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돌아보며
일을 쉬는 날이면 보통 산에 오른다.
햇살도 듬뿍 받고 우거진 숲길을 따라
맑은 공기도 마시고
신선한 바람도 맞으며 걷는 그 시간이
참 귀하고 좋다.
하지만 오늘은
약속이 세 개나 겹쳐 있었기에
산행은 미뤄두기로 했다.
하나. 젊은 동료들과의 브런치
첫 약속은 브런치였다.
칼리지에서 함께 공부했고,
지금은 같은 분야 속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 동료들.
딸 또래의 나이지만
엄마 같은 나를 스스럼없이 껴주는 고마운 사이.
일에 대한 열정,
꾸준한 운동과 건강한 취미,
틈틈이 떠나는 여행과 캠핑.
균형 잡힌 워라밸을 실천하며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싱그럽고 상큼하다.
그 젊음 속에서 나는 종종 생기를 얻는다.
때로는 그들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자극도 받는다.
하지만 보송보송하고 반짝이는 웃음 너머,
또 다른 도약을 위한 도전과
고물가 시대를 버텨야 하는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모습이
안쓰러울 때도 있다.
그들을 통해
우리 자녀 세대가 살아가는 시간의 무게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것이
두 딸을 둔 나로선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라 여긴다.
둘.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점심
두 번째 약속은 언니 같은 친구와의 점심.
두 살 많은 그녀와는 15년 넘게 같은 교회를 다니며 신앙의 시간들을 함께 나눈 사이다.
사정이 엇갈려 거의 4년 만에 만나게 되었는데
그사이 많은 일이 있었단다.
갑작스레 찾아온 병으로 암투병을 겪었고,
딸을 시집보내고 손주도 품에 안았다니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실감이 났다.
굵직한 삶의 굽이들을 지나온 그녀와의 대화는
담담했지만 깊었고 묵직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귀하게 쓰고 싶다고 했다.
나 역시 내 삶을 진솔하게 성찰하고
좀 더 밀도 있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랜만에 마주한 얼굴은 세월 앞에 조금 꺾였지만
마음만큼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편안했다.
깊은 국물맛이 우러난 해물탕을 먹으며
찐한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그간 쌓인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짧지만 따뜻한 시간이었다
셋. 후배들과의 저녁 식사
마지막 약속은 짜장면 탕수육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내가 다녔던 칼리지에 늦깎이로 입학해
고생 끝에 2년의 과정을 마친
후배들과의 자리였다.
나보다 열 살 이상 적은 나이
나의 길을 뒤따라온 그들이기에
기꺼이 후배라 부르기로 한다.
아직 주정부에서 주관하는 보드시험이 남아 있지만
오늘만큼은 그 모든 긴장을 무장해제 한채
자유를 만끽하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걸어본 선배로서
그들의 노력과 수고가 얼마나 큰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진심을 다해 축하와 응원을 전해 주었다.
한 걸음을 뗀 용기와 꾸준함으로 버터온
우직함에 박수도 함께 담아
---
이렇게 세 번의 약속을 모두 완수했다.
산은 오르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대화하고, 음식을 나누고,
마음을 들여다보고,
작은 응원과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