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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 프로방스 May 24. 2024

왕조차 어려운 일이 있다니! 사람 알아보는 법

 황제의 인물경영

임금노릇하기가 뭐 그리 어려운가

사람 알아보기가 가장 어렵지

백성을 편안케 하는 일은 사람 알아보는 데 달려 있다

정치의 성패는 사람을 잘 아는 데 있다.

*청나라 황제 건륭제(강희제)*


세상의 모든 일은 정치 시스템으로 수렴된다.


정치가 어떠냐에 따라 백성의 삶이 결정된다. 예나 지금이나 불변의 원칙이다. 청나라 황제 건륭제(강희제)는 이를 누구보다 잘 인식한 정치가였다.


중국역사를 통틀어 그 정도 클래스의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위인조차 사람 알아보는 일이 가장 힘들다 고백했다. 건륭제는 90세에 이르도록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는 독서광으로 유명하다.


왕노릇 제대로 한 인물치고 책벌레 아닌 사람은 없었다. 건륭제가 파고든 공부의 핵심은 사람을 알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공부는 정치를 위한 해법서이자 인물경영을 위한 빅 데이터였던 것이다.


공부와는 담을 쌓고 허구한 날 놀고먹으며 국고를 축내는 정치인들이 주변에 없는지 잘 살펴야 한다.


항우와 유방은 중국 고대사의 큰 획을 그은 인물들이다. 유방이 항우를 꺾고 천하의 패자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이것은 역사의 물음이다. 한나라를 세우고 비교적 안정된 시기를 맞은 어느 날 유방은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항우에겐 비범한 신하라곤

범증 한 사람뿐이었는데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내게는 계략의 천재 장량, 백만 대군과 싸워도 지지 않는 한신, 백성을 어루만지고 식량을 공급하는 소하 같은 신하들이 있었다


그들 모두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자들이었으나

나는 그들을 제대로 썼다

이것이 내가 천하를 차지할 수 있었던 요인이다.

*반고의 한서*


반고가 지은 고대의 역사서 한서에 등장하는 유명한 구절이다. 천하의 패권을 가른 결정적 요인은 사람을 제대로 알고 쓰는 일이었단다.


요즘말로 유방은 인간경영에 성공했으나 항우는 실패한 것이다. 두 사람의 차이는 그것이었다.


힘으로는 태산을 움직일 만한 장사가 항우였으나 사람관리에 실패하자 천하를 잃어버린 것이다.  


현대의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의 일화가 남다르다. 그는 일자무식이었으나 그의 밑에는 날고 기는 인재들이 수두룩했다.


정주영은 인재를 보는 눈을 가졌고 동시에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것이 그의 비범함이었고 성공 요인이 아니었을까.



현대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는 인간경영을 말하면서 무엇보다 사람의 가치관과 행동, 동기를 깊이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경영에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사람을 제대로 알고 써야 한다는 것이다.


건륭제의 인물경영철학을 현대 경영학의 시각으로 풀어쓴 느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람을 잘 알아볼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동양의 고전들은 이 문제를 대단히 심도 있게 다루었고 그 자료들 역시 적지 않다.


사람을 살펴보는 것 중에

눈동자를 보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눈동자는 그 사람의 나쁜 점을 숨기지 못한다


사람이 바르면 눈동자는 밝고

사람이 바르지 못하면 눈동자는 흐리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을 가려서 듣고

그 사람의 눈동자를 제대로 본다면

그 사람이 어찌 자신의 본마음을 숨기겠는가.

*맹자 이루 상 편*


맹자는 딱 한 번 사람 보는 법과 관련해서 눈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안과의사가 들으면 흐뭇해할 내용 같다.


마음이 맑으면 눈빛은 또랑또랑해지고 밝고 깨끗하게 빛난다. 이제부터 사람을 제대로 보려면 눈을 예의 주시하자.


대저 사람의 마음이란

산천보다 험하고 하늘보다 알기 어렵다

하늘에서는 춘하추동이나

아침저녁이라는 때의 구별이 있지만

사람은 표정을 딱딱하게 해

감정을 깊이 감추고 있다.

*장자 열어구 편*



장자는 표정에 나타난 감정의 숨김을 지적하고 있다. 사람은 속과 겉이 다를 수 있으니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 지적한다.


 20세기 들어 프로이트는 이것을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누어 어렵게 설명했는데 장자의 설명이 훨씬 명쾌하게 보인다.


사람을 들어 쓰는 근본 중에 가장 좋은 것은

그 사람의 뜻을 살피는 것이고

그다음은 그가 보여준 업무능력이며

그다음은 그가 세운 공로다.

*여 씨 춘 추*


이천 년을 뛰어넘는 고서에서 현대적 방식의 문장을 접할 때면 적잖게 당황한다. 그러나 인간의 문제는 시간의 경계를 부숴버릴 만큼 차이가 없다.


이 대목은 어느 비즈니스 센터의 회의실에서 나온 말 같다. 사람을 알고 평가하는 좋은 길잡이로 쓰일만하다.


이제 사람 아는 일의 길잡이라 할 수 있는 논어로 가 보자. 삼성그룹의 총수였던 고 이병철 회장이나 일본의 저명한 기업가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논어를 평생의 지침서로 삼았단다. 논어를 활용한 인간경영이 그 목적이었을 게다.


논어는 말을 논해서 사람을 아는 책으로 알려져 있다. 동양정신의 중추역할을 했던 이 책이 결국 사람을 알기 위한 가이드북이었던 셈이다.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

*논어 마지막 문장*

 

사람 알아보는 것만큼 어렵고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정치도 사업도 결혼도 사람 하나로 결정된다.


살아가면서 흔히 듣는 말이 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어. 내가 어리석었지'. 모든 일은 사람 때문에 일어난다. 사람 잘못 만나면 일평생 괴롭다.


사람 하나 잘못 쓰면 사업도 쫄딱 망한다. 지도자를 잘못 세우면 떡 쪄먹고 시루 엎는 나라가 되어 졸지에 몰락해 버린다.



건강도 예방이 최선이듯 사람관리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다 겪고 난 후 후회해 봤자 소용없다. 일을 다 마치고 나서야 사람의 진면목을 알아봤다면 이미 때가 늦다.


더 큰 문제는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안 고친다는 거다.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사람한테 한 번 속는 것만으로 족하다. 두 번 다시 속아선 안된다.


사람 알아보는 능력은 돈 주고 살 수 없고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도 없다. 오직 부지런한 공부와 경험으로 지혜를 얻어 이 방면의 근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말만 듣고서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차릴 줄 알아야 진짜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하는 말을 통해 사람을 알아보라는 것. 이것이 논어의 마지막 문장이 일러주는 뜻이다.


다음 구절을 보자.


호랑이 꼬리를 보면

그것이 살쾡이보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코끼리 어금니를 보면

그것이 소보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 한마디를 들어보면

백 마디를 알 수 있다.

*논어 술이편*


거듭되는 따끔한 가르침이다. 사람의 한 마디 말이 어찌나 중요한 지 너무 쉽게 간과하며 살아간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들어가 돈 버는 일만 알았지 정작 사람 보는 공부는 소홀히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는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이는 현대의학과 과학에서 말하는 환원주의의 논리다.


한마디 말만 들어봐도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의 직관력을 가지려면 얼마나 많은 훈련이 필요할까.


많은 사람이 그를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직접 살펴보아야 하고

많은 사람이 그를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직접 살펴보아야 한다.

*논어 위령공*


주식 투자도 다른 사람 말만 믿고 했다간 큰 피해를 입는다. 자기 공부의 밑천이 없으면 덤벼들지 말아야 한다.


사람 보는 일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잘 알아보는 사람은 자기가 직접 본 것을 가지고 들은 것을 바로 잡는다.



반면 사람을 제대로 볼 줄 모르면 남한테 들은 것을 갖고서 자기가 직접 본 것을 내팽개친다.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평가하지 말고 직접 그를 살펴본 후에 자기 주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 달리 말해 자기만의 확실한 안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알고 싶을 경우

먼저 그 사람이 행하는 바를 잘 보고

이어 그렇게 하는 이유를 잘 살피고

그 사람이 편안해하는 것을 꼼꼼히 들여다본다면

사람들이 어찌 자신을 숨기겠는가.

*논어 위정 편*


사람을 살피는 일은 이같이 정밀하고 디테일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그의 속 마음과 겉의 실상을 거칠게나마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삼국지의 주인공 제갈량은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한 방법으로 자기 나름의 몇 가지 룰을 정해 놓았다.


첫째, 어떤 일을 물어 그 대답의 옳고 그름을 통해 그 속 마음을 살핀다

둘째, 말로 궁지에 몰아넣어 그의 임기응변을 살핀다

셋째, 계책에 관해 말해보게 해서 그 식견의 깊이를 살핀다

넷째, 재난이 났다고 말해주어 그 용기를 살핀다

다섯째, 술에 취하게 해서 그 밑바닥 성품을 살핀다

여섯째, 돈으로 유혹해서 그 청렴함을 살핀다

일곱째, 어떤 일을 하기로 약속한 후 그 신뢰성을 살핀다.

*제갈량의 지인성*


삼국지만 보면 제갈량은 군사지략가지만 그 역시 사람 보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 듯하다.


그가 활용한 일곱 개의 프로그램을 각자의 삶에서 이용해도 좋지 않을까.


사람 알아보는 일의 어려움은 청나라 황제 건륭제만이 아닌 모두의 문제다. 헤아려 볼수록 그 속이 깊고 꽉 찬 사람이 있다.


마치 샘물에서 물이 점점 더 솟아나 재보면 더욱 깊은 것처럼 말이다. 이런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을 가졌다면 그가 황제보다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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