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의 도약이 선물한 기적
밴쿠버의 겨울은 눅눅한 회색빛 습기와의 사투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와 오후 4시도 되기 전에 찾아오는 이른 어둠은 도시의 활기를 꺾고, 두툼한 코트 속으로 움츠려 들게 한다. 하지만 3월의 두 번째 일요일, 시곗바늘이 새벽 2시에서 3시로 예고 없이 점프하는 순간(Spring forward), 새로운 활력이 수혈된다. 이것은 단순한 시간의 조작이 아니라, 밴쿠버의 진짜 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가장 눈부신 선전포고와도 같다.
물론 대가는 있다. 월요일 아침, 억지로 잡아끌어 올린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생체 리듬은 잠시 길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며칠 피곤해도 어쩌겠는가? 잃어버린 한 시간의 보상은 퇴근길의 환한 햇살로 돌아온다. 빌딩 숲 사이로 길게 드리워진 오후의 금빛 그림자를 마주하는 순간, 비로소 겨울의 터널을 빠져나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내게 이 '사라진 한 시간'은 시리고도 따스한 기억으로 오버랩된다. 시어른께서는 총 네 번 밴쿠버를 방문하셨는데, 그중 두 번째 방문이 아프게 기억된다. 약 석 달간 함께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난 뒤, 몸이 약했던 첫째 아이의 머리카락이 속절없이 빠지기 시작했다. 고운 긴 머리를 단발로 싹둑 잘라내야 했을 만큼 지독한 원형탈모였다. 의학으로도 설명되지 않던 그 아픔의 실체는 상담사 앞에서 터져 나온 아이의 닭똥 같은 눈물 속에서 드러났다. 범인은 다름 아닌 '그리움'이었다.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공항에서 펑펑 울던 아이의 여린 마음이 병이 되었던 것이다.
이듬해, 세 번째 방문이 끝나던 날에는 예기치 못한 '복된 실수'가 찾아왔다. 시부모님을 배웅하러 나갔던 공항, 평소라면 북적였을 체크인 라인이 이상하리만큼 휑했다. 데이라이트 세이빙(Daylight Saving)의 시작을 깜빡하고 시간을 맞추지 못해,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도착해 버린 것이다.
당황스러움은 잠시였다.
비행기를 놓쳐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시어른은 이틀을 더 머물게 되었다.
뜻밖의 이틀은 우리 가족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 되었다.
“딱 하룻밤만 더.”
속으로 그렇게 바랐을 아이의 기도가, 한 시간 앞당겨진 일광절약제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우리의 실수를 빌려 응답된 것일까.
억지로 떼어내야 했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을
다시 맞잡고 보낸 시간은 지난번 이별의 상처를 조용히 어루만져 준 딸아이를 위한 신의 배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이면 밴쿠버의 시계가 한 시간 앞당겨지는 서머타임이 시작된다. 그날의 ‘휑했던 공항 라인’을 떠올리니 미소가 지어진다.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가 있다.
서머타임 때문에 시계를 맞추지 않은 소년이 세상에서 사라진 ‘잃어버린 한 시간’ 속에 혼자 남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 다음 시간으로 건너가 버리고, 소년만 텅 빈 마을을 헤매다 뒤늦게 시간을 맞추며 비로소 제자리의 시간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였다. 재미있는 상상처럼 들렸던 이야기가 어느새 나의 경험이 되다니.
우리도 그날,
한 시간을 놓친 덕분에,
세상이 잠시 멈춘 것 같은 시간을 얻었으니까.
며칠간의 피곤함이야 기꺼이 감수하며
아른거리는 그리운 얼굴들을
찬란한 햇빛 속에서 가만히 떠올려 봐야지.
그해 우리는
한 시간을 잃고,
이틀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