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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 프로방스 May 31. 2024

절망이란 없다. 사는 길이 있다.

주역 /도덕경

모든 사물은 극에 달하면 반전이 생긴다.

주 역의 계사전.

모든 사물은 장대해지면 쇠해진다.

노 자의 도덕경.


새벽은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불면의 밤을 견디는 사람이나 일찍 일어나 활동하는 사람 모두에게 그렇다.


 새벽은 어둠이 물러나고 빛이 들어오는 시간이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뀌는 시간이 새벽이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정점에 다다른 것마다 급격한 하향곡선을 그리는 것이다.


가득 차면 기울다가 기울면 차기를 반복한다. 세상 이치가 그렇다. 왕성해지면 쇠약해졌다가 다시 왕성해는 일이 거듭된다.


어둠의 때는 절망이 아닌 소망의 빛을 기다리는 시간이자 사는 길이 열리는 때이다. 주역과 노자가 가르치는 핵심이 거기에 있다.


장미꽃이 활짝 피고 버들솜이 콧가에 스친다. 숲길을 지나 새싹을 쓰다듬는 순풍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봄은 행복의 에너지를 넘치도록 부어준다.


하지만 봄날의 행복은 잡힐 듯 사라지는 나비와 같고 문틈을 지나가는 망아지처럼 순간이다.  



오늘 보는 활짝 핀 꽃들이 낙화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갑자기 번개와 우레가 치며 삽시간에 하늘이 어두워지는 날이 멀지 않은 것이다.


아름다운 꽃도 반쯤 피었을 때 보아야 좋다. 활짝 피어 흐드러진 뒤에는 추한 몰골만 남겨 놓으니까. 뭐든 부족할 때 그치는 것이 맞다.


원하는 걸 다 이루지 못해 속상해할 것도 없다. 오히려 목표했던 것에 조금 못 미치는 게 좋은 것 아닐까.


음식도 배가 덜 찬 상태에서 수저를 놓아야 하는데 그것이 어렵다. 양껏 먹으면 당장은 후련하나 꼭 탈이 난다. 꽉 차면 그다음부턴 내리막 아닌가.


나이가 들었어도 이것 하나 제대로 못 지키는 나는 얼마나 어리석고 한심스러운지.


중국역사에서 진시황제는 언제나 절대권력의 상징이다. 그의 밑에서 오랜 기간 권력의 단맛을 누린 이사라는 인물이 있다. 그가 권세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자조 섞인 말을 하곤 했다.


다른 사람의 신하 된 자로서 나보다 윗자리에 있는 자는 없다. 지금 나의 부귀영화는 극에 달했다. 만물이 극에 이르면 쇠한다고 했는데 나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두렵구나.

*사마천의 사기*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것일까. 권력의 달콤한 맛은 정신의 미각을 마비시킨다. 영원토록 그 자리에 머물거라 착각하는 것이다.


권력의 미끼를 문 자마다 부귀영화라는 마약에 빠져들기 쉽다. 그 결과 교만이 하늘을 찔러 비극을 불러들인다.


 이사는 자신과 함께 삼족이 몰살당하는 광경을 지켜보아야 했다. 폭망 하는 인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잘 나갈 때 조심하란 경고문에 유통기한이란 없다. 꽃길 같은 형통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교만의 뱀들을 조심해야 한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 게 인생살이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0장 11~12절*


국가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차면 기우는 흥망성쇠의 현장이 국가다.


로마제국의 역사에서 한니발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이자 이름으로 남아 있다. 그로 인해 로마는 멸망의 위기까지 내몰리지 않았던가.


로마는 천신만고 끝에 한니발의 조국 카르타고를 멸망시킬 수 있었다.


기원전 146년 봄 고대의 위대한 도성 카르타고가 불에 삼켜지면서 재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의 시 한 구절을 조아리면서.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 로마도 이와 똑같은 순간을 맞이할 거라는 비애감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그로부터 약 1600년의 시간이 흘러 동로마제국이 멸망을 맞이했다. 스키피오의 우려와 비애감이 현실로 닥친 것이다.


 콘스탄티노플(오늘날의 이스탄불)이 사라지던 날 이슬람의 술탄 메메드는 일찍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지은 황량한 궁전에 들어섰다.


인간의 영화가 모두 덧없음을 느꼈을까. 술탄은 스키피오가 그랬던 것처럼 갑자기 페르시아의 시 한 토막을 읊조렸다. 황궁의 모자이크 돌을 발로 쓸어내면서.


황제의 궁전에는 거미줄만 무성하고

부엉이는 탑에 앉아 망루의 노래만 불러대는구나.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극에 달하고 장대해진 제국이라 할지라도 쇠락의 시간을 피해 갈 수 없다. 성함은 쇠함을 예고할 뿐이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자가 그곳에 머무는 시간은 기껏해야 삼십 분 정도란다. 정상에 오른 자는 내려오는 일만 남은 것이다.


큰 성공을 거두더라도 우쭐대거나 교만해선 안된다. 빙하의 크레바스 같은 위험이 숨어 있어 언제 어떻게 추락할지 예측할 수 없다.


잘 나갈 때 타인을 무시하고 교만하게 굴면 반드시 되갚을 당한다. 정상에 이르면 하락을 염려해 겸손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채근담의 교훈은 정곡을 찌른다.


젊어서 몸을 함부로 쓰면 나이 들어 병에 시달리고 번창할 때 못되게 굴면 쇠락할 때 보복을 당한다

그 인과관계에 주의하여 한창 세력이 극성하고 지위가 높을 때 앞날에 나쁜 결과가 닥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채 근 담*


금수저 물고 태어나지 않았다고 원망할 일도 아니다. 금수저는 비울 일만 있지만 흑수저는 채울 일만 남은 것이다.


 금수저의 권세는 소나기처럼 왔다가 회오리바람처럼 사라져 버린다. 자력으로 얻지 않고 거저 얻은 것은 믿을 게 못된다.


꼭대기까지 올라간 자는 내려가는 일만 남은 것 아닌가. 반대로 쇠락해진 사람은 이제 올라가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극에 달하면 반전이 생긴다.


절망의 시간이 찾아와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할지라도 실망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다. 망한 사람은 이제 흥할 일만 남지 않았나.


하던 일이 잘 안 된다고 매일 술과 벗하며 원망으로 시간 보낼 일이 아니다. 주식과 부동산도 내려갈 때 상승의 기회를 꿈꾸지 않던가.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다른 길이 반드시 존재한다.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말고는

여러분에게 덮친 시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시련과 함께 벗어날 길도 마련하여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하십니다.

*표준 새 번역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0장 13절*.


이 본문에서 주시할 단어는 '피할 길'이다. 그리스어의 이 단어는 본래 산에 있는 좁은 길을 뜻한다.


전쟁 중 산속에서 포위당한 군인을 생각해 보라. 매우 절박한 순간이 아닌가. 그때 깊은 산속에 숨어 있는 좁은 길을 발견한 것이다.


그 길을 통하여 죽음의 위협을 벗어나 도망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피할 길이자 사는 길로 나아가는 열린 문이다. 아무리 큰 시련이 있어도 넘지 못할 시련은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까닭 없이 시련 속에 빠뜨려 괴롭히는 가학적인 신이 아니다. 정당한 삶을 살아간다면 사람을 지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그를 버리지 않으신다.


 반드시 피할 길을 내주시고 사는 길로 인도하신다. 시련이 극에 달할 때 반전을 기약할 수 있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절망은 사는 길을 잉태하는 순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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