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대, 우리의 자녀들

by 도린

프롤로그

낯선 땅에서 자녀를 위해 헌신해 온 이민 1세대 부모님들, 그리고 두 문화 사이에서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1.5세대 자녀들.

이 글은 그 사이를 살아본 이의 작은 성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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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따라 낯선 땅에 정착한 자녀들, 이른바 1.5세대.


그들의 마음속에는 늘 두 개의 문화가 공존합니다.

집에서는 한국어를 쓰고, 밖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며, 때로는 부모의 눈치를 살피고, 현지인 또래 사이에서는 자신을 숨기거나 맞추려 애쓴 무수한 시간들이 있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학교에서 배운 표현과 방식은 집 안에서는 낯설고,

한국적인 예절은 친구들 앞에서 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들.

언제 어디서나 조금은 어긋난 채 살아가고 있을 우리 자녀들의 마음을 떠올리며,


> “애들은 학교만 가면 영어는 저절로 하게 돼. 친구 사귀면서 자연히 문화에 익숙해지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대신 한국말은 금방 잊어버리니, 모국어를 잊어버리지 않게 꼭 지켜줘야 해. 우리는 한국 사람이니까.”




많은 이민 1세대들이 했던 말입니다.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지만, 현실은 그보다 더 복잡하고 조심스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자녀의 입장에서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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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장벽 앞에서,

한국에서의 커리어는 무용지물이 되고,

많은 이민 1세대 부모님들은 한인 사회 혹은 간단한 영어만으로 가능한 일터에서 묵묵히 일하며 자녀의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희생은 분명 숭고하고,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는 그 희생 뒤에 감춰진 또 다른 무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중 언어 구사를 ‘당연한’ 능력처럼 요구받으면서도,

정작 영어를 자연스럽게 포기하거나 게을리하는 부모님들을 많이 봤을 자녀들, (저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 “나는 나이 들어서 못해. 그런 건 네가 좀 해 줘.”

“너는 좋은 환경에서 자랐잖아. 영어 잘하는 것도 다 우리 덕분이지. 한국에 있었으면 입시지옥 겪었을 텐데.”


고단함과 더불어 자부심이 담겨 있는 그 말속의

무게까지 함께 짊어진 건 결국 자녀들일 것입니다.


각종 행정업무, 병원 예약, 상담 통역, 심지어 부모의 감정까지도

‘자녀의 몫’이 되는 현실.

아직 아이의 세계를 표현해야 할 언어로,

어른들의 세계를 감당해야 하는 이 모순 앞에서

자녀들은 조용히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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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 되어, 자녀 또래의 동료들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고민에 조금씩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넘어서

노후 준비를 제대로 못한 부모를 물질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

그게 ‘당연한 의무’처럼 짊어져야 하는 자녀들도 만나 보았습니다.


그러나 ‘당연함’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학 졸업장 하나로 평생직장을 기대하던 세대지만,

우리 자녀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직업의 형태도, 방식도, 존재 자체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시대.

AI의 등장은 그 변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업 외에도 두세 개의 부업을 병행하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른바 ‘n잡러’.

그들의 바쁜 하루 속엔 독립, 생계, 그리고 부모에 대한 책임이 함께 얹혀 있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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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이민 1.5세를 자녀로 둔 부모로서,

그 무게를 얼마나 나눠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민 1세대의 삶이 결코 가볍지 않았던 것처럼,

자녀들의 삶 또한 그에 못지않게 녹녹지 않은 것을 짐작해 보면서 말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고,

두 문화를 잇는 징검다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징검다리 위의 혼란과 애씀을,

이제는 더 세심하게 바라보고,

그들의 삶에 우리 책임의 그림자를 너무 짙게 드리우지 않도록—

마음을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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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이민 1세대를 부모로 둔 자녀들의 마음은 각별할 수밖에 없어.”




딸아이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오늘도 나의 자리에서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지켜야 할지를 고민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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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자 애쓴 모든 이민 1세대 부모들에게는

깊은 감사의 마음을,

두 문화를 끌어안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1.5세대 자녀들에게는 진심 어린 응원의 마음을 보냅니다.

부모의 사랑을 자녀들에게 부채나 무게로 여겨지지 않기를,

서로의 짐을 덜어내고, 마음을 더 이해하는 다리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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