을 꺼낸다.

  “그려. 그렇게 일을 치르고는 어느 날 하루 너그 어무니가 벽장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제기들을 하나하나 들어서 마당으로 내팽개치지 않았겄냐. 스뎅으로 된 것들도 있고, 놋그릇들도 있었는디, 자꾸자꾸 내다버리더라.”

  “이깟놈의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겄나? 이깟놈의 것들로 죽겄다고 귀신 달래고 뭣 달래고 해 봐야 무슨 소용 있겄나? 도대체 무얼 그리 잘못했다고 이리도 가혹하게 사람을 죽일라고 달라드느냐고? 아무리 팔자 사난 년이라고 이리도 가혹하게 사람을 잡아가냐고? 도대체 얼마를 더 해야 되느냐고? 어……?”

  “악다구니를 써감성 그릇이고 뭐고 다 내다 버리는디, 무섭더라. 순허디 순한 사람 어디서 그렇게도 모진 악다구니가 쏟아져 나오는지……마을 사람들도 몰려와서는 그러믄 쓰냐고, 왜 이러시냐고 함성 참으라고 참으시라고 말렸쌌는디도 무슨 분에 휩싸였는지 기양 물레고 뭣이고 다 갖다 내버리고 안 살란다고 악을 악을 썼쌌드라. 더러워서 못살겄다고. 다 불싸질러 버리고 죽어버리겄다고 악을 악을 썼쌌드라. 긍께 방에서는 너그 누이 가희가 놀래갖고 아앙 아앙 울어대고,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던 기수가 놀래갖고는 멍청히 서서 바라만 보고……참말로 말잉게 그렇제, 가슴이 많이 아펐다. 그리도 너그 큰성 기수가 마당에 내동댕이쳐진 그릇들을 하나씩 주워 담응께 너그 어무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장구를 들고 나와서는 마당으로 내던져버리더라. 사램이 얼마나 성이 나면 저렇게 불이 일까, 다들 기가 막혀서 옴싹도 못허는디, 그 가희 쬐끄만헌 것이 마당으로 내려가더니만 장구를 주워들고는 꽉 끌어안고는 울어쌌는다. 어찌나 가슴이 미어지는지……열채고 궁채고 주워서 들고는 너그 아부지 평생 두들기던 장구를 끌어안고는 그렇게 울어싸야. 긍게 너그 큰성 기수도 설움에 받쳐서 울어대고 앙앙 울어대고 다른 것은 다 냅두고는 장구만 붙들고 그렇게 울어싼다. 그것들이 어린 것들이라도 장구가 저그 아버지 몸 같은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가비더라.”

  ……장구, 아버지, 손때 절은, 세워진 채로 한쪽 벽에 놓여져 있던, 그 물건, 한 번씩 그냥 두들겨보면 퉁퉁 튕겨나며 소리를 내던, 한 번도 제대로 잡고 소리내어보지 않았던 그 물건, 내 아버지 손때 묻은 그 물건. 나는 버꾸로만 살았지, 그 장구 소리 한 번만 들어본다면…….

  “그러고는 느그 누이 가희가 앓아누워버렸어야. 그 쬐끄만 것이 얼마나 상심이 컸던지. 느그 어매 배는 이런 사람들 눈에도 비치게 불러오는디, 가희 갸는 어린 것이 얼매나 놀래고 상심이 컸던지 끙끙 앓아 누웠는디, 열은 펄펄 나고, 참말로 그러다가는 멀쩡한 가이내 하나 잡겄다 싶었다. 긍께로 너그 작은 할아버지들이 나서고 그 식솔들이 나서서 약을 지어오고 야단이었지야. 그리도 다행히 그때 깨났응께 저리 커서 시집도 가고 자식도 낳고 넘 살디끼 사는 것 아니겄냐? 가끔씩 오감성 인사라도 헐 때믄 참 다행이제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먹먹해온다. 눈으로 보지 않은 광경이 귓전을 울리며 눈앞에 그려진다. 또 하나의 어머니처럼 언제나 다정했던 사람, 밖에 나가서 놀다가도 놀림받고 손가락질당하고 들어와 씩씩대며 분해할 때도, 쌈박질을 하고 흙범벅이 되어 들어와도 얼굴을 씻겨주며 옷을 갈아입혀 주던 그 자그마한 손이 가슴을 치고 올라온다. 눈앞이 뿌옇게 아른거린다. 멈출지 모르는 상쇠영감의 매캐한 담배 연기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모를 눈물이 아리게 올라온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본다. 눈 가장자리 안에서 맴돌던 눈물이 어쩔 수 없이 흘러내린다. 맥없는 콧물 찍찍거리는 소리가 두 사람의 귓가에 울린다. 어지간히 흐른 시간이 아직도 밤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두런두런 나누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으나 괜스레 귀 기울어지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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