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즈(Nowruz)

비바람 너머로 피어난 초록, 진정한 봄의 얼굴

by 도린


​밴쿠버의 봄은 늘 비바람을 동반하며 찾아온다. 창밖의 사나운 날씨를 바라보며 봄이 오기는 하는 걸까 의구심이 들 때쯤, 자연은 어김없이 섭리를 따라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


​오늘은 노루즈(Nowruz), 페르시아의 새해이자 가장 큰 명절이다. 일터에서 만난 이란 환자에게 건넨 “Happy Nowruz!”라는 짧은 인사 한마디는 그 척박한 비바람을 뚫고 피어난 작은 꽃씨 같았다. 새롭다는 뜻의 ‘Nor’와 날을 뜻하는 ‘Ruz’가 만나 이루어진 이 단어는, 단순히 달력의 숫자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만물이 다시 태어나는 춘분(Equinox)의 신비로운 시작을 알리는 날이다.


​우리는 함께 ‘하프트 신(Haft-sin)’ 상차림에 담긴 생명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메마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초록 새싹 ‘사브제’는 부활을, 붉은 사과는 건강을 상징한다는 설명을 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금세 환한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상징들을 이야기하는 마음 한편에는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얹혀 있었다. 그녀의 고국에서 들려오는 전쟁의 소문과 예측할 수 없는 안타까운 소식들, 그리고 그 속에서 스러져가는 무고한 사람들, 채 피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한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깊은 슬픔으로 물들였다.


​밴쿠버라는 다민족의 거대한 모자이크 속에서 매일 사람들을 마주하며 깨닫는 것이 있다. 정권이나 권력을 가진 소수의 사례들이 세상을 어지럽힐 뿐,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이웃은 그저 평범하고 선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가족의 안녕을 바라고, 따뜻한 밥 한 끼의 소중함을 알며, 평화를 갈망한다. 평소 가졌던 선입견은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하는 순간 눈 녹듯 사라지고 나의 편협한 시선을 돌아보게 한다.


발전하지 않는 영어 사이로 간간이 섞여 나오는 일본어, 그들의 방식으로 건네는 짧은 새해 인사—스페인어, 독일어, 러시아어까지. 그리고 비 오는 날, 칼국수 대신 가성비 좋은 월남국수를 즐기는 나…

이만하면 진정한 월드클래스라 우겨도 되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아픔에 공감하는 연대의 힘일 것이다. 이란 클라이언트와 나눈 짧은 대화는 국경과 인종을 넘어선 인간적인 유대였다. 그녀의 환한 미소 속에서 비바람 뒤에 찾아오는 진정한 봄의 얼굴이 서려있었다. 우리가 함께 피워낸 이 연대의 초록이, 머잖아 만개할 벚꽃과 밴쿠버의 거리를 가득 채우길, 그녀의 고국의 아이들에게까지 평화의 향기로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Nowruz Mubarak!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비바람 속에서도 만개를 향한 몸짓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