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을 지나며

2층의 나, 3층의 타미

by 도린

그녀를 보내며

오늘, 찬송가 가사가 유난히 선명하게 귓가를 파고듭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 익숙한 멜로디였지만, 장례식장에 울려 퍼지는 이 구절은 타미의 생애를 증명하는 마지막 선언처럼 들립니다. 밴쿠버에서 54년을 살아온 타미를 떠나보내는 자리. 화환에 적힌 "We love you" "We miss you"라는 문구는 한국어로 기도하고 영어로 상담하며 살았던 그녀의 생애를 추억하고 슬퍼하는 조문객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비추는 듯합니다.


경계를 잇는 다리,

타미는 진정한 한국인이자 완전한 캐네디언이었습니다. 두 문화 사이를 연결하는 든든한 가교였죠. 이민 목회를 하시는 부모님의 장녀로 태어나 짊어졌을 무게, 그리고 한인 목회를 하는 남편의 아내가 되어 감내해야 했던 책임감은 그녀를 내적으로 더욱 단단하게 담금질했을 것입니다. 늘 밝았던 미소는 어쩌면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고결한 의지였는지도 모릅니다.


2000년, 처음 만난 그녀는 건반 위에서 야무진 손끝으로 예배의 문을 열었습니다. 남편의 힘 있는 찬양 인도와 그녀의 반주가 하나로 어우러지던 시절, 우리는 기도원에 모여 함께 울고 웃으며 이민자의 고단함을 달랬습니다. 이후 각자의 사역지로 흩어져 살면서도, 기적처럼 품에 안은 두 아이 이야기와 상담가로서 마음 아픈 이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다는 소식에 멀리서나마 응원을 보냈습니다.

2층의 나, 3층의 타미

세월은 우리를 각자의 자리로 밀어냈고, 어느 날 우연히 제 직장 건물에서 그녀를 마주쳤습니다.
"어머, 사모님! 저 여기 3층에 있어요."
"어머, 타미! 나는 바로 아래 2층인데!"
계단 몇 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우리는 십수 년의 공백이 무색하게 활짝 웃었습니다. 사모로, 직장인으로, 엄마로 살아가는 치열함을 공유하며 우리는 '언제 한번 꼭 밥 먹자'는 약속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 '언제'는 허망하게도 짧았습니다. 혈액암이라는 불청객은 그녀를 급격히 쇠약하게 만들었고, 동생의 골수 이식에도 불구하고 바삐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나중에'라는 강을 건너


장례식장에서 많은 지인들을 만났습니다.
특별히 이민 목회 초기 함께 예배하던 젊은이들.
어느새 모두 중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반갑게, 또 애틋하게 악수하고 포옹하며
서로의 얼굴에서 무의식처럼 청춘의 흔적을 더듬었습니다.

반가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공기 속에서 습관처럼 "나중에 보자"며 인사를 나누고 흩어집니다. 이민자의 삶은 늘 무언가에 쫓깁니다. 교회, 일터, 가정, 부모와 자식... 그 수많은 부름에 응답하느라 정작 소중한 이들과의 만남은 늘 '다음'이라는 순번으로 밀려나곤 합니다.



하지만 타미의 부재는 오늘 제게 뼈아픈 교훈을 남깁니다. 죽음은 생각보다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입니다. 2층의 저와 3층의 타미 사이, 그 짧은 계단 높이만큼이나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얇았습니다.
우리는 더 밝은 천국을 믿기에 이별을 견뎌내지만, 그 믿음이 오늘 우리가 나누어야 할 사랑을 유예해도 좋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며칠 후'를 기약하기보다 '오늘' 메시지를 보내고, '오늘' 마주 앉아 온기를 나누며, '오늘' 사랑한다고 고백하라고 가르칩니다.
이제 저는 망설임이라는 깊은 강을 건너보려 합합니다. 미루어 둔 안부를 묻고, 차마 꺼내지 못한 진심을 전하며, 오늘이라는 허락된 시간 속에서 누군가의 손을 꼭 쥐어보려 합니다. 천국에서 평안 속에 있을 타미를 기억하며, 내일로 미뤄둔 모든 사랑을 지금 이 순간으로 소환해 봅니다.


사순절, 연약한 인생


사순절을 지나고 있는 요즘, 그녀의 부고에 부쳐 사순절의 시작을 알리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의 의미가 좀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라고 나직이 읊조리며 결국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인생을 되뇌었습니다. 연약한 유리그릇 같은 우리는 그저 잠시 빌려온 시간을 살다 가는 여행자일 뿐임을 다시 한번 곱씹어봅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