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기다리는 여심, 환생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희망이 족할까
동은이가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제법 맑은 하늘 아래 묏자리 등성이를 타고 어깨를 나란히 한 측백나무들의 부채 같은 잎들이 바람에 부대끼며 흔들린다. 박수라도 치려는 양일까. 삐죽삐죽 솟아서 저희들끼리 들러붙어 움직임조차 가볍지 못한 것들이 바닷물 속 산호들처럼 살랑이듯 움직인다. 간혹 볕을 받아 노랗게 빛을 발하는 것들이 관객처럼 둘러앉아 동은이를 바라본다. 몇 발자국 뒤에 서서 외풍을 막아내느라 휘청대던 소나무들도 둥그렇게 둘러서서 구경꾼 모양새를 하고 선다. 산 숲 어느 곳에선가 까치 한 마리가 푸드득 날아오르고 그 까치를 따라 또 한 마리의 까치가 푸드득 날아오른다. 동은이의 눈길이 까치에게 머물렀을까. 까치 두 마리가 동은이 선 묏가 위를 선회한다. 속날개 하얗게 펼치고서 선회하는 모습이 옛날 옛적 정읍네 소희 소포마을 사람들 모두 모인 자리에서 걸군농악 집사의 머리 위에 가득 담은 쌀그릇을 올려 돌리며 액을 막고 살을 막으려 예를 갖추어 축수하던 것처럼 선회한다.
상쇠의 꽹과리 소리를 따라 장구와 북이 울음을 뱉고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울려 퍼진다. 땅신과 산신이 네모 반듯한 바윗돌에 앉아 길게 늘인 수염을 쓰다듬으며 컴컴 헛기침을 하는 사이 호위병들이 에워싼 틈을 비집고 소희와 천문이가 들어와 앉는다. 땅신과 산신의 조금 앞자리에 둔 둥그스름한 바윗돌에 앉아 동은이를 내려다본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마련해 둔 객석에 도영이 앉아 소희를 건너다보고는 동은이를 지그시 바라본다.
세방의 하늘 노을꽃 피어날 때를 기다리는 바닷물이 시커멓게 드러나는 갯바위에 부딪치며 철썩이는 소리를 듣는다. 그 먼 옛날의 소리처럼 아련하게 들려오는 바닷물 소리, 그 소리를 뒤로하고 기어코 떨어지지 않으려 몸부림을 치던 가녀린 풀꽃 소희를 떨구던……. 그리고 애써 달아나듯 하늘로 날아올랐던 그날이 떠오른다. 억세게 퍼붓는 빗속에 거꾸러지며 울던 여인, 거친 파도 속으로 뛰어들며 한사코 따라오려 몸부림치던 그날의 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제 어미를 따라 굿을 하고 오던 놈, 한사코 장가를 들지 않겠다고 거세게 도리질 치던 놈, 고즈넉한 바닷가 모래밭에서 “누구없소, 누구없소.” 외치며 갈증을 느끼던 놈, 꿈속인 줄 모르고 한 짝의 붉은 꽃신을 찾지 못해 헤매던 놈의 등짝을 후려쳐 파도에 실려 두둥실 떠가는 고운님을 건져내게 했던 날의 설웁던 기억을 떠올린다. 이제 다시 피어나려는 순간, 두고 돌아서면 가여워서 걸음이 떼어지지 않던 수많은 날들 피워 올렸던 꽃, 사랑꽃……, 그 꽃을 업고 한 마리 짐승처럼 뛰던 놈의 뒷모습을 따라가며 그 여인은 내 사람이라고, 그 여인은 어여쁜 내 사람이라고……, 외치며 떠나보내던 날, 도영은 많이도 울었다. 길게 길게 서럽게 서럽게 끄와악 끄와악 울었던 그날……, 그 여인에게 한마디 말도 남기지 않고 떠나온 놈을 얼마나 거세게 밀치고 얼마나 험악하게 때려눕혔던가. 지금 그놈이 도영의 사랑꽃 옆자리에 앉아 가희의 서방놈 동은이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놈은 무엇이 저리도 뿌듯한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다. 가희라면 사족을 못 쓰고 바보같이 웃어재끼는 놈 칠푼이 팔푼이 같은 놈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동은이를 본다. 무엇인가 뒤틀리는 심사가 도영의 얼굴빛에 감돌다 사라진다.
비둘기 몸살 같은 은회색 더그레 짧은 소맷자락에 하늘빛으로 색동을 놓아 입은 놈이 허리에 깃을 두르고 나와 절을 한다. 검은 상모 밑 꽃은 하얗게 피어올랐고, 놈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이다. 둥그런 코 펑퍼짐한 놈이 상모 꼭지 진자를 따라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채 끝 초리를 돌리며 둥그렇게 원을 그린다. 소희의 끌신을 따라 위로 아래로 움직이며 물을 퍼올리는 것 같던 신나무처럼 긴 진자와 물채 끝 초리가 동은이의 고갯짓을 따라 움직인다. 위로 가자하면 위로 가고, 아래로 가자하면 아래로 간다. 순응하는 것만이 자신의 일인 양 거스름 없이 따라 움직인다. 하얗게 휘날리는 긴 종이 초리가 둘러앉아 구경을 하는 신들과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어 울리려 한다.
동은이가 고개를 양 옆으로 휘젓자 초리는 크게 원을 그리며 하늘을 돈다. 정월대보름 전날 밤이면 동네 아이들 모여들어 온 하늘을 붉은빛으로 휘감던 것처럼 빙글빙글 돌며 파문을 일으킨다. 어른들이고 아이들이고 깡통 하나를 집어와 구멍을 뚫고 그 속에 볏짚을 넣고 나뭇가지들을 넣어 불을 붙여 돌리면 검게 웅크리고 있던 밤하늘은 붉게 물들며 온 세상을 환하게 물들였다. 논둑 밭둑으로 몰려다니며 불을 놓아 농사에 해로운 벌레들이나 쥐들을 없애고 풍년을 준비하던 사람들의 울렁임이 동은이의 고갯짓으로 살아 돌아온다. 액운과 재앙을 태워 없애준다고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간절하게 타올랐던 불덩이들이 동은이가 펼치는 산다위 놀음에 실려 나온다. 정월대보름 달이 둥실 떠오르면 단을 세우고 대나무를 높이 세워 달집을 짓는 사람들, 지나가버린 한 해를 돌아보고 좋지 못했던 기억들을 털어내며 새로운 기운을 열어 받아들이던 사람들의 가슴에 소원이 가득 들어차면 달집은 타오른다. 그 속에 휩쓸려 들어간 액운은 태워지며 비명을 지르고, 새롭게 솟아나는 저마다의 소원들은 밝게 빛나며 꽉 차오른 달빛에 기대어 두둥실 솟아오를 것이다. 그 기원이 누구누구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퍼져 흐를 것인데, 그 기운이 동은이의 고갯짓에서 피어나고 있다. 그리고 깊은 땅 속을 파고들어 가 숨어 흐르는 물을 훌쳐들고 오는 것처럼 팔을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한껏 치켜올리고 한껏 내리 뻗으며 소고를 친다. 쥐불놀이 깡통처럼 휘돌던 초리가 팔자(영겁, 뫼비우스의 띠 모양)를 그리며 콩콩거린다. 시작점이 없으니 끝점도 없는 무한의 반복이 윤회의 물결로 회오리친다.
놀음은 비로소 시작이 되고 사람들은 한껏 기를 살려 “조옿다!”를 외친다. 두 팔을 쩌억 벌리고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 뛰어오르던 놈이 고개를 한껏 숙이고 한 자리에서 어정거린다. 시선은 어찌하여 한사코 땅으로만 두려는 것일까. 눈을 들어 앞을 응시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맞바라보지 않는다. 초리가 구부정하게 흔들리는 물채를 따라 움직인다. 구부정한 물채 역시 진자에게 매인 몸이라 상모의 꼭지를 거스를 수 없다. 모든 움직임은 진자를 돌리는 축에 따르는 것이고, 어쩌면 그 축은 대갓집 고명딸로 태어나 부귀영화를 누리며 꽃그늘에 앉아 호사를 누리던 소희의 삶을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게 한 운명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태평소 날라리의 소리가 가슴속에 쌓인 먼지 같은 것에 손을 뻗으려 한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메마른 땅에 쌓인 흙들 사이에서 몽글몽글 솟아오르기도 하고, 하늘하늘 옆으로 퍼지기도 하며, 형체도 없이 흩날리던 미세한 것들이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며 공중으로 흩어진다. 뒷춤에 손을 넣고 몸을 살짝 비틀어 구부정하게 선 동은이가 왼발의 뒷꿈치를 살짝 찍고 살짝 찍어 들어 올리며 초리를 희롱하는 사이 태평소의 소리가 허망하게 사라져 간 먼지 같은 것들을 향해 피식 웃고는 경대의 거울로 향한다. 뚜껑을 열고 또렷하게 비치는 열여덟의 소희를 본다. 무엇하러 경대의 뚜껑은 열었을까. 물오른 꽃송이 아직 피어나지 않은 채로 봉긋한 미소 그대로 향기로운데 거울이 슬프게, 제 쓰임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채로 차라리 열리지나 말 것을 스르르 닫히고 마는 거울을 본다. 그곳에선 그냥 하릴없이 내려앉아 점이 되고 만 먼지들마저 서운이의 덜 여문 손끝에서 닦이고 말았다. 태평소의 소리가 무안함을 느끼며 동운이의 춤사위 속으로 숨어 들어간다.
밟힐세라 밟을세라 조심조심 숨죽여가며 까치걸음으로 이끌어가고 이끌려가는 초리와 동운이의 춤사위에 실려가는 소고에게는 또 무슨 죄가 있었더란 말인가. 거울이 된다기에 거울을 꿈꾸었고, 해가 된다기에 해를 꿈꾸었고, 달이 된다기에 달을 꿈꾸었을 뿐인데, 오고 가는 길목마다에서 힘껏 내려치는 매를 맞으며 울고 만다.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중에
또 다시 꿈 같도다
너의 희망이 무어냐고 묻는 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의 물음일까. 소희가 고개를 들어 사위(四圍)를 살펴본다. 부귀영화를 누렸으니 이만하면 네가 꿈꾸던 희망이 족하지 않느냐고 물음을 뜬다. 손톱 밑이 아리고 저려온다. 으음, 손톱 밑이 밤새 저렸던 기억……. 소희가 자신의 손톱을 들여다본다.
봄이 지쳐 여름으로 들어서는 길목으로 접어들면 모란은 이미 지고 모란의 넋은 씨앗을 남겨둔 채 돌아갔다. 씨앗의 기억 속에 새겨진 어미의 자취는 반혼(返魂)이라는 이름으로 다음 해 봄이 되면 그 자리에서 피어나고, 모란 향기 그윽한 추억이 사라지기 전에 작약이 화사하게 피어났다. 부처님 등꽃이라고 불리우며 사랑을 독차지하던 작약이 질 무렵이면 화단 한켠에 봉선화 줄기들이 푸르게 솟아오르며 잎을 무성하게 쏟아냈다. 그 무성한 잎사귀들에 싸여 피어난 주황빛깔 꽃은 어쩌면 그렇게도 도도한가. 도드라지게 풍성한 향기도 품지 않은 것이 도도하게 피어 하늘거리다가 피를 토하고 죽어갔다. 저 혼자 피어서 저 혼자 맞이하는 죽음이 아니었다. 어느 하루 꽃사랑에 취해 화단으로 내려선 발길들이 무심하게 뜯어 안으로 들어가더니 백반을 빻아 넣고, 확독에 보리를 넣고, 때로는 생고추를 넣고 박박 갈아 밥도 하고 김치도 담그던 묵직한 돌을 가져다 콩콩 내려 찧었다. 그리고는 시퍼렇게 먹물 들어 짓찧어진 피의 덩어리들을 가져다 딸내미 손톱 위에 얹어 두고 잎사귀로 칭칭 감아 밤을 지새우게 했다. 하얀 명주실을 몇 번이고 돌려 감아 꽁꽁 묶어두었던 실을 잘라내며 첫눈이 올 때까지 꽃물이 사라지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시고는 살풋 웃으시던 어머니의 정이 아프게 돋아온다.
손톱 밑이 아리고 저리던 밤의 기억, 서운이를 차마 깨울 수 없었던 밤들이었다. 낯선 곳이었다. 어버이들의 깊은 우정이 맺어놓은 인연의 끈, 그 끈을 물릴 수 없어, 사주단자의 언약이 너무도 지엄하여 거스를 수 없었던 낮과 밤들……. 순간순간이 아리고 저렸다. 시아버님의 눈빛은 가슴 밑바닥을 도려내는 것만큼 쓰리고 아팠다. “아가야…….” 불러놓고는 뒷말을 잇지 못한 채 한동안 허공을 두리번거리다가 “물러가 쉬어라.”라는 말씀 외에 그 어떤 말도 이어주지 못하던 날들은 그저 묵묵히 아플 수밖에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흰 빛깔의 머리카락과 하루가 다르게 굽어지는 등어리를 바라보면서 자식 된 도리로는 감당해 내기 어려운 나날들이었다. 그 수많은 날들에 쌓여가는 울분과 원한을 어찌 씻어낼 수 있단 말인가. 그저 묵묵히 쌓아가면서 무거워할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던 날들이었다.
앞으로 뒤로 까불러가며 소고를 두들기는 동은이가 소고의 가슴팍을 발로 차고는 앉았다 일어서며 초리를 돌린다. 오른쪽으로 원을 그려 해를 만들고 왼쪽으로 원을 그려 달을 만든다. 그리고는 오른쪽으로 달려 점을 찍고 왼쪽으로 달려 점을 찍는다. 팔자걸음 재재거리며 뽐내던 놈이 소희와 천문이의 봉분 주위를 돌아간다. 깨금깨금 뛰며 돌다가 갈지자로 뻗치더니 소고의 가슴팍을 발로 걷어차고 풀쩍 뛰어 몸을 뒤집어 날린다. 그렇게 조였던 몸을 다시 풀며 반대로 풀쩍 뛰어 뒤집어 날아오른다. 강남 갔던 제비가 바람을 타고 날면서 재주를 부리듯 동은이가 작은 연풍(燕風)을 일으킨다. 사람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친다. 소희와 천문이의 봉분을 따라 돌면서 제비바람 봄바람 흥부바람을 일으킨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주 보이는 서쪽하늘 세방의 푸른 물언덕에 연한 살구빛이 돋아 오른다. 상두꾼 몇몇 사람과 상주들의 가까운 친인척들이 영여를 되가지고 돌아가며 반혼(返魂)을 했건만 소희는 천문이와 나란히 앉아 동은이의 흥 오르는 춤사위를 지켜보며 옛일을 회상하고, 그런 소희를 살펴가며 가야 할 시간을 가늠해 보는 도영 역시 동은이를 바라보며 흐뭇해한다.
다 함께 힘을 모아 죽음을 죽음으로 끝내지 않고 새 생명의 탄생으로 이끌어 오던 사람들을 위해 하는 산다위도 이제는 무르익어간다. ‘덩기 덩기 더덩 따 덩기 더덩 덩기 더덩 더덩 따’ 장단에 맞추어 무릎을 굽혀 앉아서 소고와 채를 번갈아 땅을 쳐가며 초리를 돌린다. 양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마다 초리는 팔자를 만들어가며 경칩 물든 서쪽 하늘에 서서히 붉은 물 들여온다. 이제는 물살을 거칠게 헤쳐가며 소고를 까불러 둥근 원을 그리는 동은이의 산다위 마당 묏가에 살구빛 물들이 짙게 흩어져가며 주황빛이 되어가고 있다. 그 너머 하늘에서 서서히 바닷물을 향해 미끄러져 들어가는 붉은 해가 구름에 걸려든다. 갈색빛깔의 구름이 잿빛 구름과 섞이며 희끄무레해진다.
어스름이 옅게 퍼지는 바다를 앞에 두고 앉은 봉분을 따라 돌며 느릿느릿 재재거리며 걷는 동은이의 몸이 빙글빙글 돌아서 간다. 천천히 걷고 빠르게 걷고 돌아가며 속도를 높인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날며 제비바람 봄바람 흥부 대박 터지는 바람을 일으킨다. 환생의 바람을 일으킨다. 붉게 피어오르는 노을꽃에 물드는 사람들이 풀쩍 뛰어 돌며 날아오르는 동은이의 꽃물결을 바라본다. 환호성을 지른다. 몸을 풀어 한 마리의 소처럼 한 마리의 용처럼 차고 오르고 차고 날아도는 소용돌이가 무릎 굽혀 앉아서 소고와 채로 땅을 두드리며 그리는 나비의 날갯짓으로 하늘을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