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베리 1
집 앞만 나서면
블랙베리 숲이 길 따라 지천이다.
엄마는 한국에서 복분자로 알려진 블랙베리를 보시고는
수렵채취의 본능에 고무되어
며칠째 블랙베리 따는 재미에 푹 빠지셨다.
반듯하게 개어진 이불 위에
베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걸 보니
오늘도 이른 새벽부터 하얀 양동이를
챙겨 들고나가신 모양이다.
허리 수술을 하시고
팔십을 바라보는 노구를 이끌고
막내딸 보러 밴쿠버 공항에 도착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아버지 돌아가신 지 딱 1년 만에
휠체어 서비스를 받아 태평양을 건너신 것이다.
주먹만 해진, 오그라든 엄마의 체구를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져
결국 울고 말았던 그날.
허리 아프시니 따지 말라고 해도
가만히 있으면 더 아프다며
운동 삼아 따겠다는 고집을 어찌 꺾을 수 있었을까.
해가 제법 따뜻하게 떠올랐는데도
감감무소식이다.
국을 끓이고
아침을 준비하다 말고
엄마 간식부터 챙기기로 했다.
쑥개떡 몇 장 프라이팬에 지지고
달달한 믹스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새참 들고 블랙베리 숲으로 나섰다.
가시에 긁혀도 아랑곳 않고
정신없이 따는 엄마의 뒷모습.
구부러진 허리가 땅에 닿을 듯한데
고개를 치켜들고 굵고 여문 열매를 향해 필사적이다.
“참 먹자, 엄마.”
나는 엄마 얼굴만 살핀다.
“희한하재. 집 앞에 복분자가 우예 이리 지천이고.”
엄마는 블랙베리만 바라본다.
나무둥치에 나란히 앉아
쑥개떡 한 입, 따끈한 커피 한 모금에
땀을 식히시며
쭉쭉 뻗은 나무들을 바라보며 감탄하신다.
“어째 이래 나무들도 큼직큼직 고르게 뻗어 반듯하노.
한번쓱 전화하면 숲도 많고, 다람쥐도 많고,
곰까지 나타난다 하길래
나는 니가 영~~ 촌에 사는 줄 알았두만.”
그제야
나를 보고
활짝 웃어주는 엄마.
이민을 결심하고 처음 엄마에게 말씀드린 날,
엄마는 내 등을 쓰다듬으며 우시고 또 우셨다.
“지금도 나는 니가 멀리 살아 아쉬운데,
더 먼 데를 가면 어짜노…”
차로 한 시간이면 왕래할 수 있는 거리도 멀다며 성화 시던 엄마.
나의 이민 선언은
엄마 가슴에 대못을 박은 셈이었다.
“뜻이 있고, 계획이 있어
좋은 곳에 간다 하니 말리지는 못하겠다만…”
그렇게 한국을 떠나
이곳에 정착한 지 12년째.
엄마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막내딸을 보러 오셨다.
자주 방문하겠다는 야무진 약속은 헛맹세가 되었고,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두 번 한국을 방문하고,
아버지 돌아가시던 해 남편과 둘이 한 번 더 다녀왔을 뿐.
‘일 년에 한 번이라도 꼭 찾아뵙겠다’ 던 결심은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재정적인 빠듯함으로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엄마, 내하고 같이 쪼매만 더 따고
집에 가서 아침 먹어요.
맛있는 국 끓여 놨어.”
가시를 피해 가며
알알이 맺혀 충실한 가지를 엄마 쪽으로 끌어당겨 주면
엄마의 손이 신이 나서 바빠지고
양동이는 금세 열매로 가득 찼었다.
오늘은 유난히 더운 날이다.
일을 마치고 샤워한 뒤
마실 삼아 길을 거닐었다.
엄마랑 함께 딴 이후
한 번도 따지 않았던 블랙베리들이
올여름에도 여전히
알알이 익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쑥개떡을 먹고
믹스커피를 마시던 그 자리에
이웃 부부가 나란히 앉아 쉬고 있었다.
까맣게 오늘이
그날처럼 익어가고
블랙베리 가지마다
날 선 그리움이
가시처럼 돋아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