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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해원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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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7. 2024

19화. 우리 다시 만나요 노을꽃 피어나는 세방에서

제3부. 기다리는 여심, 환생

   ~~덩 따 덩 따 덩 더덩 덩따~~


  한패의 사내들이 북을 메고 산언덕에 서서 빙글빙글 돌아간다. 햇살 부서지는 산마루 언덕에서 양 손에 북채를 쥐고서 흔들며 한판 춤을 춘다. 그 소리가 마치 진군하는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한 것처럼 우렁차고 맹렬하다. 별일이다. 소포나루 소금꽃 피워 사는 사람들 마을에 초상이 났다더니, 큰 어른 가셨다고 슬퍼 울던 치들이 북채를 양손에 갈라 쥐고서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다. 

  절기는 경칩이라 천지만물이 어둠에서 깨어나고 꽁꽁 얼어붙게 하던 혹한의 된서리에 마음속 깊은 곳에 쟁여 놓았던 온심(溫心)마저 빼앗겨버렸던가. 도대체 차가운 것들만이 뼛속까지 파고들어 오는 것처럼 이가 맞부딪치며 내는 소리를 듣던 사람들의 귓가에도 봄기운 돋는 소리들이 들려오는 날이다. 그 혹한의 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눈발을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를 잴 수 없는 곳까지 몰려나갔다가 다시 갈 길을 물어 되짚어 들어오는 바닷물이 데리고 온 눈보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꽃모가지를 도드라지게 내놓았던 붉은 꽃 동백이 봄빛을 받아 상긋 웃는데……. 답가(答歌)도 주지 않은 치들이 답가(踏歌)를 아뢴다고 훌쩍훌쩍 뛰며 춤을 추어댄다. 

  큰 어른 정읍네 뉘일 자리 하루 종일 해가 들어 따사롭고 빽빽하게 둘러선 소나무 한 발 물러선 자리에서 외풍을 막아 훈훈한 기운 돌게 하는 곳에 두게 된다고 신들에게 고하는 의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천문이의 봉분이 있는 자리 옆에 동그맣게 놓여 있던 가묘를 오늘 헤집고 그곳에 이미 정해진 주인이 들어가 눕게 되었다고 땅신과 산신에게 미리 아뢰며 위로하고 경배하는 것이다. 채 한 평도 되지 않는 작은 공간에 마지막 몸을 두게 되지만, 그 땅은 땅신의 것이고, 그 산은 산신의 것이라, 그것을 빌리게 되니, 아무쪼록 탈 없이 일을 마치고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십사 빌고, 십 년이고 백 년이고 정령이 이 땅에 깃드는 동안 탈 없이 기대어 지낼 수 있게 해 주십사 아뢰고 비는 행위를 상두꾼이면서 소포걸군농악 고수동으로 살아가는 놈들이 기수를 대신하고 가희를 대신하고 희수를 대신하여 해내고 있는 것이다. 


  꽹과리 소리에 북소리가 경쾌하게 섞여 들고 쇄납이 목청을 돋우는 사이 상여를 앞에 두고 선 사람들의 어깨가 저도 모르게 들썩인다. 그리고는 한 마리 우직한 황소를 닮은 놈이 희어빠진 머리카락을 정갈하게 빗어 내리고 한 올의 삐침이나 빠짐없이 흰 띠를 이마 한가운데에  질끈 둘러 묶고는 북을 메고 나온다. 긴 띠를 북에 칭칭 묶어 허리와 골반 사이에 두고는 설렁설렁 걸어 나온다. 젊은 패 다섯 놈이 우선 나와서 흥을 올려놓은 자리로 나오며 북을 세게 내려치고 가볍게 돌며 장구를 치듯 왼손을 들어 오른쪽 북한을 살짝 치고 간다. 힘껏 내려치는 ‘덩’ 소리가 연거푸 들려올 때마다 그 소리가 땅 속을 헤집고 들어가기라도 할 것처럼 퉁퉁 튀어 오른다. 얼음살이 풀리고 버석버석해진 흙살들이 흠칫 놀라 튀어 오를 것처럼 들썩이는 느낌이 사람들 가슴속으로 퍼져나간다.  

  느린 숨이 빠른 가락으로 몰려가는가. 사람들 다 함께 올리는 조옿다! 추임 소리에 맞추어 하얀 저고리에 치마를 입은 호상꾼 아낙이 소리꾼 차림으로 올라와 소리를 뽑아 올린다.    

 

   아아아~~~어으흐으~~으 어 아아아아~아 두리둥 으으응 아어어허 어~아  

   

  그늘 짙은 소리가 세방 넓은 바닷가로 퍼진다. 우 – 우 – 우  이제야 알았노라. 늦게 알아 미안구나, 심정으로 밀려드는 바닷물 사이로 넓게 퍼져 흐르는 소리가 듣는 이들의 가슴에도 포말이 일게 한다. 황소를 닮은 고수동 놈이 한 마리 커다란 학처럼 팔을 들어 올린다. 얼씨구~ 절씨구~ 북판을 호되게 내려친 팔을 구부려 올렸다 펼친다. 오른쪽 손아귀에 잡힌 북채가 사발 속의 물을 휘젓고 나온 것처럼 돌아눕고, 왼쪽 손아귀에 잡힌 북채가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선다. 붕어배래기 안으로 휩쓸려 들어간 한 떼의 바람이 소매를 부풀게 하고, 왼쪽 발목 복숭아뼈를 기대고 선 다리 움푹 들어간 곳에도 한 떼의 바람이 몰려들어 부풀어 오르더니, 슬쩍 들어 올리는 사이에 우르르 몰려나가 버린다. 튼실한 소 잔등이에 멍에를 씌우고 회초리를 휘둘러가며 소금밭을 갈아 부치던 놈의 정강이 뒤태라기에는 어딘지 좀 허전하고 쓸쓸한 모양새다. 

  소희 굿판에서 천문이가 굽이굽이 서린 망자들의 원통함을 풀어내어 산 자들의 가슴을 후비게 하던 구음들이 호상꾼 아낙으로 따라나선 소리꾼의 목에서 짙게 우러나온다. 그 소리가 황소 닮은 고수동 놈의 어깨선을 타고 넘어 학의 날개처럼 펴지며 바람을 탄다. 신이 실리는 몸짓으로 너울너울 춤을 추는 고수동 놈이  웃는다. 설핏설핏 웃는 얼굴에 굵은 주름이 한가득이다. 북의 등뼈를 칭칭 휘감은 줄처럼 이목구비 사이사이를 샅샅이 돌아가며 그어놓은 세월의 흔적들이 굵직하게 틀어박혀 있다. 살이 붙어 팽팽한 볼에는 올록볼록 우둘투둘 기민지 주근깬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살뜰하게 들어박혀 있다. 물 빠진 갯벌에 숨어 있는 생물들의 자리인 것처럼 뽕뽕 뚫린 분화구들이 햇빛에 그을리고 잡다한 일들에 시달린 시련의 순간순간들이 덕지덕지 눌어붙어 번뇌의 거죽이 되고 말았다. 

  여섯 살 나던 해에 아버지를 따라 북태주라 불리던 영감의 북춤을 보고 난 이후부터 북 속으로 빨려 들어 버린 놈은 그날 이후 날마다 북을 치겠다며 베개를 허리에 묶어 두드리고 다녔다. 어린아이의 행위가 귀여움 그 이상일 것도 없어 그냥 두었건만 열네 살이 되어서는 학교도 가지 않고 북에 미쳐 자랐다. 아버지의 매타작과 담임 선생님의 우격다짐이 무섭기도 했을 것이건만 놈은 날마다 북을 치겠다며 학교를 가지 않았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현실이 되어버린 이후 고수동 황소 북식이 놈은 날마다 북에 살고 북에 죽었다. 그런 놈이 오늘 정읍네 소희의 집자리에서 북채를 양손에 나눠 쥐고서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장도 곡섬의 안자락 솔섬을 넘어오는 자리에 뻗어 내린 햇물의 영롱한 빛을 눈으로 살펴가며 북을 두드리고 춤을 춘다. 삽으로 푹 퍼서 던진 자리의 흙들이 막 고개를 내민 풀꽃들과 뒤범벅이 되어 나뒹구는 자리를 젊은이 다섯 놈들과 어우러져 뛰고 돌며 부수고 다진다. 소주와 막걸리 한 잔씩에 과일 몇 개, 적과 산적, 고사리와 토란 무친 나물들이 담긴 접시들에 손을 뻗어 흠흠 향을 취하고 음음 흠향을 하던 땅신과 산신이 호위하는 병사들과 더불어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해를 따러 가려는가, 달을 따러 가려는가. 진군하는 군사들처럼 둘러멘 북을 어르고 달래며 뛰고 달린다. 그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 덜 미덥기도 하여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기도 하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지만 입술을 달싹여 한 수 가르쳐주려는 듯 살짝 일어서려다 앉고 만다.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막 도착하여 섰다. 방장쇠(방상씨, 方相氏) 탈을 쓴 놈이 두 눈을 퉁방울만 하게 뜨고서 두릿두릿 한다. 통으로 된 붉은 옷을 입었다. 손에는 하얀 장갑을 끼고 발목에는 노란 삼베로 행전을 바싹 동여맨 놈이 툭 멈추어 서서는 사방을 살피고 소포벌 걸군농악 고수동 패거리를 바라본다. 길게 묶은 볏단에 불을 붙여 횃불을 든 놈도 방장쇠 옆에 서서 우- 우- 하는 양으로 눈을 크게 뜨고는 횃불을 치켜들었다가 내리기를 반복한다. 상여가 오는 길을 인도하고 상여와 상여꾼들을 넘보는 삿된 것들을 쫓아내고 물리치느라 온 정성을 기울이던 놈들이다. 오는 길목마다에서 막걸리 한 잔씩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걸어서 앞을 틔웠지만 몸은 후줄근하게 젖어 있었다. 방장쇠 놈이 손에 들고 있는 칼은 둥근 활 모양이다. 시위에 화살을 놓아 힘껏 잡아당기면 할낏거리며 넘보던 삿된 놈이 십 리 밖으로 달려 도망치더라도 한 방에 맞추어 물고를 낼 것처럼 위협적이다. 시위를 매단 끝자리가 손잡이가 되는 칼을 붙잡고 휙휙 소리를 내며 칼춤을 추어댈 때는 상여를 메고 따르던 상두꾼들과 호상꾼들마저 겁에 질려 오금이 저릴 판이었다. 그런 놈이 두 눈을 둥싯거리며 소리를 지르고 칼을 휘둘러대니 깜짝 놀란 땅신과 산신의 호위무사들이 달려 나와 방장쇠 놈을 바라보고는 “그 놈, 참 더럽게도 무섭게 생겼구만.” 고개를 휘젓고는 자리로 돌아가 신들께 별 거 아니라고 사실을 아뢴다. 별 것이 아닌 것이 아닐 것인데 별 것 아니라니, 방장쇠 자존심이 오뉴월 장맛비에 시복이네 토담 무너지듯 무너져 내리지만 더럽게도 무섭게 꾸민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며 피식 웃고 만다. 

  상여꾼들이 어-어-어- 소리를 내며 상여를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노제를 지내고 다리를 건너올 때 상주들이 끼우고 배웅 나온 동네 사람들과 상두꾼 호상꾼들이 섭섭한 마음 보태어 끼운 노잣돈을 매달고 있던 새끼줄을 상두꾼회장이 거두고 상여틀을 해체한다. 호상꾼 아낙들이 줄지어 잡고 오던 질베(에베)도 풀고 꽃대도 해체가 된다. 고개를 숙이며 울음을 울던 삼남매의 눈길이 상두꾼들의 손길을 따라 움직인다. 훅훅 불어오는 바람이 눈물을 씻겨가는 사이에도 눈물은 흐른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발을 구르고 팔을 들어 말리려 든다. 어머니와의 마지막 이별에 자꾸만 허둥댄다.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별의 말도 이별의 행위도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 어떤 마음도 생각도 말이 되어 나오지 않을 것만 같다. 그저 어버버 하는 사이에 모든 식이 진행되고 어머니를 영영 보내고야 말 것 같은 느낌만이 입을 마르게 한다. 침이 마르고 입술 사이에 바람이 들고 나며 바짝바짝 타들어가게 한다. 어이하여 가슴은 텅 비어 가고 머릿속은 하얘져만 가는가. 도통 알 수가 없다. 사위 동은이도 가희 곁에 서서 함께 걸어가지만 머릿속은 텅 비어만 간다. 결혼을 하겠다며 첫인사를 올리러 갔을 때 장모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다만 어디 아픈 데는 없느냐고 물었고, 평상시 자주 아픈 데는 없는가를 물었다. 의아했다. 부모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관향이 어디인지를 묻지 않았다. 직업이 무엇인지, 집이나 차는 있는가 따위도 묻지 않았다. 아버지의 연세와 건강만을 물었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장모의 첫 질문이 아주 오랫동안 기억 속에 맴돌았던 것이 떠오른다. 언제나 풀꽃같이 향기로운 사람이라는 정의만이 장모를 찾아가는 마음속에 발걸음을 놓았다. 그리고 지금 장모의 시신을 운구하는 일행들 뒤에서 눈물과 한숨이 되어 나오고 있다.


  나~~ 아 아 아아아 나~~으으으~~ 으으으으~~ 느이라아라 라아라아아 르으으으 이~~   

  

  고수동 황소 북식이의 북이 소희를 향해 선다. 두 팔을 곧게 펴서 나비의 날개를 만들고는 꽃을 향해 맴을 돌 듯 돌아간다. 너울너울 춤을 추고 훨훨 날아서 소희 도영이 길을 틔워가는 명주실강으로 날아가는 폼새를 하고는 쓴 물 올라오는 고갯짓을 한다. 도영이 부채를 들어 한 점 별을 찍던 것처럼 북채를 들어 점을 찍는다. 삐쭉 내밀던 궁둥이를 힘껏 쳐올리며 뒷발꿈치를 들어 올리고, 무릎을 구부렸다 힘껏 치올리며 북을 사정없이 내려친다. 응어리진 설움들이 마디마디 맺혀 옹이가 진 것들을 떨어뜨릴 것처럼 둥 둥 둥 내려치고, 쓰러져 죽은 지 오래된 뽕나무에 붙어 세력을 확장해 가던 누런 황소빛깔 상황버섯에 끌을 대고 정을 내려치는 것마냥 북판을 내려친다. 그리고는 참매가 되어 바람을 탄다. 도영이 양 어깨에 지전다발을 얹고 사방을 살피며 길을 열던 모양으로 북채를 든 양손을 쫙 뻗어 펼친다. 꽃붕어 두고 온 계절 뜨겁게 이글거리던 마당에서 날틀에 묶인 가락들, 실마리를 부여잡고 나선 길목에서 두 팔을 쫙 벌린 채 등을 잃어버린 사람의 형상으로 서 있던 고무대처럼 두 팔을 벌려 소희에게 읍(泣)하고는 천문이를 부른다. 

  “성님, 천문이 성님, 보고 계시오? 성님 누워 계신 옆 자리로 오늘 성수님이 오시는디롸우 이 시끌벅쩍헌 디서 귀 꽉 틀어막고 기시는 것은 아니지롸우?”

  “…….”

  “오늘은 내가 기엉코 성님한티 맺힌 말을 다 풀어놔야 쓰겄구만이롸우.”

  “…….”

  “성님 가신 뒤로 사람들이 참말로 많이 힘들었구만이롸우.”

  “…….”

  “사람 목심 질기기가 참말로 고래 심줄만큼이나 질긴 것이디, 성님 그렇게 허망하게 가시 뒤로 사람들이 어뜨게 해야는지 갈팡질팡 오락가락……. 많이들 헤맸구만이롸우.”

  “…… .”

  “긍께, 그 날은 바람도 안 불고 볕도 쨍쨍 내리쬔게 무슨 탈이 있을 꺼라 생각혔겄소? 그리도 제법 큰 배라고 사램도 몽땅 실어갖꼬 갔는디……. 옥자네 고모들은 멀라고 떠나가는 배를 손을 까불러감성 불러갖꼬 탔을 것이요. 그만 태우고 그냥 출발히얀다고 허는 치들도 있었지만 또 인심이 그런 것이 아니라고 잠시 지둘렀다 태우고 가야헌다고 허닝께, 이참저참 지둘러서 태우고 갔는디……. 맨날 늦게 와서는 자기만 안 대꼬 갔다고 타박이 늘어지던 허영감은 그 날도 죽겄다고 엄벙덤벙 뛰는 것도 아니고 걷는 것도 아닌 폼새로 와서는 저만치 떠나가는 배를 보고 침을 뱉고 욕을 허고 난리였는디이……. 살기는 오래도록 살어갖꼬 그날 이야기를 흐흐거리고 해대드만 갈 때는 허망하게 갑디다. 인생 뭣인지 이대도록 살아도 멋인지 모르겄느디…….”

  “…….”

  “성님, 산모롱이 돌아가는 디서 갑자기 배가 뭣에 걸렸능가 쿵 부딪치고 한쪽으로 기우닝께 사람들이 놀래갖꼬 우왕좌왕 허고 배에 물이 참성 막 가라앉어강께 사람들이 고함을 치고 비명을 질러쌌는디……. 선장이 여기저기 무선을 치고 배가 가라앉는다고 빨리 출동허라고 무선을 치고 사람들이 수신호를 보내고 허는디, 배는 막 가라앉고 사람들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난리가 났는디, 맬치잡이 어선들이고 어망 살피러 나간 어선들이 다급하게 와서는 사람들을 구해내고 그맀는디, 성님도 아시겄지만, 그날 사람들 절반이 넘게 죽어부렀소.”

  “…….”

  “근디, 성님, 멀라고 끝까지 물속으로 들어가서는 사람들을 끌어냈소? 동네 사람들이고 다아 인근 사람들잉께 한 사람이라도 살릴라고 허는 것은 인지상정인디, 그리도오 자기 목심은 끝까지 지켜얄 것 아니겄소오? 어떤 사람은 천문이 성님이 머리끄락을 잡어댕기고 혀갖꼬 살어났대고, 어떤 사람은 손 붙잡고 오다가 자꾸 심이 팽긴게 물속으로 빨려가다가 다시 있는 힘을 다 짜서 끌어올려 살아났다는디, 성님은 그날 이후로 밖으로 나오덜 못헝께 살아나서 살아감성도 맨날 미안허고 답답허고 그렇다고 울면서 말해쌌등만요. 식구들을 만나고 형제들을 만날 때면 손을 비벼감성 고맙다고 허지만 그리도 돌아오지 못한 목숨에 쌓인 서러운 한을 어찌 할 꺼요. 마지막 성님이 까라져 내려가는 것을 보고 붙잡으려 했는디……. 물살이 너무 쌔서 끝내 손을 놓치고 말았다고……. 술을 말로 받아먹어 감서나 말을 해쌌던 사람은 종내 이사를 가고 말었소. 그 장면이 껀듯허면 눈앞이 그려져서 도저히 못 살겄다고 떠나버렸고, 명절이나 되믄 그리도 한 번씩이나 오리만, 한 번도 와보지 않는 것은, 성님, 안 오는 것이 아니라 못 오는 것 아니겄소?”

  “…….”

  “성님, 성수가 애를 써감성 혼맞이 굿을 해감성 불러도 다른 집 혼들은 다아 오는디, 성님은 끝내 오지 않으니까, 성수가 팍 주저앉아불더만요. 무심한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울어쌈성 불러대도 애를 쓰고 불러대도 대답이 없으닝께, 성수가 주저앉아가지고 한동안 기신을 못허더구만요.”

  “…….”

  “그리도오 세월은 무던하게 흘러서 상처난디 새 살 돋듯이 메워져가는디…….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그것도 안 되능가아, 참말로 애쓰더만요. 왜 아니겄어요. 부모 잃은 심정허고 자식 잃은 심정은 그것이 근본부터가 다를께 아니다요. 이제는 우리 옥주골에도 다리가 놓여지고 우리 소포만도 뻘을 메워서 육지를 맨들어 놓은께 인자는 배 타고 댕길 이유가 사라졌는디라, 왜 진작 이렇게 다리를 놓지 않았더냐고, 왜 이렇게 진작 들판을 맨들지 않았더냐고 말들을 하는디, 성님, 말이 너무 길었능갑소.”

  “…….”

  “오늘 성수님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고 나와서 이렇게 땅을 파고 다지고 하다봉께 감회가 새로운가아, 말이 길었소오.”

  “…….”

  “성수님이 성님을 불러도 불러도 부르다가 목이 터져 죽을 것 같이 불러도 대답이 없으닝께, 돌아오지 않으닝께, 이 자리에다 터를 잡아가지고 석관을 만들고 소나무로 관을 짜서 집터를 만들어놓았지 않소? 무심한 양반이라고 울어쌈성, 불러오는 배를 감싸감서나 넋전을 만들고 생전에 성님이 입던 옷가지를 넣고, 생전에 쓰던 물건들을 정리해서 넣드만이요. 그날 성수님 무심하게 흘러가는 저 바다를 보면서 무지하게 울어쌌드만, 휴우, 그것이 엊그제 같은디, 오늘은 성수님이 이렇게 오셨구만이라.”

  “……끄응,”

  “성수님 좋게 잘 눕게 매만져주시고오, 그동안 못 다한 얘기 도란도란 나누어감성……. 다시, 백년해로 하시요. 우리들일랑 성수님 집터 명당자리 덕이 되고 복이 되라고 빌어줌성 한바탕 북춤을 흐드러지게 추고 갈랑께, 나머지는 성님이 알어서 하시요. 오늘이 우리 천문이 성님 새장가 드시는 날잉갑소.”     


  아아아~~~어으흐으~~으 어 아아아아~아 두리둥 으으응 아어어허 어~아


  상두꾼 좌장이 지관을 데리고 정읍네 소희 집터로 와 선다. 하나하나 의례의 절차들을 지시해 가며 하관을 알린다. 정읍네 소희의 관이 굵은 천 뭉치에 들려 땅 밑으로 내려간다. 소리꾼 아낙의 구음이 서럽게 울려온다. 온몸의 정열을 불태워 끌어올리는 땅심처럼 배꼽 밑까지 차고 내려가 소리를 끌고 올라온다. 상두꾼들이 조심조심 혼신의 힘을 다해 관을 내린다. 평소 고인의 의지에 따른 자리에 풍수를 고려하여 터를 잡았노라고 후손들에게 말해주며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자리를 내어 준다. 

  “어머니, 잘 가시오. 그동안 서러운 세상 살아오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소. 오늘같이 좋은 날 생기복덕한 날 우리 어머니 잘 가시오.”

  기수가 말을 하며 통곡을 한다. 흙을 움켜쥐며 운다. 아무런 고민 없이 행복했던 날들과 더없이 불행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세상에서 제일 예뻤던 우리 엄마를 떠올리며 운다.

  “엄마, 수고 많았어. 엄마, 그동안 살아내느라 고생 많았어. 우리 엄마 어떻게 하지? 우리 엄마 무서울 텐데. 그래도 우리 엄마 괜찮을 거야. 우리 엄마는 꽃을 피웠으니까. 엄마 입관식 할 때 보니까 우리 엄마 겨드랑이에서 꽃이 피어나더라. 붉은 꽃 작은 송이들이 서로서로 앞다투어 피어나면서 톡톡 터지더라. 엄마, 엄마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할 일을 다 했어. 하늘이 우리 엄마한테 피워오라던 꽃을 우리 엄마는 다 피웠어. 겨드랑이에서 솟은 꽃이 가슴으로 가서 피었고, 다리로 가서 피더니 우리 엄마 얼굴이 온통 꽃이더라. 엄마, 엄마, 엄마……. 사랑해. 엄마, 손에 꼭 쥔 손수건, 노란 손수건 아빠 만나거든 아빠 손목에 묶어줘. 바보 같은 아빠, 그 맹탕 같은 눈빛에 생기 돌라고 엄마가 나 대신 아빠 손목에 묶어줘. 그리고……. 가희가 아빠 많이 사랑한다고 전해줘. 엄마, 이다음에 다음에 나는 엄마가 피운 꽃에 향기가 되어 갈게. 엄마가 피운 수만 송이 꽃 붉은 꽃에 향기가 되어서 갈게. 엄마, 사랑해. 우리 엄마, 사랑해. 엄마…….”

  가희의 말에 사람들이 숙연해진다. 주위가 조용해지고 사람들이 생각에 잠긴다. 경칩의 바람은 새 생명의 희망을 안고 세방의 바다에서 불어온다. 측백나무가 바람에 기우뚱거리고 한 발 뒤에 서서 바람을 막아주던 소나무도 드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뒤채고 땅에 붙어 조금씩 솟아올라오는 푸른 빛 풀들이 맥없이 흔들린다. 이리로 눕고 저리로 누우면서도 다시 일어나서 바람을 맞는다. 

  “엄마, 세상에서 제일 이쁜 우리 엄마, 오늘은 어머니도 엄마가 되네. 왜 엄니는 팔자가 시어서 우리 아부지를 물에 빠져 죽게 했드냐고 물었던 어린 시절 철없던 내 말을 용서하시오. 동네 친구놈들 다 아부지가 있는데 왜 나만 아부지가 없냐고 대들고 따지던 그 날들의 송곳같이 찌르던 말들을 이제는 잊어버리시오. 그래도 세상에서 제일 이쁜 우리 엄마 덕에 버꾸판에 서면 참으로 좋았소. 가끔씩 버꾸판에서 어머니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는데, 오늘은 엄마, 오늘만큼은 엄마, 편히 가시오. 가다가 힘들면 쉬어서 가고…… 너무 바삐 가다가 넘어져서 무릎 깨끼지 말고 천천히 가시오. 무릎에 피 난다고 약 발러준다고 갈 수도 없을 팅게 서둘지 말고 천천히 가시오. 우리 엄마……”     


  하관이 끝나고 마지막 이별의 말도 끝나고 상두꾼 좌장의 지시에 따라 붉은 깃발 명정으로 덮은 관 위에 정읍네 소희의 묏자리에 주검과 함께 묻혀 악귀를 몰아내줄 운(雲)과 아(亞)라고 적은 정방형의 종이패 삽선(삽손)을 하반신 자리에 나란히 두고 흙을 던져 넣었다.

  “취토야, 취토야, 취토야.”

  라고 말을 하며 흙을 덮어주었다. 삽으로 흙을 가득 담아 관 위로 던지는 상주들의 마지막 이별이 서럽게 서럽게 바다를 향해 흐른다. 

  그렇게 한 여인의 삶이 끝나고 난 자리에 흙이 메워지고 흙에 싸여 덮이는 잔디가 삐죽삐죽 바람을 탄다. 동그랗게 동그랗게 솟아오르는 달덩이 정읍네 소희의 봉분이 만들어지고, 호상꾼 여인네들이 하고 놀던 산다위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위 동은이에게 맡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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